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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노무현 ‘죽이기’조선일보 대해부 5권 -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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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2.0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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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4일 자정으로 대통령 임기를 마친 노무현은 고향인 경남 김해시의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청와대 생활 5년 동안 측근이나 친인척의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무차별 공격에 시달려온 그는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평화롭게 살던 ‘농군 노무현’에게 닥친 시련

노무현의 민주화운동 동지이자 청와대 시절 마지막 비서실장인 문재인은 봉하마을에서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봉하에 자리를 잡은 대통령도 농군으로 잘 지내고 계셨다. 양산에 있으면서 가끔 들렀다. 대통령이 누군가의 예방을 받을 때 격식을 갖출 필요가 있으면 가서 배석을 하고, 무슨 공식 행사에 갈 때는 수행도 했다. (···)
  갈 때마다 좋았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그들은 소리를 질러가며 대통령을 집밖으로 불러내 환호하고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 대통령은 하루에도 몇 번씩 집밖으로 불려 나갔다. 방문객들에게 인사하는 일을 고달파 했지만 그러면서도 좋아했다.
  (···) 어떤 때는 무슨 대학 강의하듯 어려운 내용을 장시간 말씀하시기도 했다.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 계셨더라면 농사지으며, 평범한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대학생들이나 대학원생들에게 좋은 특강도 하면서 소박하게 사셨을 것이다.
  친환경 농업, 숲 가꾸기, 화포천 살리기 등의 얘기를 할 때엔 얼굴에 그렇게 생기가 넘칠 수 없었다. 그분은 봉하마을 전체를 새롭게 개조하고 싶어 했다. 잘 사는 농촌, 살기 좋은 마을의 성공 모델을 만들고 싶었던 거였다(<문재인의 운명>, 가교출판, 2011, 388~390쪽).

평범한 시민으로서 고향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밀려드는 방문객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하던 노무현의 평화로운 생활은 미처 한 해도 되기 전에 모진 시련에 부닥치게 된다. 그 실마리가 된 것은 친형인 노건평의 ‘비리’였다.

조선일보 2008년 11월 25일자 1면에는 「“노건평 씨(노 전 대통령 형), 거액 받아” /  계좌 추적해 확인한 듯 / 검찰, 세종증권 매각 관련 진술 확보… 출국금지」라는 기사가 나왔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66) 씨가 지난 2006년 농협의 세종증권(현 NH증권) 인수에 개입해 세종캐피탈 김형진 회장 측으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관련자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계좌 추적 작업이 끝나는 대로 노 씨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노 씨를 출국  금지 조치했다. 
  검찰에 따르면 세종캐피탈 김 회장은 2006년 1월 세종증권을 농협에 매각하기 위해 2005년 말 총 100억 원의 자금을 조성해 홍 사장에게 로비를 맡겼고, 홍 사장은 2005년 12월~2006년 2월 정화삼 씨와 정대근(64·수감중) 전 농협 회장에게 각각 30억 원과 50억 원을 전달했다.
  검찰은 노건평 씨와도 개인적으로 각별한 관계인 홍 사장이 정화삼 씨 등 제3자를 통하지 않고 노 씨에게 직접 전달한 자금이 있을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집중 추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에서 정화삼 씨는 “노건평 씨에게 부탁해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해주겠다”며 홍 사장에게 30억 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이날 수감 중인 정대근 전 회장을 불러 세종캐피탈로부터 50억 원을 전달받은 경위와 세종증권 인수 관련 미공개 정보를 또 다른 노 전 대통령 측근들에게 제공했는지를 집중 추궁했다.

조선일보는 ‘박연차 게이트’에 노무현이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국세청이 박연차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했다고 11월 27일자 1면에 보도했다.

  국세청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아내기 위해 지난 7월 태광실업 박연차(63)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으며, 그 과정에서 발견된 수십억 원을 노 전 대통령의 은닉 자금으로 의심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박 회장을 소환 조사했던 것으로 26일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 회장은 2005년 5월부터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한다는 미공개 정보를 입수해 178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국세청은 지난 7월 시작된 박 회장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서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100억 원 이상의 뭉칫돈을 발견했으며, 이 중 수십억 원의 실소유주가 불분명하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 박 회장을 소환해 문제의 수십억 원의 실소유주를 추궁했고, 박 회장은 이를 강력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는 “국세청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아내기 위해” 박연차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못 박고 있다. 국세청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다.

검찰은 12월 4일 노건평을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했다. 조선일보 12월 5일자 1면 기사 제목은 「또 구속된 ‘대통령 가족’」이었다. 노건평에게는 “2006년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개입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수재)”가 적용되었다.

  김용상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 발부 이유에 대해 “제출된 증거자료와 신문 결과를 종합해 보면, 피의자가 이 사건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
  노건평 씨는 이날 서울구치소로 이송되기에 앞서 “혐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지만 전부 인정하지는 못 하겠다”며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노건평이 혐의 사실의 일부를 인정한 이상 언론이 비판을 가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12월 5일자 27면에 노무현 정권을 싸잡아 극렬하게 공격하는 사설(「 깨끗한 척은 다 하던 정권의 대통령 형 구속되다」)을 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가 4일 구속 수감됐다. 법원은 노 씨가 정대근 농협 회장에게 청탁해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를 성사시킨 뒤 세종증권에서 29억6300만원이 든 통장과 도장을 받았다는 검찰 측 구속 사유를 인정해 영장을 발부했다. 대통령 가족이나 친·인척이 권력형 비리에 얽혀 구속되는 일이 또 되풀이된 것이다. (·····)
  이번 사건은 일확천금에 눈이 먼 증권가 작전세력들이 기업 인수·합병 정보를 띄우면서 주가를 조작하는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 작전의 각본을 쓴 것은 세종증권이었고 주연은 노건평 씨였다. 주연 못지않은 조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견인이라는 박연차 씨였다. 박 씨는 사들인 세종증권 주식을 그해 12월 농협이 세종증권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직전 열흘 동안 팔아 178억 원의 이득을 봤다. (·····)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국민이 지켜보는 기자회견에서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형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형이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으로부터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받았다 되돌려줬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했던 말이다. 돈을 받은 형보다 돈을 준 사람을 욕 먹이고 비난한 것이다. 그 회견 장면을 TV로 보던 남 전 사장은 한강에 투신 자살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노인”이라던 노건평 씨는 바로 그 이듬해 농협에 세종증권을 인수해 달라는 청탁을 하고 다녔다.
  대통령 주변에서 비리가 터져 나오면 “깜 안 된다” “소설 쓰지 말라”고 했던 게 지난 정권 사람들이다. 깨끗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뒤론 할 것 다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했던 고약한 일들도 때가 되면 드러나는 법이다.


박연차 구속 이후 노무현에 쏟아진 화살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가 12월 12일 “조세 포탈 및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되었다.

  전 정권 실세 정치인 등에게 금품을 불법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 회장은 이날 오후 8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에 앞서, “‘박연차 리스트’가 존재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정치인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된다”는 질문에는 “이 자리에서 인정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집권 기간인 지난 2006년 1월 농협의 알짜배기 자회사인 휴켐스를 인수하는 등 사세를 급신장시켜 주목을 받았다(조선일보 12월 13일자 1면).

해가 바뀌어 2009년 2월이 되었다. ‘박연차 게이트’는 보수언론이 노무현을 직·간접적으로 공격하는 데 ‘최상의 소재’였다. 조선일보는 2월 5일자 27면에 「 ‘노무현 청와대’가 대통령 형의 탈선을 못 막은 이유」라는 사설을 올렸다.

정대근 전 농협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 청탁을 받고 세종증권을 인수한 사건 재판에서 “건평 씨가 2005년 중반 전화를 걸어와 ‘(세종증권) 사람이 찾아갈 테니 얘길 잘 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털어놨다. 건평 씨는 정 전 회장이 세종캐피탈 회장을 만나고도 반응이 신통치 않자 몇 차례 더 전화를 하거나 서울로 올라와 직접 만난 자리에서 세종증권 인수를 졸랐다는 것이다. 세종캐피탈 사장은 “로비가 성사된 후 건평 씨가 ‘나한테 뭐가 좀 없느냐’며 너무 자주 전화를 해와 휴대전화를 따로 한 대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건평 씨는 세종증권에서 29억6300만원이 든 통장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 형이 이렇게 들쑤시고 다녔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아무것도 몰랐을 리 없다. 전 정권 민정수석실 사람들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세종증권 관련 소문을 조사했었다”고 말했고 검찰도 작년 12월 22일 수사 발표에서 민정수석실의 내사 사실을 확인했다. 건평 씨 딸과 사위, 사돈도 세종증권 주식을 사고팔아 6억원대 차익을 챙겼다. 민정수석실이 제대로 조사했다면 건평 씨와 그 가족들이 세종증권 주식 사고팔기로 이득을 얻었다는 사실이 다 드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은 조사를 하는 척만 했거나 조사하다 건평 씨 이름이 나오자 지레 겁을 먹고 덮어버렸을 것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기 형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몰랐을 것이다. 대통령이 알고도 가만 있었다면 대통령이 아니다. 민정수석실은 명절이면 김해 봉하마을 입구에 경찰관을 보초 세워 누가 건평 씨 집을 드나드는지 감시했다며 마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감시자를 붙이면 그 감시자가 먼저 찾아가 꼬리 치면서 잘 보이려고 하는 게 대통령의 형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란 대통령 형과 관련된 소문이 들리면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 “그런 일 없다”는 얘기를 형식적으로 들은 후 “아무 문제 없더라”고 결론짓고 마는 것이다. 모두가 경계할 일이다.

이 사설은 결론 부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기 형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몰랐을 것이다”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설 제목을 굳이 「‘노무현 청와대’가 대통령 형의 탈선을 못 막은 이유」라고 붙여야 했을까?


잇달아 터진 ‘측근 비리’와 노무현의 사면초가

2009년 3월 26일 검찰은 참여정부에서 국정상황실장으로 핵심적 역할을 한 바 있는 민주당 의원 이광재를 구속했다. “2004~2008년 박 연차 회장으로부터 4차례에 걸쳐 12만 달러와 2000만원을 수수하고, 정대근 전 농협회장(구속)에게서 2004~2006년 3차례에 걸쳐 3만 달러를 받은 혐의”라는 것이었다.

  이 의원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으나, “박 회장이 이 의원에게 불법자금 수만 달러를 제공했다”는 본지 3월 6일자 보도 직후 이 의원 측이 박 회장에게 진술 번복을 요구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검찰은 말했다. 이 의원은 앞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조선일보 3월 27일자 1면).

조선일보는 3월 27일자 31면에 「‘박연차 리스트’에서 드러난 대한민국 공직자의 수준」)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은 하늘에서 눈을 뿌리듯 온 세상에 돈을 뿌려댔다. 물론 그가 뿌린 돈은 높고 낮은 곳 없이 고루 내린 게 아니라 전 정권 청와대 민정수석, 현 정권 청와대 비서관, 전· 현 정권의 실세 또는 여야 중진 국회의원 등 높고 힘 있는 인간에게만 내렸다. 박 회장은 대통령 형 말 한마디에 일면식도 없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출마자에게 5억 원을 줬고 판사·검사·경찰 고위직 등 나중에 쓸 만한 사람에게도 푹푹 돈을 찔러줬다. 박 회장 돈을 받은 사람 가운데는 고법부장 판사·검사장·부장검사·경찰 고위간부들 이름도 거론된다. (·····)
  선진국에도 기업인 뇌물 사건이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대통령부(府)·의회·법원·검찰·경찰 등 온갖 권력기관 공직자들이 어느 한 기업인이 뿌리는 돈 봉투를 받아먹는 선진국은 없다. ‘박연차 리스트’는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 어쩌고 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박 회장의 돈 건네는 수법은 1997년 한보 로비 사건의 정태수 회장을 생각나게 한다. 한보 정 회장은 사과박스와 쇼핑백에 5000만원·1억원·2억원씩 담아 청와대 수석·은행장·정치인들에게 줬다. 박 회장도 국회의원, 도지사 재·보선에 출마한 사람에게 라면박스에 담은 3억~5억원씩의 돈을 전달했다. 전 정권 실세라는 국회의원들은 미국 뉴욕에 들렀다가 한식당 주인을 통해 박 회장의 달러를 받았다. 중국과 베트남의 박 회장 해외공장을 방문해 돈을 받은 정치인들도 있다고 한다. 박 회장은 전 정권 청와대 민정수석에겐 1억 원을 50만원 짜리 상품권 200장으로 바꿔서 줬다. (·····)
  박 회장은 청와대 수석·국회의원·판사·검사·경찰간부들에게 돈을 뿌리면서 그들을 사육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힘깨나 쓰는 인물들을 한 우리에 몰아넣어 자기가 관리한다고 믿었으니 세상이 자기 것처럼 보였을 만도 하다. 그 정도이니 대낮에 술에 취해 국내선 비행기를 타 “이륙하니까 등받이를 제자리로 해달라”는 여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려 비행기가 계류장으로 되돌아가게 하였을 것이다. 박 회장 돈을 받으며 그를 “회장님, 회장님”하며 따르고 모셨던 고위 공직자의 도덕 수준 역시 박 회장과 막상막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던 대검 중앙수사부는 3월 30일 노무현의 조카사위인 ‘연 모’에게 칼끝을 들이댔다. 노무현이 퇴임하기 직전인 2008년 2월 박연차가 연 모에게 5백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 자금이 노무현과 관련이 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무현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한층 더 높인 것이었다.

  검찰은 (···) 5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에 건네진 점으로 미루어, 이 돈의 성격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정치활동 재개를 위한 자금 성격인지 등을 확인 중이다.
  박 회장 주변에선 박 회장이 이 돈을 건네면서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활동비 등으로 쓰라고 준 것이라고 말했다는 증언들도 나오고 있다.
  한편 박 회장은 동향 선배인 박찬종 변호사와 서울구치소에서 가진 면담에서 “이제는 더 이상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든 뭐든 간에 감출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다 털어버리겠다”고 말했다고 박 변호사가 이날 전했다. (·····)
  박 회장은 또 “(검찰 수사 대상으로) 국회의원 여러 명이 걸려 있는데, 내 가슴속에서 (내가) 돈 좀 만지고 하는데, 공무원들에게 전별금도 주고 했던 것처럼 (내가) 살아 왔던 방식대로 한 것”이라며 현재까지 검찰이 공개한 국회의원들 외에 추가로 금품을 건넨 현역 국회의원이 더 있음을 시사했다(조선일보 3월 31일자 1면).

조선일보 4월 1일자 사설(「노 전 대통령의 ‘반칙·특권 없는 세상’이 이런 거였나」)은 노무현에게 정면으로 칼끝을 겨누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직전인 지난 2월 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에게 우리 돈 70억 원에 상당하는 미화 500만 달러를 송금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박 회장은 홍콩에 설립한 자회사인 APC 계좌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 씨의 첫째 사위 연 모 씨에게 이 돈을 보냈다고 한다. 올해 36세인 연 씨는 2003년 박 회장이 만든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이사로 6개월간 일했고, 지난해 4월 투자 자문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최근에야 조카사위에게 박 회장 돈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노 전 대통령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 회장 주변에선 산전수전 다 겪은 박 회장이 세상 모르는 36살짜리와 무슨 거래를 했겠느냐고 한다고 한다.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비로 쓰라고 준 것이란 이야기다. 검찰이 밝혀야 할 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상표는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이다. 국민들은 그와 그의 참모들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에 대한 강의를 들어왔다. 2002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선 “각종 게이트 사건은 특권 의식과 반칙의 문화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 5월 토론회에선 “대통령이 되면 어두운 권력 문화를 청산하겠으며 사정기관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 구실을 하도록 만들겠다”, 2003년 2월 대통령 취임사에선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사회지도층의 뼈를 깎는 성찰을 요망한다”고 했다. 그리고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선 “(임기 중) 무슨 사건에서 비자금이 나오고 정·관계 로비라는 말이 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며 노 정권 5년을 ‘청정 시대’로 규정했다.
  지금 노 전 대통령의 친형, 조카사위, 가신과 측근, 청와대 수석들이 허기진 사람처럼 갖가지 뇌물을 덥석덥석 받았다가 줄줄이 검찰에 끌려가고 있다. 이러다간 노 전 대통령 주변에 성한 사람이 없어질 판이다. 그건 달리 말해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 노 전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입가에 ‘정의’와 ‘청렴’을 매달고선 너나없이 권력의 떡고물을 묻혀 왔다는 이야기다. 그뿐 아니라 노 정권 아래서 판사·검사·경찰 간부들이 대통령의 친구가 던져주는 ‘뇌물 먹이’를 받아먹어 왔다. 그러기에 국민은 분노와 배신감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검찰의 칼이 노 전 대통령 본인을 향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대통령 본인의 비리 사건은 전두환·노태우 시대로 끝나는가 했더니 그게 섣부른 단정이었나 보다.


노무현, 아내의 ‘비리’를 시인하다

4월 7일 노무현은 아내 권양숙이 박연차로부터 10억 원을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린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2005~2006년 박 회장의 돈을 받은 혐의로 이날 대검 중수부에 체포된 것과 관련,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이라면서 “저의 집(권양숙 여사)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돈을 받은 이유에 대해선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더 상세한 이야기는 검찰의 조사에 응하여 진술할 것이며 응분의 법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정치생활을 오래 했고 원외 생활도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신세 진 일이 있었을 것”이라며 “권 여사가 (박 회장에게) 빌린 돈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게 박 회장이 권 여사에게 10억 원을 준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이와 관련해 박 회장의 사업에 도움을 준 것은 없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조카사위인 연철호(36) 씨가 2008년 2월 박 회장에게 받은 500만 달러의 실소유주가 노 전 대통령 본인이 아닌지도 조사키로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사과문」에서 “특별히 호의적인 동기가 개입한 것으로 보였지만, 성격상 투자이고 저의 직무가 끝난 후의 일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조선일보 4월 8일자 1면).

조선일보 4월 9일자 사설(「노 전 대통령, ‘제2·제3 노무현’ 나오지 않게 진실 밝혀야」)은 마치 투우사가 지친 소의 등에 칼을 꼽듯이 노무현에게 혹독한 비난을 퍼부었다.

  검찰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를 이르면 다음 주쯤 소환 조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전직 대통령으로선 전두환 노태우 씨에 이어 3번째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고, 대통령 부인이 검찰의 심문을 받는 건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노 전 대통령 본인은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 하겠지만, 이런 모습을 10년 만에 다시 봐야 하는 국민은 무슨 업보를 치르는 건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1월 신년회견에서 “정경유착은 해소됐다. 돈 달라 안 하고 청탁도 없어서 속 편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며 “‘밀실’ ‘측근’ ‘가신’ 이런 말도 사라졌고, 공직사회의 투명성도 많이 높아졌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서 낙제 점수를 받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거듭된 무능에 실망하면서도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전매특허처럼 내세워 왔던 ‘도덕성’만은 그래도 지켜오지 않았겠느냐 하는 한줌의 기대 덕분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 의해 노 전 대통령이 ‘노무현 시대’를 떠받친 기둥이라고 내세워온 도덕성의 위선적 뒷모습이 하나하나 폭로되면서 노무현 시대 5년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
  (···) 지금 노 전 대통령 주변에는 성한 사람이 없다. ‘반칙 없는 사회’를 입에 달고 살았던 노무현 시대의 실세들이 사실은 반칙 전문가로 살아왔던 탓이다.
  노 전 대통령이 분노한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 있다면 진실 그대로 국민 앞에 서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는 「사과문」은 가릴 건 가리고 시치미 뗄 건 시치미 떼고 남 탓으로 돌릴 건 남 탓으로 돌린 ‘변호사 노무현’의 법정 전술 메모에 지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은 5년 임기 내내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주지 않았다. 중앙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을 지적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선거법으로 몰아붙이고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을 위헌으로 판정하면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한다는 편법으로 비켜갔다. 그런 그가 검찰 소환을 앞두고 다시 대한민국 법률을 자신의 허물을 가리는 방패로 이용할 궁리를 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을 한 번 더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지금 의지해야 할 것은 자신이 입맛에 맞으면 이용하고 자신의 이해에 어긋나면 팽개쳤던 법률 논리가 아니라 진실 그 자체다. 나라와 국민 앞에 그 진실을 털어놓음으로써 이 나라에 ‘제2의 노무현’ ‘제3의 노무현’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발판이라도 마련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사명이 됐다.

조선일보는 4월 11일자에서도 사설(「 노무현·박연차는 ‘권력 금고’와 ‘돈 금고’ 함께 쓴 동업자」)로 노무현의 ‘부도덕성’을 맹렬히 비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돈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손을 댈 수 있다고 여긴 듯 싶다. 과거 뇌물 수수나,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선 권력이 기업을 어르고 달래고 팔을 비튼 끝에 불법 자금을 뜯어내거나, 대가를 약속한 뒤에 돈을 받았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측에선 박 회장의 금고 안에 있는 돈을 마치 자신들이 맡겨 놓은 것인 양 찾아가곤 했다.
  박 회장 역시 그들이 자기 금고에 든 돈을 응당 받아야 할 듯이 대했다. 박 회장은 2007년 8월 서울 한 호텔에서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계획을 논의하던 중 강금원 회장이 “50억 원씩 내자”고 하자 “홍콩에 있는 500만 달러를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홍콩 계좌에 들어 있던 6000여만 달러 가운데 500만 달러는 처음부터 ‘노 전 대통령의 몫’인 것처럼 생각한 모양이다. 권력자들이 불법 자금을 받아가면서 당연히 받을 것을 받아가는 듯 태연한 것은 과거에 없던 노무현 정권의 새 풍속이다. (·····)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은 ‘권력 금고’와 ‘돈 금고’를 함께 쓰는 동업자였다. 이런 식으로 한 나라의 대통령과 수상쩍은 장사꾼이 돈 금고와 권력 금고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세계 역사에서 드물 것이다. 검찰 수사는 지금 노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이 박 회장 금고에서 꺼내 쓴 돈에 대해 집중돼 있지만, 박 회장이 대통령의 ‘권력 금고’에서 뭘 꺼내 무엇을 챙겼는지도 밝혀내야 한다.

이 사설은 박연차를 수사하고 있던 검찰이 ‘흘려준’ 내용을 바탕으로 ‘작문’을 한 것이라는 의혹을 짙게 풍긴다.

“노 전 대통령 측에선 박 회장의 금고 안에 있는 돈을 마치 자신들이 맡겨 놓은 것인 양 찾아가곤 했다”고 단정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사설의 앞부분에서는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은 ‘권력 금고’와 ‘돈 금고’를 함께 쓰는 동업자”였다고 했는데, 왜 뒷부분에서는 “박 회장이 대통령의 ‘권력 금고’에서 뭘 꺼내 무엇을 챙겼는지도 밝혀내야 한다”는, 앞과 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는가?

노무현과 박연차가 함께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은 뒤에 법관의 판결을 통해 진실 여부가 가려져야 할 일에 대해 조선일보가 미리 판결을 내린 셈이다.
조선일보가 노무현과 가족은 물론이고 ‘친노 세력’에 대해 퍼부은 공격은 ‘연속 기획’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아래에 그 사설들을 요약한다.

· 「어제는 대통령 부인, 오늘은 대통령 아들」(4월 13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씨가 11일 부산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데 이어 12일 아들 건호 씨가 대검 중수부에 소환됐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 나와 조사를 받게 되는 것도 이제 멀지 않은 느낌이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 씨는 구속돼 있고 건평 씨 사위 연철호 씨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정권마다 대통령의 아들이나 친·인척들이 비리에 얽혀 검찰 조사를 받더니 이제 대통령 부인과 아들이 함께 사법처리되는 것 아니냐를 걱정해야 할 판국에 이르렀다. (·····)
  도대체 노 전 대통령과 그 일가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어떻게 생각했기에 이런 나라의 고통, 가정의 비극, 세계의 웃음거리를 부르고 만들어내고 말았을까.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4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그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와 3남 홍걸 씨가 검찰에 불려다니다 끝내 구속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후보 수락연설에서 “대통령 아들과 친·인척이 주목받고 있는데 확실하게 감시제도를 만들어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런 노 전 대통령 자신과 그 일가 역시 결국 패가망신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국민의 눈과 법률의 감시로부터 가려주는 ‘권력의 가림막’이 영원한 듯 착각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검찰이 먼지떨이로 먼지를 털자마자 온몸에서 먼지가 솟아오르듯이 지난 5년 동안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서슴없이 검은 돈에 손을 뻗친 모습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노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변호사 노무현’으로」(4월 14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검찰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준 100만 달러와 현금 3억 원은 모두 내가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몰랐던 일”이라고 진술했다.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 글에서 “구차하고 민망스러운 일이지만 (100만 달러에 대해) 몰랐던 일은 몰랐다고 말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증거다”라고 썼다.
  법률적으로 지금 문제의 핵심은 2가지다. 하나는 박 회장이 정 전 비서관을 통해 청와대에 100 달러짜리를 100장씩 묶은 다발 100개를 배달한 것이 노 전 대통령 요청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권 여사의 부탁 때문이었는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00만 달러가 어디에 쓰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 2 가지 쟁점에 대해 권 여사는 “빚진 게 있어 갚으려 했지만, 무슨 빚이 있었는지 왜 달러로 받았는지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검찰이 밝히라”라면서 딴청을 부리고 있다. 전직 대통령 부부가 “나는 이렇게 말할 테니 당신은 저렇게 말하라”고 서로 말을 맞췄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이라면 과거의 체통을 생각해서라도 진실을 행동과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진실’ 대신 ‘증거’를 붙들고 그 뒤에 숨으려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리보다는 ‘변호사 노무현’의 입장에 서는 것이 법망을 피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 「강금원 ‘부통령’ 모시며 뒷돈 받던 친노 건달들」(4월 16일자)

  회사 돈 266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9일 구속된 창신섬유 회장 강금원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20여명에게 수십억 원의 돈을 뿌린 것으로 드러났다. 강 씨는 노 대통령 재임 시절 ‘사설(私設) 부통령’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2003년 공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정권의 군기반장’이라고 부르며 “대통령도 나를 못 말린다”고 했었다. 강 씨 앞에선 내로라 하는 정권 실세들도 쩔쩔맸다고 한다. 그 강 씨의 위세가 결국 ‘돈의 힘’이었던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것이다. (·····)
  강 씨는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 노릇을 해온 386 측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10억여 원,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 7억원,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 1억원, 명계남 전 노사모 대표 5400만원 등 정권 실세들에게 뒷돈을 대줬다. 강씨가 빼돌린 회사 돈으로 정권 실세들이 돈 잔치를 벌인 꼴이다.
  노 전 대통령과 그 수하 패거리들은 바깥에 대고는 세상에 깨끗한 사람은 자기들밖에 없다는 듯이 큰소리치면서 뒤에선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강 씨에게 사업자금과 용돈을 받아쓰며 그를 ‘부통령’처럼 떠받들었다. 노 전 대통령 측 인사들은 검찰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 쪽에 준 600만 달러를 실토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달리 강 씨가 “의리를 지키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5년 간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집권 세력이라는 그들의 도덕성이나 의식 세계가 딱 길거리 건달 수준이다.

· 「권양숙 여사는 왜 비서관의 뇌물을 자기가 받았다 했나」(4월 21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지난 9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100만 달러를 청와대에 전달하고 그와 별도로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때 “정 전 비서관은 단순한 전달자일 뿐 (돈은 내가 받은 것)”이라는 팩스를 판사에게 보냈다. 이 진술은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가장 큰 사유가 됐다. 노 전 대통령도 지난 7일 정 씨가 검찰에 체포되자 인터넷에 사과문을 올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입니다.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권 여사 진술과 노 전 대통령의 해명은 거짓이었다. 사실은 권 여사가 3억 원을 받아 빚 갚는 데 쓴 게 아니라 정 전 비서관이 자신이 잘 아는 사람 이름의 계좌에 넣었다가 양도성예금증서(CD)로 바꿔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노 전 대통령 부부의 거짓말은 돈 심부름을 도맡아 해온 정 전 비서관이 구속돼 검찰의 수사를 받다 노 전 대통령 측의 또 다른 비밀에 입을 열지도 모른다고 염려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정 전 비서관이 한 일을 권 여사가 했다고 나섬으로써 정 전 비서관에게 은혜를 베풀어 다른 비밀에 대해 입을 다물도록 유도하려 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 전 비서관의 차명계좌에서 새로 발견됐다는 10억 원의 돈이 누구 돈인지 주목된다.
  노 전 대통령은 “중요한 건 증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거짓말을 통해 증거 조작을 시도했다. 이제 검찰이 아니더라도 그가 한 말을 정말로 믿기는 어렵게 됐다.

위에 소개한 조선일보 사설들을 보면 노무현과 이른바 ‘친노’ 세력은 모두 파렴치범이 되어 있다. 조선일보는 형법에 명시된 ‘피의사실 공표죄’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고문 김대중은 4월 27일자 30면에 「 노무현 씨를 버리자」라는 칼럼을 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주 자신의 홈페이지(사람 사는 세상)를 폐쇄하면서 자신은 이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났다”면서 다만 ‘피의자로서의 권리’만은 지키고 싶다고 했다. 참으로 졸렬한 발상이다. ‘노무현’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전직의 명예’가 무너진 마당에 사법 절차에나 매달리겠다니 인간이 불쌍하다는 생각뿐이다. 노 씨가 배운 ‘그 잘난 법’은 이제 독이 되어 그나마 남은 자존심마저 ‘노무현’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어졌다. 전직 대통령의 명예도, 정치인으로서의 긍지도, 좌파 리더로서의 존재가치도 사라졌다. 그래서 노 씨 스스로 홈페이지에서 국민에게 자신을 버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이제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를 버리자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버리는 것인가?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를 기소하지 말고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는 것이다. (·····)
  (···)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 수준이다. 정치자금도 아니고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 쓰고 세금에서 훔쳐간 것이 더 부끄럽다. 지금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철저 수사를 주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야말로 치사하고 한심한 생각만 남을 것이다. (·····)
  우리 국민이 노무현 씨를 국민적 차원에서 사면키로 하는 데는 한 가지 분명한 전제조건이 있다. 노 씨를 버리되 철저히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가진 일체의 움직임에 연루되는 일 없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다. 그가 또 다른 어떤 계기에 그 어떤 사건을 가지고 ‘국민’ 앞에 나서서 그의 번잡한 언변을 늘어놓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가 국민 앞에 자신의 마지막 성실성을 보이려면, 그래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국민의 용서를 받고 싶다면 검찰에 출두하는 방법에서도 장난을 치거나 사안을 이벤트화하지 말 것이며, 검찰에서 진술하는 과정에서도 보다 겸손하고 피의자다워야 한다. 더 이상 ‘노무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고문 김대중은 이 칼럼에서 노무현에게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사형선고’를 내린 셈이다. 그런데 그가 ‘잡범 수준’으로 몰아붙인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이 글이 나간 날로부터 미처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달라졌다.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조선일보부터 그렇게 달라진 것을 보고 그는 이 칼럼에 대해 ‘해명’이라도 한 적이 있었던가?


노무현의 죽음과 조선일보의 표변

노무현은 4월 30일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세 번째로 재임 중 저지른 비리 혐의와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검사장 이인규)는 이날 오후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재임 중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사업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6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수수) 등에 대해 심야까지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은 출두한 지 약 13시간만인 1일 새벽 2시 10분쯤 검찰 조사를 받은 소감을 묻자 미소를 띤 얼굴로 “최선을 다해서 받았습니다”라고 답한 뒤,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로 돌아갔다(조선일보 5월 1일자 1면).

조선일보는 5월 2일자 23면에 노무현 부부에 대한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하는 사설(「 전직 대통령 부부는 검찰 수사 이런 식으로 받나」)을 내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시간 가량 계속된 검찰 수사에서 “아니다” “모른다” “생각나지 않는다” “밝힐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청와대 안방으로 전달된 100만 달러를 어디에 썼느냐는 질문에 “집사람이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설명이 석연치 않다. 정리되는 대로 제출하겠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회장과의 대질신문도 거부했다. 권양숙 여사도 부산지검에서 재조사를 받아야겠다는 검찰의 통보에 응하지 않았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수뢰(收賂) 혐의는 액수가 1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혐의를 받고 있는 뇌물·횡령 액수는 75억 원 안팎이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특별대우를 받았다. 검찰이 뇌물 혐의가 포착되면 맨 먼저 하는 것이 압수수색이다. 검찰은 봉하마을을 수색하지 않았다. 수 사권을 상당부분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시간도 검찰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 측이 정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전 민정수석을 뒷자리에 앉혀놓고 법률 조언을 받으며 조사받았다. 조사가 한 단락 마무리될 때마다 10분씩 쉬며 담배와 차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도 주어졌다. 검찰 출두 전 서면 조사로 직접 조사의 상당 부분을 대신 했다. 부인 권 여사도 부산에서 비공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언론의 사진 촬영까지 막아주었다. (·····)
  노 전 대통령은 김해 집을 떠나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할 때까지 과정을 정치 퍼포먼스로 기획한 듯했다. 서울로 출발하기 전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유시민 전 장관은 기자들에게 ‘졸렬한 정치보복’이라고 외쳤다. 측근들은 검찰로 향하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고 “파이팅!”을 외쳤다. 이런 성원에 호응하듯 노 전 대통령도 조사를 끝내고 검찰청사를 나오면서 웃음 띤 표정으로 “최선을 다해 (조사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시합에 나선 선수와 그를 격려하는 응원단 같은 분위기였다. (·····)
  노 전 대통령 측은 왜 아들에게 돈을 전했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아들을 만나 돈을 전달했다면 그 사실을 권 여사만 알고 노 전 대통령은 몰랐다는 게 너무 부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100만 달러 존재를 알았다면 사법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국민이 보기엔 그 이유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측이 권 여사가 100만 달러를 받아 빚을 갚았고 노 전 대통령은 그걸 몰랐다고 설명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측이 이런 꾀로 법의 그물을 피해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민 마음을 풀어줄 수는 없다.

노무현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받았습니다”라고 말한 사실이 조선일보 5월 1일자 1면 기사에 나와 있는데도 같은 날짜 그 신문 사설에는 그가 “‘아니다’ ‘모른다’ ‘생각나지 않는다’ ‘밝힐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고 되어 있다. 전직 대통령의 말은 완전히 무시하고  검찰이 흘려준 정보를 전적으로 신뢰한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이 검찰 수사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에 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초보적 법률 상식도 아예 모르는 듯한 논조를 펼치고 있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은 채 2009년 5월 24일자 조선일보를 펼쳐든 사람들은 자기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일요일이라서 신문을 내지 않는 조선일보가 ‘호외’ 성격으로 펴낸 ‘특별호’ 1면 머리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어제 새벽 봉하마을 사저 뒷산서 투신 /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 고통” 유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63) 전 대통령이 23일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6시 40분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뒤편 봉화산을 산책하던 중 30m 높이의 바위에서 투신해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오전 9시 30분쯤 운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오후 6시 30분쯤 봉하마을로 운구돼 마을회관에 안치됐다.
  경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투신에 앞서 이날 오전 5시 45분쯤 경호원 1명과 함께 사저를 나서 봉화산에 올랐고, 오전 6시 40분쯤 봉화산 7부 능선에 있는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노 전 대통령은 오전 7시쯤 경호원들이 모는 승용차 편으로 가까운 진영읍 시가지에 있는 세영병원으로 옮겨져 30분 간 응급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오전 7시 35분쯤 앰뷸런스 편으로 세영병원을 떠나 오전 8시 13분쯤 양산 부산대병원에 도착했다.
  백승완 부산대병원장은 “도착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머리 뒷부분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으며 자발적 호흡이 없었다”고 말했다. 1시간여에 걸친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이 회복되지 않자 의료진은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심폐소생술을 중단하고 사망 판정을 내렸다. (·····)
  경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투신에 앞서 사저에서 평소 사용하던 컴퓨터에 14줄 분량의 유서를 작성했다. 유서는 아래아 한글 파일로 작성됐으며 파일명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였다. 최종 저장 시간은 이날 오전 5시 21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뒤 측근들이 유서가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것을 발견,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경찰에 알렸다. (·····)
  2008년 2월 퇴임한 뒤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사저를 짓고 머물러 온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의 ‘포괄적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30일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세 번 째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후 딸 정연(34) 씨가 2007년 9월 박 전 회장의 돈 40만 달러를 송금받아 미국 뉴저지주의 아파트를 사는 데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등 가족들과 측근들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면서 정신적 고통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전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5월 25일자 조선일보를 받아 든 이들은 노무현의 죽음 그 자체에 못지않게, 그 신문이 그 죽음을 극진하게 ‘애도’하는 기사와 사설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한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박연차 게이트’를 시발점으로 노무현과 가족, 그리고 ‘친노’ 세력을 향해 퍼부어댄 무차별 공격을 뚜렷이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니, 조선일보가 그의 죽음에 대해 박정희가 죽음을 당했을 때에 버금가는 지면을 왜 만들었을까’ 하며 의아해 했을 것이다.

조선일보 5월 25일자에 실린 ‘노 전 대통령 서거’에 관한 기사들은 다음과 같다.

· 1면: [팔면봉] 「노 전 대통령 장례, 국민장으로 치르기로 외」「이 대통령, 봉하마을 찾아 조문하기로」「노 전 대통령 국민장… 29일 영결식 / 김해 영결식 후 봉하마을 안장… 공동 장의위원장에 한승수 총리·한명숙 전 총리 유력」

· 3면 : 「7일 간의 국민장, 어떻게 치러지나 / 분향소 전국 100여 곳 설치… 재외공관에도 마련」「국민의 뜻 모아 치르는 장례… 장례비용 일부 국가 보조 / ‘국민장’ 이란」「‘국민장’ 결정되기까지; 유족들, 처음엔 ‘조촐한 가족장’ 원했지만…  / 더 많은 국민 애도할 수 있게 ‘국민장’ 결정」

· 4면: 「노 전 대통령 투신한 부엉이바위는; 경사 70도의 돌덩어리… 고시공부하던 토굴과 인접」「전국서 봉하마을로… 이틀새 12만명, 2㎞ 넘는 조문 행렬 / 2m 길이 새 분향소 마련 /  밥·국 2만명 분 점심 때 동나  / 노사모 “일부 기자 나가라”」「시신 안치된 마을회관 1층 빈소는; 건호씨 등 유가족 8명이 지켜… 가까운 친지·정치인만 출입」

· 5면: 「시민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 지방자치단체들은 축제 취소하거나 축소」「서거 사흘 전 ‘그분과 마지막 밤참’ / 50년 지기 이재우 씨 / “혹시라도 독한 마음 먹지 마시라 했었는데…”」「검찰, 장례 기간에 수사 잠정 중단 / 구치소의 박연차·강금원 “슬프다, 죽고 싶다” “어떻게 이런 일이…”」

· 6면: 「미(美) “한국사회 어디로” 대책회의 / 중(中) CCTV “이 대통령 시험대에” / 오바마 “슬픔에 빠져”」「노 전 대통령 유서 작성 1분 뒤 “산책가겠다” 연락 / 경찰이 밝힌 당일 행적 “유서 조작설 근거 없어”」「북, 노 전 대통령 서거 하루 만에 보도」「물벼락 맞은 김 의장… 발길 돌린 박근혜 / 노사모 등 거센 항의 / 이 대통령 두 번째 조화 빈소에도 못 세워」

· 33면 : 「[시론] 「그가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란 사람으로서…」「[시론] 살아남은 자의 예의」

· 35면: 「[편집자에게] ‘극단적 선택’ 분석 없어」「[사설] 「검찰이 돌아보고 생각해야 할 일」「[사설] 「노 전 대통령이 편히 잠들 수 있게 하자」

「노 전 대통령이 편히 잠들 수 있게 하자」라는 사설에는 그의 죽음에 관해 조선일보가 느끼는 불안과 ‘명복을 비는 마음’이 뒤섞여 있다.

  (·····) 봉하마을 마을회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비롯해 전국의 분향소에는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비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의 분향소에선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조문이 이뤄지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들은 23일 봉하마을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를 부쉈고 한승수 국무총리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김형오 국회의장 등의 조문을 가로막았다. 이들은 이 총재가 탄 차를 향해 달걀과 물병을 집어던졌고, 이 총재는 결국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임기 말년에 열린우리당 해체를 주장하며 노 전 대통령과 맞섰던 정동영 의원도 ‘배신자’라는 비난 속에 조문을 못하고 돌아갔다가 24일 다시 빈소를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지지자들이 충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조문하러 온 사람들에 대해 정치적 친소(親疏) 관계를 따져가며 조문을 막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것은 고인의 뜻과 어긋나는 일이다.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었거나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과 맞섰던 사람들 역시 너무나 뜻밖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러 찾아온 사람들이다.
  노사모 소속 회원들은 KBS 보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한때 KBS 중계차를 내쫓기도 하고, 기자들에게 심문하듯 소속 회사를 물으며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것 또한 경우에 어긋난 행동이다. 노사모가 장례 기간에 자원봉사 역할을 맡기로 했다면 그에 걸맞은 예의를 갖춰야 한다. 일부 분향소에서 ‘이명박 정부 탄핵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 역시 조문(弔問)의 본뜻을 벗어나는 행동이다. (·····)
  노 전 대통령의 뜻밖의 죽음을 통해 한편으로 대한민국 정치가 지난 50년간 짊어지고 온 업(業)의 사슬을 여기서 반드시 끊고 말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다지면서 다른 한편으론 고인이 이 땅에서 누리지 못했던 평온한 잠의 복락을 저 세상에선 누릴 수 있도록 기구하는 것은 남은 사람의 도리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 장례가 다시 편을 가르고 손가락질하는 부대낌의 장이 아니라 서로 상대의 상처를 되돌아보고 그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보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노무현의 충격적인 죽음은 전국적으로 ‘거대한 애도의 물결’을 일으켰다. 1949년 6월 백범 김구가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을 때보다 훨씬 더한 추모의 행렬이었다. 봉하마을에는 이틀 동안 무려 15만여 명이 다녀갔다.

대통령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20%대로 추락했다. 서거 닷새째인 27일 조문객 수가 3백만 명(국민장의위원회 공식 발표)에 근접했고 인터넷에 오른 추모 글은 1백만 건을 돌파했다.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을 찾은 추모객만 5월 27일로 70만 명을 넘어섰다.

조선일보는 ‘전 대통령 노무현 국장’ 당일인 5월 29일자 27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며」라는 사설을 실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오늘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에서 엄수된다. 국민이 마음을 모아 그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자리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았던 63년은 내내 거칠고 모질었던 세월이었다. 빈농 집안 3남2녀의 막내로 태어나 가난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고 변호사가 되고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학벌, 기성체제와 독재에 맞서 싸우며 풍운아의 생을 살았다. (·····)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은 지난 23일부터 100만 명이 넘는 조문객이 봉하마을 빈소를 찾았다. 전국에 마련된 300여 분향소에도 고인의 명복을 비는 국민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이 그런 모습을 본다면 이승을 떠나는 길이 외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게 될지 모른다. 7일장의 마지막 날인 오늘 영결식도 노 전 대통령이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경건하고 차분하게 치러져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에서 장례기간 동안 나타난 추모 민심에 이르기까지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과 현상들은 대한민국이 앞으로 풀어야 할 여러 가지 숙제를 안긴다. 우선 정부는 노 전 대통령 빈소와 분향소에 길게 늘어선 추모행렬이 말하는 민의를 헤아리고 고민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삶의 종결에 충격받고 슬퍼하는 것 외에도, 현 정부에 대한 저항과 불만, 비판의 뜻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제 나온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동반 급락했다. (·····)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엊그제부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현 정부 책임”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28일 “나라도 그런 결단을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보다 20여년 젊은 다른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을 두둔하듯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듣기 거북하다.
  민주당은 그간 ‘노무현 정치’와 선을 긋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나타난 추모 분위기에 편승해 이 문제를 정치 공세의 소재로 삼으려 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정치 도의에 맞지도 않는 일이다. 민주당은 추모 열기를 촛불시위로 변질시키려 하는 거리의 세력에 편승하려 할 게 아니라 정치의 중심을 회복하려 노력해야 한다.
  오늘은 국민 모두가 노 전 대통령이 이승을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다. 그를 편히 떠나보내고 나서 이런 비극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찾는 데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반향을 보고 정부와 야당인 민주당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노 전 대통령 빈소와 분향소에 길게 늘어선 추모행렬이 말하는 민의를 헤아리고 고민해야” 하는데, 거기에는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삶의 종결에 충격받고 슬퍼하는 것 외에도, 현 정부에 대한 저항과 불만, 비판의 뜻도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현 정부 책임”이라고 한 데 대해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나타난 추모 분위기에 편승해 이 문제를 정치 공세의 소재로 삼으려는 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정치 도의에 맞지도 않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을 그렇게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오래 전부터 그의 과거와 학력을 얕잡아 보았고, 대통령 선거 기간은 물론이고 재임 5년 동안 온갖 비난과 악담을 퍼부었으며, 퇴임 이후에도 ‘박연차 게이트’를 빌미로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일들에 대해서 먼저 고인에게 사죄를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2월 29일 오전 노무현 영결식이 서울 경복궁 광장에서 열렸다.

(·····)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은 오후 1시20분쯤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울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한 추모인파가 이 시간에는 수십만 명으로 늘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모자와 풍선이 서울광장 일대에 물결을 이뤘다. (·····)
  운구 행렬은 이어 서울역을 거쳐 화장장인 경기도 수원 연화장으로 이동했다. 운구 행렬은 당초 노제를 마친 후 서울역까지 약 30분 간 걸어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추모 인파가 몰려 서울광장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데 약 1시간 20분이 걸렸다. 이후 서울광장을 메웠던 수십만 명의 인파 대부분은 귀가했지만, 일부 추모객(경찰 추산 3만5000여명)은 “노 대통령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운구차량 행렬을 따라 걸었다(조선일보 5월 30일자 1면).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대형 사진과 함께 크게 실었다. 노무현은 죽음을 계기로 조선일보의 ‘저주’와 ‘막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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