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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개혁 드라이브-환호와 우려동아일보 대해부 4권 -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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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2.2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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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반 김영삼의 개혁 드라이브는 대단했다. ‘김영삼 신드롬’이라 불릴 만 했다. 1993년 2월 25일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는 3일 만인 27일 자신의 재산을 먼저 공개하면서 공직자 재산 공개를 추진했다. 동시에 군부 내 ‘하나회’ 척결을 감행했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하나회’ 척결

1961년의 5·16 쿠데타 이후 군부를 빼놓고 대한민국 정치사를 논할 수 없다. 군부 내에서도 전두환을 두목으로 한 ‘하나회’는 박정희 밑에서 야금야금 힘을 기르다가 1979년 12·12 쿠데타를 통해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 하나회 ’는 전두환 통치 7년, 부두목 격인 노태우 통치 5년 동안 한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그런데 5·16 쿠데타 이후 32년 만에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군부와 하나회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오랫동안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김영삼은 취임 즉시 칼을 빼 들었다. 

김영삼은 3월 2일 ‘비하나회’ 출신 권영해를 국방장관에, 박상범을 경호실장에 임명했다. 하나회 척결의 신호탄이었다. 그 두 자리는 군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특히 청와대 경호실장은 지금까지 정규군의 통수권 계 선 상에 있는 국방부장관보다도 더 군 장성 인사에 강하게 입김을 넣는 ‘군부 실세’ 노릇을 해왔다. 박정희 정권 시기의 박종규와 차지철, 전두환 아래서의 정동호·장세동·안현태, 그리고 노태우 정권 때의 청와대 경호실장 이현우 등은 대부분 본연의 경호 업무를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경호실장 자리가 김영삼 정권에서 본연의 경호 업무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면서 두려워했다. 그런 걱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3월 8일자 동아일보 1면에 ‘놀라운 사건’이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육참총장 전격 경질 / 기무사령관 보직 해임 / 임기 1년 남겨두고 단행」이라는 기사가 「부분 개각 단행 / 김 대통령, 법무·보사 경질, 서울시장 임명」을 옆으로 밀어내고 시커멓고 큼지막하게 머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육군 참모총장 김진영을 9일자로 전격 해임하고 후임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인 대장 김동진을, 또 국군기무사령관을 서완수를 보직해임하고 후임에 현 기무사 참모장 김도윤을 임명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아일보는 다음날인 9일자 2면의「‘노·전 맥’ 끊기… ‘윗물 개혁’ 신호탄 / ‘병권 장악’ 가시화… ‘파벌’ 뿌리 뽑기 / ‘권 장관 관련 악성 소문 진원지’ 제거 뜻도」라는 해설기사에서 “육군 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의 돌연 경질은 김영삼 대통령의 실질적 병권 장악과 단호한 군부 개혁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고 평가했다. 김진영은  전두환 이래 육사 17기 전후의 하나회 리더이며 서완수는 육사 19기의 TK(대구·경북) 인맥으로 동기생 선두주자 중에서도 핵심 장성이었다는 것이다.

후일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그때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날) 군인들 사이에서는 ‘대단하군, 역시 대단해’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한마디로 충격을 넘어 경악이었다. 5·16 쿠데타 이후 32년 만에 되찾은 문민정부의 위력이 이날만큼 실감나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김영삼은) 다음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모두 놀랐제’라고 말했다. 한 수석비서관은 ‘각하, 저희들도 그렇지만 국민 모두 얼떨떨해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모든 참석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동아일보는 3월 9일자 사설(「군도 새로워져야 한다」)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이 새 정 부출범과 함께 단행한 전면 개각에서 국방부장관과 차관을 교체한 데 이어 군의 요직인 육군참모총장·한미연합사부사령관·기무사령관 등을 새 인물로 교체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 이번에 물러난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서완수 전 기무사령관의 ‘관행상의 임기 2년’이 오는 12월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교체가 예상보다 크게 앞당겨진 감은 있다. 그러나 새 대통령이 통수권 행사 차원에서 군을 확 실하게 장악하고 지휘계통을 확립한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인사이기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5일 육군사관학교 제49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온 군인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영예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이 잘못된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군에는 하나회 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근무 부대와 연관된 이른바 9·9인맥 같은 사조직이 있어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기무사가 대민사찰을 통해 정치에도 간여하는 등 부정적인 요소가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새 시대를 맞아 군의 문민통제를 확립해야 하고 군이 본연의 역할과 위상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 그런 측면에서 특히 김영삼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정보기구 축소원 칙에 입각하여 현재 중장 보직으로 되어 있는 기무사령관을 한 계급 내려 소장 보직으로 하고 기무사의 역할도 군 내부 일로 제한토록 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제 군은 이번 인사를 시작으로 인사운영·전략개발 등 변화와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일부 장교들의 사조직 같은 파벌 조성이나 진급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졌던 집단행동 같은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

김영삼의 ‘군 손보기’는 계속됐다. 4월 2일에는 수방사령관과 특전사령관을 갈아치웠다. 이른바 ‘9·9인맥’이라는 전임 대통령 노태우의 친위대까지 날려 버린 것이다. 4월 중순에는 군 장성 인사를 앞두고 ‘하나회’ 회원 1백42명의 명단을 폭로하는 괴유인물이 국방부와 합참 장교들 사이에 나도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4일자 사설(「‘하나회의 충격」)을 통해 “이 유인물의 살포가 누구에 의해, 무슨 의도로 저질러진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단순히 인사에 불만을 품은 군 내부 인사의 장난인지, 비하나회 측의 하나회원 제거 공작인지, 아니면 군부의 분열을 획책하는 일부 불순세력의 책동인지 추측만 난무할 뿐”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이제 군 내부의 어떠한 사조직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군의 정치적 중립과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기필코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이 단결하여 일사불란하게 국방 및 안보에만 전념하는 전통을 가꾸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잡다한 시련이나 진통이 없을 수 없다. 군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민주적인 그리고 참으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로 발돋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런데 정기인사를 2개월이나 앞당겨 4월 15일 육군의 군단장 및 사단장급 장성들 19명에 대해 단행한 인사에 대해서는 엇갈린 해석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16일자 2면 기사(「경질 장성 중용 등 “예상 밖” / 하나회· 9·9인맥 요직 진출 / “개혁 퇴색” “뿌리 깊은 군맥 실감” 해석」)는 이번 인사가 개혁차원에서 경질됐던 장성이 다시 중용되고 하나회 출신이 요직에 진출하는 등 난조를 보였다는 평가를 내렸다. 4명의 신임 군단장 진급자 중에 유명한 ‘하나회’ 출신 선두주자가 들어 있고 장성진급심사위에 하나회와 9·9인맥이 다수여서 그들의 심사 결과에 따른 추천을 받은 국방장관 권영해에게 운신 폭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4월 17일 3면 사설(「강한 군대 공정한 인사」)은 “(지난 3월 8일 육군참모총장 및 국군기무사령관 전격 경질, 지난 4월 2일 수방사령관 및 특전사령관 전격 교체, 8일 육군 2, 3군 사령관 교체 등) 일련의 인사가 정치적인 배려에 의한, 그리고 군에 대한 새 정부의 통제를 확고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면 이번 인사는 새 정부의 군 인사원칙을 엿볼 수 있는 정기인사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면서 “이번 인사는 이른바 하나회, 9·9인맥, 알자회 등 정치성을 띤 사조직 관련 인사들을 우대해온 종전의 잘못된 관행을 깨고 능력과 원칙에 따르되 최대한 군의 단합과 안정을 고려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하고 사단장 발령을 받은 8명의 장성 가운데 하나회 회원으로 알려진 인사가 1명도 없다는 점, 육사 출신이면서도 그동안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비하나회 인사와 ROTC 및 갑종장교 출신 등 비육사 인사들이 크게 부각된 점, 그리고 9·9인맥으로 지난 2일 요직에서 전격 경질됐던 인사가 육군참모차장의 요직에 다시 기용된 점 등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 따라서 이번 인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다.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하나회 회원 및 9·9인맥 관련 일부 인사들이 이번 인사에서 또 중용된 것은 새 정부의 개혁 의지를 퇴색시키는 것이고 뿌리 깊은 군 인맥을 다시 실감하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단행된 몇 차례의 요직 교체 과정에서 소외된 측의 불만이 확산되고 하나회 회원 명단이 담긴 괴문서가 살포되는 등 동요가 빚어진 것을 고려할 때 단합과 안정을 위해 잘 된 인사라는 것이다.
  지금은 주변 정세와 국내 상황에 비추어 어느 때보다도 군의 안정과 단결 그리고 화합이 요청되는 때이다. 그리고 능력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인사로 군 내부의 동요나 불만을 극소화하면서 과거에 잘못된 관행들을 타파하여 군의 체질을 개선해야 할 때이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이번 인사를 계기로 군 내부의 사조직을 뿌리 뽑고 새로운 ‘정치군인’들이 생겨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능력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인사의 전통을 확립해야 강한 군대가 되는 법이다.


공직자 재산 공개

집권 초기 김영삼 정권이 ‘하나회’ 손보기와 함께 역점을 두고 추진한 것이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였다. 김영삼은 대통령 취임 3일째인 2월 27일 자신의 재산을 먼저 공개했고 민자당 당무회의도 3월 5일 재산 공개를 결정했다. 3월 8일에는 딸의 대학 편입 특혜, 그린벨트 훼손 등으로 물의를 빚은 법무부장관과 보사부장관, 서울시장을 해임했다.

동아일보는 연일 재산공개를 부추겼다. 사설은 물론 ‘동아광장’ ‘아침을 열며’ ‘횡설수설’ 등 내외부 필진들의 각종 칼럼들을 총동원했다. 3월 14일자 ‘아침을 열며’ 칼럼에 실린 소설가 박완서의 글(「확실하게 달라진 것들」)은 다음과 같다. 

  오래 알고 지내면서 학식과 덕망에 비해 처신이 한결같이 조촐하여 내심 좋아하던 분을 최근에 만난 적이 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혹시 높은 벼슬 자리에서 부르지 않더냐고 물어보았더니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자격이 안 되는 까닭으로 현재 살고 있는 집 외에 노부모에게 장만해드린 3천 여평의 농토 얘기를 했다. 마침 재산 관리나 재산의 형성 과정이 정당치 못하다는 의혹 때문에 임명된 지 열흘을 못 채우고 물러난 고위공직자들 얘기가 파다할 때라 농담 삼아 한 얘기였지만 현재 높은 공직에 있거나 물망에 오르는 이들은 농담할 기분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막연히 고위층이라고 부르는 안개에 가린 이들의 호화주택과 호화 별장이 급매물로 쏟아져 나온다는 소문이 그들의 불안한 심정을 짐작케 한다. 속속 시행되고 있는 고위공직자의 재산 공개가 어느 정도 정직하게 이루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넘치게 가진 이들이 전전긍긍해하고 있으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지 않은 바가 아니다. (…)
  역대 어떤 정권도 출범할 때 부패 척결을 외치지 않은 정권이 있었던가. 그러나 그들이 척결한 건 정적 아니면 송사리가 고작이었다. 새 대통령의 척결 의지가 그런 선례와 확실히 달라 보이는 것은 추상같은 단호함 때문만이 아니라 척결당한 인사의 신선함 때문이다.
  그들의 잘못은 “세상에 이 정도가 죄가 되다니” 하고 본인들도 어리둥절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일반화된 비리였고, 아무리 깨끗한 척하는 사람도 다만 기회가 없어서 못 저지른 고루 잠재된 비리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망신은 새 대통령이 장차 얼마나 어려운 싸움을 시작하리라는 상징이 되었고, 과연 문민정부는 다르다는걸 실감나게 했다.

  3월 18일 장관급 29명과 수석비서관급 11명이 재산을 공개했다. 동아일보는 19일자 사설(「장관의 재산공개를 보며」)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20일자 사설(「손바닥으로 재산 가리기」)에서는 장관들의 불성실 신고, 양심불량 신고 등을 지적하며 “지금 국민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의심의 눈길을 잠재우지 않는 한 모처럼의 재산 공개도 실효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 같다. 추가나 수정 신고를 하든지 충분히 납득시킬만한 설명이 뒤따라야 하리라고 본다. 숨겼다가 드러나면 숨긴 사실 자체만으로 치명상을 입게 된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신고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정부 스스로 한 번 검증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3월 22일 민자당도 한국 정당사상 처음으로 소속 의원 전원과 원외당무위원 등 1백 61명의 재산을 일괄 공개했다. 본인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포함한 현역 의원 1백53명의 총재산은 3천9백억여 원으로 평균재산은 25억4천8백만 원으로 나타났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국가 서열 2위인 국회의장 박준규가 공개한 재산 내역이었다. 그는 아들 이름으로 땅을 17만여평이나 사들였다. 그의 아들은 75가구가 사는 연립주택의 주인이고 13층 건물까지 갖고 있었다. 박준규 일가는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에서 27년 전부터 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정치생명은 그것으로 끝났다. 동아일보는 3월 30일자 사설(「이대로 멈춰서는 안된다」)에서 “(재산 공개에 대한 민심이) 더러는 여론재판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 여론은 자본주의의 경제질서와 법치주의를 거역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간교한 논리로 국민의 몫에 제동을 걸려 한다면 이 때문에 또 다른 분노를 야기시킬 수 있다”며 “박준규 국회의장과 임춘원 의원이 민자당을 탈당, 퇴로를 찾으려는 몸부림은 간교에 불과하다. 역사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타했다.

  (…) 국민의 몫에 도전하거나 국민의 몫을 움츠리려는 어떠한 행위나 결정도 결과적으로는 더 큰 어리석음으로 판명될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새 정부가 시도하는 개혁이 박수를 받는 것은 그러한 어리석음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삐를 늦출 수 없다. 부정부패 척결 운동의 제도화라는 논리도 마땅치 않다. 제도화 노력이 병행돼야 하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아무래도 ‘후퇴’로 받아들여진다.
  더 캐보면 더 많은 분노의 요소가 발견될 것이라는 것이 국민적인 인식이다. 운 좋게, 그리고 간교하게 빠져나가는 정치인과 고급공무원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법부와 군에 대한 신중론도 대두되고 있다. ‘형평의 원칙’에 따라 모두가 하나의 잣대로 심판받아야 한다. 수습이라는 발상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빠져나감을 막는 것, 바로 그것이 새 정부에 주어진 개혁의 과제다. (…)
  개혁 추진의 주도적인 힘은 이제 국민의 편으로 옮아갔다. 국민의 몫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간교하게 저항하고 있는 이른바 ‘일부 기득권세력’은 명심해야 한다. 박 의장과 임 의원에게 깨끗이 물러가도록 거듭 경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재산 공개 더 이상 없다’는 정부·여당의 ‘수습책’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들춰진 내용에 대해 이제는 정부 스스로가 캐내려는 노력이며 멈춤이 아니다.

김영삼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다. 동아일보 3월 24일자 2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왔다.

  25일로 취임 1개월을 맞는 김영삼 대통령의 그동안 직무 수행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국민들 중 70.9%가 ‘잘한다’는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 조사연구소가 청와대의 의뢰를 받아 지난 18일부터 4일간 전국 만20세 이상 남녀 1천5백명을 대상으로 면접 여론조사를 한 결과 김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70.9%가 ‘잘하고 있다’, 7.1%가 ‘잘못하고 있다’, 13.9%가 ‘보통이다’, ‘모름 무응답’이 8.3%로 집계됐다.


금융실명제

김영삼은 4월 15일 “개혁을 하다보면 저항도 따르고 이를 역류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을 수 있으나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다”면서 “우리 역사상 처음 주어진 진정한 개혁의 기회를 놓치면 역사가 우리를 외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6일에는 신경제계획위원회의 민간 위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앞으로 토지나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재산세·상속세· 증여세 등에 관한 세법을 개정하는 것을 포함, 제도를 개혁함으로써 부동산에 관한 국민의 의식을 바로잡도록 하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이 금융실명제를 실행할 것이라는 루머는 취임 전부터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동아일보는 취임 며칠 전 「경제가 뒷전으로 밀린다」라는 사설에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갖가지 대선공약이 이행되기 직전이다. 희망적인 관측이라면 지금쯤 주식값이 올라가야 마땅하다. 금리가 내렸다. 주식시장에는 호재다. 선거의 어수선함, 정권 말기의 어정쩡함이 가시고 앞으로 5년의 이 나라 국정을 이끌어갈 주역들이 확실해진 마당에 왜 주가는 이처럼 바닥을 기어야 하는가”라고 묻고 “우선 새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곧 실시할 것이라는 예측 하에 대기성 자금이 증시를 빠져나간다”며 금융실명제에 대한 자산가들의 경계심이 경기 침체의 한 원인이 아닌가라고 완곡하게 우려했다. 그 사설은 “요즘 정국이나 행정 자세, 새 정부 관계자들의 태도는 경제보다는 정치에 큰 비중을 두는 양상”이라며 “경제가 뒷받침하지 않는 정치판은 무의미하다. (…) 경기 회복을 저해하는 정치적 언동은 억제하고 새 정부 차원에서 경기 진작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경기 회복의 당위성과 금융실명제에 대한 반발로 인한 경기 침체의 우려라는 이율배반에 대한 해결책은 딱히 제시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3월 6일자 2면에  “정부와 민자당은 6일 새 정부 출범 후 첫 당정 협의를 갖고 이달 중 2단계 금리자유화 조치를 실시하고 다음 주 초부터 농기계 구입비를 인하키로 했다. 당정은 또 금융실명제 실시와 관련, 5월까지 구체적 방안을 확정해 발표키로 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재무부장관 홍재형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초 5월까지 제시할 예정이었던 금융실명제 실시 일정을 하반기 이후로 연기하는 쪽으로 정부 입장이 최종 정리 됐다고 밝혔다.

이후 금융실명제는 즉각 실시를 요구하는 야권과 노동권,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실시를 늦추더라도 최대한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는 재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언제 실시될지 기약 없이 흘러가는 형국이었다. 전면 실시와 단계적 실시도 맞섰다. 하지만 금융실명제는 대세였다.

동아일보는 5월 3일자 사설(「‘윤리법’ 개혁에 걸맞게」)에서 “앞으로 금융실명제는 가까운 시일 안에 실현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공직자와 그 가족의 재산등록 공개를 특히 사생활의 비밀의 공개라고 단언하는 논거는 크게 희박해진다. 재산의 등록과 공개를 무슨 형사적 처벌이나 불이익 또는 손해를 부담시키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고는 자칫 공직자 가족의 재산 공개를 연좌제로 여길 수 있다. 아주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며 금융실명제 실시를 기정사실화 했다.

5월 24일자 사설(「재벌 신경제에 발 맞춘다」)에서도 “신경제계획은 크게 보아 경제개혁 과제와 일반 과제로 나누어진다. 개혁 과제는 금융실명제 실시, 경제력 집중 완화, 각종 행정 규제를 과감히 푸는 것 등이다. 산업구조 조정 등 일반 과제가 일선 경제관료의 몫이라면 개혁 과제는 일종의 정권 차원의 강력한 배경을 필요로 한다”며 금융실명제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5월 28일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 세제개혁안’이 발표된 직후의 사설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 역대 정권의 현안이던 금융실명제 실시와 관련, 그 일정이 상당한 진전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 개혁안은 이를 3단계로 나눠 놓고 있다. 1단계는 모든 금융거래의 실명화를 의무화하고 2단계는 이자 및 배당소득을 종합과세하며 3단계는 주식양도차익에까지 과세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1단계는 일단 유보해 놓았다. 이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대단히 예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자산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는 96년 이후, 주식양도차익 과세는 늦어도 97년부터는 실시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 3단계가 1단계 실시라는 전제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명제 실시 시기는 95년까지 잡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만한 추진 내용에 만족하지 않을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경제 여건이 좋아질 경우 이 시기는 매우 가변적이라는 점에서 일단 기다려 볼 일이다. 이제는 차라리 실명제를 완전 실시한다고 가정할 때 개인의 예적금 비밀을 어떻게 잘 보호하느냐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더 급하다. 또 금융실명제를 실시한다고 모든 검은 돈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차명거래, 자기앞 수표의 관행 등 시정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

동아일보는 금융실명제 실시 시기를 1995년까지로 늦춰 잡았지만 그것은 오산으러 드러났다. 김영삼은 6월 3일 취임 1백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선거 때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반드시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것이지만 현 시점에서 그 시기와 방법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15일 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는 “금융실명제는 반드시, 그리고 조속히 실시돼야 한다. 한은 독립, 세제 개혁도 빨리 해야 한다”는 야당 대표에게 “다 준비하고 있다. 금융실명제도 반드시 실시한다. 다만 실시 시기는 나에게 일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은밀하게 ‘깜짝쇼’를 준비했다.

8월 초부터 실시 임박설이 나돌기는 했지만 12일 김영삼이 전격적으로 발표하는 시점은 동아일보는 물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동아일보는 13일자 1면 머리에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 김 대통령 ‘긴급명령’ 발동 / “부정 봉쇄-16일 국회 열어 승인” 요구」라는 기사를 통단으로 싣고 「모든 금융자산 2개월 내 실명화해야 / 실명 전환 5천만 원까지는 출처 불문 / 주식양도차익 현 정권에선 과세 안 해」를 주요 기사로 올렸다. 2, 3, 4, 5면, 7면, 23면에도 관련 기사 일색이었다. 23면(사회면) 머리기사 제목은「“검은 돈 추방 기대”-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시민 반응 / “재산 공개 성실성 드러날 것/ 원칙 좋지만 혼란 없었으면” / 경찰 “수뢰사건 수사 쉬워질 듯”」이었다.

같은 날짜 사설(「금융실명제의 전격 실시」)은 “사실 금융실명제를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한다는 구체안은 미리 발표하기가 어렵다. 이에 따라 자금 흐름이 달라지며 경제 전반이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금융실명제의 실시가 전격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 물론 갑작스러운 조치의 부작용은 감내해야 한다”고 전격 실시의 불가피성을 옹호하면서 “이번 조치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경제, 나아가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한국’이라는 조직사회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획기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 금융실명제 실시의 필요성은 바로 정경유착의 근절이며 검은 돈의 양성화로 이 사회를 부패구조에서 건져 내자는 데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우리 사회의 기본도덕률을 바꾸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7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한국사회의 부패 고리는 80년 초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면서 일종의 위기감을 주었었다.
  이에 따라 금융실명제 실시를 위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91년 실시에 따른 실무준비반까지 마련됐었다. 그러나 5공과 6공을 거치는 동안 경제에의 타격을 핑계로 지금까지 미뤄져 왔었다. 일단 이번 조치의 당위성을 인정하며 예상되는 부작용의 치유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특히 지금은 경기가 매우 부진한 시기다. 여러 각도로 활성화 대책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취해진 이번 조치가 경기 회복에 부정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영향은 있을 것이다. 거액 비실명계좌의 주인이 자금 추적 조사를 우려, 자취를 감춘다거나 자금 활용을 포기하는 게 좋은 일은 아니다.
또 사채시장의 위축이 중소기업의 자금 마련에 애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제도권에서 돈이 빠져 비실명이 아직은 허용된 사채시장에 몰릴 수 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극소화, 본래 취지를 살리는 데 최선을 기하기 바란다.

그러나 처음 실행해 보는 금융실명제의 후유증은 어쩔 수 없었다. 또 경제상황이 너무 나빴다. 큰 틀의 개혁에는 찬동하면서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데서 나오는 동아일보의 안달도 계속됐다. 동아일보는 8월 26일자 사설( 「저성장의 타성이 두렵다」)에서 “지난 12일 전격 실시한 금융실명제가 아무리 장기적으로 경제에 좋고 사회정의에 맞는다 해도 단기적 타격은 어쩔 수가 없다”고 걱정하더니 9월 20일자 사설(「실명제 보완과 경제낙관론」)에서는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된 지난 8월 12일 이후 경제 회복에 대한 일반의 믿음이 많이 훼손됐다. 크게는 정책에 대한 신뢰 훼손에서 실명제 실시 후유증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마음이 정처를 잃고 있다. 경제를 하려는 국민들의 사기 저하가 심하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 그런데 실명제 이후 각 경제주체마다 뭔가 편치 않은 심정이다. 실명제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평범한 가계마저 번거로운 은행 출입에 혹시나 세무원의 눈길이 미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무자료 거래에 익숙한 중소기업이나 상인들이 움츠러든 것은 물론이고 대기업의 행보도 시원치가 못하다. 정직한 공무원은 적은 봉급에 고생이다.
  이 때문에 기름을 친다고 통화가 풀려나가고 있으나 물가 위협만 커질 뿐 경기 회복과는 거리가 있다. 작은 손들은 세금, 큰 손들은 세금과 신분 노출, 모두가 두렵다. 이러니 돈이 돌지 않고 부도는 늘어난다.
  경제낙관론은 우선 국민 사기를 올리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세금이나 예금계좌의 추적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 정부는 실명제의 보완대책으로 3천만 원 이상의 자금 인출 조사나 배우자 명의 차명을 완화 또는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고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특히 큰 손들의 돈이 돌도록 장기채 발행이나 장기예금의 개발, 비자금의 기업자금화 방안 등 활용 가능한 보완대책을 추가로 서두르는 일이 바람직하다.
  이 부총리가 보인 모처럼의 자신감이 경제총수로서의 허세로 끝나서는 안된다. 다시 한 번 올해 물가와 내년 성장 목표 등 경제지표를 점검,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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