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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는 여전사다[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772)] 이승호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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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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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다르크

“취임한 지 아직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몇 년은 지나버린 것 같이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서 법무부 장관을 한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어떤 모진 시련도 견뎌야만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 (추미애)

“저를 추스르고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소임을 되새기겠다... 해방 이후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하고 항상 좌절하기만 했던 검찰개혁의 과제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절박한 국민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기에 저의 소명으로 알고 받아들였던 것....국민을 믿고 제게 주어진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끝까지 이겨내겠다” (추다르크)

추미애는 추다르크다. 특히 요즘의 추미애는 불굴의 여전사라 할만하다. 추미애는 어떻게 추다르크가 되었을까. 추미애는 어떻게 불굴의 여전사가 되었을까.

추미애는 세탁소집의 2남 2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세살이 되자 집안이 아주 어려워졌다. 추미애는 외갓집에 맡겨졌다. 아마도 추미애의 전사기질, 뚝심, 오기는 이때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추미애의 뚝심은 초임판사 시절부터 유명했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은 100권 이상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규정, 출판사와 서점을 압색했다. 전국의 모든 검찰은 약속이나 한 듯 영장을 청구했고, 전국의 모든 법원은 딱 한 군데만 빼고 영장을 발부했다. 그 한군데가 어디냐. 춘천지방법원이었다. 그곳에는 초임 판사 추미애가 있었다. 그 뒤로도 추미애는 공안사건 관련 구속영장을 즐겨 기각하곤 했다.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그녀를 추다르크, 여전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인한 전사인들 고통과 회한이 없을리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만 미안해 하며 격려할 뿐이다. 아참, 추미애를 질투하여 그 아류가 생겨났으니 나다르크(나경원), 보수여전사(류여해, 이언주) 따위를 들 수 있다.

(2) 노다르크

알바니아에 추미애 비슷한 전설적 여전사가 있다. 17세기 오스만 제국과 맞서 싸운 노다르크(Nora of Kelmendi)다. 추미애만큼은 아니지지만 대단한 여성이었다.

오스만 세력과 맞서 싸웠던 전사 출신의 아버지는 “아들을 낳아 오랑캐를 무찌를 전사로 기르리라”는 꿈을 갖고 있었다. 과연 어느날 아이가 태어났다. 이런, 딸이었다. 아버지는 아기를 고아원에 보냈다. 이를 알게 된 고모가 아기를 데려다 “얘는 사내녀석이여”라며 사람들을 속여가며 키웠다. 아이는 사내아이로 자랐다.

아버지는 여전히 ‘전사 중의 전사’를 키우고싶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어느날 조카녀석이 운동신경도 뛰어나고 아이큐도 제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곤 전사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사내녀석’은 나이가 들면서 ‘아름다운 소녀’가 됐다. 산의 요정만큼 아름다웠다 한다. 이건 그냥 무명 동화작가의 짐작인데, 이때쯤 아버지와 딸이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딸을 고아원에 버린 것을 미안해 했으며 부녀는 화해했다고 한다.

자신들에게 대들며 맞서 싸웠던 자에게 과년한 딸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오스만 점령군 대장은 딸에게 청혼했다. (전설에는 딸의 미모가 출중하며 청혼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점령군의 정략적 갑질 아니겠어요?) 아버지는 그 청혼을 거절했다. “알바니아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오랑캐 대장에게는 딸을 줄 수 없다!”

오랑캐 대장은 기다렸다는 듯 거절을 핑계삼아 군대를 몰고 들어왔다. 오랑캐 군사들은 약탈, 강간, 방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훌륭한 전사로 성장한 노다르크가 분연히 나섰다. 그녀는 300여 명의 여전사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노다르크는 마침내 오랑캐 대장과 일대일로 맞장 뜨게 됐다. 누가 이겼을까? 노다르크는 오랑캐 대장을 죽여버렸다.

추다르크 파이팅! 노다르크 파이팅! 추다르크 파이팅! 추다르크 파이팅! 노다르크 파이팅! 추다르크 파이팅! 추다르크 파이팅!

▶Medieval Albanians in traditional costume having a party and sword dance

(부록)

알바니아의 노다르크

알바니아의 전설적 여전사. 오스만 제국과 맞서 싸웠다. Nora of Kelmendi was a 17th-century Albanian woman now legendary for her valor. She was the greatest woman warrior in the history of Albania.

노다르크의 탄생과 어린 시절

Nora’s father, a noble warrior, wanted a son to help him fight against the Ottoman Empire. When Nora was born, he abandoned her at an orphanage. His sister, knowing the doings of her brother, adopted Nora and raised her as a boy.


친부 밑으로....

Nora's biological father, having the desire to train some young man to become a fighter, decided to train the adopted "son" of his sister. Hence, unknowingly, he trained his own daughter to become a fighter.

▶"추다르크가 나보다 이쁜 건 사실이여...."(Zana,mountain fairy)

여자로구나!

As she grew up Nora turned out to be the most beautiful girl in Malsia. It is said that she was as pretty as a true Zana (mountain fairy).


오랑캐 대장의 청혼

A pasha who resided at the Rozafati Castle in Shkodra, heard of her too. He would send a man to Nora’s house and ask for her hand. However, Nora's family replied that the Albanian Canon did not allow for marriages with non-Albanians.

오랑캐의 공격

오랑캐 대장은 거절을 핑계삼아 군대를 몰고 들어왔다. 오랑캐 군사들은 약탈, 강간, 방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The pasha flew into a rage: "Either Nora will become my wife or I will I'll burn all of Malsia to ashes." The pasha then led his army and besieged Malsia. 때는 바야흐로 around the year 1637이었다. (The events happened around the year 1637, while other older sources place the culmination of Clementi-Ottoman clash during 1638 or 1639.)

▶뗘버리자구.... 부끄럽구먼....(Kelmendi족 남자들)

전사 노다르크

노다르크는 오랑캐 대장을 죽여버렸다. Nora had proved to be a warrior, but now she had to prove that she was wise too, in order to spare Malsia from destruction. Nora led an army of 300 women against the Ottomans who had set off to burn, pillage and rape. In battle, Nora came face to face with the pasha and kills him in a duel.

(관련기사)

추미애 “보수언론의 장관 거취 여론몰이…몸과 마음 지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지 아직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몇 년은 지나버린 것 같이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다”고 밝혔다.

추 장관은 19일 밤 페이스북에 “매일같이 사안의 본질은 제쳐두고 총장과의 갈등 부각과, 장관의 거취를 집중적으로 여론몰이 하는 보수언론 등을 보며 참을 수 없는 압통과 가시에 찔리는 듯한 아픔을 느끼지 않을 때가 없었다”고 적었다.

‘감찰논란’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이나 일부 언론이 제기하는 장관 교체설에 대한 언급이었다. 추 장관은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서 법무부 장관을 한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어떤 모진 시련도 견뎌야만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했다.

추 장관은 고 김홍영 검사의 어머니가 보낸 꽃다발 사진을 함께 올리며 “저를 추스르고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소임을 되새기겠다”고 적었다. 이어 “해방 이후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하고 항상 좌절하기만 했던 검찰개혁의 과제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절박한 국민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기에 저의 소명으로 알고 받아들였던 것”이라며 “국민을 믿고 제게 주어진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끝까지 이겨내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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