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언론역사 조선동아 대해부
언론윤리위법 파동 견뎌 낸 동아일보동아일보 대해부 3권 - 10장
  • 관리자
  • 승인 2022.04.06 14:21
  • 댓글 0

박정희는 5·16 쿠데타 직후부터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나라 안팎에서 공개적으로 털어놓았다. 그런 박정희의 ‘언론관’은 1964년 3월부터 6월 초까지 계속된 학생들과 재야세력의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투쟁 과정에서 일부 언론이 보인 ‘반(反) 박 정권’ 성향의 기사와 논설 때문에 극도의 적대감으로 변해갔다.


박 정권의 동아방송 탄압과 공수단 장교들의 동아일보사 습격

첫 번째 희생자는 동아방송의 시사프로그램 <앵무새> 제작진이었다. <동아일보사사 권3>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서울특별시 일원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다음날인 6월 4일 상오, 방송부장 최창봉, 뉴스실장 고재언, 편성과장 이윤하 등 3명이 수사기관원에게 연행되고, 같은 날 하오 제작과장 조동화, <앵무새> 프로그램의 프로듀서 김영효가 다시 당국에 연행되었다. 그리고 5일에는 <앵무새> 프로그램의 스크립트 라이터였던 동아일보 외신부장 이종구가 6월 13일 학생 데모 조종 혐의로 구속되었다.
  한편 4일 하오에는 5월 20일에서 6월 3일 사이에 방송된 뉴스 원고와 <앵무새> 프로그램 원고도 압수되었다.
  <앵무새> 프로는 강하고 신랄한 고발적 성격의 방송 칼럼. 우리나라 방송 사상 처음 시도된 것인데, 냉철한 활자매체가 주는 효과와 달리 방송매체가 주는 감정적 소구력이 예민하여 권력 측에서는 <앵무새>의 해학적 내용을 가리켜, ‘의도적으로 학생을 선동한 것’으로 단정하였는지도 모른다. (·····)
  6·3 사태로 구속된 동아방송 요원 6명은 6월 17일 반공법·특정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등 위반 혐의로 군재에 송치했다고 밝혔는데, 그때까지 이들 본사 사원의 구속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
  그 후 7월 14일 계엄보통군법회의의 심판부는 관련자 6명 가운데 최창봉·조동화·이윤하 등 3명을 보석키로 결정, 이날 밤 9시 40분께 서울교도소에서 풀려났고, 나머지 3명은 64일 만에 겨우 풀려났던 것이다. 그러나 1심과 재심 공판이 끝나고 무죄가 확정되기까지는 만 5년 1개월이 결렸고, 이 동안에 한일회담이 성숙, 조약이 체결되었고, 1967년의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긴 시일에 걸쳤던 것이다(183~188쪽).

비상계엄의 서슬이 시퍼렇던 1964년 6월 8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특이한’ 기사가 8단으로 크게 실렸다.

  공수단 장교 8명 본사에 침입 / 6일 새벽, 편집국 들어와 폭언 / 계엄사 발표, 전원 구속 문초 중

  계엄사령부는 8일 상오 일부 군인의 동아일보 침입 사건 전모를 발표했다. 이 사건은 지난 6일 새벽 제1공수특전단 소속 무장장교 8명이 동아일보사 편집국에 침입, 숙직기자에게 약 40분 동안에 걸쳐 폭언을 가한 사실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했던 6일 새벽 동아일보사는 이 사실을 곧 계엄사령부에 알리고 사건의 진상 조사와 그 엄중 처단을 의뢰했었다.
  계엄사는 8일 아침 사건 전모를 발표하면서 그들 군인들을 계엄군재에 조속히 회부, 엄벌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계엄사령관 민기식의 이름으로 된-인용자) 발표문은 아래와 같다.
  “치안 확보의 중책을 수행 중인 계엄군이 비록 극소수이나마 스스로가 불법적으로 언론기관에 야간 침입하여 폭언을 가한 불상사가 발생했음은 심히 유감스러우며 이로 말미암아 불의의 누(累)를 입은 동아일보 사장 이하 전 사원은 물론 전 국민에 대해 충심으로 사과하는 바이다.
  본인은 이 사건을 중대시하고 침입장교 전원을 즉각 구속토록 하여 방금 엄중 문초 중에 있는 바 범행 전모가 규명되는 대로 곧 계엄군재에 회부하여 엄단함으로써 피의죄과에 대하여 엄히 응징할 것이다. (·····)”
  제1공수특전단 소속 최문영 대령 등 장교 8명은 음주 후 순찰 도중 6일 새벽 1시 50분경 동아일보사에 침입, “용무가 있어 왔다”면서 수위의 안내로 3층 편집국에 들어가 취침 중이던 숙직기자 김광희 씨를 깨운 다음 “1) 편집국장을 만날 수 있느냐 2)황길수 대위 사건에 대해 신문사가 그렇게 인신공격을 할 수 있느냐? 온 김에 본때를 보이고 가자”는 등 폭언 끝에 약 45분 후인 2시 35분경 물러갔다.
  계엄사령부 당국은 이 사건을 중대시하고 즉각 수사에 착수, 동 침입장교 8명 전원을 동일 하오 군수사기관에 긴급 구속하여 1)명령 위반 2)특수주거침입 3)특수협박 등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죄상을 엄중 문초 중이다.

동아일보가 비상계엄령에 따른 언론 ‘사전 검열’ 체제에서 그 중대한 사건을 즉각 보도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동아일보사사 권 3>에는 그 사건의 실상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은 이에 앞서 5월 하순, 같은 공수단 소속 군인들이 데모에 가담한 학생들에 대한 법원의 태도가 관대하다는 이유로 법원에 집단 침입한 일이 있어서, 본보가 이를 맹렬히 비난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본사 습격을 지휘한 대령 최문영은 바로 법원을 습격한 공수단 소속 장교단을 직접 지휘한 자였다.
  실로 가공할 사태였다. 비상계엄 하, 치안과 질서 유지를 위해 서울 지역에 출동한 군부대의 고급장교가 한밤중에 서울의 중심가인 세종로 네거리의 동아일보사를 습격한 것이다.
  이 사건은 본보나 동아방송에 곧 보도되지 않았다. 엄격한 사전 검열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사 피습의 풍문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퍼졌다. (·····)
  (···) 이들 범인들은 제6관구 계엄보통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았다. 재판부는 7월 2일에 결심, 검찰 측이 최 대령에 징역 10년, 노 소령을 비롯한 나머지 피고인들에게 각 4년을 구형했으나 재판장 황종갑 준장은 “최 피고인이 야간에 총기 등 위험물을 갖고 다중의 위력으로 3층 편집국에 침입, 김광희 기자를 협박한 것은 유죄이나 노 피고인 등 6명은 침입 사실은 있어도 최 피고인의 행동을 만류, 귀대시켰으며 협박한 사실이 없어 무죄”라고 판결, 최 피고인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하 법률’(특수주거침입죄·특수협박죄)을 적용, 징역 5년 나머지 피고인들에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본사 습격에 참가한 8명 가운데 한 사람인 안윤균 소령은 아예 군재에 회부되지도 않았다((190~193쪽).


  ‘언론 규제’ 위한 윤리위법 국회 통과

박정희는 6월 26일 국회 제8차 본회의에 참석해서 「시국 수습에 관한 특별교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 가운데는 ‘언론의 횡포’와 ‘학원의 과잉자유’에 대한 강경책이 들어 있었다. 그는 학원 문제를 ‘입법으로 보호·규제’할 것과 “언론의 횡포를 규제하는 조치의 양성화”를 강조했다.

7월 29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령이 해제되었다. 공화당은 이틀 뒤인 7월 30일 언론윤리위원회법안과 학원보호법안을 국회에 단독으로 상정했다. 전문 20조와 부칙으로 이루어진 언론윤리위위회법안은 신문, 방송, 통신, 잡지 등의 ‘자율적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언론윤리위원회와 언론윤리심의위원회를 두고 언론윤리요강을 제정해서 언론의 보도 내용이 요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심의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언론윤리요강은 “국가의 안전 및 공안의 보장에 관한 사항, 국가원수의 명예 존중에 관한 사항,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사항, 보도와 논평의 공정성 보장에 대한 사항 등”을 심의 대상으로 정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제정하려는 언론윤리위법은 그런 내용 때문에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처럼 악용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동아일보는 7월 31일자 1면 머리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올렸다.

국회 본회의에 ‘학원보호법안’과 ‘언론윤리위법안’을 제안, 회기 중 입법 강행 일정을 짠 여당 전략에 대해 그 법제화에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야당 측은 1)회기 중 심의 미료(未了)를 위한 심의 지연 전술 또는 2)독소조항 제거를 위한 수정안 공세를 벌이기로 31일 방침을 세웠다. 31일 문공위, 1일 법사위, 3일 본회의 상정이란 강행 일정을 잡고 있는 여당 측의 전략은 31일 하오의 법사위에서부터 야당 측의 강력한 저지책에 맞부딪치게 됐다. 이에 따라 상위 및 본회의 심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파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은 31일 아침 원내 간부 회합에서 ‘언론윤리위원회법안’의 조기 통과를 확인하면서, 야당이 제안하는 수정안은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최대한 검토 반영하기로 방침을 결정했다.

8월 1일 공화당이 야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언론윤리위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야당은 국회 단상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법안은 8월 3일 새벽 공화당이 낸 수정안대로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공화당의 표결 강행에 야당인 민정당, 민주당, 삼민회가 묵시적으로 동조했기 때문이다. 표결 결과는 찬성 96표, 기권 53표였다.

동아일보는 8월 3일자 2면 사설(「민주언론 또 하나의 시련」)을 통해 언론윤리위법안의 국회 통과를 강력히 비판했다.

  한국의 신문인들이 신문윤리의 향상을 위해서 자율적으로 제정, 설치한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과 신문윤리위원회를 생매장하고 타율적인 ‘언론윤리요강’과 ‘언론윤리위원회’ 및 ‘언론윤리심의회’로써 이에 대치하려는 ‘언론윤리위원회법안’이 2일 야간 국회 본회의에서 공화당에 의하여 통과되었다.
  공화당이 단독 제안했던 동 법안이 위헌적이고 비민주적이고 기만적인 악법안이라는 점은 이미 우리가 본란을 통하여 지적한 바 있다. 공화당은 삼민회 측의 수정안을 받아들여 원안에 다소의 수정을 가하기는 했으나, 동 법안의 위헌성과 비민주성과 기만성을 수정하기에 이르지는 못하였고, 따라서 국회를 통과한 동 법안의 위헌성과 비민주성과 기만성은 여전하다.
  야당으로 간주되어 왔던 한 의원은 동 법안이 다소나마 수정된 것을 가리켜 ‘차선’ 운운했지만, 여당과의 묵계설이 떠도는 야당의 견지에서는 동 법안의 수정 통과가 마치 범이나 잡은 듯이 대견하게 느껴질는지는 몰라도, 민주언론의 견지에서는 그것은 다만 극악을 면한 ‘차악(次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한국의 신문은 해방된 조국 땅 위에서도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인 정권 하에서 광무신문지법 폐기 운동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고 미군정법령 88호 폐기 운동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제 다시 새로운 악법 폐기 투쟁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민주언론은 악법안의 통과로 또 하나의 시련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진보를 믿고 자유를 믿는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없다. 자유는 쟁취되어야 하는 것이며, 정부나 공화당의 자비심이 베풀어 주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한국언론의 새로운 악법 폐기 투쟁을 뒷받침하려는 뜻에서 다음과 같이 동 법안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아울러 입법 관계자의 반성과 자기비판을 촉구하려고 한다.
  첫째로, 일부 언론의 횡포를 운운하고 민주언론에 올가미를 씌워서 때려 잡으려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위험하고 반민주적인가 하는 점이다. (·····)
  둘째로, 언론규제는 외국에도 예가 있다고 강조하는 공화당의 태도를 우리는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는 한국의 언론을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데 있고, 외국에 무슨 예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셋째로, 공화당은 언론·출판의 자유가 언론계·출판계만이 누리는 자유가 아니라 국민적인 자유라는 데  대한 인식이 투철하지 못했던 것 같다. (·····)
  넷째로,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을 대립시켜서 생각하는 공화당의 사고방식에도 우리는 동조할 수가 없다. 언론의 책임이 중대하기에 언론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여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유치한 사고방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다섯째로, 한국의 언론은 책임감을 통감하고 국민의 신뢰에 보답하는 방향으로 사명 완수에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일찍이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제정하였고 신문윤리위원회를 설치하였다. (·····)
  그러나 언론계의 이러한 선의의 노력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고는 정부 및 공화당은 언론을 타율적으로 규제하려는 악법안의 국회 통과를 강행했던 것이다.
  민주언론이 또 하나의 시련을 겪게 된 이 마당에 우리의 신념은 확고하고 우리의 결의는 부동하다. 그것은 이 새로운 악법이 조속히 폐기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조속히 폐기되도록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


언론계의 윤리위법 반대투쟁

8월 5일 오후 언론단체 대표 50여 명은 언론윤리위원회법 철폐투쟁위원회(이하 언론투위)를 결성했다. 언론계가 강력한 반대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는데도 정부는 바로 그날 그 법을 공포했다.

8월 10일 오전 신문, 방송, 통신, 잡지 등에서 일하는 언론인 5백여 명이 서울 신문회관에서 전국언론인대회를 열었다. 그들은 ‘언론인이 권력의 시녀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자유는 천부의 인권이요, 특히 언론표현의 자유는 ‘제1의 자유’라고 일컫는다. 유구한 인류사의 조류가 바로 인간의 자유 전취를 그 기본방향으로 삼고 있은즉, 그 아무도 이 방향을 역행할 수 없을 것이며 우리가 공산주의와 대결하여 혈투를 거듭함도 또한 언론의 자유를 선두로 한 인간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은즉, 그 아무도 이 진리를 부정할 수 없다. (·····)
  이제 또 다시 집권자들은 이른바 ‘언론윤리위원회법’이라는 악법을 제정하여 국민의 ‘알 권리’와 ‘알릴 권리’를 억압하려 하고 있다. 우리 언론계가 이 민주주의의 위기에 직면하여, 불퇴전의 반대투쟁을 전개함은 이 투쟁이 언론에 종사하는 자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손만대에 물려줄 전 국민의 기본권리 수호를 위함이요, 따라서 이 투쟁이 언론에 종사하는 자만의 분기(奮起)가 아니라 이것을 응시하고 뜨거운 지지를 보내는 온 겨레의 소리 없는 함성을 등에 진 투쟁임을 명백히 해두는 바이다. (·····)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는 언론에도 제약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기에 언론이 일반법에 저촉되었을 때 그 책임을 면해본 바도 없거니와, 언론의 책임을 스스로 강조하여 이미 ‘신문윤리위원회’를 설치하였고, 그 자율 강화를 기약하고 있다. 여기에 명분 없는 악법으로 언론을 권력의 시녀로 삼고 자유를 질식케 하려는 이 책동이 계속되는 한 그 민주주의에 대한 죄과는 길이 역사에 기록될 것임을 경고해 두는 바이다.
  한국의 전 언론인은 이제 의연히 궐기하였다. 우리의 행동에 대의가 있으매, 우리는 사필귀정을 확신하는 바이다(동아일보 8월 11일자 1면).

8월 17일 “기자들의 자질 향상과 권익 옹호, 언론자유 수호”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기자협회(기협)가 창립되었다. 일간신문, 통신, 민간방송 등 19개 언론사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기협 회장에 이강현(동아일보 지방부 차장), 부회장에 유승범(합동통신 정치부) 등 4명을 선출했다.

8월 21일 박정희는 청와대 기자단이 낸 4개 항의 서면질문에 대해 언론윤리위법을 반드시 시행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 법의 시행을 강행하는 이유가 “여야 간에 충분한 이견 조정과 협상 절충을 통해 소산(所産)되었으며 이 법의 제정을 지지하는 넓은 국민층의 여론을 뒷받침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동아일보 8월 21일자 1면).

언론윤리위법 반대 언론사에 대한 정권의 탄압

한국기자협회는 8월 29일 정부가 압력과 회유를 통해 일부 언론사 발행인들이 언론윤리위법 반대투쟁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공작을 벌였다고 폭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동아일보는 그 날자 1면 머리에 그 성명을 크게 보도했다.

  언론법 시행 강행 위해 / ‘정부, 일부 발행인에 압력’ / 기자협회서 폭로 규탄 / 일부 몰지각한 언론인은 / 지조와 이해(利害) 바터

  언론윤리위법 시행 강행 원칙을 밀고 나가는 정부 방침에 따라 언론윤리위 설치 여부를 묻는 한국신문발행인협회의 26개 회원사들의 서면결의가 28일을 마감으로 끝났다. 이 서면결의가 끝나기에 앞서 정부 당국자가 취한 갖가지 위협과 회유책 및 일부 발행인들 뒤에는 경찰 간부들까지 동원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선기자들의 모임인 한국기자협회는 29일 아침 성명을 발표, “민주언론의 전진을 막는 어떠한 압제와도 싸울 결의”를 밝혔다.
  성명은 정부당국에 대해서 은행 융자와 시설 확충 및 언론윤리위법 개정 등의 조건을 내세워 언론인들의 지조와 법 시행을 바터하려는 일부 지방신문 발행인들의 행위도 아울러 규탄했다.

기자협회가 발표한 성명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악법의 철폐에는 끝까지 행동을 같이하겠다던 모 일간지의 사주는 현 관직을 남용하여 발행인들이 언론윤리위원회 구성에 협력하도록 압력을 가하여 그 자신의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낸 것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는 8월 28일에 기어코 자행된 발협의 비민주적인 서면결의가 이루어지기 전 26일 밤 대전에서 가졌던 일부 발행인의 예비회합, 또 8월 27일과 28일 서울 서린호텔과 요정 장원에서의 일부 지방지 발행인 및 정부 당국자들과의 회동에서 무슨 묵계가 오고 갔는가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머리기사 바로 밑에는 「반대는 6개사 내외 / 한국·서울 등 거의 찬성 / 발행인들 서면회답 내용」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언론윤리위법에 의거한 언론윤리위원회 설치 여부를 묻는 한국신문발행인협회 회원사의 서면결의가 28일로 마감되자 이에 찬성하는 친여계 신문사와 반대하는 신문사들의 명단이 대략 밝혀졌다. 언론계가 관제 언론윤리위라고 주장하는 언론윤리위원회 설치에 명백히 반대한 신문사는 전 회원사 26개 중 조선일보, 경향신문, 매일신문(대구), 동아일보 등 4개사이며 서울신문과 한국일보 등 5개사가 언론윤리위 설치에 찬성하고 나섰으며 대한일보는 기권했다.

정부 기관지인 서울신문과 경제부총리를 지낸 바 있는 장기영이 경영하는 한국일보가 투쟁의 대열에서 이탈한 데 이어 대한공론사, 일요신문사, 문화방송, 동화통신 등 주로 여당계 언론이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 그 뒤를 따랐다.

  언론윤리위원회법 철폐투쟁위원회에서 탈퇴한 이들 신문·방송사들은 표면적인 이유로 이런저런 구실을 내세웠으나 ‘투위’에서도 ‘사(社) 단위 이탈 불인정에 관한 투쟁 성명’을 다음과 같이 발표하고 반대하였다.
  “언론 관계 5개 단체와 그 후에 조직된 기자협회 등 각 언론단체가 그 단체 구성원의 결의에 의하여 직능대표로서 ‘투위’에 각자가 참가하게 된 것이므로 일부 신문사가 사 단위로 ‘투위’로부터 탈퇴하겠다고 성명한 것은 근거가 없으며 본 ‘투위’로서는 일체 이들을 인정할 수 없다.”(송건호, 「박정희 정권 하의 언론」, 송건호 외,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다섯수레, 2007, 273쪽).

동아일보는 8월 31일자 2면 사설(「신문발행인의 보조 불일치」)에서 언론윤리위 설치에 관한 서면결의에 찬성한 발행인들을 ‘가련하다’고 표현했다.

  악법 ‘언론윤리위법’에 의거한 ‘언론윤리위’의 첫 모임은 한국신문발행인협회가 소집하도록 되어 있는데, 발행인협회는 악법 철폐를 부르짖는 언론계의 공동투쟁을 외면하고 정부에 영합하여 창피를 무릅쓰고 ‘언론윤리위’ 소집의 역할을 감수하게 되었다. (·····)
  신문발행의 보조가 일치되지 못하고 다대수가 악법 시행에 협력하려는 것은 어떠한 난경과 고충 때문인지를 막론하고 유감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사(기권사 포함)를 제외한 다수 발행인의 딱한 처신이 미리 예상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실제로 그것을 눈앞에 볼 때 우리는 가련의 느낌을 금할 수 없다. (·····)
  그러나 한국언론의 운명이 이제 백척간두에 서 있는 이제 우리가 연민과 동정의 느낌에 잠기는 데 그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일부를 제외한 다수 발행인들이 악법 앞에 공순(恭順)히 무릎을 꿇게 된 사실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첫째로 그것은 다른 국민적 권리 또는 자유와 마찬가지로 언론자유도 한국에서는 헌법적 명문 규정에도 불구하고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
  둘째로, (···) 다수 발행인의 난경과 고충은 어떻든 간에 결국 그들이 맹약을 무시하고 언론윤리위 소집에 찬성하고 나선 것은 배신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셋째로, 우리는 다수 발행인들로 하여금 악법 시행에 협력하게 하기 위해서 동원된 관권이 상궤를 벗어난 활동과 공작을 한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
  넷째로, 우리는 관권의 활동과 공작에도 불구하고 언론자유를 위하여 굴하지 않았던 5사(기권사 포함)가 있음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긴다. (·····)
  다섯째로, 우리는 몇몇 발행인이 악법 시행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내세운 반대급부 문제에서 신문발행인 측과 정부 간에 묵계가 있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추태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끝으로 우리가 강조하려는 것은 다수 발행인의 배신행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관제 언론윤리위의 소집 여부에 불구하고, 우리의 악법 철폐 투쟁은 아무런 변함이 없고 확고부동하다는 것이다.
  악법 시행에 협력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된 신문발행인들에 대해서 할 말이 만약 있다면 그것은 비록 자신은 난경과 고충 속에 굴복했을망정 언론자유를 위한 편집인과 기자들의 의로운 악법철폐투쟁에는 물심 양면으로 최대의 지원과 편의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속죄의 길로 삼으라는 것이며, 행여 관권의 압력 하에 방해를 일삼는 재차의 추태를 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8월 31일자 1면 머리에는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언론윤리위법에 반대하는 신문사들에 보복조치를 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사상 유례 없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압력이 갖가지 방법과 수단으로 가해지기 시작했다. 언론윤리위법 시행을 반대하는 조선·경향·매일·동아 등 4개 지에 대해 정부가 8월 31일을 기해 힘을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한 배타적 보복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자 각계에서 이 같은 행정권 남용은 민주정치와 언론자유를 근본으로 뒤흔드는 독단적 처사라는 맹렬한 비난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가 31일 국무회의에서 “일부 신문에 대해 모든 특혜와 협조를 일체 배제한다”고 결의하고 조선·경향·매일·동아 등 4지를 정부 산하 각 기관이 구독 금지하도록 지시한 것, 정부가 각계 기관·업자 등에 압력을 가하여 일부 신문 활동에 배타적 방해를 하도록 작용한 것 등이 일반 양식 또는 기본법에 위배된 처사가 아니냐는 날카로운 비판은 1일 야당 일각에서 정기국회에서 예산 심의·국정감사 거부론까지 대두케 했다.
  박 정권은 신문구독 중지와 아울러, 은행융자 제한 및 기존 대출자금 회수, 신문용지 가격의 차별대우, 극장협회와 기업체들에 대해 광고게재 중단 압력, 취재활동 제한 등 모두 다섯 가지 보복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대해 4개 신문 1면에 실린 공동성명서는 이렇게 비판했다.
  “그 악랄한 수법은 일찍이 일제 때에도 보지 못하였던 터로, 그 천인공노할 비인도적인 조치는 이미 가공할 언론 탄압일 뿐 아니라 위정당국이 이성을 완전히 상실하였음을 노정한 것이다. 우리는 한국신문인협회의 결정을 준수하고 한국기자협회의 정열적인 투쟁에 큰 기대를 걸면서 일사불란 악법 철폐를 위하여 끝까지 감투할 것을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9월 2일엔 언론 주무장관인 공보부장관 이수영이 정부의 보복조치에 항의하는 뜻에서 사표를 냈다(<한국현대사산책-1960년대편 2권>, 311쪽).

9월 3일 한국일보 및 자매지인 코리아타임스, 서울경제 기자들은 발행인 장기영이 관제 윤리위 소집에 찬성한 것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지방의 국제신보, 영남일보, 대전일보, 중도일보 기자들도 발행인들의 ‘투항’에 상관 없이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기로 결의했다.

  9월 2일 이후 야당·종교·법조·학계·언론계의 저명인사들은 ‘언론자유수호국민대회 발기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보복조치 철폐를 요구하는 공한을 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한편, 국민대회 개최의 구체적 방안을 검토한 다음 9월 10일에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
  한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도 각각 4개사에 대한 정부의 보복조치를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시내 11개 대학 신문기자 대표들도 회합을 갖고 윤리위법 철폐를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하였다(송건호, <한국현대언론사>, 142~143쪽).


‘언론보복 조치 취소’와 ‘유성회담’

박정희 정권은 정작 언론윤리위원회법을 공포한 뒤에 언론계와 야당, 그리고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쳐 그 법을 시행하지 못하는 궁지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박정희는 언론 장악을 위한 ‘작전’을 바꾸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9월 5일 ‘특별담화’를 통해 “정부가 취한 몇 가지 지나친 조치를 시정할 것을 내각에 지시했다”면서 “언론윤리위법은 그대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9월 8일자 1면 머리에는 언론계 대표들과 정부가 언론윤리위법 시행을 보류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정부는 파동을 일게 해온 언론윤리위법 시행을 당분간 전면 보류할 것이 확실해졌다. 소식통에 의하면 10일로 예정된 윤리위 소집도 않을 방침이 섰다고 한다.
  지난 4일 ‘8·31’ 보복조치가 철회된 이래 정부 고위층과 언론윤리위법철폐투위 사이엔 빈번한 막후 교섭이 추진돼 왔었으며, 이 막후 교섭은 법 시행을 밀고 나가려던 정부 측과 법 철폐를 주장했던 언론계 등 쌍방이 모두 명분이 설 수 있는 ‘법 시행 보류’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의하면 이러한 해결책은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서도 양해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언론계는 법 시행 보류기간을 이용해서 현존 신문윤리위를 강화, 자율적인 언론규제에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9월 10일자 1면 머리기사를 통해 박정희와 언론계 대표들이 최근 충남 유성에서 회담을 가졌다고 보도하면서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9일 밤 “언론윤리위원법 시행의 전면 보류와 언론윤리위 소집의 무기 연기를 포함하는 ‘적절한 조치’를 공보부에 지시했으며, 이와 동시에 언론윤리위 소집 주체인 한국신문발행인협회는 이날 밤 10시 반 긴급 이사회를 열어 10일 상오 10시로 예정된 첫 언론윤리위 소집을 무기 연기했다. 이로써 지난 8월 2일 언론윤리위법이 국회를 통과, 5일 정부가 이를 공포한 이래 언론계의 맹렬한 반대로 정부와 언론계 사이에 빚어졌던 격심한 대립은 38일 만에 해소된 셈이다.

동아일보는 9월 10일자 2면 사설(「언론에 부하[負荷)된 책임」)을 통해 언론 파동이 수습된 것을 ‘국가를 위하여 경하’한다고 밝혔다.

  (···) 우리는 언론윤리위원회법의 시행을 전면적으로 보류하도록 결정한 정부 조처를 충심으로 환영하며, 이로써 ‘언론 파동’이 마침내 수습되게 된 것을 국가를 위하여 경하하여 마지않는다.
  앞서 본란이 강조했던 바와 같이 그것은 누구의 승리도 아니고 누구의 패배도 아니다. 굳이 승패를 논한다면 그것은 이성과 양식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고, 승리의 영광은 정부와 언론계가 고루 나누어야 할 성질의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월여(月餘)에 걸친 ‘언론 파동’이 애당초 없느니만 못했다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이번의 파동을 통하여 정부가 언론계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깊이 하였고 한편 언론계로서는 언론활동의 자세에 대하여 스스로 진지하게 논의하는 바 있었고 자율적 규제의 책임을 굳게 다짐한 바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상대적 의미에서 반드시 이번의 파동에서 국가적인 소득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
  언론계 앞에는 동법 반대투쟁 못지않게 언론계를 위해서는 벅찬 숙제인 자율적 규제라는 문제가 가로 놓여 있는 것이다. 실효성 있는 자율적 규제를 언론계가 마련하지 못하게 된다면 제2·제3의 ‘언론 파동’이 올 것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
  언론계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신장하고 사회 발전을 도모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사명을 위해서이며, 우리가 자율적 규제의 강화를 다짐하는 것도 이러한 사명에서 벗어남이 없기를 위해서이다.
  언론계가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고 자율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오로지 국민의 이익과 복지를 위해서라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는 한층 무거워진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동아일보의 사설과 달리 조선일보는 9월 11일자 2면에 박정희의 ‘영단(英斷)’을 극찬하는 사설(「언론계의 大路[대로]를 확보하면서 / 박 대통령의 영단과 금후의 문제」)을 올렸다.

(···) 이번 박 대통령의 조치는 참으로 ‘영단’이 아닐 수 없으며 비록 그동안 ‘언론의 자세’에 대한 견해 차와 착잡한 정정(政情)에서 비롯된 입법 과정 및 이를 강행하려는 당국과 언론계의 대립이 심각하였다손 치더라도 정부의 위신이나 체면에 구애됨이 없이 보다 높은 차원에서 사태의 근본적 수습을 단행한 정치적 판단과 용기를 우리는 높이 찬양해 마지않는다. 물론 시행 보류가 법 철폐와는 다르겠지만 국회를 통과하여 공포 확정된 법률을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그 시행을 보류한다는 것은 사실상의 철폐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으로 해석하여 앞으로 여당 총재 자격으로서 국회를 통한 법 폐기 절차에 또 한 번 이번 같은 결단 있기를 우리는 충심으로 기대하면서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데 인색치 않으려 한다. (·····)
  (···) 우리 언론인들은 이번의 시련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것이 몇 가지 있음을 다짐해 두어야겠다. 첫째, 자유는 스스로 싸우는 데 용감한 자에게만 돌아온다는 철칙이다. 긴 말을 요치 않겠거니와 한국의 신문기업이 내포하고 있는 허다한 난관을 무릅쓰고 끝까지 부동의 신념과 불굴의 기백으로 이 법을 반대해온 몇몇 발행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모든 언론인들이 분연 궐기하여 ‘언론의 자유 수호’에 총단결하여 갖은 고난과 최후 일각까지 대결해온 빛나는 투쟁의 기록이야말로 70년 전의 독립신문 이래 배양된 우리 한국 언론의 전통을 한결 빛나게 했다고 해서 결코 자화자찬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언론인들은 이번 경험에서 이 너무나 소연(昭然)한 철칙을 산 교훈으로 삼아 민주주의의 파수병이 되어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명기해두려 한다. (·····)
  (···) 우리 언론계는 우리가 처한 오늘의 사회적 좌표를 재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이번의 시련을 겪었다고 자위하면서, 그간 혼란 무비했던 사회 전반의 태세가 오늘부터 당연히 재정비되기를 충심으로 희망한다. 다만 결과적으로 볼 때 평지풍파와도 같은 언론파동이 애당초 어떻게 된 연유로 일어났던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후일을 위해서 정부나 국회가 철저한 자가 비판의 근거로 삼아주어야 하겠고, 걸핏하면 이 나라를 민주주의에서 낙후된 사회로 자모(自侮)하는 열등의식과 전근대적 관권만능적 사고방식이 이에 곁들였던 소산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라고 본다.

이 사설은 박정희가 “언론윤리위법 시행의 전면 보류와 언론윤리위원회 소집을 무기 연기하라”고 공보부에 지시한 것을 그의 위대한 결단인 듯이 찬양하고 있다. 그런데 언론윤리위법 파동이 일어난 원인과 그 과정을 깊이 되짚어보면 그것은 박정희의 ‘영단’이 아니라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이자 공화당 총재인 그는 여당과 정부기관들을 총동원하다시피해서 언론윤리위원회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한 총책임자이자 그 법을 공포한 행정부 수반이었다. 그는 언론계와 야당,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치자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린 나머지 ‘유성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멀리는 만주군 장교 시절부터 ‘여순 반란 사건’ 때, 그리고 5·16 쿠데타 이래 그가 일일이 셀 수도 없이 저지른 기회주의적 처신과 ‘임기응변’, 민주주의적 국가 운영에 대한 원천적 부정 따위를 기억한다면 어떻게 이 조치를 ‘영단’이라고 찬양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위의 사설은 언론계가 박정희 정권을 상대로 ‘부동의 신념과 불굴의 기백’으로 싸워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것처럼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박정희가 언론윤리위법을 완전히 폐기하는 조치를 취하는 일부터, 행정부처나 정보·수사기관들이 언론사 사주들의 약점을 잡아 언론윤리위법 철폐투쟁의 대열을 교란시킨 일을 행정부 수반으로서 사과하는 것까지를 지켜보고 나서 조선일보는 그런 ‘자화자찬’을 했어야 한다.

송건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는 언론윤리위법 파동이 언론계의 승리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부가 (···) 내외 여론의 집중공격을 받게 되자 이제까지의 강경자세에서 후퇴의 기미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지능적이며 교묘한 방법으로 언론계를 회유하고 무력화시키는 술책을 꾸며냈다. 그것은 박 대통령에게 ‘윤리위법’ 폐기가 아니라 유보해 달라는 건의문을 제출케 하여 박 대통령이 이 청원을 들어주는 식으로 문제를 호도하려 한 것이다.
  언론계 대표들은 공화당 중진이 중간에 서서 꾸며낸 이 같은 계략에 넘어가 이른바 ‘유성회담’이라는 것에 응하고, 이 자리에서 대표들은 문제의 건의서를 대통령에게 전하고 박 대통령이 이 건의서에 따라 법 시행을 유보, 자비를 베푼다는 절차로 수습이 되었다. 타협 없는 투쟁에 의해 박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언론계 전체의 의사나 국민의 여론과는 달리 언론계 대표인 일부 노장층은 박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대소고처(大所高處)에서 이 나라 민주언론의 발전을 위해, 언론윤리위원회법의 시행을 보류하시와 자율적인 신문윤리위를 강화함으로써 책임 있고 공정한 언론이 이 나라에 이룩되는 길을 열어주시기를 삼가 건의하나이다.”
  이리하여 그토록 전 언론계가 투쟁하여 폐기 일보 직전까지 이르게 한 언론자유투쟁은, 악법의 폐기가 아니라 대통령의 자비에 의하여 일시 시행을 보류한다는 식으로 언론파동의 수습 아닌 수습이 되고 말았다. 싸움은 권력 당국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싸움에는 이기고도 결과는 패배가 된 셈이다.
  1964년의 이 언론 파동은 한국 언론사상 길이 빛날 자유언론투쟁사였다. 그러나 실은 바로 이때부터 8·15 후 전통에 빛나던 이 나라 언론이 권력에 굴복, 그들의 시녀가 되는 길을 걷게 된 것이다. 9월 10일 전 ‘언론윤리위원회법철폐투쟁위원회’는 철폐 아닌 시행 보류로 파동이 끝나자 대표 7명이 청와대로 박 대통령을 방문하고 정부 결정에 사의를 표했다. 싸움은 박 정권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한국현대언론사>, 143~144쪽).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