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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탈진실 시대’가 위험한 이유‘진실 추구의 포기’로 얘기되는 상황… 언론기능의 본질, 핵심의 실종 우려
[민언련 언론포커스] 이명재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위원
  • 관리자
  • 승인 2023.05.2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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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에서 ‘근대화’의 한 특징으로 거론되는 것에 탈주술화, 혹은 세속화, 탈종교화 현상이 있다. 막스 베버를 비롯해 많은 사회학자 사이에서 굳어진 이론이다. 그러나 이 같은 언명은 수정돼야 할 듯하다. 사실은 현대의 현상은 종교의 소멸이 아니라 종교의 다원화, 새로운 종교들의 출현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새로운 종교들이 재래의 종교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세속화가 아닌 다른 종교들의 번성이며 종교의 다원화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신앙의 위치에 올라가 있는 새로운 믿음 중에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는 성장 지상주의니 이윤의 추구라는 신비를 받드는 경제학이 있을 것이다. 또 ‘과학’에 대한 맹신, 즉 ‘과학적’이라는 수식으로 얘기할 때 다른 설명은 침묵하라는, 절대자로서의 불가침 권위를 누리는 과학이라는 종교도 있을 것이다.


‘진영’에 따른 진실만 있을 뿐이라는 위험한 사조

한국 언론에도 그와 같은 종교적 믿음에 올라 있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중립주의를 절대화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신앙의 권위를 누려온 이 중립주의는 그 외양을 바꿔 거듭 변신한다. 그 새로운 변종의 신앙으로 올라서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탈진실의 시대’라는 새로운 사조다.

우리는 진실이 뭔지는 알 수 없으니, 객관적인 사실은 없으며 다만 각자의 입장에서의 서술만 있을 뿐이라는, 진실로의 탐색 불가론이다. 그것이 단지 또 하나의 사조와 경향인 것을 넘어서 신앙의 후광을 입고 있다.

언론의 탈진실 시대라는 말, 이는 그 자체로는 언론의 기능과 병립할 수도 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언론에 요청되는 것이기도 하다. 언론이 진실을 추구하나, 그럼에도 완벽·완전한 진실로 이를 수는 없다는, 언론의 자기 한계에 대한 인정으로서 이 말이 얘기된다면 그것은 언론의 자기성찰과 겸허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탈진실 시대 담론’이 대체로 진실에의 추구의 포기, 진실 추구의 실현 불가능성을 선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언론 기능의 본질에 대한 결정적인 포기가 돼버린다. 탈진실의 '탈'이 맹렬한 진실 추구 끝에 그 한계를 인정하며, 그럼으로써 그것을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탈이 아니라 진실로 나아가는 것의 포기로서의 '탈'로 쓰이는 것이라면 언론이 언론이게 하는 전제 자체의 실종이 돼버리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걱정스럽게도 지금 유포되고 있는 ‘탈진실 담론’의 상황, 최소한 주요한 정황이 그렇다.


‘바이든-날리면’ 사태도 탈진실의 정황?

올해 초 어느 토론회에서 어떤 학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갈등의 조장과 적대의 부추김이 정보의 상업적 가치를 높이는 탈진실 시대는 공적 논의에서 필수적인 ‘사실’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그가 그 탈진실의 사례로 든 것은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였는데, 그는 그에 대해 “‘사실’ 그 자체를 공유할 수 없는 탈진실의 시대를 현실적으로 확인하는 사건이었다”고 분석했다.

▲ KBC광주방송과 UPI뉴스 의뢰로 실시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 광주방송

다른 토론자는 이 말을 받아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라고 들은 사람이 60%, 날리면으로 들은 사람이 30% 정도였는데 (30% 여론은) 대통령 지지율과 흡사했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는 ‘믿지 않는다’가 80% 수준인데 민주당 지지자는 ‘믿는다’가 70% 정도였다”며 이를 탈진실의 단면을 드러낸 장면으로 설명했다.

사태의 진실은 이른바 ‘진영’에 따라 다르게, 때로는 상반되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은 이것이다, 라는 태도가 아니라 “너의 진실과 나의 진실은 다르다는 것을 승인할 수밖에 없다-나아가 승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야말로 사실과 진실 부정의 현실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그런 현실을 만들어 낸다. 이들 토론자의 말과 같은 논리라면 너무도 분명한 자신의 발언을 터무니없는 말로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는 최고권력자를 탈진실시대의 선구자, 탈진실 종교의 전도사로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귀결돼 버리고 만다.


반(反) 진실, 반(半) 진실로서의 탈진실 안 돼

지금의 탈진실 시대 운운의 언설들에 적잖은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이와 같은 사정에 있다. 이 말의 잘못된 사용은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간에 ‘진실’로 나아갈수록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는 이들, ‘현재의 진실’을 과도하게 지배하고 있는 이들의 입지와 지배력을 더욱 강화해 주는 결과가 된다.

탈진실이 반(反) 진실이거나 반 진실과 타협이 돼서는 안 된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종교는 그 자체가 전(前) 근대적 현상이며 이성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듯이, 언론의 중립주의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듯이, 탈진실은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탈진실은 결코 진실의 미달이나 진실의 포기가 아닌 진실에 대한 추구 과정에서 부닥치는 자기 한계를 인정하면서 또한 넘어서려는 의지와 각오로서의 그것이 돼야 한다. 그럴 때라야 ‘탈진실’은 그 본래의 말로서 더욱 온전해질 것이며, 지금의 오만한 한국언론에 필요한 미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민언련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민언련 홈페이지 원문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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