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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의 쇠퇴 부른 한총련 사태동아일보 대해부 4권 -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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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0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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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연세대가 있는 서울 신촌은 전쟁터였다. 8월 6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13~15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초청장을 전달하기 위해 소속 대학생 2명을 북한에 파견했다고 발표했다.

사상 문제에서만은 ‘주사파 척결’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하던 동아일보는 8월 10일자 사설(「한총련의 과대망상증」)을 통해 즉각 한총련을 비난하고 나섰다. 한총련이 또 다시 정부와 국민을 무시한 ‘통일 소동’을 벌이고 있으므로 그들의 과대망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소영웅주의에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다. 사설은 “그들에게 북한과 마음대로 서신을 주고받고 멋대로 국경을 넘나들고 북한의 대남전략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통일운동을 전개할 권리와 자격을 허용한 사람은 더욱이 없다”면서 “정부는 단호한 의지로 이들의 망동을 근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관용과 설득에도 한계가 있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더 이상 범법자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섬뜩한 독기마저 느껴진다.

정부는 공안기관 대책회의와 관계 장관 대책회의를 잇달아 열어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과 ‘제7차 범민족대회’ 등 한총련 집회에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총련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은 대회를 강행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충돌은 불가피하게 됐다.

8월 12일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연세대 정문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여 전경 8명, 학생 30여명이 부상했다. 동아일보는 13일자 사회면(39면)에「한총련 500명 격렬 시위 / 신촌 교통마비 큰 불편 / 화염병… 최루탄… 시민 고통 / 어제 통일축전 행사장 봉쇄 항의」등 시민의 불편을 강조하는 제목을 붙여 기사를 실었다.

시위의 규모가 커지면서 한총련 학생 등 7천여 명이 참여한 13일의 시위는 동아일보 14일자 1면에「‘통일 축전’ 도심 격렬 시위 / 한총련 7천여명 집결/ 연대 등서 경찰과 충돌」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왔다. 한총련의 ‘극렬 폭력’을 체제 도전 행위로 간주해 주동자를 모두 처벌한다는 내무·법무교육 등 3부 장관의 합동담화는「한총련 주동자 모두 처벌」이라는 3단 기사로 실렸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사설(「누구를 위한 폭력 시위인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학생들은 통일을 구호로 내세우지만 이 혼란과 폭력이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불법 폭력시위를 일삼는 일부 극렬 좌경학생들이 진정한 통일세력이고 이를 봉쇄하고 저지하는 정부와 경찰이 반통일세력이라고 믿는 국민도 없다. (…) 더구나 한총련은 친북한단체다. 한총련 의장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을 겸하고 있고 연방제통일 등 그들의 주장이 북한 측 주장을 따르고 있다. (···) 순수성을 잃은 학생운동은 빗나간 열정만으로 시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좌경학생들은 이제라도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일부 부화뇌동하는 학생들도 폭력의 대열에서 벗어나 캠퍼스의 자기 자리로 되돌아오기 바란다.

이후에도 동아일보는 한총련 시위의 친북성과 폭력성을 부각시키고, 시민들의 불편과 반감을 강조함으로써 한총련과 시민사회의 격리를 노리는 보도를 계속했다.

15일자 31면 기사들의 제목은「한총련 신촌 도로 점거 / 5천명 집결… 한때 교통 마비 / 어젯밤」「한총련 단호 대처 촉구 / 재향군인회 성명」이었다. 16일자 39면에는「경관·학생 수백 명 부상  /경찰 한총련 행사 봉쇄」「“해도 너무 한다” 시민 분노 / 한총련 격렬 시위 나흘… 불만 확산」「“좌경논리 안 된다”/ 시민단체 반응」이라는 기사들이 나왔다. 17일자 30면의「출범 4년 한총련 “최대 위기” / 잇단 폭력시위에 국민들 등 돌려 / ‘과격·온건’ 내부 갈등 심화」와 31면의「새 소리 사라진 아름다운 캠퍼스/ 연대 폐허로」등은 한결같이 시민들의 불편과 반발, 각 사회단체들의 비난의 소리들을 부각시켰다.

동아일보는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며 강력한 진압을 요구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17일자 1면 기사「“한총련 지도부 완전 근절” / 폭력시위 전원 검거 엄단 / 경찰 인력·예산 전폭 지원;당정회의」)는 “정부와 신한국당은 한총련 시위의 불법 폭력성이 국가 기강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판단, 경찰력 등 공권력을 총동원해 한총련 지도부를 발본색원키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3면에는「정부 무정보·무능력·무대책… 일관성 없이 우왕좌왕」이라는 기사와 ‘한총련 어쩌다 이지경까지’라는 시리즈 제2편, 그리고「경찰 시위대처 예전 같지 않다 / 문민정부 출범 후 공안 분야 크게 위축」이라는 별도 기사가 실렸다. 문민정부의 나약함을 비웃으며 강경 진압을 부추기는 내용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8월 18일자 사설(「친북 폭력집단 뿌리 뽑아야」)에서 한총련과 정부를 싸잡아  맹비난을 퍼부었다.

  (…) 지난 한 주일 동안 서울 신촌 일대를 온통 무법천지로 만들어 놓은 한총련의 불법 극렬시위는 아무리 참고 이해를 하려 해도 이제 관용의 한계를 넘었다. (…) 한총련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용서받을 수 없다. 그들이 내세운 주의 주장의 이적성과 행동의 폭력성이 그것이다. 미군 철수, 보안법 철폐, 고려연방제 따위의 다 쓰러져가는 평양 정권의 구호를 공공연히 외쳐대고 국민이 선택한 정부를 반통일집단으로 매도하며 국기를 뒤흔드는 시대착오적 좌경세력을 그냥 방치해둘 수는 없다. 북한은 한총련 시위가 성과적이었으며 남한 정권에 타격을 주었을 것이라는 담화까지 발표했다지 않은가.
  그런데도 당국은 그동안 무얼 했는가. 문민정부 초기의 어정쩡한 대북정책과 혼선, 거기에다 좌경세력에 대한 안일하고 느슨한 단속이 오늘의 불씨를 키워온 점이 없지 않다. 경찰 진압 또한 희생의 최소화를 위해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해도 평소에 좀 더 효율적이고 단호하게 대처했던들 이 지경에 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라 전체를 말할 수 없는 충격 속에 몰아넣고 한 대학의 캠퍼스를 폐허로 만든 오늘의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
  한총련은 이제 자유민주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좌경 적대세력임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젊은이들의 순수한 모임이 아니다. 나라의 안위를 위해서도, 대다수 선량한 학생들을 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도 가차없는 응징은 불가피하다.

8월 19일자 지면은 강제 진압을 앞둔 긴박한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3면 해설기사는「“고사”… “항전”… 지루한 대치; 한총련 시위 7일 째 연대 주변 표정 / 경찰 불의 사고 우려 ‘작전’ 고심 / 학부모들 대책협 결성 “자녀 설득 시키겠다”」, 31면 기사는「농성 건물 이틀째 봉쇄 / 음식물 등 반입 차단 / 한때 투석전 벌이기도 / 경찰 “서울대생 3명 자수” 밝혀」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또 다른 기사(「한총련 본부 ‘친북’ 확인 / 고대 수색 결과 발표」)는 진압을 앞두고 사전에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사로 보였다.

19일 경찰청장 박일룡은 기자회견을 갖고 “법을 집행하려는 경찰관에게 화염병과 쇠파이프 등 흉기를 사용, 살상도 불사하려는 폭력행위자에 대해서는 총기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엄청난 상황 전개에 대해 동아일보는 20일자 3면에「“총기 사용” 담화에 학부모들 긴장」, 38면에「“시위 진압 총기 휴대” / ‘4·19’ 연상 “섬뜩” / 박 경찰청장 발언 파문 / 실제 사용 땐 ‘엄청난 사태’ 불 보듯 / ‘필요한 경우’ 제한… “엄포용” 시각도」라는 해설과 분석 기사만 내놓았지 어떠한 비판적 의견도 밝히지 않았다. 언론 자신이 먼저 이성을 잃은 것이다. 오히려 사설(「대학도 정신 차려야」)을 통해 “시위 현장에는 고뇌하며 설득하는 교수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지도를 포기한다면 결국 이번처럼 학생과 공권력이 직접 맞붙을 수밖에 없다”며 사태 악화의 책임을 교수들에게 전가하는 논조를 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야당 일부 의원들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강제 진압으로 흘러갔다. 대통령 김영삼의 강경한 태도는 동아일보 20일자 2면에「“학원 좌경세력 척결” 확고 / 김 대통령 ‘한총련 사태’ 입장 / 북 동조·쇠파이프 폭력에 큰 충격 / “집권 후반 겨냥한 보수 회귀” 분석」이라는 기사로 소개됐다.

8월 20일자에는 ‘교수 간첩 깐수’에 대한 수사 뒷이야기가 나왔다. 10여 년간 국내에서 간첩으로 암약해오다 검거된 무하마드 깐수(62·본명 정수일)는 남한의 한총련 등 학생운동세력과 재야세력이 남한 혁명의 기수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깐수는 지난 84년 남한으로 침투한 이래 학생운동을 정밀분석한 결과 남한의 학생운동 세력은 북한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처럼 남한 혁명운동의 기수가 될 수 없으며 재야운동 역시 활발한 편이나 혁명의 선봉이 되기에는 역량이 모자란다고 북한에 보고했다. (···) 북한 대남공작부서 간부들은 처음에는 이 같은 깐수의 보고를 받고 사실 여부를 의심했으나 90년대 이후 전개된 학생운동 및 재야운동의 실상을 파악하고 뒤늦게 깐수의 보고가 올바른 현실 분석이라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한총련 사태가 긴박하게 막바지로 치닫는 상황에서 뜬금없는 이 기사가 등장한 배경은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깐수는 이에 따라 90년대 이후에는 학생 및 재야세력의 운동에 대해 거의 보고하지 않았으며 정치 및 군사적 활동에 대한 보고에 치중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깐수는 이와 관련, ‘남한 학생운동가들이 북한당국이 자신들을 높게 평가하는 것처럼 오판하고 있으며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등 북한당국을 짝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월 20일 드디어 경찰의 강제 진압이 시작됐다. 동아일보는 21일자 1면 머리에「한총련 사태 5,715명 연행 / 검찰 “형사입건 원칙-구속 최소화” / 연대 농성 9일만에 완전 진압 / 어제 3천여명 검거-천5백명 탈출 / 주동자 계속 추적-당분간 ‘내연’ 예상」이라는 기사를 크게 보도했다. 22일자에도 1면에 머리에도「구속 4백명 넘을 듯 / 한총련 사태 3백50명 영장… 3천여 명 귀가 조치 / 검찰 배후·자금원 추적 조사」라는 기사를 올렸다.

김영삼은 20일 전국 대학 총학장 2백83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통일을 명분으로 자행하는 폭력 시위는 그 자체가 반통일적 반민주적 반국가적 행위이며,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폭력학생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으며 시대착오적인 친북세력은 철저히 응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대학은 그동안 사실상 학생 지도를 포기하거나 기피해 왔다”고 지적하면서 “대학은 스스로 자세를 가다듬고 반성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 총학장들이이 정치권력에 머리를 숙이고 꾸중을 듣는 형국이었다.

동아일보는 21일자 사설(「한총련 사태의 교훈」) 통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 사태의 본질은 북한의 통일노선에 동조하는 주사파 과격분자들의 배후 조종과 이에 부화뇌동한 일부 감상적 운동권 학생들이 본분을 잊고 폭력을 휘두르며 공권력의 무력화를 획책했다는 데 있다. 학생들이라고 해서 통일에 대해 의견을 말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집회도 할 수 있고 시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권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해야 한다. 한총련은 법을 무시하고 공권력을 무시했다. 어느 나라 어느 공권력이 체제를 부정하고 체제에 도전하는 세력에 집회·시위를 허용하는가.
  한총련 핵심들이 북한의 통일정책에 맹종하면서 대한민국을 반통일세력으로 매도하고 주한미군 철수 등을 구호로 내건 것은 학생의 신분을 벗어난 행동이다. (…) 학생들은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적 망상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자기 극복의 용기를 보여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사회와 시민들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분명히 보여줬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폭력화하고 장기화한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이 컸다. 범청학련 통일축제라는 불법적 폭력행사가 이번으로 여섯 번째다. 그때마다 정부는 행사의 배후에 극렬 좌익세력이 암약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핵심을 이적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러고도 똑같은 사태가 매년 벌어졌다. 이것이 체제를 수호해야 할 정부의 무책임한 자세였다. 여론의 질타에 몰린 경찰이 폭력시위 진압에 총기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하는 한심한 자세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대학도 정치권도 이번 사태에서 심각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대학이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껴안고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교육적 노력에 열중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권 역시 사태가 악화된 뒤에야 정치적 이해에 따라 강경·온건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여론을 선도하며 사태 해결에 나서야 했다. (…)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폭력으로 적대하는 한총련은 그 배후와 동원자금, 북한과의 관계 등을 철저히 추적해 발본색원해야 한다. 이번에 뿌리 뽑지 않으면 비극적 사태가 잠복했다가 재발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90년대 학생운동이 보수정권과 보수언론의 주장대로 ‘친북’ 일색이었는지, 학생운동이 저절로 과격 폭력 양상을 띄게 되었는지는 역사의 평가에 맡길 일이지만, 1996년 한 여름의 한총련 사태를 계기로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왔던 학생운동은 급격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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