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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구제금융이 대선에 미친 영향동아일보 대해부 4권 - 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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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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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들어 한국 경제가 이상 기류를 보이기 시작했다. 1월 한보 사태가 터져 금융기관에 6조 원의 부실채권을 안겼다. 특정 기업이 흥하고 망하는 일이야 다반사이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신용 경색 현상이 나타나면서 다른 재벌들까지 위험한 상황이라는 위기설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갈수록 깊어가는 불황 속에 노동법 파동이 계속되면서 성장 둔화, 수출 감소, 경상적자 누증, 외채 급증, 투자 위축, 중소기업 연쇄 부도, 외환 위기, 고용 불안 등 갖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쳤다. 그런 상황 속에서 3월 초에는 경제 각료들을 대폭 교체하는 개각이 이루어졌다.

동아일보는 1월 6일자 사설 (「경제에 정치논리 안 된다」)을 통해 새 경제팀에 기대를 보였다. “경제난국의 실상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자신감과 의지를 국민들에게 확실히 심어줄 수 있어야”하며 “정책의 신뢰 회복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논리의 배제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압력과 간섭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계속 정치논리에 휘둘린다면 끝없이 추락하는 우리 경제는 다시 솟아날 길이 없다.”

‘외채위기론’과 ‘금융대란설’은 계속됐다. 동아일보는 1월 18일자 사설(「눈덩이 외채 대책 급하다」)에서 1989년 말 2백49억 달러이던 외채가 불과 7년 사이에 4.4배로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정작 우려할 대목은 상환기간 1년 미만의 악성 단기외채의 급격한 증가라고 지적하며 “(정부 당국은) 무엇보다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고 외채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동안은 외자 유입 증가에 따른 원화 환율 절상 압력을 걱정했지만 앞으로는 급격한 외화 유출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동아일보의 이런 진단이 옳았다는 것이 곧 증명된다.

20일자 경제면(8면)에는「‘금융대란설’ 불안 확산 / 삼미 법정관리 신청 후 부도·도미노 공포라는 기사가 실렸다. “외화 조달 창구인 국내은행들은 한보부도로 해외에서 신용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이번 사태까지 겹쳐 외화 빌리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환 투기 등 외환시장의 혼란이 예상된다”고 전했으나 바로 그날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 강경식은 경제장관합동회의에서 4∼5월 금융대란설과 관련해 “금융대란설은 사실무근”이라며 “한보그룹 채권 만기일이 4월에 집중돼 있는 점이 4∼5월 금융대란설을 부추긴다고 해 알아봤으나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21일자 1면 기사(「“한국계 은행지점 파산 우려”; 미 중앙은 / ‘멕시코 사태 ’때 조치 적용 가능성 / 한보·삼미 부도로 은행 부실 심화 / 신인도 급락 고금리로도 차입 어려워」)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20일 금융계에 따르면 대기업들의 연쇄 부도로 국내 은행들의 해외 신인도가 떨어지면서 해외 자금 조달 금리가 급등하고 높은 금리로도 차입이 어려운 상황이 미국·일본 등에서 빚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일부 국내 은행의 미국 내 지점의 파산 우려도 있다고 판단, 지난 주 부터 은행별로 비상자금원 확보 등 미국 내 고객 보호를 위한 특별지시를 내렸고 이를 일주일 단위로 점검하겠다고 통보해왔다.”

동아일보는 22일자 사설(「은행 부실 어찌 할 것인가」)와 경제면(7면) 기사(「도산기업 이달만 1,000곳 육박 / 중기 ‘부도 도미노’ 현장 점검 / 담보 있어도 거절… 월급도 못줘 “한숨”」)를 통해 경제현장의 불안한 상황을 계속 전했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는 24일 2면(「‘국가 위험도’ 빨간불 / 일부 지표 ‘멕시코 붕괴’ 때 수준 넘어; 금융연구원」)에도 나왔다. 같은 날짜 사설(「금융공황은 막아야」)은 극도의 불안과 경계심을 내보였다. 

김영삼 정부는 “4, 5월에 금융대란은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7월에는 기아도 쓰러졌다. 6월 말 하루 동안에만 3천9백억원 어치 어음이 만기 도래해 대부분은 만기일을 연장했으나, 제일은행은 긴급히 구제금융 3백70억원을 일으켜 간신히 부도를 모면했다. 기아그룹은 7월 초부터  매일 1천5백억∼2천억원어치씩 어음이 만기 도래해 스스로 사태를 수습할 능력을 잃었다.

은행권에서는 오너가 없는 국민기업 성격의 기아그룹을 살려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찬성하면서도 자칫 한보철강처럼 막판에 어음이 계속 물려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결국 기아도 7월 15일 무너졌다. 기아그룹이 금융권에 진 빚은 9조 4천억원이 넘었다. 한보가 부도 직전에 지고 있던  부채 규모는 6조 7천억원 정도였다. 기아그룹 계열사 종업원 수는 5만6천 6백91명이었다.

전경련은 정부가 기아 사태를 방관하고 있고 금융기관 대출 창구가 경색되고 있다고 비난했고(97년 7월 28일자 7면), 진로는 최종부도를 겨우 면했으며(7월 30일자 8면), 세수 결함이 3조로 예상되는 가운데 각 부처는 내년예산 확보에 비상(7월 30일자 2면)이 걸렸다. 8월 들어서도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9월 위기설’이 또 떠돌기 시작했고 재계는 정부에 대해 경영난을 풀기 위한 특단대책을 호소했다.(8월 20일자 8면)

동아는 21일 「금융위기 발등의 불」사설에서 “돈의 흐름이 방향을 잃고 금리와 환율이 급등하는 등 자금 및 외환시장 혼란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자금시장의 불안도 문제지만 외환시장 난기류가 외환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제일은행 등 부실은행에 대한 특융과 정부보증, 종합금융사에 대한 긴급자금지원 등 정부의 긴급조치가 나온 직후에는 26일「경제회생에 더 과감해야」 사설을 통해 “금융시장의 안정 못지않게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다각적인 대책 마련에 좀 더 과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언론이 정부에 대해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정부가 그럴만한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시장논리를 앞세워야 할 때는 무시하고, 시장논리를 잠시 유보해야 할 때에는 오히려 시장에 내맡기는 부적절한 정책을 사용했다. 구조 조정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 해결 역시 시장이 담당해야 한다. 반면에 금융시장의 위기는 위기 관리의 차원에 속한다. 그러나 정부는 기아 문제에는 팔을 걷어붙이고 금융시장에 대한 대책을 발표할 때에는 시장논리를 내세워 시간을 질질 끌었다.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경제관료들마저 혼란에 빠져 든 것이다.

동아일보도 아우성만 쳤을 뿐이지 전체를 보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한 방안을 내 놓을 능력은 없었다. 8월 28일자 (「환율 불안 심리부터 해소를」, 30일자 (「강경식 부총리 물러나야」), 9월 6일자 (은행부실 국민 책임인가」), 7일자(「외환 보유 급감 경계해야」) 사설은 새로운 상황이 터질 때마다 “대책을 마련하라”고 외칠 뿐이었다.

9월 11일자에 동아일보 출신 언론인 이동욱이 쓴 칼럼(「외환 위기 대비하자」)은 외환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었다.

  한국 금융기관에의 대출은 한국 정부가 보증한다”고 강경식 부총리가 지난달 25일 선언하자 이날부터 주식값은 떨어졌고 달러값(환율)은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94년의 멕시코 외환 위기와 닮았고 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금융 불안과 유사하다는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던 터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 경제에도 올 것이 오지 않았나’하는 우려가 감돌만도 하다. (…)
  요즘 연일 주식값은 내리고 달러값이 오르는 것은 외국인들이 연일 주식은 팔고 달러를 사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오래 계속된다면 태국의 보유 외화가 3백86억 달러에서 60억 달러로 격감했듯이 한국도 그렇게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의 경제지표들은 그 나라들보다 안정적이어서 그렇게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외환 사정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경상수지 적자 비율은 96년 말 기준으로 한국 4.9%, 태국 8.2%, 말레이시아 6.3%였다. 이런 것들이 외환 위기 우려 불필요론의 근거가 돼 있다. 즉 외국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걸림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지금 외국 돈은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많아서 주식값이 내리고 달러값은 오르는가. 재계 랭킹 8위의 기아그룹마저 부도유예협약의 보호막 덕분에 겨우 부도를 면했다면 3대 그룹을 제외하고 모든 기업들이 부도에 떨고 있다는 루머가 진짜일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만일 기아가 부도를 낸다면 일파만파의 연쇄 부도가 날 것으로 우려된다. 지금 가장 골칫거리가 돼 있는 제일은행 말고도 모든 금융기관들은 정부 보증이 있다 하더라도 외국돈 빌리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될 것이다. 외국인 투자한도를 늘려주더라도 외국 돈은 들어오기는커녕 나갈 것이다. 그래서 주가 폭락· 환율 폭등이라는 동남아 국가들의 공통 도식이 우리나라에서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태국의 경제지표들은 1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의 그것들보다 건전했는데 은행 하나가 파산하면서 일파만파 도미노 파동에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그같은 사례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도 기아 해법 여하에 따라서는 그렇게 안 된다고 장담 못한다. 그러니까 국제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외채가 늘고 있는 한 외환 위기는 항상 잠재하고 있음을 명심해야만 한다. 

사태는 계속 악화됐다. 동아일보 11월 7일자 11면에는「IMF 총재 “한국 지원 용의”」라는 기사가 떴고  15일자 8면에는「IMF 낙관… 신용평가사는 비관 / 국제경제기관 엇갈린 평가 」라는 기사가 나왔다. 한국 경제가 계속 악화돼도 IMF는 낙관적으로 본다는 것인데, IMF가 실제로 그렇게 보는 것인지,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인지, 동아일보를 비롯한 한국 언론은 그것을 감별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11월 18일자 2면에는「“IMF 6백억 달러 지원 검토” 불(佛) 경제전문지 보도」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국의 금융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주도로 4백억∼6백억 달러를 긴급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프랑스의 경제전문지 <레 제코>지가 보도했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도대체 그 어마어마한 사안을 스스로 취재·보도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11월 22일자 동아일보는 1면에는「IMF에 200억 달러 요청 정부 공식 발표 / 국채 발행 검토 / 김 대통령 오늘 “경제난 타개” 특별담화 / IMF 측 실사 결과 따라 지원 규모 늘 수도」라는 기사가 올랐다. 3면의 해설기사(「IMF 구제금융­한국 경제 파급효과 / ‘경제주권’ 상실 2류국가 전락 / 금융정책·투자·소비까지 간섭 / 장기적으론 국가 경쟁력 도움」)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은 사실상 경제 분야의 신탁통치를 받게 됐음을 의미한다. 외환 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IMF의 손에 우리 경제의 운명을 맡긴 꼴”이라고 단정했다.

  IMF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 우리의 재정·금융정책은 물론 기업의 투자, 노사관계, 소비생활 등 경제생활 전반을 ‘간섭’하게 된다. IMF로선 2백억 달러(20조원) 이상을 아무런 담보 없이 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 담보는 한국의 경제주권이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는 경제주권을 빼앗긴 2류국가라는 불명예를 국제사회에서 한동안 안고 다녀야 한다. 더욱이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지 1년만에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이 참담한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은 대기업 연쇄부도, 이에 따른 부실 금융기관의 속출, 대외신인도 하락, 경제정책의 실패 등에 기인한다. 기아만 해도 기업 총수와 경제정책 최고책임자 간 감정 싸움을 벌이며 3개월 간을 질질 끌다가 기초 체력을 완전히 소진해 버리고 말았다.
  정책당국은 ‘모든 게 잘 될 것’이란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일관하면서 한국시장을 빠져나가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결과는 거꾸로였다. 정부를 믿었던 기업과 투자자들만 엄청난 피해를 보고 말았다. (…)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한 끝에 한국은 급기야 극비리에 방한한 캉드쉬 IMF 총재에게 구제금융 의사를 밝힌 뒤 결국 21일 오후 피셔 IMF 수석부총재와 구제금융의 규모와 지원 시기를 최종 조율한 뒤 이날 밤 구제금융을 전격 신청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이후 긴박한 협상 국면이 이어지다가 12월 1일 “내년도 경제성장률 목표를 2.5∼3%로 올해보다 3∼3.5%포인트 정도 하향 조정하고, 경상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1% 안팎(50억 달러 미만)으로 줄이며, 물가상승률은 4.5% 수준에서 안정시키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IMF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친 뒤 1차 긴급자금 1백억 달러를 그 주 중에 지원하고 미국·일본 등 각국의 지원분을 포함해 5백억 달러 안팎의 자금을 단계적으로 추가 지원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으로 협상 타결에 이르렀다.

동아일보는 그 소식을 1면 주요 기사(「부실 종금사 12개 폐쇄 요구; IMF / ‘협상안’ 심야 타결 오늘 발표 내년 예산 7조2천억 삭감 / 주내 백억… 5백억 달러 단계 지원」)로 보도하고 1면 머리에는「“현 난국 김 대통령 무능 탓” 77% / 본사-서울대 정치연 정치학 교수 200명 설문조사 / 대선 정책 대결 부재 심각 87%」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IMF 협상안에 대한 본격적 보도는 다음날인 12월 2일자에 집중됐다. 1면 머리에는「내년 경제성장 2.5∼3% 내 / 종금사 10개 미만 월내 정리 / IMF 지원 조건 재협상 타결 / 미·일 포함 총 6백억 달러 선 / 합의문 오늘 오후 공식 발표」라는 기사가 올랐고 “한국 경제 기초 튼튼… 1년 반 후 정상화”캉드쉬 IMF 총재」라는 콸라룸푸르 발 상자기사가  그 뒤를 받쳤다. 2면에는「IMF 지원 임박 / 협상 과정 우여곡절 / 캉드쉬 고집에 ‘백기 항복’」, 3면에는「IMF 지원 임박 / 재협상 합의 내용/ 시장금리 연 18∼20% 유지 / 재정 7조3천억원 감축 / 정리해고 가능케 법 개정」이라는 해설기사가 실렸다.

같은 날짜 사설(「고통은 시작됐다」)은 한국 사회 전체의 철저한 반성을 촉구했다.

  (…) 이제 우리가 저성장, 재정 긴축, 국제수지 적자 축소, 금융 및 기업 구조 조정의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대량 실업, 한계기업의 무더기 도산, 물가 상승, 임금 동결 등 참담한 경제환경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고성장과 풍요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내핍과 고통의 계절이 시작된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우리는 3류 국가로 전락한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국가경제가 IMF의 섭정체제에 들어가는 이상 이에 맞춰 국난 극복의 큰 틀을 짜는 게 최우선 과제다. 모든 경제주체가 몸을 던져 위기를 헤쳐 나가겠다는 결의와 국민적 합의가 절실하다. 그러려면 국가 경영의 리더십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사정이 한 덩어리가 되지 않고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 (…)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일이 정부에 주어진 초미의 과제다. 우선 협상 결과 IMF에 약속한 합의 내용과 기술적 이행문서를 국민에게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 (…) 경제 재건의 청사진을 만들고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하려면 정부의 솔선과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정치권의 대오각성도 요구된다.(…) 차기 정권의 지도자가 되려는 대선 후보들은 이제라도 경제를 볼모로 한 정쟁을 중단하고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한다. (…) 기업과 근로자들 또한 국가경제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직시하고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할 각오를 다져야 할 때다. 경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정부·정치권·기업·근로자 모두의 책임이다. 위기 극복은 온 국민이 힘을 합칠 때 가능하다.

국가적 위난을 맞아 모든 경제주체가 한 마음이 되어 각오를 다져야 한다는 주문은 이해하겠지만 ‘경제가 이 지경이 된’ 책임의 일부를 왜 근로자가 져야 하는지 도무지 요령부득의 사설이다. 동아일보는 다음 날인 12월 3일자 사설(「노사 함께 변해야」)에서도 노동자의 책임을 언급했다. 정치와 자본의 잘못으로 노동자계급이 피해를 보게 됐다는 사실은 이해가 되지만 왜 노동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노사관계가 새 틀을 짜야 할 상황이 오고 있다. (…) 전문기관들은 경제성장률이 1% 떨어질 경우 대략 6만명의 실업자가 생기는 것으로 계량한다. 이 분석대로라면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만으로 내년 실업자가 30만명 가까이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 구조 조정에 따른 고용 합리화가 겹칠 것이므로 실업자 수가 1백만명, 실업률이 7% 가까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선진국과 달리 실업의 고통을 흡수할 사회보장제도가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에게 7%대의 대량 실업사태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노사가 함께 고용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새로운 노사관계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서로 보는 눈부터 변해야 한다. 노동부는 IMF 시대 노동정책의 최대 역점을 실업 줄이기에 두고 기업들이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도록 고용보험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정부 지원이 아니더라도 기업은 고용 유지를 기업의 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사람이야말로 기업 최고의 자산이다. IMF 시대 이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서라도 대량 해고에는 눈물이 있어야 한다.
  근로자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민주노총은 벌써부터 대량 정리해고에 총파업투쟁으로 맞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파업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 요구를 낮추며 자기 몫을 줄이는 협력 없이는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어렵다. 

12월 3일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 양해각서에 서명하자 동아일보는 5일자 사설(「1997년 12월 3일의 국치」)에서‘방성대곡(放聲大哭)’을 금치 못했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3일 국제통화기금(IMF) 양해각서에 서명함으로써 사실상 대한민국의 경제주권은 일단 3년간 IMF로 넘어갔다. 주권국가 국민으로서 분루를 삼키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치욕의 현장이었다. 경제가 신탁통치에 들어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정 전반이 IMF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 굴욕적인 협정을 맺은 것이다. 이날 우리는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면 국민이 얼마만큼 비참해지는지를 목격했다. (…)
  IMF는 국가를 대표해 국무위원이 서명한 각서로도 모자라 국회의장과 대선 후보들에게까지 서약을 요구하고 관철시켰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산물이다. 국제 관례를 무시한 IMF 요구도 무례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몬 정부야말로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IMF 총재 말 한마디에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가 무산되는 수모도 당했다. (…)
  가장 큰 책임은 김영삼 대통령의 실정에서 물어야 한다. 5년 전 대선 때 그는 한국병을 치유하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냉엄한 국제 현실을 외면하고 무능과 독단으로 일관, 결국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었고 한국 경제는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번 대선에서만은 선택을 잘 해야 한다. (…)
  하다못해 6개월 전에만 정신을 차렸어도 오늘의 이런 수모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본란만 해도 지난 여름부터 한보·기아 사태 해결과 위기 극복 능력이 없는 강경식 부총리의 교체를 여러 차례 촉구했었다. (…)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비록 타율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지도층부터 대오각성하고 온 국민이 힘을 합쳐 IMF 한파를 지혜롭게 극복해야 한다. 아무리 고통이 크더라도 경제 전반의 구조 조정과 체질 강화라는 IMF 처방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런 수모를 겪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미래는 암담하다. 각 경제 주체가 용기와 인내심을 갖고 허리띠를 졸라매면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1997년 12월 3일의 치욕을 잊지 말자. 

책임은 언론에게도 있는 것이었다. 언론의 책임은 경제부총리 교체를 ‘여러 번’ 촉구했다는 것만으로 면탈되지는 않는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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