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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 대부’ 황장엽의 망명동아일보 대해부 4권 - 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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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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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월 12일 한국전쟁 이후 최고의 북한 측 ‘거물 인사’가 망명해 왔다. 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이 주인공이었다. 황장엽은 그해 1월 30일부터 일본을 방문 중이었다. 그의 일본 내 활동에 관한 기사는 2월 초부터 심심치 않게 국내 신문들에 등장했다. 황과 직접 만날 처지가 아닌 동아일보는 2월 6일자에 제휴지인 아사히신문이 그와 인터뷰한 내용을 2면에 내보냈다. 제목은「“김정일 가을께 주석 취임”/ 북 황장엽 일(日)서 처음으로 밝혀」였다. 11면에는「“4자회담 고려할 가치 있다” /방일 황장엽 일지 인터뷰」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런 그가 2월 12일 귀국하는 길에 베이징의 한국총영사관을 찾아가와 망명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동아일보는 13일자 1면에「북 황장엽 망명/ 서열 24위(당 국제담당 비서 인민회의 외교위장) 귀순자 중 최고위직 / 북경서 한국 총영사관 찾아 / 방일 쌀 지원 논의 귀로 김덕홍(노동당 중앙위 자료실 부실장) 함께」라는 시커먼 전단 제목 아래 그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2면에는「북 이념 정립의 대부 / 북 황장엽 망명­그는 누구인가 / 황장엽과 주체사상 / 62년 노동신문 통해 용어 첫 사용」, 3면에는「‘주체사상’이 넘어 왔다 / 노선투쟁서 밀려났을 가능성 / 권력 핵심부 동요 징후 드러나」「“망명 희망지 갈 수 있도록 최선” 정종욱 주중대사 일문일답」,4면에는「“4자회담 고려할 만”유연한 태도 / 북 황장엽 망명­일서 뭘 했나」, 5면에는「남북관계 악재 안 되게… 긴박 / 북 황장엽 망명­청와대·부처 표정 」「“북 장래 암울” 번민 / 일 인사들이 만난 ‘황장엽’」「최근의 주요 망명 귀순 일지」, 6면에는「‘유엔난민기구’ 활용 가능성 / 어떻게 서울 오나 」「북 황장엽 망명­남·북·중 관계 파장」「정착금 등 “기본이 2억” / 서울 오면 어떤 대우 받나 」「“납치 분명… 안 돌려보낼 땐 복수” / 북경, 북 대사관 무관 통화 」등의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의 통단사설은「김 대통령은 결단 내리라」였다. 황장엽이 망명한 때가 묘하게도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이 연루된 ‘한보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던 시기와 맞물렸던 것이다. 동아일보는 그날만은 ‘황장엽 망명’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잠시 제쳐두고 “한보 비리의 진상과 외압의 실체가 누구인지를 두고 나라 안이 의혹과 불신의 늪에 빠져 있”으므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은 부자의 관계를 넘어 국가적 위기를 몰아 온 한보 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는 대국적 차원에서 현철 씨 문제에 대해 신속하고도 명확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한보사태’를 ‘황장엽 망명’으로 덮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실제로 같은 날짜 자 2면에는 “자민련의 김창영 부대변인도 논평에서 ‘청와대는 황장엽의 망명 신청으로 한보 사태를 덮겠다는 망상에서 깨어나 한보 사태를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며 성역 없는 수사를 거듭 촉구했다”는 내용이 들어간「김 대통령­현철 씨 포함 야, 성역 없는 수사 촉구」라는 기사가 등장했다. 15면에는 “황장엽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의 망명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한보 수사에서 벗어나는 듯하자 수사팀은 상당히 홀가분해 하는 표정. 검찰 관계자는 ‘이제부터 당분간 국민의 관심이 한보 수사보다는 황의 망명 사건에 더 쏠리지 않겠느냐’며 ‘이번 사건과 같은 대형사건은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인 만큼 수사팀으로서는 어느 정도 부담이 줄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라는 내용의 정가 스케치 기사가 실렸다.

  2월 14일자 2면에는「북 황장엽 망명 “빨리 매듭짓자” 청와대 활기」라는 큼지막한 상자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한보 사태로 침울했던 청와대 관계자들이 황장엽 망명 사건이 발생하자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그 기사 밑에는「야 ‘황장엽 서신’ 의혹 제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꽤 큰 비중으로 실렸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은 북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황장엽이 지난 1월 한 한국 측 인사에게 전달했다는 서신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귀순 서신의 진위 여부에 대한 정부의 해명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그 서신은 조선일보가 단독 입수해 보도한 것이었다.

  국민회의의 정동영 대변인은 13일 성명을 내고 황이 일반 탈북자처럼 망명을 위해 편지를 썼다는 사실, 황의 평소 문체와 다르고 ‘복지사회’ 등 북한이 사용하지 않는 말이 등장하는 점, 국내 파업 사태가 확산되기 전인 지난 1월 2일자 서신에서 “여당이 정치사업을 선행시켰다면 이번과 같은 대중적 소요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고 쓴 점 등에 의혹을 제기했다.
  정 대변인은 또 “안기부법과 노동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은 좋은 일이다” “군대를 강화하고 안기부를 강화해야 하며 강력한 여당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을 개혁개방으로 끌어내지 마라. 대화는 백해무익하다’”는 주장 등 안기부와 국내 수구세력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서신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자민련의 안택수 대변인도 논평에서 ‘“이 지난 1월 2일 편지를 썼다는 사실과 군·안기부·여당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 데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며 자세한 경위를 밝히라고 정부 측에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다음 날인 2월 14일자 사설(「황장엽 원하는 곳 가게 해야」)을 사설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황의 망명은 “국제사회에 정립돼 있는 보편적인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것”이며 “정치적 난민에 관한 국제적 관행이나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황 비서가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통해 가고 싶어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안전하게 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건의 발생지인 중국의 태도다. 중국은 한국과도,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의 후견인 격인 위치에서 과거 오랫동안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어 왔다.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현재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세계를 이끌고 있는 지도국이다. 또 유엔난민협약을 아무런 유보 없이 수용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도국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그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국제관례인 정치망명 기준 등에 입각해 이 사건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황 비서의 망명은 지난 94년 7월 김일성 사망 후 북한에 최대의 충격을 준 사건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건 발생 후 북한이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인 첫 반응에서 황 비서의 망명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로 납치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등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북한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남북관계가 더욱 냉각되고 새로운 긴장이 조성될 것도 예상되는 만큼 국방 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황 비서의 망명을 혹시라도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일’이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한보 사태’, 또 하나는 연말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이용하는 것이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종심은 같은 날짜 칼럼(「이렇게 덮어선 안 된다」)에서 ‘한보 사태’에 대한 악용을 경계했다. “황장엽 비서의 망명을 고비로 한보 비리 수사가 파장으로 접어드는 모양”인데 “해방 이후 최대 권력형 비리라는 한보 의혹이 해방 이후 최고위급 북한 권력 핵심의 망명에 가려지면서 국민들은 또 한 번 허탈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 김영삼 정권은 지금 심각한 권위의 공황에 빠져 있다. 통치력이 구심점을 잃고 국정은 표류하고 있다. 이것을 어떤 형태로든 추스르지 않고는 경제도 안보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황 비서 망명 사건도 문제의 한보 의혹을 성역 없이 밝혀 정부가 거듭나도록 촉구하는 자극제로 삼아야 옳지 이를 어물쩍 덮으려는 절호의 계기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추악한 실세들의 권력놀음을 개탄해마지 않던 대다수 국민이다. 그 대다수 국민의 충정 어린 요구가 한보 의혹의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한 국가 기강 회복이라는 것은 이제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황 비서 망명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어떤 명목으로도 이 국민적 요청을 외면한다면 국가는 영영 난국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국민을 배반하고 국가를 얄팍한 계략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림없는 망상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대통령의 측근 가신에 야당 총수의 그림자 의원을 끼워 넣어 구속한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하려 한다. 봇물처럼 터져나올 국민의 저항은 안중에도 없다는 자세다. 구속된 신한국당 홍인길 의원 등은 세상이 다 아는 대통령 측근들이다. 권력의 심기에 예민한 검찰이 그나마 그들을 구속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얼마나 큰지를 권력이 알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주범 격’이라는 홍 의원은 스스로를 ‘깃털’에 비유하며 더 많은, 더 큰 배후가 있다는 강력한 암시를 남겼다.
  이 배후가 이른바 ‘성역’이라면 이 성역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 없이 한보 의혹은 덮어지지 않는다. (…)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라는 사즉생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그리고 그것은 야당 지도자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같은 날짜 7면 기사(「여권에 “북풍 프리미엄” / 선거·정권 위기 때마다 ‘북한 돌출 ’변수로 / 97년 대선 앞두고 KAL기 폭파 사건 ‘영향력’ / ‘한보’로 궁지 몰린 시점 망명 돌출… 시기 미묘」)는 황장엽의  망명이 대선에 악용될 수도 있음을 짚었다. 그 기사는 “북한당국이나 인사의 ‘돌출 행동’은 한국 국민의 안보의식과 안정 희구 심리를 자극, 여권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 예가 많았다. 이번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 사건 역시 한보 사태로 정부와 여당이 궁지에 몰린 시점에 발생했다. 황 비서가 정부·여당을 도와주려고 망명 시기를 이때로 잡은 것은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면서 역대 ‘북한 변수’를 나열했다.

  ‘북한 변수’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87년 13대 대통령선거(12월16일) 때다. 선거일을 불과 18일 앞둔 11월 29일 KAL기 폭파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집권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야당의 김영삼·김대중 후보를 꺾는 데 적지 않게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정부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투표일 하루 전날 국내로 압송, 사건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92년 14대 대선(12월17일)을 3개월 앞두고 안기부는 ‘김낙중 간첩 사건’과 ‘이선실 간첩 사건’을 발표, 야당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남로당 이후 최대 조직 사건으로 불린 이선실 사건으로 야당 및 재야인사는 물론 김대중 후보의 개인비서까지 구속되는 바람에 김 후보는 ‘색깔론 시비’에 시달렸다.
  또한 북한은 작년 4·11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켜 결과적으로 정부·여당을 도운 셈이 됐다.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는 4월 4일 ‘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 유지관리 임무 포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데 이어 5일부터 7일까지 연속 사흘 동안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무장병력을 투입, 총선에 ‘북풍’을 일으켰다. (…)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당국이나 인사의 돌출적 행동이 지금까지 여러 차례 정부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나 이것을 북한이 의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2월 15일 밤 또 다른 망명객 이한영이 자택에서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권총으로 피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단박에 황장엽 망명에 대한 ‘북한의 보복 테러’로 단정됐다. 동아일보는 16일자 1면을 온통 그 사건으로 꾸몄다.「이한영 씨 피격 중태 / 북 고정간첩 보복 테러인 듯 / 김정일 전처 성혜림 씨 조카 / 40대 2인조 어젯밤 권총 발사 / 임시거처 분당 선배집 앞서 참변」이라는 전단 제목을 단 머리기사와「전국 경찰에 비상경계령 / 이한영 씨 피격 관련 서울 경기 검문 강화」라는 주요 기사가 1면의 전부였다. 17일자 1면에는「“여자 낀 5인조 공작팀 소행” 합수부 / 피격 이한영 씨 뇌사 상태 “고정간첩 도움 받아 범행” / 30대 여인 기자 사칭 귀가 시간 물어」라는 기사가 6단으로 크게 나왔다.  2, 3, 4, 5, 6, 7, 38, 39면도 관련 기사들이 실렸다.

3면에는 “제2의 테러 막아라” 초비상 /“북 보복 위협 현실로” 부처 별 대책 부심 / “황 비서 망명 지연 땐 상황 더 심각” 우려」라는 기사와 「‘중대 국면’ 판단 치안 총력; 안보 치안 장관회의 논의 내용 / 북 무력시위-국지 도발 대비 경계 강화 / 경수로 조사단 방북 신중히 결정키로」라는 상자기사가 나왔다.「이한영 씨 피격 충격이라는 사설까지 읽다 보면 온 나라가 비상 상황에 빠진 듯했다. 이로써 황장엽 망명의 극적 효과는 극대화됐다. 동아일보는 황장엽 망명을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도 실제 지면 제작에서는 한보 사태를 가리는 역할을 한 셈이다.

황장엽은 한·중 양국 간 교섭 결과 필리핀으로 출국했다가 4월 20일 서울에 왔다. 중국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에 피신해 망명을 신청한지 67일, 필리핀 체류 34일 만이었다. 동아일보는 4월 21일자 1면 머리기사(「황장엽 씨 서울서 첫 밤 / 망명 신청 67일 만에 / 어제 도착 “남쪽 형제와 손잡고 전쟁 막겠다”」)로 그의 서울 도착 소식을 전하면서 “황 씨가 서울에 옴으로써 북한의 핵개발 여부 등 북한에 대한 각종 정보와 한국 내의 친북한인사들 명단(이른바‘황장엽 리스트’)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그의 향후 발언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짜 사설(「황장엽 씨의 서울 안착」)은 “어느 누구도 황 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황 씨는 어느 정권, 어느 정파의 전리품이 될 수 없다”면서 “황 씨의 망명을 영웅시하며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성급히 북한 붕괴를 예단해서도 안 된다. (…) 황 씨 망명의 정확한 동기부터 파악하고 그가 갖고 있는 북한 정보와 식견을 선용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장엽이 다시 동아일보 지면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80여일이 지난 7월 11일자였다. 안기부 수사를 마친 그는 10일 처음으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고 동아일보는 회견 내용과 그 후속 뉴스들을 대서특필했다. 「“‘황 리스트’ 수사 중” / 안기부 “황장엽 씨 진술 추적” / “평양 ‧ 해외 접촉인물 언급” / 황 씨 회견 물증 드러날 경우 큰 파장 예상,「“북 5~6분 내  서울 잿가루로” / 황 씨 6개월 내 적화통일전략 수립」(1면), 「황 리스트 파문‧회견 스케치(2면), 「북 전쟁 준비‧ 략 증언」(3면), 「일문일답‧ 이것이 궁금하다」(4면),  ‘일문일답 ‧ 남북관계 영향’(5면), 7면 ‘진술 내용 ‧ 그동안의 생활’(7면, 「진술 내용 ‧ 드리는 말씀」(8면), 「김정일 주변 인물‧ 일지’(9면), 39면 「시민‧ 정관가 반응」(39면)’ 등 무려 10개 면에 걸쳐 관련 기사를 상세히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황장엽의 발언 내용이 아니라 같은 날짜 1면에 1단으로 실린 기사 내용이었다.

  정부는 10일 황장엽 씨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과 연말 대통령선거를 전후한 남한 내 혼란 조장 우려에 따라 이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의 핵심 권력층에 속했던 황 씨의 진술 내용 중 새로운 진척 사항과 실현 가능성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후 철저히 대비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기사와는 달리 같은 날짜 동아일보에는 온통 황장엽의 ‘전쟁 경고’와 그가 갖고 있다는 ‘리스트’에 흥분한 기사들이 주유를 이루고 있었다. 동아일보 지면에서는, 황장엽이 아무리 고위직에 있었다 하더라도 연로한 학자인 출신 그가 어떻게 극비의 군사기밀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같은 날짜 사설(「황장엽 씨의 경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 황 씨가 밝힌 새로운 사실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내부 와해공작을 꾸준히 추진하면서 무력통일을 기도하고 있는 북한의 대남 기본 전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실감나게 증언했다. 특히 파멸의 궁지에 몰린 북한이 기습공격으로 서울을 5∼6분 만에 잿더미로 만든 후 미군 증원 전에 부산까지 점령할 전쟁 시나리오를 짜갖고 있다는 경고는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 북한의 참담한 현실이 전적으로 폭압적 정치체제와 범죄적 무력통일정책 그리고 반인민적 지도사상에서 비롯됐다는 황 씨의 지적은 옳다. 오죽하면 주체사상의 이론가인 그가 망명해서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고 전쟁 위험을 경고하기에 이르렀겠는가. 우리는 북한의 실상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황 씨의 망명이 위장이 아니며 주체사상에 대한 실패를 자인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더 이상 사상 전향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관계당국의 말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이른바 ‘황장엽 리스트’와 관련해서는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 씨가 조사 과정에서 리스트를 별도로 제시한 것은 없지만 그가 오랫동안 북한 정권의 고위직에 있으면서 보고 들은 대남공작 관련 사항과 직접 접촉했던 국내외 인물들에 대해 진술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관계당국은 이를 대공 수사활동의 연장선에서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철저히 조사해서 신속히 공개하고 의법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2월 대통령선거도 앞두고 있는 만큼 이 사안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는 절대로 안된다. 아울러 정부는 황 씨로부터 얻은 모든 정보를, 필요하다면 미국 등 우방과도 공유하면서 최대한 활용해서 전쟁 억지와 북한 개방 유도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

같은 날짜 5면에는 인천대 총장 김학준의「황장엽 씨 회견을 보고」라는 특별기고가 실렸다. 황장엽이 방점을 찍어 말한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해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래도 만의 하나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주체사상’을 공격하고 있다.

  (…) 한반도를 둘러 싼 내외 정세를 종합해 본다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개연성은 매우 낮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상식이지만 (…) 황 씨에 따르면 오늘날 북한의 김정일은 ‘제 2의 한국전쟁’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김정일은 승전을 100% 확신하고 있다. (…) 북한의 군사 지휘부 역시 그렇게 믿고 있다.(…) 북한 주민들도 차라리 사생결단을 내보자는 심리에 싸여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황 씨가 보기에 김정일은 마침내 핵무기를 손에 넣은 것 같다. 화학무기는 이미 완비했다.
  (…) 필자는 황 씨의 증언이 황 씨의 진심에서 나온 것으로 믿고 싶다. (…) 황 씨의 증언 내용이 진실된 것이라고 해도 북한이, 또는 김정일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 필자는 계속 묻고자 한다. (…) 또 북한은 아직 핵무기를 손에 넣지 못했다는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하자는 뜻이 아니다. 황 씨의 증언을 과소 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황 씨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전쟁 예방에 모든 힘을 쏟아야겠다고 결심할 만큼 북한의 전쟁 도발 의지는 강하다고 할 때, 우리로서는 더욱 북한이 무모한 불장난을 하지 못하도록 군사적 및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꼭 덧붙여 토론하고 싶은 것은 주체사상에 관한 황 씨 자신의 입장 표명 부분이다. 그는 자신이 정립에 이바지한 주체사상이 인본주의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필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주체사상은 겉으로는 ‘사람 중심의 사상’이란 모습을 띠고 있으나 속으로는 철저히 ‘김일성 중심의 사상’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김일성 우상 숭배’와 그것을 통한 ‘김일성 왕조 건설’을 위한 경전으로 고안된 하나의 ‘미신’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이 뒷날 변질됐기 때문에 실망하고 고민하게 됐다는 진술은 아마도 자기 변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황장엽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학자로서 여전히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황 씨의 증언을 과소 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라는 사족은 또 뭔가.  늘 최후의 변명거리를 마련해 두어야 안심되는 지식인의 소심함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장엽의 기자회견에 관한 반응 중에서는 나름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동아일보가 이런 칼럼을 한 귀퉁이에 실을 ‘용기’만 있을 뿐, 스스로 지면 제작에 그런 시각을 적용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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