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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트롯, 먹방에 그 얼굴…TV 이대로는 안 된다[기고]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ㆍ언론사회학 박사
  • 관리자
  • 승인 2021.03.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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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 TV를 중심으로 한 대중매체에서 주로 방영되는 사회상은 먹자판, 살벌, 이기적 탐욕 무한추구 등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다. 뉴스나 심심풀이 예능프로에서도 이타심, 남을 위해 봉사하거나 상호공존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방송사나 프로를 달리해서 다양한 프로를 독식하는 식으로 소수 인물이 등장하는 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뉴스를 보면 가슴 뭉클하고 순수한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식은 거의 없다. 부정부패, 정치판의 권력 쟁탈에 사활을 건 피 튀기는 내로남불이나 진영논리에 갇힌 확증편향적 정보만이 쏟아진다. 지상파냐 종편이냐에 따라 보도 방향이 큰 차이를 나타내고, 그 간격은 시청자가 메꾸든 무시하든 알아서 해석하란 식으로 방치된다.

정치 프로그램에 나오는 전문가는 대부분 여야 정치인이거나, 정치적 편향이 적지 않은 교수 등이 주를 이룬다. 여야를 아우르고 정치판 전체에 대해 해석하고 평가하는 원로급 인사는 찾아볼 수 없다. TV에서 며칠 전까지 전문 패널로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 날 정당에 가 있는 경우도 반복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 하다가 연임이 되지 않을 경우 즉각 TV에 정치평론가로 출연, 다음 선거에 대비한 자기 PR에 열중한다. 이러니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진영으로 나뉘고 자기 소신이나 상식을 보강하는 식의 정보만을 편식하게 된다. 균형 잡힌 정치해설, 비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 대중도 진영으로 갈리고 정당의 논리에 갇히는 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 모바일 뉴스 화면에는 경향신문, 한겨레등 진보 언론 보도가 3%대에 불과하다. (사진=MBC)

TV뉴스를 포함한 뉴스의 유통이 포털에 종속되면서 뉴스 밸류는 자본의 논리로 가려지는 세상이 되었다. 포털은 뉴스를 송고하는 언론사별로 자체기준에 의해 주류, 비주류 언론으로 분류하고 기사도 마찬가지 기준에 의해 대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판이니 뉴스 소비자들은 포털을 통해서는 자본력이 많은 언론사들이 생산하는 뉴스를 주로 보게 되고 마이너, 신생 매체의 기사는 거의 접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한국이 정보강국이라는데 포털의 뉴스 노출 기준에 의해 1인 미디어는 생존이 불가능한 정보환경으로 전락해 버렸다. 뉴스 생산 주체들이 포털을 통해 뉴스 소비경쟁을 하고 그에 따른 수입을 얻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속보 경쟁, 클릭수를 늘리기 위한 기사 쪼개기, 남의 기사 베끼기와 같은 비정상적인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매년 수백억 원씩 보조를 받는 국내 최대의 통신사가 뉴스 전문 TV도 겸업하고 있으면서 뉴스도매상이라는 본연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속보 경쟁에만 매달리거나, 광고 수입을 위해 가십성 기사를 양산하고 있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이 통신사는 장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기획 또는 탐사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 작업 시스템이 굳어져 있다. 또한 자체 생산한 뉴스를 사가는 다른 신문 방송과 차별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수평적 위치에서 무한경쟁의 열기를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드라마 공화국’답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드라마가 쏟아지는데 그 내용은 공영, 상업방송 가릴 것 없이 ‘막장’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극악무도하고 냉혈한과 같거나 바보천치들이 주로 등장한다. 거기서도 지독한 이기주의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귀다툼과 같은 생존경쟁이 주를 이룬다. 드라마 내용이 극단적인 내용으로 짜여져 있는 것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살벌해진 곳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해도, 누가 더 막장인가를 경쟁하는 식으로 시청자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TV 예능을 보면 그 얼굴에 그 내용인 프로가 대부분의 방송사에서 쏟아져 나온다. 트롯 오디션이 한 종편에서 성공하자 공영을 자처하는 곳에서도 앞다퉈 유사 프로를 내보내고 있다. 트롯이 일제 강점기에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이식된 것이라는 과거가 있고, 트롯 광풍을 일으킨 방송사가 친일 미청산 등의 비판을 받으면서 시민사회에서 적폐청산의 대상이라며 매일 1인 시위를 하지만 어느 공영 방송도 이런 점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이명박근혜 시절 공영TV가 청와대에서 파견된 듯한 사장들에 의해 짓밟히고 망가질 때 시민사회가 광화문에서 수년 동안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쳤지만, 오늘날 그것을 기억하는 것 같은 공영방송은 보이지 않는다.

예능프로의 경우 부자연스런 점을 하나 더 지적하자면, 몇몇 잘나가는 연예인이 방송계의 유사 프로를 싹쓸이하는 현상이다. 특정인이 동종업체의 동료선후배와 나눠 먹는 식이 아니라 혼자서 다 먹는 식이다. 시청자는 채널을 돌려도 날짜가 바뀌어도 몇몇 인물이 여러 방송, 다양한 프로에 등장하는 것을 보아주어야 한다.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이다.

시청률 경쟁이 광고수입 경쟁과 같은 말이 된 지 오래이지만, 시청률이 높다는 이유로 어린이를 TV어른 프로에서 소비하는 프로그램이 롱런하고 있고 유사프로도 생겨나고 있다. 철부지 어린이들을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연기를 시키는 식으로 진행하면서 카메라맨은 어린이들이 연기하는 실내에 만들어진 기이한 은폐시설에 숨어 촬영을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제작방식은 동원된 어린이들이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거나 자신이 특출 난 존재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고 그 영향이 평생을 간다는 부작용이 커 외국에서는 금기사항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런 데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범람하는 먹방 프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먹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우선 먹거리다.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먹거리를 중심으로 프로를 진행하는 것도 의미 있다. 그러나 대부분 맛있게 먹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먹거리에 대해 감사하고 그것을 생산한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법은 없다. 그냥 맛있게 잘 먹어야 한다는 분위기만이 지배한다. 먹는 것을 말하자면 휴전선 이북에 사는 동포들은 절반 정도가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할 만큼 너무 중요하다. 그런데 남쪽에서는 그냥 자기 입을 즐겁게 하고 배만 불리는 것만을 추구할 뿐이다.

이런 먹방프로를 보면서 박정희 독재정권 이래 거족적 놀이가 된 고스톱과 노래방을 생각하게 된다. 두 개의 놀이는 진지한 대화를 방해하는 공통점이 있어 막걸리 국보법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21세기 TV 주요 프로의 하나가 혀를 즐겁게 할 뿐 대화는 스쳐 지나가는 내용일 뿐인 먹방 프로가 차고 넘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삭막해진다. 우리 사회가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저라는 것은 막힌 사회, 불통의 사회라는 의미다. 심하게 말하면 자기도 살기 싫고 후손도 남기지 않겠다는 그런 곳이라는 의미다. 이런 속에서 치열한 본능의 하나인 식욕을 채우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맨 밑바닥에 가라앉은 삭막하기 짝이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입과 배를 즐겁게 했다는 것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문 TV 가운데 낚시를 보여주는 채널이 몇 개 있다. 거기에서 최근 인상적으로 본 것은 한 사람이 낚시를 열 개 정도 펼쳐놓고 고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것은 낚시를 던져놓고 세월을 낚던 강태공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광경은 아니다. 외국처럼 잡은 고기를 놓아주거나 잡는 고기의 양과 규격을 제한하는 식의 환경친화적인 스포츠와는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바다에서 저인망 어망으로 바닥까지 긁어버리는 것처럼 호수나 강의 고기 씨를 말리겠다는 무서운 욕심만이 짙게 풍길 뿐이다. 엇비슷하지만 개펄에서 조개 등의 채취 모습을 방영하는 TV 프로에서도 번득이는 이기심이 넘친다. 개펄의 생태계를 위해서는 될 수 있는 한 그곳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아야 하는데 개펄 하면 ‘조개 등을 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TV가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개펄을 보존하는 식의 환경보존 메시지는 찾기 어렵다.

사회가 거칠어지거나 윤택해지는 데는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정보 생산자, 권력을 집행하는 자들의 철학과 행동이 중요한 것 같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기 때문에 접하는 정보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을 살펴서 자기, 우리를 벗어나 그들 모두와 함께 21세기 지구촌 전체를 행복하고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정보를 생산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말 환골탈태하고 대오각성할 수 있는 정보 등을 TV 프로를 통해 보고 듣고 싶다.

오늘날 TV가 수많은 뉴미디어 형식의 경쟁자가 속출하고, 시청자가 백여 개가 넘는 채널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무한경쟁시대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은 선발업체의 강점을 누리고 있는 상황이고 주요 방송사의 평균 임금은 입을 떡 벌릴 만큼 고액이다. 그런데 주요 시간대에 방송하는 프로들이 하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나 악취를 풍기거나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으니 고약스런 일이다. 전통적인 TV 미디어가 신문업과 함께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그 영향력이 막대한 만큼 시장에서 박수받고 사랑받는 프로를 만드는 것이 생존과 발전 전략이 아닐까 한다.

* 이글은 2021년 03월 15일(월)자 미디어스 기고글입니다. 미디어스 기고글 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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