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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 부른 ‘세계화’와 OECD 가입동아일보 대해부 4권 - 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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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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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94년 11월 18일자 1면에는「“국정 목표 ‘세계화’로” / 개혁 확대 장기 구상… 곧 구체작업 / 김 대통령 오늘 한·호 정상회담」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호주 시드니에서 기자 송영언은 아래와 같이 전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7일 앞으로 정부의 국정목표를 세계화에 두겠다는 ‘세계화 장기 구상’을 밝혔다. 오스트레일리아 방문 이틀째를 맞은 김 대통령은 이날 아침 숙소인 시드니 리전트호텔에서 수행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세계화 지향과 차세대를 위한 장기 구상을 갖고 있다’며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곧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세계화를 위한 세 가지 과제로 미래에 대한 투시, 목표의 명확한 설정, 구체적인 대책을 들고 다섯 가지 방향으로 세계 경영의 중심국가화, 국가 간 경쟁과 협력을 조화시킬 정책과 인력의 개발, 제도와 의식의 개혁, 창의성을 가진 자가 성공하는 사회, 정신과 인성의 중시를 제시했다.

3면에는「국제경쟁·협력 ‘주도’ 포석 / 김 대통령 ‘세계화 구상’ 의미 / 선진·개도국 이해 조정 등 ‘중간 역할’ 자임 / 국정운영 방향 가늠할 구체조치에 관심」이라는 해설기사가 실렸다.

  김 대통령이 이날 밝힌 ‘세계화’는 크게 두 가지로 골격을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앞으로 국정의 방향을 세계화로 결집시키겠다는 내부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외부적인 것이다.
  우선 내부적으로는 지금까지 해온 변화와 개혁 작업을 이제 세계화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공무원들의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기 위해 인력을 개발하고 모든 행정을 국제적인 시각에 맞춰 진행하겠다는 것 등이다. 공직사회의 적극적인 경쟁 분위기 조성이나 당리당략이 지배해온 국내 정치의 선진화 등도 이에 포함될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대개도국 경제협력 증대, 선후진국 간의 조정 역할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무역규모 13위라는 경제 규모에 걸맞은 한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것도 포함된다.
  김 대통령이 이날 밝힌 세계화의 의지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김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이를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그러나 과거에는 주로 ‘국제화’라는 개념을 강조한 데 비해 이번에는 ‘세계화’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차세대’를 여러 차례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차세대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따라서 현재의 우리 자신보다는 차세대를 위한 세계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세 가지 과제와 다섯 가지 방향 등 이를 좀 더 체계화한 것도 특징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 ‘세계화’를 ‘국제화’보다 훨씬 진취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지금까지 김 대통령이 강조해온 국제화가 세계의 개방화 추세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다소 수동적인 개념이라면 세계화는 우리가 앞서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개념”이라고 말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마저도 아직 제대로 정의를 못 내리는 지극히 모호한 ‘세계화’ 개념에 동아일보가 먼저 북 치고 장구 치며 나서는 모양새다.

동아일보는 23일자 5면에 「‘세계화 실체’ 어떻게 될까 / 김 대통령 지침으로 본 내용 / 국민 역량 결집 ‘경쟁력 극대화’ 겨냥 / 낡은 관행·제도 개혁 작업 잇따를 듯」, 24일자 4면에「김 대통령 ‘세계화’ 구상 / 난국 돌파 ‘정치적 포석’」이라는 해설기사를 싣고 ‘추상적’인 ‘세계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애를 썼다. 다만 기사 한 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다. “현 정부의 상징어라고도 할 수 있는 ‘개혁’이라는 용어를 대신할 새로운 정치적 구호가 필요했다. (···) 집권 1년 반이 지나면서 시중에는 ‘개혁이 물 건너갔다’는 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개혁’이라는 용어가 빛을 잃고 있는 마당에 뭔가 김영삼 정부의 국정 방향을 묶어 주는 새로운 상징어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도 '세계화‘의 정치적 의도를 어느 정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일단 ‘세계화’를 주창했으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문제였다. 11월 30일자 동아일보 5면에 실린「‘선진화’냐… ‘개도국 유지’냐 / OECD 가입 딜레마 / 세계화 수순… 특혜 잃는 게 고민; 정부 / ‘부자나라’ 간판보다 실익 중요; 업계」라는 기사가 그런 ‘고민’을 대변해 주고 있다.

  (…) 우리나라는 오는 96년 OECD 정식회원 가입을 전제로 현재 OECD 산하의 각종 위원회에 가입하는 등 가입 수순을 밟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시드니 선언으로 ‘세계화’가 국정운영의 지침으로 제시되면서 ‘96년 OECD 가입’은 한층 더 확고해졌다. OECD는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세계 25개의 부자나라들로 구성된 선진국 클럽. 여기에 가입하는 것은 ‘한국이 선진국임’을 자타가 공인한다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우리가 개도국으로서 누려온 각종 특혜를 포기해야 할 입장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
  정부는 “개도국 여부는 해당국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오랜 통상 관례”라며 당분간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이행 국내 법안을 준비하면서 ‘한국 싱가포르·홍콩은 비개도국’이란 문구를 넣었다. UR에서 우리 정부 대표단이 안간힘을 다해 따낸 개도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 문제로 우리 정부는 지금 비상이 걸려 있다. (…)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선진국이란 간판 때문에 실리를 포기할 수 없다”며 “OECD 가입이 국익을 진지하게 생각한 후 내린 결론이냐”고 불만이 팽배하다.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실리도 없이 속으로 멍드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정부 일각에서는 “OECD가 세계경제 질서를 구획하는 것은 10여 년 전에 이미 끝났고 이제 선진7개국(G7)이 대신하고 있다”며 “OECD는 실익 없이 의무만 있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추진하기 위해 OECD 가입은 꼭 필요하다”며 “다만 그 과정에서 실리도 포기할 수 없으므로 한편으로는 선진화를, 한편에서는 개도국 혜택을 함께 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영삼이 1995년 3월 3일 유럽 순방 중 파리에서 OECD 사무총장 장 클로드 페유에게 3월 중 OECD 가입 신청을 하겠다고 공식 통보하고 가입 추진 일정을 최종 결정함에 따라 한국이 1996년에 OECD에 가입한다는 것이 사실상 확정됐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한국이 OECD에 가입하면 국제투기자금(핫 머니)이 대량으로 유입돼 외환 위기를 겪게 될 우려가 있는 등 부작용이 크다”며 한국의 OECD 가입 무기한 연기를 촉구했으나(동아일보 3월 11일자 3면), 정부는 3월 29일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동아일보는 30일자 5면 기사(「OECD 가입 / 선진국 진입 개방 큰 부담 / 신청서 제출… 득실 예상점검 / 고급 경제정보 활용… 상품 신뢰도 향상 득 / 자본·서비스 자유화… 개도국 혜택 상실」)를 통해 OECD 가입의 득실을 따졌다.

4월 6일자에는 ‘재벌 국회의원’ 정몽준의 기고「OECD 가입 신중하게」를 13면(경제면)에 실었다. “OECD 가입이 가져올 추상적인 이득과 비교하여 당장에라도 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충분한 고민을 한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실망스럽”고 ‘공허한 명분론’을 앞세워 가입을 강행했다가는 멕시코 식 사태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OECD에 가입한다는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왜 대만·홍콩·싱가포르 등 다른 신흥공업국(NICS) 국가들이 OECD 가입에 소극적인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된다”는 말이 있지만 과연 우리가 호랑이를 잡을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후 1996년 10월 11일 OECD에 정식 가입할 때까지 국내에서는 “과연 가입해야 옳으냐, 그르냐”의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일부 여당 소속 의원들까지 반대의 소리를 높일 정도였다. 동아일보는 주의해야 할 것도 많고 고쳐야 할 것도 많지만 어쨌든 선진국으로 가려면 OECD 가입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였다. 1996년 3월 8일자(「한국의 인권」), 4월 25일자(「노사공동체를 위해」), 5월 19일자(「외환 자유화 너무 이르다」), 6월 3일자(「사치성 수입 줄여야」), 6월 19일자(「밀려드는 외국자본」), 7월 1일자(「경쟁력 강화가 문제다」)등의 사설들은 모두 OECD 가입을 앞두고 한국 정치와 경제, 사회가 바뀌어야 할 점들을 지적하며 개혁 방향을 제시한 것들이었다. 문제는 과연 한국 사회에 개혁할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1996년 10월 11일 한국은 OECD에 가입했다. 동아일보는 12일자 4면에「OECD 회원국 시대­선진국 진입 득실 / 국제 신인도·영향력 격상 /  득­각종 제도 선진화… 국민생활 향상 / 실­자본시장 열고 ‘개도국’ 포기해야」라는 기사를 싣고 “그간 숱한 시험과 난관을 거친 끝에 손에 쥔 OECD멤버십이지만 막후에서 온갖 고생을 한 재정경제원 관료들은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기분’을 내기에는 지금 우리 경제가 너무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하면서 가입에 따르는 득과 실을 분석했다.

일단 가입을 하고 나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동아일보는 10월 12일자 사설(「OECD 가입 이후의 과제」)에서, 우리 분수에 OECD에 지금 가입하는 게 타당한지 우려는 있지만 일단 가입이 확정되어 선진국 대접을 받고 국제적 신용이 올라가는 장점이 있으므로 “책임 있는 정당이 무작정 반대만 하는 것도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다음과 같이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을 촉구했다.

  (…) 그렇다고 가입에 따른 국내 경제에의 충격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를 어떻게 최소화하는가에 이번 OECD 가입의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그중에도 자본시장에 미칠 영향은 실로 걱정이다. 이는 물론 자업자득의 결과다. 온실 속 보호를 받아온 우리 금융계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이 거의 없다. 높은 금리, 만성적 자금 수요, 작은 규모, 경영기법의 낙후, 각종 규제와 강력한 노조 등 외국자본과 경쟁할 긍정적 요소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단적으로 금리차를 이용하려는 외국 핫머니가 몰려왔다가 일시에 빠지면 우리 경제는 곧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의무조항이 아니라고 해서 넘어가기는 했지만 노동조건 문제도 최근 침체에 빠진 경제 상황과 맞물려 해결하기 쉽지 않다. OECD가 요구하는 수준의 환경·소비자보호 문제 등을 빨리 정리하는 것도 큰 숙제다. 그러나 이런 과제는 결국 빨리 풀수록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 일면 바람직한 것이다.
  OECD는 가입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낮은 이자의 자본 도입,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 강화, 고도 정보 수집의 가능성 등을 통해 이 기구를 충분히 활용하려면 이제부터 잘해야 한다. 국민의 도덕적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OECD 가입의 충격 해소와 이를 활용하기 위한 대비책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국회 비준이 늦어지자 동아일보의 본심이 드러났다. 11월 19일자 사설(「OECD 비준 빨리 하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는 당부는 그저 해 본 소리였을 뿐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준비가 안 됐다 하더라도 OECD에는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 OECD 가입은 80년대 말부터 정부가 추진해 왔고 작년 3월 가입신청서를 제출, 18개월의 협상 끝에 지난 10월 가입 초청을 받은 것이다. 가입 초청을 받은 이상 국제조약을 맺을 때 관례대로 1개월 이내에 국내 절차를 마무리하는 게 국제신용 유지에도 좋다. 정치적 이해를 따질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반대하는 쪽도 기본적으로 가입원칙에 찬성하면서 다만 시기를 저울질하는 정도라면 국가 이익에 비춰 OECD 가입 비준을 빨리 하는 것이 옳다. (…)
  우리 경제는 지금 경쟁력 저하로 고민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 폭이 올해 2백억 달러에 이르고 외채가 1천억 달러를 돌파한다는 것이 모두 경쟁력 저하에서 나온 것이다. 경쟁력을 높이려면 값싼 이자의 외국 자본이 필요하다. 국제경제 정보에의 신속한 접근도 필요하다. 급속한 국제금융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능력을 제고할 국내외 경제의 연계성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중에도 은행·보험 등 그동안 규제의 벽 속에서 안주해 온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증권시장은 단계적으로 개방 준비가 돼 온 셈이나 은행·보험 쪽은 영향을 많이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 상품과 지적소유권의 개방이 불가피한 실정이라면 언제까지 준비가 덜 됐다고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부실금융 때문에 야기된 경쟁력 약화 요인을 생각해서도 이제는 국제금융의 개방 파도에 내맡겨 한 번의 바람을 맞고 헤쳐 모여 식 생존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
  가입에 따른 부작용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본의 해외 유출 가능성, 경제정책의 자율성 약화, 국내산업의 흔들림 등의 부작용에 관한 대책은 지금부터 정부와 정당과 경제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내야 한다. 그것이 더 급 하다. OECD 가입 비준 문제를 놓고 여야가 싸울 때는 지났다. 그보다는 가입 이후의 문제 해결에 국력을 모아야 한다.

“한 번의 바람을 맞고 헤쳐 모여 식 생존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라는 ‘상황 인식’과 “가입에 따른 부작용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는 낙관의 결과는 정확히 1년 후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귀결됐다. 동아일보가 구제금융을 받기로 결정한 그 날을 ’국치일‘이라 명명할 것이었다면 그 신문 역시 국치일을 부른 ’공범‘의 하나였음을 이 사설은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가입 이후의 문제 해결에 국력을 모아야 한다”고 한 줄 붙였다고 책임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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