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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ㆍ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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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2.2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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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신 어머니 내개 이 노래 가르쳐 주실 때 두 눈에 눈물이 곱게 맺혔었네.
이제 내 어린 딸에게 이 노래 들려주려니 내 그을린 두 뺨 위로 한없이 눈물 흘러내리네.”


드보르작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유투브 검색어 Dvorak Songs Mother Taught me Netrebko


안토닌 드보르작(1841~1904)은 세 아이를 저 세상으로 보낸 뒤인 1880년 이 노래를 작곡했다. 이 노래를 들어야 할 아이들은 세상에 없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가르쳐 주며 눈물 흘리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추억 속에 살아 있었다. 어머니는 슬픔에 잠긴 아들을 말없이 안고 함께 울어 주었다. 독일 시인 아돌프 하이두크의 시에 애잔한 선율을 붙이며 드보르작은 울고 또 울었다.

▲ 드보르작과 아내 안나 체르마코바

32살 때 결혼한 젊은 가장 드보르작은 아직 작곡가로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소시민들이 사는 임대주택을 빌렸고,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해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다. 틈틈이 피아노 레슨까지 해야 아기들을 키울 수 있었다. 결혼 3년째인 1875년, 드보르작은 빈 정부가 ‘젊고, 재능 있고, 가난한’ 예술가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됐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당대의 거장 요하네스 브람스가 그의 천재성을 인정했다. 이제 드보르작에겐 작곡가로 활짝 피어날 길이 열렸고, 세 아이의 앞날도 남부럽지 않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운명은 예기치 못할 때 문 앞에 들이닥치는 법, 세 아이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첫 아기 요제파가 죽었을 때 드보르작 부부는 종교에서 위안을 찾고자 했다. 드보르작은 〈슬픔의 성모〉를 작곡하며 자기를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십자가에 못 막힌 아들 예수를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을 노래한 성가곡…. 부부는 힘을 내어 새롭게 출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1년 반 뒤, 둘째딸 루제나가 극약을 잘못 먹고 죽은 데 이어 첫아들 오타카르가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 부부는 넋을 잃고 쓰러졌다. 1880년 〈슬픔의 성모〉 초연을 앞두고 작곡한 작은 노래가 바로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였다.

드보르작은 체코의 시골 넬라호제베스에서 14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7살 드보르작은 일요일 성당에서 미사가 끝나면 마당에서 바이올린으로 폴카나 왈츠를 연주하고 사람들이 귀엽다고 동전을 주면 부모에게 조르르 달려와서 웃어 보이는 꼬마였다. 아버지는 정육점을 했고, 이 가업을 맏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12살 소년 드보르작은 아버지를 도우려고 송아지를 끌고 오다가 진흙탕에 쓰러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치터 연주를 잘 했고, 직접 춤곡을 작곡해서 연주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맏아들이 음악 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지만 어머니와 외삼촌이 설득하자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덕분에 드보르작은 위대한 작곡가 중 푸줏간 면허가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됐다. 드보르작은 12살 때부터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16살에 드디어 음악가의 꿈을 품고 프라하로 가게 된다. 이때 아버지와 아들은 손수레에 짐을 싣고 프라하까지 35Km 먼길을 함께 걸어서 갔다고 하니, 무척 정겨운 풍경이다. 훗날 영국 언론은 드보르작을 인터뷰하면서 제목을 “드보르작, 푸줏간의 칼 대신 지휘봉을 잡다”로 뽑았다.

그렇다면 어머니 안나 즈덴코바는? 지방 군주인 로브코비츠 집안 집사의 딸로, 품위 있는 여성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드보르작이 어머니의 어떤 모습, 어떤 성격을 닮았는지 짐작할 수 없다. “그녀의 모습은 빛바랜 그림 한 장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쿠르트 호놀카 〈드보르자크〉, 한길사) 두 외삼촌은 각각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 트럼펫 연주자였고, 어머니 안나도 음악에 친숙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드보르작에게 음악 재능을 물려주었는지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여느 어머니처럼 그녀도 아기 드보르작에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자장가를 불러 주었을 것이다. 평범한 어머니, 아니, 평범하기 때문에 위대한 모든 어머니…. 훗날 아들이 가장 큰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부드럽게 일으켜 세워 준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나이 들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지만, 자식을 잃은 드보르작 자신의 쓰라린 마음을 담고 있다. 7곡으로 된 〈집시의 노래〉 Op.55 중 네 번째 노래인 이 곡에서 드보르작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을 어머니의 추억으로 승화시켰다. 캄캄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댄 드보르작은 어머니를 기억하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으리라.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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