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언론역사 조선동아 대해부
제7대 대선-‘정권을 훔친 박정희’동아일보 대해부 3권 - 19장
  • 관리자
  • 승인 2022.06.08 20:15
  • 댓글 0

1970년 9월 29일에 열린 신민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 2차 투표에서 김대중이 김영삼을 눌렀다. 1차 투표에서는 총투표 885 표 가운데 김영삼 421 표, 김대중 382 표, 무효 82 표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서 2차 투표에 들어갔다. 2차 투표에서 이철승의 지지를 얻어낸 김대중은 458 표를 받아 410 표에 그친 김영삼을 48표 앞서 대통령후보로 확정되었다.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전문가들은 당수 유진산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김영삼이 압승을 거두리라고 예상했으나 결과는 놀랍게도 김대중의 극적인 승리로 나타났다.

김대중은 당시 44세로, 김영삼(42세), 이철승(47세)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바 있었다. 그것이 53세이던 박정희를 크게 자극했음은 물론이다.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살겠다 갈아보자” “논도 갈고 밭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라는 선거구호를 내건 김대중은 선거전 초반부터 뜨거운 바람을 일으켰다. 김대중이 대도시에서 유세를 할 때는 적어도 10만여 명의 청중이 모여드는 것이 보통이었고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강연회를 한 때는 1백만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래서 제7대 대통령선거는 초반부터 정책 대결보다는 어느 후보의 유세에 청중이 더 많이 모이는가에 쏠렸다.
당시 모든 언론사에는 중앙정보부의 중견 간부나 직원이 상주하면서 날마다 신문 지면이나 방송의 편성 내용을 ‘통제’하거나 ‘감시’하고 있었다.

  박정희를 교주로 모시는 박정희교의 신도로서 중앙정보부를 맡은 이후락에게 떨어진 최대 과제는 대통령선거를 박정희의 승리로 이끄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후락의 활약은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어서, 후일 다음과 같은 평가가 나오게 되었다.
  “71년 대통령선거는 분명 김대중과 중앙정보부의 대결이었다. 겉으로는 집권 공화당과 야당 신민당의 정권 경쟁이었지만 기실 줄곧 DJ와 중정의 싸움으로 전개됐다.”(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 동아일보사, 1992, 249쪽).

  “이후락 정보부의 또 다른 주요 임무는 김대중 연설 청중 숫자에 관한 보도 통제였다. 차장보 등은 직접 동아일보를 드나들며 연일 김대중의 유창한 웅변에 쏠리는 인파가 부각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 바람에 4·27 선거를 열흘 앞두고 기자들의 불만이 폭발, ‘정보요원의 신문사 출입 금지’ ‘정보부의 언론 간섭 중지’를 결의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같은 책, 301쪽).


  공화당의 선거유세를 비판한 동아일보 사설

1971년 4월 27일에 치러지는 제7대 대통령선거는 군사쿠데타로 헌정을 뒤엎고 권력을 잡은 박정희가 ‘3선 대통령’이 되어 장기집권 또는 종신집권으로 가느냐, 아니면 야당 후보인 김대중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느냐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정치적 행사였다. 쿠데타세력의 민주주의 파괴, 자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굴욕적 외교, 재벌을 비호하면서 저지르는 부정과 부패, 학원까지 병영화 하려는 전체주의적 행태, 대중문화조차 군사문화로 바꾸려는 야만적 책동 등에 분노를 느끼던 국민들은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를 열망했을 것이다.

4월 초부터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유권자들의 눈길은 박정희와 김대중의 유세 현장과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에 쏠렸다. 특히 공화당과 공권력이 박정희를 부정한 방법으로 지원하는지 여부가 큰 관심사였다.

선거전 초반인 4월 2일자 동아일보 3면에는 「인신공격을 삼가라」라는 사설이 올랐다. 공화당의 유세 연사가 신민당 후보 김대중에 대해 ‘용공’이라는 공격을 퍼부은 데 대한 비판이었다.

  지난 27일 강원도 춘성중학교에서 있은 공화당 대통령 유세에서 연사의 한 사람인 황 모씨가 박정희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는 도중 신민당 김대중 후보를 가리켜 “김대중 후보의 발언은 김일성 수법과 같으며 사상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고 말하여 특정 후보를 비방, 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로 신민당에 의해 고소가 제기되었다고 한다.
  어떠한 경위로 이런 비난이 나왔는지 또 무엇을 근거로 이런 발언을 했는지 그보다도 발언 자체가 사실인지 아닌지조차 의심스러운 일이나 반대 당 후보를 공격하는 데 있어 공산주의 운운하는 것처럼 인신공격 중에서도 가장 비열하고 신사도를 벗어난 수법은 없다 할 것이다. 63년 대통령선거 당시를 되돌아보더라도 이러한 수법의 인신공격이 얼마나 정책 대결의 작풍을 파괴하고 당사자를 분노케 하며 공명선거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가는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 없을 줄 안다.
  상대당 후보를 비판하는 데 있어 정책 비판은 하지 않고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선거법이 이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도의적으로 보아도 오히려 인신공격을 가하는 당사자와 그러한 위인이 속해 있는 정당의 품위가 의심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산주의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사직당국에서 알아서 처리할 일이며 선거유세에서 유권대중을 앞에 놓고 공격할 문제는 못 된다. 황 씨의 춘성 발언이 사실이라면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백 번 경솔한 발언이었다고 아니 볼 수 없다. (·····)
  다만 한 가지 부탁은 선거법을 위반하고 당의 이미지를 흐리게 한 황 씨에 대해서 공화당으로서 응분의 징계가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는 절대로 정책 대결과 상관없는 비방이나 인신공격을 삼가도록 전국 유세반에게 각별한 주의를 내려주기 바란다. 앞으로 유세는 점차 백열화될 것이 예상되며 종반전에 접어들면 더욱 치열해질 것이 틀림없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다음에는 국회의원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황 씨의 실언을 계기로 정책 대결의 마음가짐을 더욱 굳게 갖고 한편 신민당도 지금과 같은 정책 비판 정책 제시의 태도를 견지하여 신사적 대결의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김대중, ‘박정희가 다시 집권하면 총통제로 갈 것’

대통령선거 유세가 열띠게 전개되던 4월 3일 김대중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동아일보 그 날짜 1면 머리기사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박 대통령 4선 길 터놨다 / 김대중 후보, 대전을 부수도로 반일(半日)행정권 추진

  [천안] 신민당 김대중 후보는 3일 “선거의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나는 이번 선거가 국민이 정권교체를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하고 “69년 개헌 당시 박정희 대통령 임기를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 연장하자는 안이 정부 여당 간에 강력히 대두됐고 지금도 모국(某國)에 연구요원을 파견해 총통제를 검토하고 있으며, 이번에 만일 박 후보가 3선이 되면 이를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이날 신민당 천안지구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주장하고 “현행 헌법에 의해서 박 씨는 75년에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조작해놓고 있는데, 이 점은 개헌안 국회 심의 당시 문제가 되어 일시 심의가 중단됐으나 공화당은 박 대통령 지시로 그대로 밀고 나갔으며, 공화당은 한편으로는 헌법에다 박 후보의 4선의 길을 터놓으면서 한편으로는 아예 선거조차 없는 총통제를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며 이에 대한 많은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나는 국민들이 우리 앞에 다가온 이 같은 무서운 운명을 직시하고 이 나라를 마지막 독재의 수렁에서 구출하는 데 새로운 각성과 궐기 있기를 바라며 나는 나의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부정선거의 강행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총통제의 검은 마수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마지막 생명의 줄을 끊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동안 박 정권에 대해 누차 언론자유 보장, 공무원 선거 간섭 중지, 선거자금 획득의 기회 균등, 중앙선관위에의 야당 참여 등을 제안했으나 이를 거부해 다시 한 번 이의 시정을 촉구, 만일 끝내 이 같은 원천적인 부정을 시정하지 않을 때는 앞으로 중대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김대중의 ‘천안 발언’은 매우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의 주장대로 박정희가 3선에 성공한 뒤 대통령 직선제를 없애고 총통제로 간다면 평화적 정권교체는 아예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당연히 김대중 발언의 진위에 대해 박정희에게 답변을 요구해야 마땅한 데도 4월 5일자(4일자는 휴간) 3면에 오른 사설은 「선거에 매스미디어 이용을」과 「공중 보안에 허점 없기 위해」였다.

 
유세 청중 수 보도 둘러싼 동아일보의 고민

1967년의 제6대 대통령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때보다 훨씬 더 심하게 박정희와 김대중 진영은 유세장에 모인 청중 수에 신경을 썼다. 특히 박정희 쪽은 신문사와 방송사에 ‘상주’하는 기관원들을 통해 자기 쪽이 더 많은 청중을 동원하고 있다는 보도를 유도하거나 강요하려고 했다. 당시 유세 현장을 취재한 한 젊은 기자는 당시 상황을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동아일보사는 정치부 기자들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나 같은 초년생 기자까지 선거 유세 취재에 동원했다. 나는 김대중 후보의 서울 유세를 ‘스케치’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선거일을 여러 날 앞두고 효창운동장에서 시작된 그의 서울 유세는 투표일 전날 신설동에 있는 대광고등학교에서 마무리되었다.
  김대중 후보는 박 정권이 금기로 여기던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교류’ ‘미·일·중·소 4대국의 한반도 평화 보장’ ‘자립경제와 빈부격차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박정희 진영은 그런 공약을 ‘빨갱이나 주장할 정책들’이라고 몰아붙였다.
  나는 유세장 연단 뒤편에서 김대중 후보의 뒤통수를 보면서, 구름처럼 몰려든 관중의 반응을 기록했다. 4월 18일 장충단공원에는 100만이 넘는 군중이 모였다.
  내가 스케치 기사를 써서 데스크에 내려고 아침에 편집국에 들어가면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동아일보사 정치부에서 공화당이나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와 야당 담당 기자가 편집국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얼굴을 붉히면서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어제 박정희 후보의 장충단공원 유세를 찾아온 관중은 100만 명이 훨씬 넘어요.”(청와대 출입기자)
  “내가 공원 평수와 군중 수를 계산해 보니 김대중 후보 유세에는 100만 명 넘게 몰려들었는데 박 후보는 50만 명도 안 되더라고요.”(야당 출입기자)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대표적 야당지라는 동아일보 기자가 박정희 유세 관중 수를 늘리려고 저렇게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니·····.’
  그 까닭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바로 그 기자는 몇 해 뒤 내근부서로 발령이 난 데 불만을 품고 정부기관지나 다름없는 신문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나중에는 박정희 정권의 장관 자리에 올랐다. 언론인에 대한 박 정권의 원격조종은 그렇게 치밀하고 집요했다(김종철, <폭력의 자유>, 시사IN북, 2013, 153~154쪽).

<동아일보사사 권3> 55쪽에는 동아일보가 김대중의 서울 장충공원 유세 때 청중 수를 어떻게 ‘산출’했는지가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유세 청중 수를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산출해내기 위해서 본사에서는 유세 하루 전인 17일 공인측량사 2명을 고용하여 현지를 답사, 유세장 주변 연사의 목소리를 마이크로 들을 수 있는 가청지역 면적을 실측케 했다. 실측 결과 장충공원 용지 총면적은 22만평이나 강연장 주변 청중 수용 가능면적은 5만8천 평으로 추산했다.


동아일보, 부정선거 실태를 비교적 적극 비판

조선일보가 박정희 정권의 부정·관권 선거 실태를 외면하다시피 한 것과 달리 동아일보는 더러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동아일보가 기관원의 간섭이나 통제를 피해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4월 8일자 3면에 실린 사설(「과잉발언의 난무」)부터 보기로 하자.

  김학렬 경제기획원 장관은 6일 이례적인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1억6천4백만 달러에 달한 농업차관 문제 등을 포함해 상반기 여신 증가 실적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김 장관이 가진 이례적인 기자회견은 이날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하루 전인 5일 김 장관은 남 재무, 이 상공, 김 한은총재 등이 배석한 합동기자회견 석상에서도 올해의 경제성장률은 10% 선을 예상하고 있으며 지난 1일 4반기 중에는 도매물가 상승률이 1.6% 선에 머물고 있음을 밝혔다. (·····)
  (···) 김 부총리가 하필이면 왜 이 시점을 택해 전례가 없을 만큼 합동기자회견을 계속 열어야 하고 또 장래에 대한 전망과 아울러 과거에 대한 실적 등을 새삼 공표하게 된 것인지 그 동기에 대해선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장래의 경제동향을 전망하는 데 있어서는 희망적인 관측이 담뿍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장미 빛깔로 물들여져 있는 대목마저 없지 않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면 모처럼 열린 이러한 합동기자회견의 뜻한 바를 다시 한 번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 그리고 꿈과 안도감을 주기 위해 근거 있는 자료와 숫자를 나열한 것을 굳이 나무라고 탓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한갓 희망과 관측사항에 그치고 만약에 이것이 또 좌절되고 실현 불가능할 경우에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터져 나온 허탈감을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 것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냉엄한 경제적 현실은 어디까지나 허구적 공론(空論)을 배격한다. 가령 물 샐 틈 없는 이론과 계획이 짜여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한 번 현실 면에 부닥치고 적응될 때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차질이 나오기 일쑤다. 때문에 김 부총리의 이러한 이례적인 발언이 비록 일시적으로는 국민을 고무 격려하는 것이 된다 할지라도 그 안에 허다한 허점들을 지니고 있음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동아일보는 4월 10일자 사설(「공무원 선거 관여 불가」)에서도 전국 여러 곳에서 공직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선심 공세’를 벌이거나 금품을 제공하는 사례들을 비판했다.

4월 10일 박정희는 대전에서, 김대중은 부산에서 연설회를 가졌다. 두 후보의 첫 번째 유세 대결이었다. 동아일보는 4월 12일자 3면에 김대중이 주장한 ‘권력 주변의 부정치부’의 실체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사설(「부정부패 논의를 듣고」)을 올렸다.

  (···) 이날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사실은 신민당 김 후보가 기자회견에 서 주장한 권력 주변의 이른바 ‘부정치부’ 사실이다. 그는 자연인의 이름을 특히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짐작할 수 있는 직위에 있는 인사들이 거액의 축재를 한 ‘부정부패’의 장본인들이라고 주장하여 국민을 경악시켰다.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이미 여론의 대상이 된 지 오래고 공화당도 ‘부정부패’를 3대 공적(公敵)의 하나로 규정한 바 있고 이번 유세에서도 공화당 유세반은 부정부패를 시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김대중 후보의 주장처럼 권력 주변의 부패 상황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바는 없으며 따라서 그의 주장은 국내의 모든 국민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화제의 대상이 될 것이 틀림없으며 이미 주장은 단순한 선거 쟁점으로서만이 아니라 국가적 체면상으로도 흐지부지 넘겨버릴 수 없는 문제로 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 김 후보의 주장 그대로 중요한 직위에 있는 인사들 중에 거액의 부정축재를 한 인사들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집권당이 표방하고 있는 ‘조국 근대화’ ‘민족중흥의 대업’을 위해서도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중대 사실이라 아니 할 수 없고 이것은 국민이나 야당이 문제 삼기 전에 공화당 스스로가 규탄하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국가와 당의 사활 관한 문제라고 아니 볼 수 없다. (·····)
  우리의 대결 상대는 나라 안의 야당이 아니라 북괴공산당이라는 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차원 높은 언명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다만 한 가지 여기에 첨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북괴에 승리하려면 먼저 우리의 민주체제가 그들의 공산체제보다도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치·경제체제가 건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회의 건전성을 좀먹는 온갖 부정부패를 일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정화는 선거문제로서 더욱 차원 높은 국가적 국민적 문제에 속한다. 그러한데도 이것이 지금껏 정화되지 못하고 마침내 선거전의 쟁점이 된 것은 공화당 정부를 위해 가슴 아픈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부패의 규탄에 있어 특정인이 관련되어 있다면 당사자들의 감정을 자극시킬 수도 있는 문제이나 그렇다고 이 일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국내외에 더욱 화제의 꽃만을 피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정부 여당이 이 문제를 냉정한 이성으로 다루어 국민들로 하여금 과연 책임있는 집권당으로서 훌륭한 태도라는 칭찬을 받게 행동을 취해주기 바란다.


박 정권의 ‘관권선거’를 고발

동아일보는 4월 16~17일자 3면에 「행정 피아르 선거의 실태」라는 고발기사를 두 번에 걸쳐 내보냈다.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보기로 하자.

  4·27 대통령선거는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하면 ‘행정 피아르 선거’라는 또 다른 선거 유형을 헌정사에 기록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막걸리 선거’로 선거사를 얼룩지게 한 6·8 선거와는 달리 이번 선거는 표면상으로는 조용하다. 그러나 한 꺼풀을 벗겨 보면 여러 지방에서 행정기관에 의한 침투작전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하긴 행정기관에 의한 표의 침투작전은 얼른 보면 직접적인 선거운동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정부 업적을 피아르 하면 굳이 누구에게 표를 찍어달라고 말을 안 해도 유권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
  시골 곳곳에는 “혼란 없는 안정 속에 중단 없는 전진”이라는 표어가 눈에 띄는데 “이렇게 중요하고 바쁜 시기에 공무원들에게 휴가는 무슨 휴가일까?”하고 비꼬는 사람도 있다.
  A 군(郡)의 경우에는 여름에만 실시하던 공무원들의 휴가를 선거 때문에 앞당겨 지난 3월 25일부터 하루 5~7명씩 휴가를 주어 연고지를 방문토록 한다는 것이다. 공화당 유세가 있던 지난 9일에는 A 시의 중요 관공서는 텅텅 비었다. 득표를 노린 정부 업적 선전은 공무원들의 ‘휴가’뿐 아니라 행정기관이 ‘정식으로’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H 군의 경우 지난 1월 11일부터 25일까지 15일간 관내 15개 면을 군수가 직접 나서 ‘군정보고대회’를 열었다는 얘기다. 대체로 한 면에 3,4백 명의 유지, 동반장, 독농가 등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는 점심이 나오고 때로는 막걸리 잔을 나누기도 했다는데 이 자리에선 빠짐없이 정부 업적을 선전하는 <번영의 메아리> 등의 선전영화가 상영된다는 것. (·····)
  또한 ‘시찰’ ‘순시’ 또는 ‘간담회 참석’이라는 이름의 중앙 행정부처장들의 뻔질난 지방 순회가 크게 두드러지게 눈에 띄고 있다. 경북의 경우 지난 3월부터 평균 사나흘에 한 사람의 장관 또는 청장들이 드나든 꼴로 이들 역시 정부 업적 선전과 공약을 하고 있은 것은 물론이며 하부기관에 대한 ‘독려’까지 하고 있다. 경북의 경우 중앙에서 뿐 아니라 도내에서는 도지사와 경찰국장도 열심히 관내를 돌고 있다. 이번 선거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가히 붐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기공식과 많은 공약으로서 이른바 ‘선심 공세’다. S 군의 경우 올해의 건설사업 170여 건 중 이미 약 반이 집행됐다는 소식이고 4월 말까지는 올해 건설사업을 전부 집행하도록 돼 있다는 것. 선거기간 중의 이 같은 예산 조기 집행 때문에 곳곳마다 기공식의 꽃이 피고 있는 것이다. 이 기공식에는 반드시 높은 사람이 참석한다.

동아일보 4월 20일자 3면 사설(「유세와 청중 동원」)은 군 트럭까지 동원해서 청중을 실어 나르게 한 ‘관권선거’를 비판했다.

  (···) 지난 17일 대구의 공화당 유세 때 시내에서 30만, 주변 시군에서는 15만을 동원할 목적으로 노력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도에 지나쳐 이것저것 부작용이 있었다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못 된다. 한 예로 서문시장에서는 갑자기 연쇄점 셔터를 닫고 전기를 꺼버려 1천여 상인이 농성을 하며 문을 열라고 항의를 했다 하고 또 이날 청중을 실어 나르던 군 트럭이 뒤집혀 5명이 부상을 당하는 불상사가 나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전날 시내 각 여관은 주변 지방에서 모여든 주민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
  집권당은 1년 열두 달 동안 행정을 통해서 이미 정책이 널리 알려져 있고 대통령후보도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인사다. 후보나 그 정책이 거의 지실(知悉)되어 있다시피 한 집권당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청중을 동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평소 별로 알려진 바 없는 야당에 비하면 청중 동원에는 확실히 불리한 조건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한편 이점이 유리한 조건이 된다고도 보아야 하겠다. 이 점 여당의 현명한 판단이 있어야 할 문제다.
  한편 더욱 납득이 안 되는 일은 야당 유세에 가려는 유권자들이 음양으로 갖은 방해를 받고 있다는 설이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야당 유세가 있는 날에는 각종 직장단체를 통해 야유회가 마련되고 고궁 입장권이 나돌고 사진이 찍히면 재미적다는 식의 은근한 공갈 위협 같은 말도 들린다고 한다.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모르나 이런 형의 수법은 구 자유당 이래의 낡고 진절머리 나는 수법이며 오히려 감표의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떳떳하지 못한 수법이다. 하여간 우리는 이 나라 정치인들이 비겁하다는 비웃음을 듣지 않고 이기거나 지거나 떳떳한 자세로 싸워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바로 이러한 싸움의 자세에서 공명선거는 실현되는 것이다.


‘정권을 훔친 박정희’

4·27 선거 개표 결과, 박정희는 총유효투표의 53.2%인 6백34만여 표를 얻어 5백39만여 표(45.3%)에 머문 김대중보다 94만여 표를 앞선 것으로 드러났다.

4월 30일 재야단체인 민주수호국민협의회는 대선에 대한 성명서를 통해 4·27 선거는 “‘유례가 드물 만큼 행정조직과 금력에 의해 지능적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원천적 부정의 토대 위에서 실시’된 선거라고 평가했다. 선거가 평온을 유지한 것은 단지 행정력에 의한 치밀한 부정 계획의 결과였을 뿐이라는 것이다”(<한국민주화운동사 1>, 565쪽).

강준만은 <한국현대사산책-1970년대편 1권>에서 제7대 대통령선거를 다룬 장(章)의 제목을 「정권을 훔친 박정희」라고 붙였다. 그 책의 135~139쪽에  그 이유가 자세히 나와 있다.

  (···) 선거가 끝나고 박정희는 94만여 표밖에 차이 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마터면 정권을 도둑맞을 뻔했다”고 말했다지만, 정작 정권을 도둑맞은 건 김대중이었다.
  1971년 국가예산은 5천2백42억 원이었는데, 박정희는 이 선거에서 국가예산의 10%가 넘는 6백억~7백억 원을 썼다(6백억 원은 김종필, 7백억 원은 강창성의 증언). 입석버스 요금이 15 원, 연탄 한 장 20 원, 커피 50 원, 정부미 80kg이 7천 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조(兆) 단위를 넘는 엄청난 돈이었다.
  박 정권은 대선 자금을 위해 한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계 기업들에게서 약 8백50만 달러를 거두어 들였다. 여기엔 거대 석유기업인 칼텍스사가 제공한 3백만 달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박정희에게 정치헌금을 내고 한국의 거대한 석유산업을 사실상 집어삼켜 버렸다. (·····)
  (···) 심층취재로 박 정권의 부정선거를 폭로한 거의 유일한 기사는 울산의 개표 부정을 다룬 대구 매일신문 5월 1일자와 6일자 기사였다. 울산 주재기자 한종오는 자신이 개표장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데에 의심을 품고 취재를 한 결과 울산시장이 중앙정보부의 지시를 받고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당시 신민당의 울산 지구당 위원장이었던 최형우도 울산·울주 지역의 개표 결과를 보고 경악했다.
  “각 투표함마다 김대중 후보 지지표가 10표를 넘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던 우정동의 경우 집안 식구들의 것만 합쳐도 12표였고 친척들과 친구들의 것을 합치면 1백표가 훨씬 넘었다. 그런데도 김대중 후보 지지표가 집안 식구들 숫자에도 못 미치는 7표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개표 부정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인가. 분노 이전에 수치심으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최형우, <더 넓은 가슴으로 내일을>, 깊은사랑, 1993, 62쪽).

박정희의 당선이 ‘확정’되자 동아일보는 4월 29일자 3면에 「4·27 선거의 소회(所懷)」라는 사설을 실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개표가 거의 끝난 지금 90만여 표를 리드하고 있는 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당선은 확정적이 되었다. 공화당사에는 축객과 축전이 줄을 잇고 기쁨에 가득 차 있다고 전한다. 월여 간 싸운 보람이 있어 오늘의 영광을 얻은 공화당으로서는 당연한 기쁨이요 국민들도 다 같이 그들의 영광에 축하의 뜻을 보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쁨이 조용한 기쁨으로 끝나지 못하고 “4·27 선거를 전면적인 불법선거로 단정한다”는 신민당의 항의투쟁으로 선거 후의 정계는 매우 심각한 후유증이 뒤따를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이 있다. 후유증 없는 공명선거는 우리 전 국민이 꿈에도 잊지 못할 비원이다. 금년 첫 해 들어 우리가 올해를 공명선거의 해로 호소한 것도 이번 대선이 공명하고 조용한 가운데 치러질 것을 진심으로 바란 때문이다.
  ‘부정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어떻게 결정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고 또 신민당이 말하는 ‘불법부정선거’가 어떠한 내용의 것인지 아직 구체적 증거가 제시되고 있지 않으나 우리가 한없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영예로운 승리, 영예로운 패배로 끝나지 못하고 ‘불법부정’이 주장되고 승리에 이의가 제기되어 선거철마다 오래도록 후유증이 나라의 살림을 뒤흔들고 민심을 동요시켜 국가적인 망신을 면치 못하게 하고 있는 점이다.
  승자의 기쁨은 비단 당사자만의 기쁨에 그치지 않고 이 국가적 대행사를 더불어 치른 모든 국민이 함께 기뻐해야 할 경사인데도 한편에서 들려오는 불법부정의 항의 소리에 우리의 가슴은 한없이 무거울 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전국적으로 어느 정도의 ‘불법부정’이 있었는지는 서울에 앉아 있는 우리로서는 무어라 말할 입장이 못 되나 도처에서 들려오는 가지가지 사례들로, 이번 선거에 국민적으로 반성되어야 할 부정들이 적지 아니 범해졌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전해진 부정의 사례를 유형적으로 나누어 보면 무더기표를 투입한 사건, 투표함이 봉함되지 않은 사건, 투표용지 분실 사건, 대리투표를 한 사건, 선관위원장의 사인(私印)이 찍히지 않은 투표용지 등등 여러 곳에서 부정이 적발되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갖가지 부정이 범해지고 그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은 이 나라를 제하고 어느 나라에 또 이러한 사례가 있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구 자유당 이래 선거부정에 대해서 우리 국민처럼 줄기찬 투쟁을 해온 국민도 없을 것이다. 4·19에 숱한 우리 젊은 남녀 학생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친 것도 선거 때의 부정에 항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국민의 항거가 그칠 줄 모르게 계속되고 오늘날 공명선거가 국민적 비원이 되고 있는데도 선거부정은 조금도 가시지 않고 오히려 방법을 달리 하면서 계속 범해지고 있으니 가증하다 할까 한탄스럽다 할까 답답한 우리의 가슴을 무엇으로 달래야 할지 다만 울고 싶은 심정이다. (·····)
  전국적으로 따진다면 물론 부분적인 부정이라고도 할지 모르나 문제는 범법행위의 양보다도 질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범법이라는 것이다. 웃지 못할 실례로 울산에서는 투표용지가 실제 기권자 수효보다 수십 장이 부족되어 개표가 중단되는 등 소동이 벌어지자 어느 새 그중 일부가 나타나는 등 엄숙해야 할 투개표장소가 마치 소매치기 경기장과 같은 인상마저 주었다니 도대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
  오는 국회의원선거를 조금이라도 더 조용하고 질서 있게 치르려면 승자인 공화당은 대통령선거에서 생긴 숱한 문제 수습에 최대의 성의를 보여주어야 한다. 당선을 축하하기 전에 선거부정 사실과 그것이 빚을 수도 있는 후유증을 먼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괴로운 심정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대통령선거의 ‘승자’인 공화당에 대한 축하로 시작되는 이 사설은 실질적으 로는 박정희가 불법과 부정으로 당선되었음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1960년 4·19 때 “숱한 우리 젊은 남녀 학생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친 것도 선거 때의 부정에 항거한 것이었다”라고 강조함으로써 박정희가 ‘훔쳐간 승리’에 대해 강력한 저항운동이 필요함을 암시하고 있다.

같은 날짜 조선일보에 2면에 실린 사설(「박 대통령의 3선 확정」)과 비교해 보면 동아일보가 박정희에 대해 얼마나 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 먼저 우리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의해서 떳떳이 투표를 통하여 국민 절대 다수의 신임을 획득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려 한다. 당선의 기쁨은 앉아서 수월하게 얻은 것이 아니라, 지난 10년간의 집권 실적을 엄숙히 심판 받는 치열한 선거전을 치렀고 전국을 누비면서 마지막 임기가 될 4년간의 집정공약을 되풀이 다짐한 끝에 안겨진 승리의 영광이란 데서 더욱이 보람 있는 순간의 감격은 값있는 것이다. (···) 이번 선거가 다소의 말썽은 있었고, 또한 앞날의 민주 궤도를 위해 반성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곤 있지만, 그래도 과거에 경험했던 거의 절망에 가까웠던 혼란한 선거전의 면목을 어느 정도 일신시켜 만족하다 할 수는 없으나 우리 선거풍토에 일보 전진의 도표(道標)를 세우게 한 것만은 틀림없고 그럼으로써 국민의 참여의식을 적극 고취했다는 데서 선전분투한 공화·신민 양당의 당직자들을 비롯, 많은 선거 관계자들의 노고를 우리는 높이 평가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 중대한 민주과업에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한 대다수 유권자들의 현명한 주권의식과 올바른 주권 행사를 찬양해 마지않는 바이다. (·····)
  (···) 민주주의는 다수결에 복종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다. 박 대통령을 지지한 절대 다수표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그 많은 표도, 마찬가지로 이 나라의 엄연한 주권자인 것이다. 선거에 의해서 당선된 공직자는 자기를 지지해준 국민만의 공직자가 아닌 것이고 전국민에 봉사할 공직자인 것이며 또한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도 당락이 판명된 그 순간부터는 전 국민이 그를 지지하고, 그를 지도자로 하는 우리 공동운명체의 영위에 추호의 간극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선거전의 과정에서는 있는 힘을 다하고, 할 말을 다해서 정권투쟁을 했더라도 일단 선거가 끝나면 깨끗이 정상적인 사회로 돌아가 같은 운명 밑에 단결하여, 보다 튼튼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노력하는 민주주의의 슬기를 이젠 발휘해야 할 때다. 주권자의 사명은 정말 이제부터다. 위대한 승리는 막중한 책무를 짊어지는 것이고, 위대한 패배는 막대한 채권을 갖는다고 한다. 이 격언이 어김없다면 불을 뿜던 제7대 대통령 선거전의 열매는 지금부터 여야 양당의 협조와 전 국민의 공동보조로써만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에 의해서 떳떳이 투표를 통하여 국민 절대 다수의 신임을 획득한 박정희 대통령” “중대한 민주과업에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한 대다수 유권자들의 현명한 주권의식과 올바른 주권 행사” 같은 조선일보 사설의 표현은 당시 대통령선거 결과가 관권 개입과 ‘부정한 개표’ 등으로 좌우되었다는, 야당과 재야단체들의 주장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선거 유세 현장과 투·개표장에서 취재를 했을 조선일보 기자들이나 선거전을 주의 깊게 지켜본 독자들은 이 사설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치 정부기관지에 나온 글 아니면 계엄령 아래서 검열을 받으며 작성한 논설이라고 여겼을까?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