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언론역사 조선동아 대해부
노무현이 일으킨 ‘대연정’ 파동조선일보 대해부 5권 - 12장
  • 관리자
  • 승인 2020.10.28 13:12
  • 댓글 0

대통령 임기가 절반에 가까워지는 2005년 7월 28일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200자 원고지 52장의 편지를 통해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大聯政)’을 제안했다. 그는 대연정이 ‘실질적인 정권 교체 제안’이며 ‘정권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그 제안의 뉴스 가치를 낮게 평가했는지, 6면에 기사를 내보냈다.

  (······) 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여권 수뇌부 회의에서 연정을 처음 언급한 후, 이달 들어서만 세 번의 편지를 통해 연정을 강조했다. 분량은 원고지 9장→11장→52장으로 계속 늘어났다. 이날 편지는 노 대통령의 ‘연정서신 3부작’의 완결편으로 불릴 만하다. 다음은 편지 요지.
  “여소야대는 정상적 정치구조가 아니다. 세계 어디에도 여소야대로 국정을 운영하는 사례가 없다. 그래서 연정 얘기가 나온다. 열린우리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이라면 한나라당이 응할 리 없다. 대연정이라면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갖는 연정이라야 성립 가능하다. 이 연정은 대통령의 권력을 여당에 이양하고 동시에 여당이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는 것이다. 그 대신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선거제도를 고치자. 대통령은 정권을 내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하자. 결코 무슨 이익을 취하자는 게 아니다. 정권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어떤 속임수도 없다. 한나라당은 나라가 위기라고 말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얼른 국정을 인수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실제 양당의 노선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합법적 선거를 거쳐 당선된 대통령,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를 구성한 노무현이 “정권을 한나라당에게 넘겨주겠다”고 공언한 것은 그 이유와 배경이 어떻든 간에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정은 ‘현실 정치’아닌 ‘정치학 강의’

조선일보는 7월 29일자 사설(「대통령 연정 강의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에서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을 ‘현실 정치’가 아니라 ‘정치학 강의’라고 비난했다.

  (·····) 대통령이 한 달 전 연정 얘기를 처음 꺼낸 이후 몇 차례 그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야당들은 이미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 판단에 연정이 아무리 절실하다 할지라도 그 대상인 야당이 싫다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연정을 끈질기게 주장하는 주된 명분은 지역주의 극복이다. 대통령이 이번 제안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권을 내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선거제도를 바꿔 영남에서 열린우리당 의원이 당선되고, 호남지역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당선된다 한들 그것은 지역주의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감춘 것일 뿐 지역주의가 해소된 결과는 아니다.
  대통령은 또 연정을 통해 “우리 정치의 비정상적인 여소야대 구조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여소야대 구조는 우리뿐 아니라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미국이나 중남미 국가에선 수시로 나타난다. 여소야대 의석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작년 4월 총선에서 여대야소 의석을 만들어 줬던 국민이 1년간 이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을 지켜 본 뒤 새로 선택한 것이다. (·····)
  대통령의 연정 주장은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든 국민이 현실성이 전혀 없는 일로 간주한 지 오래다. ‘될 수 없는 일’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계속 당위성을 강요하는 것은 더 이상 현실 정치가 아니라, 정치학 강의다. 그리고 국민들은 대통령의 연정 강의를 계속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8월 1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의 ‘연정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이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와,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는 헌법 제66조를 읽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는 “선거법 하나를 개정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력까지 내놓겠다는 것은 헌법 파괴적인 생각”이라며 “정권을 교체할 권리는 오직 국민에게만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대통령이 중요한 국사는 제쳐놓고 장문의 편지까지 쓰면서 5번씩이나 연정을 말했기 때문에 (이를) 검토했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은 연정이 아니라 민생”이라며 “국민이 선택해줄 때까지 야당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연정하면 전체 국회 의석의 91%를 갖게 된다”며 “이것이 1당 독재와 다를 게 뭐냐”고 지적했다. 또 “노 대통령이 ‘여소야대’를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지난 4월 재보선 이후 국민의 뜻”이라며 “여소야대를 탓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능과 무책임을 자백하는 것에 불과하며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발상”이라고도 했다(조선일보 8월 2일자 7면).

조선일보는 8월 2일자 사설에 노무현이 ‘모욕’으로 느낄 수도 있는 제목을 달았다. 「상대가 싫다는데 왜 치근거리며 연정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일 기자회견에서 “지역 구도 해소를 위해 선거 제도를 고치면 한나라당에 정권을 주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공식 거부했다. 박 대표는 “선거법 하나를 개정하기 위해 대통령 권력까지 내놓겠다는 것은 헌법 파괴적인 생각”이라며 대통령에게 민생에 전념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대연정은 포기할 수 없다”며 “이번 주 중 야당과 접촉해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박 대표의 거부와 상관없이 계속 연정 문제를 제기해 나갈 생각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여권은 ‘연정 스토커’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상대가 싫다는데 왜 이리 쫓아다니며 치근거리는지 모를 일이다. 국정으로부터 도피하고 실정 책임의 절반을 야당에도 지우고 싶은 심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정권의 임기는 2년 반도 남지 않았다. 정권이 출범하면서 국민 앞에 제시했던 12대 국정과제와 이를 구체화한 100여 가지 계획을 추진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시간이다. 그 귀한 시간을 이렇게 낭비한대서야 도저히 국정을 책임진 정권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정권이 국민의 눈에 ‘연정 편집광(偏執狂)’처럼 비치게 된 데에는 자기 생각도 없이 대통령 말만 졸졸 좇아다니기에 바쁜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책임도 크다. 이들의 눈과 귀에는 ‘평당원’인 대통령만 보이고 “야당에 정권을 넘겨줘 내각제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건 대통령제를 규정한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학자들의 지적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
  대통령의 말에 일절 대꾸하지 않던 박근혜 대표가 공식적으로 “대연정은 안 한다”고 선언한 건 공연한 연정 소동을 되집어 넣을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이런데도 더 연정을 말한다면 국민은 이 정권에 국정 태업(怠業)의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이 끈질기게 대연정을 주장하자 조선일보는 8월 13일자 27면에 「대통령이 지금 정치학 강의 할 때가 아니다」라는 사설을 올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를 마친 후 “국무위원들께서 대통령이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할 것”이라며 취임 후 지난 2년 반 동안의 국정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했다. (·····)
  대통령은 “선거제도를 개편하면 대통령의 권력을 넘겨주겠다”는 자신의 연정 제안을 한나라당이 거부한 데 대해 “불확실성 때문에 겁이 좀 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지금 딱 우리 정권을 인수하면 이제는 잘 되는 일만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위기는 다 해소되고 시간만 흐르면 무조건 지표가 좋아지게 마련인데 그래도 자신이 없나 보다”라고 했다.
  5년 임기 중 절반을 마친 이 정부의 실적에 대통령의 이 말을 비춰 보면서 국민들 마음속엔 어떤 생각이 오가겠는가를 한번쯤은 짚어보고 이런 말을 내놓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국민들이 대통령으로부터 듣고 싶은 것은 이런 구름 잡는 듯한 정치학 강의나 정권의 업적을 자화자찬하는 듣기 거북한 이야기가 아니다. (·····)
  대통령이 여당 관계자들도 아닌, 국무위원들을 도열시켜 놓고 자신의 정치적 설계를 국민의 마음과는 딴판인 논리를 끌어들여 강의하는 모습은 이 정권이 만악(萬惡)의 근원이라도 되는 듯이 하는 30년 전 유신 시절에나 보던 일이다.


연정은 대통령의 ‘나 홀로 구상’

노무현은 8월 18일 청와대에서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조선일보 정치부장 양상훈은 8월 19일자 5면에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 이날도 노 대통령이 얘기하려 했던 것은 연정론이었지만, 그 톤은 달랐다. “내가 국민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제기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거다. 내가 싸움 건 것 비슷하게 됐는데, 힘이 들 때가 있다.”
  호소조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노 대통령은 연정론을 제기하게 된 계기를 4·30 재보선이라고 했다. 그 선거에서 여당은 0 대 23이라는 기록적인 참패를 당했다. 노 대통령은 “이 선거제도로는 선거만 하면 여소야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자신감을 잃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노 대통령은 “고민 좀 해보자” “내가 말 실수한다는 얘기 듣지만 결단은 함부로 안 하지 않느냐” “이거 좀 귀담아 들어봐줘야 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연정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자신도 준 것 같았다. “안 되더라도 생각하는 과정에서 정책 합의라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관심 좀 가져달라. 자료도 보내주고 하겠다” “결단으로 봐달라” “내가 다른 계산 있으면 언론이 박살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연정의 파트너인 한나라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거부감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걸핏하면 거국내각 하자고 하면서 같은 말인 연정은 무조건 거부한다.” “연정을 거부하려면 당당한 논리로 거부하라.” “내가 야당과 대화 안 한 게 아니라 대화를 거부당했다.” “저 사람들(한나라당) 혹시 여당 되면 대북정책 속도 더 낼 것이다. 콤플렉스 때문에”라는 말들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의 내용을 소재로 같은 날짜 35면에 「대통령이 국민과 초점을 맞추려면」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 국민 일반의 인식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고, 국가 지도자가 그    뒤만 좇는 것도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 일반의 인  식과 초점이 안 맞고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고, 국민 역시 대통령의 생  각을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나 홀로 구상’에 빠져들면서 자기 뜻을 헤아려 주지 않는 여론  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현상은 역대 정부 말기에도 벌어지곤 했던 일이다.    대통령도 그런 전임 대통령들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나라면 저렇게 안 할  텐데…”라고 마음을 다졌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국민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이 국민들과의 거리를 좁히려  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통령이 아무리 자기 생각을 이해시키려고 설  득해 봐도 국민들이 냉담하다면, 거꾸로 국민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거추장스럽게 느껴질지라도 국회를 상대로 얘기해야 한다. 또 ‘내 편’  원로만을 불러다 격려사를 듣기보다는, ‘네 편’ 원로도 만나 쓴 소리를 들어  봐야 한다. 잠시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키고 귀를 크게 열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 자리 그렇게 내놓고 싶은가’

8월 23일 박근혜는 대구 기계부품연구원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지역구도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라면서 “(노 대통령이) 자신이 없으니 딴 것만 자꾸 찾아다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정책을 놓고 (여야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이기는 것이 진정 국민통합을 이루고,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좋은 정책으로 국민에게 평가받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 정권이 2년 반 동안 제대로 한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지역정서에 의존하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정치는 불가능하다. 이제 과거 시대의 일”이라고 말했다(조선일보 8월 24일자 5면).

박근혜가 대연정 제안을 계속 거부하는데도 노무현은 대통령 임기 후반이 시작되는 8월 25일 밤 KBS의 <참여정부 2년 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나라당이) 연정 그 정도 갖고는 얽혀서 골치 아프니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현재의 분열·정쟁 구도로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뒤, 대타협의 정치를 한번 해보자는 것이 연정 제안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해 “형식 논리 가지고 게임하고 그러면 안 된다”면서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으로부터) 나한테 더 큰 요구가 있으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노 대통령은 “국민이 연정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국민을 제왕으로 생각하고 필요할 때는 직언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저는 대통령을 신하로 생각하고 지금 과감한 거역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조선일보 8월 26일자 1면).

조선일보는 8월 26일자 사설(「남은 2년 반, 국민을 편안하게 놓아주기를」)에서 노무현이 언제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맞은 25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국정운영 지지도가 29%인데, 29% 지지를 갖고 국정을 계속 운영하는 것이 책임정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내각제가 아니어서 재신임을 물을 수도 없고, 대통령직을 불쑥 내놓은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 굉장히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 말에 가슴이 철렁한 국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저러다가 대통령이 또 덜컥 뭔가를 내놓으면 그 혼란은 어찌 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었다. (·····)
  대통령은 “국민 여론이 부정적인데도 연정을 왜 고집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신하이고 국민이 제왕인데, 제왕이 틀렸을 때는 틀렸다고 직언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라면서 “국민이 깨닫기 시작하면 한나라당도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말로 대통령은 자신은 신하이고 국민은 제왕이라는 생각을 갖고 지난 2년 반 국정을 운영해 왔을까.
  대통령은 국정 지지율 29%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지만, 2시간 동안의 대통령의 말 가운데 잘못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책임은 오로지 언론, 전 정권, 야당, 그리고 잘못 형성돼 있는 민심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슈뢰더 독일 총리,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정권을 걸고 승부를 거는 모습에 부러움을 느낀다는 취지로 말했다. 판을 흔들어 보고 싶다는 뜻을 아직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 2년 반 대통령은 이미 수없이 판을 흔들어 왔고, 그 바람에 나라도 흔들렸고, 국민의 생활도 흔들렸다. 이제 국민은 대통령과 이 정권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갖지 않을 만큼 온갖 것을 겪을 대로 겪었다. 이제 국민에겐 “남은 2년 반은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대로 대통령의 임무를 차분하게 수행하고, 우리를 좀 편안하게 놔달라”는 희망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조선일보 고문 김대중은 8월 29일자 30면에 나온 칼럼에서 “대통령 업무에 전념하든지 정 못하겠으면”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헌법적 절차를 스스로 밟”으라고 ‘권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고언 하나 하고 싶다. 노 대통령이 지난 25일 TV에 나와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도…” 운운한 다음날, 지난 선거에서 노 후보를 찍었다는 한 독자는 전화로 “다른 소리 다 그만두고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열심히 성심껏 일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끝났으면 많은 국민의 박수를 받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바로 그것이 다수 국민의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제발 말을 삼가고 열심히 대통령 업무에 전념하든지 정 못하겠으면 말로만 그러지 말고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헌법적 절차를 스스로 밟든지 했으면 한다. 이제 사람들은 노 대통령의 ‘말’에 지쳐 가고 있다. “못해 먹겠다”는 것도 한두 번이지 2년 반 동안 열두 번이나(그것도 공개적인 경우에만) 그만두거나 권한을 내놓고 싶다고 했으면 그것은 진정 대통령 자리나 업무가 싫어졌거나 아니면 아주 불성실한 ‘입버릇’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일반 직장에서 그 정도면 벌써 그만뒀거나 쫓겨났거나 했을 것이다. 하물며 만인지상(萬人之上)의 대통령 자리를 두고 열두 번씩이나 퇴짜를 놓는 식으로 말했으면 그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우선 국민들 꼴이 말이 아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들로서는 일종의 괴리감 내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그만두고 싶다는 대통령이 그 업무에 성실히 임할 리가 없다고 상정한다면 국민은 성실한 봉사자를 잃은 셈이다. 손해 보는 것은 국민이다.
  노 대통령을 이해하려는 쪽에서는 그의 잦은 발언이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얘기들 하는 모양인데, 대통령 임기제인 우리 헌법체제 하에서 대통령 자리를 놓고 승부를 건다는 것은 국정을 ‘게임’의 차원으로만 보는 ‘낮은 정치’의 술수일 뿐이다. 노 대통령은 그의 ‘숙원’인 지역 구도 개혁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지역 문제는 대통령 자리를 희생양으로 요구하는 대가성(代價性) 성질의 것이 아니다. 또 야당이 깨끗이 거절했는데 자꾸 거론하는 것은 대통령이 치근거리는 것처럼 보여 보기 사납다. 또 어떤 사람은 이것을 ‘업적 부진에 따른 강박관념’의 표현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는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업적 부진을 시인하는 것이며 그것은 사실상 ‘그만두는’ 충분한 사유로 작용할 뿐이다. (·····)
  사람들은 지금 이 땅의 리더십에 대해 불안하고 또 불만이면서도 헌법적 비상사태나 정치적 혼란 없이 우리가 처한 정치·경제·국제·안보의 위험지대를 조속히 조심스럽게 건너가 주기를 바랄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런 국민의 심경을 자신에 대한 정치적 지지나 집착으로 여겨 그것을 걸고 다른 정치적 산물을 얻어내려는 승부를 거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은 “제발 그만두겠다는 소리 그만 하든지 아니면 정말 그만두든지 해야지, 지겨워서 못 살겠다”는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우리는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과 선조를 보며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배운다.


‘대연정 제안’의 허망한 결말

8월 30일 노무현은 청와대에서 가진 여당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대연정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새로운 정치문화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고 전제된다면 2선 후퇴나 임기 단축을 통해서라도 노무현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시작할 수도 있다는 의지와 결단도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지역 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을 받아들이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해서라도 이를 관철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여당 의원들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은 전략전술 차원이 아닌 역사적 성찰과 깊은 고민 끝에 대통령직을 걸고 제기한 것”이라며 “대연정을 하면 총리 지명권과 입각만 주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고 의원들은 전했다.
  여당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나에게 지금 지역구도 해소와 대통령직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지역구도 해소를 선택하겠다”, “대통령 후보 때도 후보직과 지역구도 해소를 선택하라고 했다면 대통령 후보직을 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조선일보 8월 31일자 1면).

노무현은 9월 7일 청와대에서 대연정을 논의하기 위해 박근혜와 회담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연정 및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을 제안했다. 박 대표는 거부의 뜻을 밝히고, 더 이상 연정 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담 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중단될 성질이 아니다”라며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여러 각도에서 말할 것”이라고 노 대통령이 연정 주장 등을 계속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회담에서 “포용정치의 대표적 사례는 정적이나 야당 정치인의 입각”이라면서 “거국내각이 전형적인 사례로 거론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민생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거국내각, 초당 내각을 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그것은 연정의 한 형태가 아니겠는가”라면서 “말씀을 거둬달라.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은 국민이 줄 때만 또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때만 권력을 부여받을 수 있다”면서 “(연정 제안은) 야당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말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국민은 대통령이 경제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면서 “그만둔다는 말도 그만 해달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또 “고질적인 비효율 정치를 넘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선거구제를 바꾸자는 것”이라면서 “선거구제를 고쳐서 국가를 위해 나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국민들의 지역주의는 서서히 약화되고 있는데 정치권이 확대하고 있다”면서 “선거구제 개편만으로 지역주의가 해소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행정구역 개편도 지역주의 극복의 한 방편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9월 8일자 1면).

노무현이 아무리 진지하게 대연정을 제안해도 박근혜와 한나라당은 ‘거부’로 일관했다. 보수언론이 한나라당의 그런 움직임을 적극 뒷받침했음은 물론이다.
노무현과 박근혜의 회담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자 조선일보는 9월 8일자 35면에 「연정,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면 새 시작인가」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 대통령은 회담에서 “야당에서 국정을 위기라고 생각하니까 여야 협력을 하자는 것”이라며 여야 협력의 방식으로 연정을 수락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회담 모습은 대통령의 연정 제안이 오히려 여야 협력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대통령이 “여야가 협력하려 한다면 야당이 연정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한, 야당 입장에선 “야당의 길을 포기하고 대신 대통령에게 권력을 나눠달라는 연정”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는 여야 협력에 선뜻 나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지난 7월 5일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처음 연정 제안을 꺼낸 이후 국민과의 대화에서, 여당 의원들과의 만남에서,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친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연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힐 만큼 충분히 밝혔다. 그리고 이날 대통령은 연정의 상대편 당사자인 박 대표를 만나 공식 제안했고, 박 대표는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문제는 이런 회담 결과를 대통령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이것으로 두 달간 나라를 들쑤셔 놓았던 연정 정국을 접을 것인가, 아니면 야당을 향한 연정 공세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고 밀고 나가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의 생각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남은 2년 반의 대통령 임기 동안 나라의 모습이 좌우될 것이며 국민들은 지금 그 점을 걱정하고 있다.

노무현이 일으킨 ‘대연정 제안’ 파동에 관해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부정과 긍정으로 나뉘었다.

  2005년 9월 4일 성공회대 교수 김동춘은 열린우리당 신진보연대 출범식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적 취약성이 정권의 위기를 불러왔다”며 “(연정 제안은) 목표와 수단이 바뀌었다. 오기와 배짱, 열정과 도덕심만으로 이끌어 가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최종 목표는 지역주의 극복이 아니라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고, 지역주의는 그 최종 목표를 이루는 데 큰 걸림돌일 뿐인데,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은 목표와 수단이 전치(轉置)됐다”고 말했다. (···)
  반면 상지대 교수 김정란은 한 인터넷 매체에 쓴 글에서 “보수언론들은 원래 대통령을 깎아내리고 모독하는 일이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행동하는 집단이니 제쳐놓더라도, 진보적 언론과 진보 지식인들까지 나서서 대통령을 때리는 데 여념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며 “진보 지식인들의 몰이해는 참으로 바라보기 무참하다”고 밝혔다(<한국현대사산책-2000년대편 3권>, 365~366쪽).

노무현의 진정성과 굳은 의지와는 관계없이 ‘대연정 제안’은 정치권과 언론에서 무수한 논란을 일으킨 뒤 아무런 결실도 없이 대중의 관심권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