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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대통령 선거-김대중·김영삼의 대결동아일보 대해부 4권 -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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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1.3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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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몰고 온 KAL여객기 공중 폭파 사건

제1대 대통령선거를 2주 앞둔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KAL) 여객기 공중 폭발 사건이 일어났다. KAL 소속 858편 보잉 707기였다. 시기적으로는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고 각 당 후보들이 대도시 지역유세에 열을 올리던 때였다. 그 비행기는 전날 밤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해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를 지나 방콕으로 향하던 중 버마의 벵골만 상공에서 공중 폭발했다.  승객은 중동에서 귀국하던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고 한국인  93명과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 등 모두 1백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그 소식을 11월 30일자 1면 머리에 통단기사로 싣고 2, 10, 11면 등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 사건이 더욱 확대일로를 걸은 것은 일본 언론들이 북한의 테러로 보면서부터였다. 동아일보는 12월 2일부터 4일까지 속보를 매일 1면 머리 등 5개 면에 걸쳐 보도하고 범행을 북한의 대남테러로 추정했다. 12월 2일자 2면 사설(「테러에 희생된 생명들」)은 테러 배후로 북한을 겨냥해 비판했으며, 3일 2면 사설(「북한의 초조감」)은 아예 명시적으로 북한을 지목했다. 

  버마 상공에서 실종된 KAL기 사고 원인이 북한 측의 사주에 의한 폭발 가능성 쪽으로 기울자 ‘설마 동족이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라는 탄식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
  왜 이렇게 되었는가. 무슨 큰 사건이 터졌다 하면 일단 북한을 의심하게 되고 또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추후에 사실로 입증되니 그저 딱하기만 하다.
  북한은 지금 한국의 대통령선거와 88올림픽에 과민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번 선거가 무사히 치러져서 국민의 지지받는 민주정부가 탄생할 때 국민의 결속력이 훨씬 강해질 것을 걱정하는 모양이다.
  (···) 선거와 올림픽 그리고 우리의 국제적 지위 향상은 북한을 초조하게 만들고 조바심을 갖게 한 나머지 이성을 잃은 과격 행동을 유발시킨 면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이 같은 열세를 테러리즘과 같은 과격한 방법으로 만회하려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동독이 보인 것처럼 체제 경쟁에서 오는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공동 번영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12월 3일자  사설). 


그 사건의 하이라이트는 범인으로 지목된 하치야 마유미(김현희)의 서울 압송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김현희를 대통령선거 하루 전인 12월 15일 바레인에서 서울로 오게 함으로써 대통령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 물론 민정당 후보 노태우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이른바 ‘북풍’의 한 방법이었다.
동아일보는 조선일보 등 다른 언론들이 서울에 도착한 김현희를 선정적으로 보도한 것과는 달리 비교적 차분하게 다루었고, 보도의 초점을 대통령선거에 맞추려고 했다. 12월 15일 서울에 압송된 김현희는 한국에 신병이 인도된 지 8일 만인 12월 23일 그 사건이 북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김대중· 김영삼의 후보 단일화 실패

1987년 14대 대통령선거의 최대 관심사는 김대중과 김영삼의 후보 단일화였다. 불과 7년 전인 1980년 ‘서울의 봄’ 때 두 사람이 힘을 합해야 신군부의 쿠데타세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지만 그들은은 서로 다른 길을 갔다. 또한 노태우의 ‘6·29 선언’이 나온 배경도 ‘양김’의 분열을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주목됐으나 정작 두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들은 ‘6·29 선언’ 이후 단결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독자적인 길을 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양측은 실무협상을 벌였지만 진전은 없었고, 후보 단일화 약속 시한인 9월 30일을 하루 앞둔 29일 협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동아일보는 9월 30일자 1면에 차마 ‘협상 실패’라는 말은 쓰지 못하고 「두 김 씨 동시 출마 강행 태세」라는 엉거주춤한 제목으로 단일화 실패 소식을 알렸다.

  2면 사설(「국민힘으로 단일화」)은 국민의 압력을 통해서라도 단일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달 말까지는 후보 단일화를 매듭짓겠다던 두 김 씨가 29일의 마지막 담판에서 서로 상대방의 양보만을 요구하다가 끝내 아무런 합의도 보지 못하고 “국민과 당원에게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헤어졌다.
  단일화 실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두 김 씨의 심기도 불편하겠지만 그 발표를 지켜본 국민들은 실망감을 넘어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단일화 문제는 민주화의 실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에 결코 민주당의 당내 문제만도 아니고 누가 다음 정권을 잡느냐의 차원에 머물지도 않는다.
  (···) 이제 와서는 국민과 당원들이 직접 두 사람에게 단일화 압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당원들은 어느 한쪽에 대한지지 일색으로 기울 게 아니라 소장의원 그룹의 움직임과 같이 이 시대가 처한 역사적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단일화의 길이 완전히 막혔다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두 김 씨의 합의에 의한 단일화가 최상이겠지만 그것이 안 되는 마당에서 는 당내 경선을 통해 당원들의 손으로 후보를 직접 뽑는 것도 차선책은 될 수 있다고 본다.
  (·····) 아직 희망을 버릴 때는 아니다. 우리는 밟혔다가도 잔디처럼 일어나곤 했던 양당의 저력이 민주화의 이 결정적 시기에 다시 한 번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기 갈 길을 재촉했다. 10월 27일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 합의의 신헌법이 국민투표에서 93.1%의 압도적 찬성으로 확정됐다. 그러자 10월 28일 김영삼은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어 김대중도 10월 30일 대통령 출마와 함께 평화민주당(평민당) 창당을 선언했다.


유세장의 폭력 사태와 흑색선전

문제는 ‘양김’의 후보 단일화 실패가 초래한 대립이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 후보들의 지역 유세가 진행되며 유세 현장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는 전두환 정권의 치밀한 사전 각본에 있었다는 의혹들이 제기됐다.

부산에서 본격적인 폭력 사태가 처음으로 터졌다. 11월 1일 밤 김대중이 머물던 부산 국제호텔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청년들이 몰려가 호텔 유리문을 부수는 등 난동을 벌인 것이다. 동아일보는 그 사실을 11월 2일자 사회면(11면)에 주요 기사로 보도하고 경찰의 늑장 출동을 지적했다. 11월 3일자 2면 사설(「정치폭력의 악순환」)은 폭력의 주동자들을 검거해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평소 멀쩡했던 사람도 이상 고열에 시달리게 되면 헛소리를 하고 괴상한 몸짓을 한다. 대통령선거를 달포 남짓 앞두고 우리 사회 전체가 열풍에 휩싸여 이상 고열 증세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평민당(가칭)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의 숙소인 부산 국제호텔에서의 난동 사건도 그러한 것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유세전이 폭력전화 하는 양상을 보이는 이 난동 사건은 민주화로 가는 도정에서 가장 염려했던 정치폭력이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여간 걱정스런 게 아니다. 이번 사건도 난동자를 전원 색출, 처벌하지 않으면 폭력의 악순환을 가져와 ‘평화적인 정권 이양’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이다. 
  (···) 사태를 분별하고 제정신 차리기 위한 꼭 필요한 조치가 있다. 난동자의 전원, 아니면 최소한 그 주동자를 전원 검거하는 것이다. 일반범죄의 암행성과 달리 공개된 이번 난동자는 그 참가 인원이 많은 것도 아니므로 당국의 방침만 확고하다면 조속 검거는 비교적 용이할 것이다. 그 후속 조치로서 그것이 그 어느 일방의, 또는 양김 모두를 폭력전으로 몰고 가려는 정치 조작이라면 그 배후를 처단해야 한다. 단순히 지역감정에 들뜬 철없는 짓이라면 이처럼 철없는 난동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엄중히 처벌하라는 게 우리의 주장이다.

부산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진지 10여일 만인 11월 14일 광주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광주 유세에서 김영삼이 군중으로부터 돌 세례를 받고 피신해야 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조선일보가 그 소식을 대서특필하면서, 폭력이 난무로 전쟁터 같은 느낌을 갖게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아일보는 민주당 광주대회 중단」이라는 제목으로 11월 14일자 1면 주요 기사로 다루었다. 11월 15일에는  김대중의 대구 유세에서 유사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대구 두류공원 야구장에서 열린  ‘군부독재 종식과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영호남 시민 결의대회’ 역시 돌과 계란, 빈병 등이 날아들며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끝났다. 부산이나 광주와 그 유형이 똑같았다. 더구나 대구의 폭력 사태는 외부세력의 사전계획에 따라 조직적으로 저질러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동아일보는 11월 16일 2면 사설(「이 망국적 선거 양상」)을 통해 ‘양김’이 후보 단일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지속적으로 후보 단일화를 강조하는 편집 방향을 보였다. 특히 재야세력이나 종교계 및 학생들의 후보 단일화 압력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또 대통령 선거 1주일을 남겨두고  1면 머리기사와 2면의 사설 등을 통해 두 김대중과 김영삼의 단일화를 다시 거론하기도 했다.

  (···) 지난번 부산에서 있었던 김대중 씨 일행 폭행 사건에 이은 광주 집회 방해 사건은 그 난동의 양상 못지않게 사건의 배후에 내재하는 지역감정의 뿌리 때문에 많은 사람을 슬픔과 놀라움에 젖게 한다.
  (···) 이번 선거 양상이 ‘여와 야의 대결’ 국면으로 가지 않고 ‘야와 야의 대결’로 가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밑에 깔린 지역감정이 더욱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엊그제까지 민주화투쟁의 동지이던 두 김 씨가 서로 다른 지역 배경을 업고 폭력 대결의 양상까지 띠어가고 있으니 보기 딱하다. 이러자고 대통령직선제 실시를 목이 쉬게 주장해 왔는지 묻고 싶다. (···)
  (···) 지금부터라도 두 김 씨는 과열로 치닫고 있는 양 김 씨 간의 공방의 고삐를 잠시 늦추고 옷깃을 여미는 자세로 자신들의 위치를 돌아보아야 하리라 믿는다. 지금이라도 후보 단일화의 새 길을 모색해야 한다(11월 16일자 사설)


  선거일 막바지에 이르러 야권의 후보 단일화 필요성이 다시 뜨겁게 거론되고 있다. 두 김 씨의 소속당인 민주당과 평민당사에 찾아가 단식농성을 벌이는 대학생들이 기진맥진해 하나둘씩 쓰러져 가고 있고 재야와 종교계에서도 단일화를 위한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 국민 각 계층의 애타는 단일화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두 김 씨는 서로 승리를 장담하면서 표밭을 누비기에 바쁘다. 그들은 간곡한 단일화 요청보다는 온갖 방법을 동원, 국민을 현혹하려는 데만 열중하는 것 같다.
  (···) 아마도 그들은 선거가 이런 양상으로 가더라도 두 김 씨 중 어느 한 쪽이 당선될 것으로 믿거나 오히려 4파전이라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약속을 저버린,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 단일화는 이제 때가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마당에 와서는 되지도 않을 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쪽으로 표를 몰아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단일화의 시기가 때늦은 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단일화가 이룩되면 극적인 효과, 탄탄한 대로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12월 8일자 사설).


전국적으로 벌어진 관권 개입 선거운동

대통령선거는 투표일이 가까워지며 더욱 과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전국적으로 관권 개입 선거운동이 큰 문제로 지적됐다. 동아일보는 그런 부정을 고발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특히 12월 12일자 1면에「곳곳서 관권 개입 선거운동 말썽」이라는 기사를 주요 기사로 올리고 기자 칼럼과 해설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관권선거의 현장을 고발했다. 그 기사들을 보면 14대 대통령선거가 그야말로 ‘관이 치르는 선거’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날짜에 관권선거의 양상을 보도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선거에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 중앙행정관서의 장과 지방 각급 공무원 등의 특정 후보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사실상의 선거운동이 거의 공개적으로 전국에 걸쳐 행해지고 있어 지역감정, 흑색선전, 폭력 난무 등으로 과열된 선거 양상을 더욱 심각하게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빈발하고 있는 관권 개입의 양상은 장관·도지사·시장·구청장·군수·읍면장 등 행정관서장과 경찰서장·세무서장·정부투자기관의 기관장들이 앞장서 공무원·교사·방위병·기업인·지역주민·의사·약사·한의사·우편집배원·청소부 등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월례회·조회·연수교육·대화모임·특강 등 의 형식을 빌려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본사 선거특별취재반에 의해 확인됐다.
  특히 관권에 의한 선거 개입 사례 중에는 금품과 식사 제공은 물론 특정 후보지지 유도 및 다른 후보 비방, 지역감정 촉발 발언, 특정 정당 선거자금 모금 활동 등이 난무해 선거 분위기가 크게 흐려지고 있다.
  11일 정오경 이봉학 충남부지사는 도청직원 중 불교신자 50여명을 구내식당에 초치, 점심을 함께 하면서 “노태우 후보는 이미 타 후보보다 10%가 앞서 있는 만큼 노 후보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 ‘강한 정부’가 되도록 하자”고 민정당 지지를 호소했다(12월 12일자 1면 주요 기사).

  11일 오후 2시 반경 부산시 북구 명지동 이주단지 앞 공터에서 열린 ‘명지 임해단지 진입도로 건설 기공식’. 인근 주민 5백여 명과 한복을 입은 아가씨 10여 명이 식장에 미리 나와 승용차를 타고 속속 도착하는 ‘귀빈’들을 맞았다.
  강태홍 부산시장, 곽정출 민정당 부산시당위원장, 장성만 국회부의장에 이어 이규호 건설부장관이 도착하자 부산 경찰악대의 주악이 울려 퍼지면서 식이 시작됐다.
  맨 먼저 치사를 한 강 시장은 “내년에 평화적 정권 교체와 88올림픽만 무사히 치르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 5일 후 선거에서 여러분의 선택과 판단에 국가의 존망이 달려있다”고 말했다. 다음 치사를 한 장 부의장은 “정부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여러분들이 그에 보답하는 의미에서라도 민정당 노태우 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역설했다.
  (···) 이날 오후 3시 10분경 식을 마친 강 시장, 장 부의장, 이 장관 등 귀빈 6명은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식장 맞은 편 조그마한 다방에 들어가 난로가에서 손을 비비며 정담을 나눴다.
  이 장관(장 부의장에게)=“사람들이 꽤 많이 모였지. 치사 한 번 정치적으로 테크니컬하게 잘했어.” 강 시장(좌중에게)=“제 치사는 어땠습니까.” 장 부의장=“당신도 잘했어.”
  (···) 이 건설장관은 장 부의장에게 “그런데 TV에서 ‘전주 사태’(민정당 유세 좌절)를 봤나. 민정당이 다시 집권하면 그냥 놔 두지 마” 하면서 오른손으로 싹쓸이하는 제스처를 쓰자 함께 있던 다른 사람이 “타작을 해야지요”라고 말을 받았다(12월 12일자 기자 칼럼 「창」).

결국 1987년 12월 16일의 14대 대통령선거는 지역감정과 흑색선전, 양김의 갈등과 그에 따른 크고 작은 폭력 사태, 그리고 극심한 관권선거와 김현희의 ‘북풍’까지 겹치며 노태우에게 유리한 상황이 계속됐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관권과 정보기관 등의 선거 개입은 거의 공개적이었다. 전두환은 청와대에서 수시로 선거대책회의를 열어 관권 동원을 지시하는가 하면 재벌들로부터 걷은 막대한 자금을 노태우에게 전했다. 노태우는 당초 대통령후보들 간에 경합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일방적 승리로 당선됐다. 노태우는 36.6%(8백28만표)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김영삼은 28.0%(6백33만표), 김대중은 27.1%(6백11만표)에 그쳤다. 그러나 김영삼과 김대중의 득표율을 합치면 50%를 훨씬 넘었으니 후보 단일화 실패와 대선 패배의 책임은 두 사람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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