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아동학대 보도는 누구를 위한 보도인가

‘“마지막이니 잘 생각하라고” 노원구 피해자 생전 카톡에…’(동아일보 2021.3.31) 기사는 피해자 카톡을 그대로 공개했다. ‘[영상] 살인 10분전, 그는 아무계획 없는 것처럼 PC방을 나섰다'(조선일보 2021.4.6)는 피해자의 나이가 노출됐다. 최근 벌어진 ‘안산 스토킹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주소지, 실제 거주층이 기사를 통해 공개됐고, 스토킹 사건에 대한 피해자의 소셜네트워크 기록까지 기사화됐다.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언론 보도와 기사 댓글,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까? 언론인권센터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세미나실에서 제69차 언론인권포럼을 열고 성범죄와 아동학대 보도를 중심으로 2차 피해를 유발하는 보도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황현정 건국대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센터 연구원은 일명 ‘김태현 사건’과 일명 ‘정인이 사건’ 등을 중심으로 스토킹 범죄 보도를 모니터링해 분석 결과를 전했다.

▲ 기사 갈무리 사진=언론인권센터 제공.

가해자의 신상정보는 더욱 과도하게 노출됐다. ‘김태현 사건’은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에서 공개한 정보 외에도 언론에서 가해자의 과거행적, 주거지 등 범죄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정보가 노출됐다. 가해자와 관련된 가족, 군동기, 친구 등을 인터뷰해 가해자의 성향에 대한 추측성 보도도 많이 나왔다.

‘김태현 동창들 “장난 치다가도 갑자기 욕설…소름 돋았다”’(중앙일보, 2021.4.6)의 경우, 가해자의 동창 두명을 인터뷰한 보도를 인용하며 가해자의 성향을 추측했다. ‘“잠재적 연인이었다”…스토킹 살인범 김태현, 황당 주장’(뉴시스, 2022.6.3)과 같이 사건을 일으켰던 이유에 대해 과도하게 노출시키거나, 가해자에 대해 과도한 스토리를 부여하는 보도들도 포착됐다.

▲ 기사 갈무리 사진=언론인권센터 제공.

‘[단독] 노원구 세모녀 시신 옆에서… 사흘간 밥 먹고 맥주 마셨다(조선일보, 2021.4.5)’, ‘김태현 차분한 표정에 전문가조차 “심하다, 일반적 사이코패스 유형도 아닌 듯”(데일리안, 2021.4.10)’처럼 가해자에 대한 행동을 ‘사냥’, ‘사이코패스’, ‘악마화’, ‘광적인 소유욕’ 등으로 특성화시키거나, 사건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황현정 연구원은 “스토킹 사건이 단순히 가해자의 성향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프레이밍 될 수 있다”며 “가해자의 악마화 서사부여는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기사 갈무리 사진=언론인권센터 제공.

아동학대 보도에 대해서는 학대 과정이 너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인이 사건’으로 명명된 ‘16개월 아동 학대사건’에 대해 ‘정인이 유모차 CCTV에 네티즌 “얼마나 무서웠으면” 분노’(조선일보, 2021.1.13), ‘유모차 쾅 박은 양모···손잡이 꽉 붙든 정인이, 공중 솟구쳤다’(중앙일보, 2021.1.13)처럼 학대 정황이 담긴 CCTV 영상 캡쳐본이나 학대행위 관련 사진을 사용하거나, 기사 제목에서도 아동학대 과정을 묘사하는 식이다. 지난해 용인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서도 언론에서는 ‘용인 물고문 살인’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 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가해자의 신상정보, 주변정보, 사생활과 관련한 무분별한 보도도 이뤄졌다. 황현정 연구원은 “가해자의 종교, 직장, 직업, 나이, 주거지역 등이 공개됐고, 심지어 구속된 이후로 밥을 어떻게 먹는가도 기사회되는 경향이 있다”며 “추후 아동학대를 어떻게 방지시키고 사회적 제도 개선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에 집중해야 하는데 제도나 정책에 집중하는 탐사보도는 부족하다.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보도 또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시켜 가해자의 학대를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 기사 갈무리 사진=언론인권센터 제공.

아울러 “아동학대 사건은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까운 관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동학대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와 그 사이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과도하게 설명하며 주변 정보를 모두 포함한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경각심 없이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아동의 권리를 보장받고,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공론화시키는데 언론이 기여해야함을 강조했다.

자극적인 기사 내용에 더욱 자극적인 댓글들

자극적인 기사들에 댓글은 더욱 자극적인 표현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한상희 언론인권센터 사무차장은 “댓글창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배설해 내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며 “이 안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 혹은 위로한다는 명분 하에 반복해 피해내용이 언급되면서 오히려 피해자의 인권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로 노출되어 2차 피해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사무차장이 스토킹 범죄(일명 ‘김태현 사건’) 101건, 아동학대 범죄(일명 ‘정인이 사건’) 105건 보도에 달린 댓글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의 비정상적 행위들을 중심으로 묘사한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들에 댓글들이 많이 달려 있음이 확인됐다.

1000건 이상의 댓글이 달린 기사는 13건으로 대부분 아동학대 관련 보도였다. 충격적인 학대 장면이나 가해자들의 신상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뤘고, 기사 제목들이 대부분 자극적으로 학대 장면을 묘사했으며 ‘여행가방 계모 맡았던 그 변호사’와 같이 해당 변호사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만을 맡아 변호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기사도 있었다.

▲ 1천개 이상의 댓글이 달린 기사 제목 갈무리. 언론인권센터 제공.

스토킹 범죄 보도의 경우 ‘일방적 구애’, ‘엽기적인 청년’, ‘악마가 움직였다’, ‘시신 옆에서 사흘간 밥먹고 맥주 마셨다’와 같은 문구가 포함된 제목의 기사들에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아동학대 범죄 보도의 경우 CCTV 화면에 분노한 시민들의 반응뿐만 아니라 ‘뱃속엔 600ml 출혈’ ‘제발 빨리 죽여달라 빌었을 것’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에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댓글은 기사의 내용이나 제목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었다. ‘학대로 장기 찢어져 숨졌는데 오열…“그 부모, 진짜 악마였다”’(중앙일보, 2021.1.3), ‘쇄골·갈비뼈 골절, 뱃속엔 600㎖ 출혈...정인이 이 몸으로 하늘나라 갔다’(조선일보, 2021.1.7)의 기사 경우에도, 학대 상황을 다시한번 반복하며 묘사하는 댓글들이 다수였다.

▲ 중앙일보 기사 댓글 갈무리. 언론인권센터 제공.

▲ 조선일보 기사 댓글 갈무리. 언론인권센터 제공.

사건의 원인 제공을 피해자에게 돌리며 2차 피해를 유발하는 댓글도 많았다. 특히, 스토킹 범죄 성범죄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와 게임을 통해 만났다는 보도 내용을 중심으로 ‘온라인 게임하다가 왜 주소를 흘렸냐’, ‘교제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집주소를 가르쳐 준 것도 문제다’ ‘큰 딸이 많이 예뻤을까?’처럼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몰아가거나 피해자의 외모를 언급하고 이 사건 자체를 남녀 간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 스토킹 범죄 기사 댓글 갈무리. 언론인권센터 제공.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서는 췌장 파열, 갈비뼈 손상 등을 상세하게 언급하는 식으로 지나치게 피해내용을 묘사하거나 추측성 내용의 댓글이 많았다. 한상희 사무차장은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피해내용의 과도한 묘사가 댓글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반복되는 것은 피해자나 유족들로 하여금 피해의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 아동학대 범죄 기사 댓글 갈무리. 언론인권센터 제공.

댓글시스템 필요성에 대한 재고, 유튜브 등 플랫폼에 대한 제도 구축 필요해

황현정 연구원은 “자극적인 언어나 문장을 피하고,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사생활 보도를 지양하고, 피해자의 개인정보나 신상정보를 신중하게 다뤄야한다”며 언론을 향해 “가해자의 경우에도 과도하게 과거행적을 캐거나, 사생활 침해가 일어날 수 있는 내용을 지양해야한다. 범죄사건이 일어난 현황에 대한 보도를 넘어 해당 범죄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요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한상희 사무차장은 “과연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댓글시스템이 필요한 것인지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라면서 “네이버는 각 언론사에 개별 기사 댓글 창 온오프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언론인권센터는 이번 모니터링을 시작으로 댓글피해신고센터를 운영하고 동시에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언론사의 댓글관리 시스템을 평가하는 2차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 토론회 현장. 사진=윤유경 기자.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기획조직국장은 “유튜브 등 여타 언론 매체만큼의 파급력과 확산력을 갖춘 플랫폼에 현행법상 ‘시정요구’ 이상의 강제 조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2차 피해를 양산하는 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얻는 개인과 플랫폼에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는 데 효과가 있는 제도가 하루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임소라 한국기자협회 부회장(JTBC 기자)은 “특정 기사에 대한 ‘댓글 차단’ 기능을 만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으로 보인다”며 “언론사의 개별 기사마다 기자가 댓글 창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닫아둘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홈페이지 개발자와 협업을 통해 언론사 자체적으로 댓글 차단 기능을 구현해야 한다”며 “네이버, 카카오, 다음 등의 포털사이트의 경우 언론계 차원에서 댓글 창 개선 방안을 모아 가다듬고, 이를 공식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이글은 2022년 07월 01일(금)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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