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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미문화원 방화 관련자는 5.18 유공자[광주 통신] 임종수 5.18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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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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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석씨가 과거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에서 투쟁한 것 때문에 나름 역사관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미문화원 사건에 대해 황당한 비방을 하는 것을 보니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헷갈린다.

5.18 학살 주범은 전두환이고 진짜 배후는 미국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당시 군 작전권을 갖고 있던 미국의 위컴 한미연합군사령관은 20사단(사단장 박준병)의 병력 이동을 승인했고 이들은 광주시민을 대량학살하였다.

철책선을 지키는 20사단은 미국의 동의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부대였다. 나아가 미국의 승인과 지지없이 학살자 전두환이 권좌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12.12 군사반란과 군 병력 이동을 눈감아주고 5.18 무력진압 계획을 알고도 묵인, 지원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5.18 시민학살의 배후임이 드러난 것이다.

그해 12월 9일 발생한 광주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은 5.18 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최초의 ‘거사’였다.

이 사건은 이후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 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에 이어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2명의 여중생 추모를 위해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반미촛불시위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광주 미문화원 방화 관련자들은 5.18의 배후를 밝힌 공로로 인해 5.18 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후 5.18 유공자로서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특별재심을 신청했다가 당시 판사들의 잘못된 역사인식 때문에 5.18과 반미항쟁의 연관성을 부인한 것인데, 이것이 마치 유공자 자격을 박탈하는 판결인 것처럼 왜곡하다니 한심하다.

안중근 의사의 살인죄와 나석주 열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방화죄가 애국열사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광주미문화원 방화죄가 5.18유공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가.

1980년 12월9일의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는 80년대 첫 ‘반미 운동’으로, 1년3개월 뒤에 일어난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일명 ‘부미방’)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82년 3월18일 불타고 있는 부산 미 문화원 모습. <보도사진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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