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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과 한국의 보수, 진보[국보법 연구(22)]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ㆍ언론사회학 박사
  • 관리자
  • 승인 2020.07.2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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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권의 제1여당은 진보, 제1야당은 보수로 지칭되고 있으나 그 속내를 살피면 교과서적인 보수, 진보와는 큰 차이가 있다. 국가보안법이 허용하는 제한된 사상의 공간 속에서 정당의 영역은 좁고 기형적이다. 진보는 특히 막힘없는 상상력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 세력의 타격은 크고 심각하다. 한국의 정당들은 국보법의 품에 안겨 자기검열을 일상화하는 세월이 장기화되면서 국보법의 폐해에 대해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 거대 정당은 2019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내로남불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공통된 체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정권 교체가 거듭되면서 사회 지배층으로 자리매김한 거대 여야 정당은 권력과 부의 획득, 세습에 유사한 수법에 매달리는 비정상이 일상화되어 있고 주류정치권, 언론 등이 큰 틀에서 양분돼 대립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당간판과 구성원만 다를 뿐 대동소이한 정치적 행태를 보이는 거대 정당의 핵심세력이나 그 지지층들은 유불리를 따지는 진영논리를 최우선시 하는 계산법의 포로가 되어 있다. 한국의 거대 정당들은 객관적 상황 변화, 즉 집권 여부에 따라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하면서 그에 대한 수치심도 없는 한심한 삼류 정치집단의 모습이다. 박원순 시장장례 방식과 피해자 문제 등에서도 내로남불이 확인되고 그에 따라 저급한 논란과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대도 이들 거대 여야 정당과 궤를 달리하면서 진정한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치 세력은 성장은커녕 그 존립기반도 위협받는 위태로운 모습인데 이 또한 국보법 탓이라 하겠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보법에 정치권이 장악, 포위되어 있다는 사실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 정권은 국보법이 진정한 남북교류, 평화통일 노력을 저해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개폐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한국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거대한 모순과 비정상은 이승만이 만들어 놓은 국보법의 테두리 안에 갇히고 그 독기에 중독된 데서 비롯된 형국이라 하겠다. 대중사회 또한 국보법의 영향으로 사상과 표현의 영역은 제한적이라서 활발한 토론이나 공론화를 통한 열린사회의 모습은 자꾸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를 놓고 북미간 힘겨루기와 남북간 갈등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반도 정전상태의 장기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가장 큰 모순의 일부인 국보법과 한미동맹에 대해 침묵하는 정치권의 태도는 여야, 진보 또는 보수의 구별 없이 엇비슷하다.

한국의 보수 진보와 서구의 그것은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다. 우선 그 역사적 형성과정이 다르다. 서구의 보수와 진보는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정치권력의 쟁취를 위해 대중을 상대로 경쟁해왔다. 두 사상이 지향하는 공통점은 유권자에 대한 서비스다. 그 서비스는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고 경쟁 속에 진화하기도 한다. 서구의 보수와 진보는 노동운동과 복지, 사회적 소수자 등의 분야에서 큰 차이를 나타냈다. 보수는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발상에 대해 가혹하고 복지나 소수자 보호 등에 인색했다. 그러나 유권자에 대한 서비스 경쟁이 집권의 관권이 되면서 서구의 보수와 진보 차이가 미세해지고 있는 추세다.

한국에서 진보 보수의 뿌리는 한반도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진보, 보수는 특히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매우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국보법에 의해 사상의 자유를 제한받는 한국사회에서 막힘없는 진보와 보수의 힘겨루기나 갈등은 존재하기 어려운 풍토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보수는 조선시대의 지배층, 친일세력, 친미세력과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을 혈맹으로 여기면서 북한에 대해 적대적이다. 하지만 분단 상황을 악용해 안보 우선주의를 앞세워 정략적, 정파적 이해관계를 챙겨왔다. 보수층은 해방이후 한국 사회의 주류세력이 되면서 부정부패의 온상처럼 되었다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당하면서 21대 총선에서 패배했다.

한국의 진보는 보수 세력에 대한 비판 또는 대항적 의미를 지닌 세력으로 출발했다. 진보세력은 보수세력이 지닌 속성과 반대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했고 한국 사회의 비주류로 인식되었다. 진보는 보수의 치명적 약점인 친일, 친미 등 외세 의존적 성향에 비판적이고 북한과의 평화공존, 협력을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은 해방이후 미군정이 친일파를 친미파로 변신시키는 과정을 강행하면서 그 생존 공간이 좁아졌고 이승만이 국보법을 만든 1948년부터 본격적으로 탄압받기 시작했다. 이승만이 친일세력을 온존시키면서 기울어진 정치적 운동장으로 만든 국보법은 수구보수 세력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측면이 강했다. 국보법은 민주화를 탄압하는 주요 탄압장치였다.

이승만의 독재에 대한 저항인 4.19 혁명과 박정희 5.16 군사쿠데타 전후 수년 동안 한국에서의 혁신 정치, 진보 정치 세력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이승만의 조봉암 사법 살인과 박정희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불법 살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조현연은 “이승만의 조봉암 처형이 진보정치를 죽인 것이었다면,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진보정치를 꿈꿀 능력마저 죽여 버린 악마의 시대였다.”라고 썼다<진보 정당 운동사-진보 정당'을 위한 고난의 행군, 왜 필요한가?" 조현연, 2010년 1월. http://blog.ohmynews.com/sultanyj/315489>.

‘멸공 대통령’ 이승만은 죽산 조봉암을 최정점으로 한 혁신 세력을 두려워했고 그것은 조봉암 사법 살인으로 이어졌다. 조봉암(1899년생)은 1925년 조선공산당 중앙 검사 위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3년 일제에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39년까지 복역한 후 석방되었다. 그는 1945년 해방이 되자 인천 건국준비위원회의 책임자, 19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 인천 책임자 등으로 활동하다가 1946년 6월 23일 “노동계급 독재·자본계급 독재·공산당 반대”를 내용으로 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반공노선을 천명하며 전향했다. 그는 1948년 5월 10일의 남한 단독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제헌 국회의원이 되었고, 헌법 기초 위원·농림부장관을 지낸 후 1950년 제 2대 국회의원에 재선된 뒤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어 연임하였다<김한성 연세대 교수의 죽산 서거 50주년 토론회 발제문 중에서>.

조봉암은 1952년 2대 대통령 선거에서 혈혈단신 출마해 11%대의 지지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당시 보수야당의 조병옥 등은 조봉암을 거부하고 이승만을 지지했다. 그는 1956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진보 인사들을 ‘사민주의’라는 기치아래 규합해 진보당을 만들었고 ‘소련의 세계 침략’을 규탄하면서 ‘자유 진영의 보루 미국’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그리고 대규모 기간시설의 국유화를 주장하면서 중소기업의 육성을 요구했다.

조봉암은 1956년의 3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료제도, 국가보장교육제도,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 농촌 고리채 지불 유예 등을 공약으로 내건 결과 23.8%의 표를 얻어 정계를 당황케 했다. 그는 ‘냉전적 사민주의’라는 비판 속에서도, 관료집단과 독점자본 위주의 한국 정치 패러다임 전체를 바꿀 공약을 제시해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실제 선거에서는 조봉암이 이승만을 눌렀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엄청난 부정개표 때문에 선거결과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당시 보수 야당 민주당은 부통령 선거의 개표를 공정하게 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고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참관인을 모두 철수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조봉암은 “투표에는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한겨레21 2004년 4월 28일>.

혁신 세력과 지지 수위를 알아챈 이승만 정권은 용공 조작이라는 상투적 수법으로 1958∼59년에 진보당을 해체시키고 조봉암을 ‘법살’(法殺)했다. 당시 조봉암에게 적용된 법규는 형법상 간첩죄와 국가보안법이었다. 민주당은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큰 조봉암을 이승만이 진보당 사건을 일으켜 제거할 때 침묵했다. 이런 모습은 2014년 박근혜 정권이 통합진보당을 해산할 때 나타난 민주당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한편 민족일보 사건으로 5·16 군사정권에 의해 32세 때 사형당한 조용수는 1930년 경남 진양 태생이다. 6·25전쟁 시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메이지대 정경학부에 편입한 조용수는 민단에서 일했으며 1956년에는 재일동포 북송반대운동, 1959년에는 조봉암 석방운동에 앞장섰다.

4·19혁명이 일어나자 조용수는 국내로 들어와 사회대중당 후보로 경북 청송에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조용수는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평화통일론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신문 발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창간하게 된다. 그러나 5·16 쿠데타 세력은 통일과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언론활동을 하던 민족일보를 강제폐간하고, 이 신문사 사장인 조용수씨를 사형시켰다. 쿠데타 세력은 1961년 5월18일 조 사장을 간첩혐의자로부터 공작금을 받아 신문을 창간하고 북한의 활동을 고무 동조한 혐의로 체포한 뒤 같은 해 6월 제정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을 소급 적용, 12월21일 처형하고 민족일보를 폐간 조치했다.

쿠데타 세력은 '반공이 국시'임을 내세워 급조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특별법을 소급적용해, 조 사장 등에게 "조총련계의 자금을 끌어들여 창간해 이북괴뢰집단의 주장에 동조하는 논조를 폈다"는 혐의를 씌워 재판에 회부했다. 조 사장은 5.16쿠데타가 발생한지 5개월만인 그 해 12월 만 31세의 나이에 사형을 당했다. 간첩 이영근에게 조총련계 자금을 받아 신문을 만들면서 북한 괴뢰집단이 주창하는 평화통일을 선전했다는 것이 당시 혁명재판소가 내걸었던 조 사장의 죄목이었다.

하지만 당시 조 씨에게 공작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이영근은 1990년 정부에 의해 국민훈장을 받는 등 간첩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쿠데타 세력에 의해 조작된 '사법살인'으로 드러난 것이다<한겨레, 2001년 2월 16일, 경향신문, 2001년 12월 12일>. 조 사장의 유족은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 사건 발생 47년만인 2008년 1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승만 정권 말기와 박정희에 의해 혹독한 탄압을 받은 한국의 진보세력은 80년대 이후 겨우 기지개를 켰지만 21세기 들어 박근혜 정권이 통합진보당을 강제 해산하는 탄압을 당했다. 박근혜 정권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정치공작 실상이 드러나 시민사회의 비판과 퇴진 요구가 거셌던 2013년 9월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터뜨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다수의 통진당 당원 등을 구속했다. 이 사건은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피의사실을 유포하고 언론이 받아쓰는 일이 반복되면서 통진당이 반역집단으로 매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재판 진행 과정에서 ‘내란음모’, ‘지하혁명조직(RO)’ 등이 실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유일한 증거인 국정원 협조자가 불법 녹취한 녹취록 또한 변조된 것이 드러나는 등 논란이 자심했다. 2014년 6월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재판장 이민걸)는 이 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관련자 전원에게 적용했던 원심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국정원과 검찰이 공소 제기한 이른바 ‘지하혁명조직(RO)’에 대해서도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법원장 양승태)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015년 1월 22일 선고 공판에서 지하혁명조직(RO)의 실체를 인정치 않고 ‘내란음모’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석기 전의원과 김홍렬 전 경기도 당위원장에게는 ‘내란선동’혐의를 인정했으며, 관련자 전원에게 국가보안법 관련혐의를 인정, 유죄로 판단하고 이석기 전 의원에게는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하는 등 관련자 전원에게 고법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의 이런 판결은 ‘지하혁명조직’이 존재하지 않고 ‘내란음모’도 없는데 ‘내란선동’을 했다는 기이한 논리를 제시한 것으로 웃음꺼리가 되었다.

그런데 ‘내란선동’혐의에 대해서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내란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내란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주요한 부분, 즉 시기, 대상, 수단 및 방법, 실행 또는 준비에 관한 역할 분담 등의 윤곽이 어느 정도 특정되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피고인 이석기, 김홍렬이 선동한 내용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내란 행위의 주요한 부분의 윤곽이 개략적으로나마 특정한 폭동이라고 볼 수 없다.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 보더라도 피고인 이석기, 김홍렬이 내란을 선통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통합진보당 소송과 관련해 일선 법원 재판부에 판결을 바꾸도록 종용하거나 선고를 미뤄 다른 재판부가 맡도록 하는 등 집요하게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2018년 10월 확인됐다<한국일보 2018년 10월 31일>.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 수사 결과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결정 후 법원행정처는 2016년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과 공모해 김미희·김재연·오병윤·이상규·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에 의견서를 재판부에 전달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이른바 위헌정당심판청구사건 선고 공판을 열고 박한철 헌재소장이 ‘지혁명조직(RO)’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이 상실된다는 선고문을 낭독했다. 박 소장은 “통진당은 강령에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담고 있고 종북세력인 경기동부연합 등이 주도하는 정당으로 정당의 목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사건과 비례대포 부정경선사건,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등의 활동을 감안하면 정당의 활동도 위헌적이다. 또한 정당이 해산되었는데 소속 국회의원을 남겨두는 것은 정당이 계속 존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문규정이 없지만 의원직도 상실된다고 봐야 한다”고 선고문을 낭독했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이석기 의원 등의 세력이 정당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 이들을 제외하면 통진당은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정당 활동을 영위한 만큼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협을 가지지 않았다”면서 “정당 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 활동에 대한 제약은 극히 제한적으로 최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심판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헌재의 선고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날로부터 2년이 되는 날, 헌법재판소가 해산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그 자체’라며 ‘대한민국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사법살인’이라고 규탄했다. 한편 박근혜는 헌재의 통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박 전 대통령은 법무부가 진보당 해산 청구를 헌재에 재기할 때 해외에서 결재하면서 진보당 해산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이석기 전 의원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지하혁명조직(RO)’에 대해 엇갈린 결론을 제시하면서 국민적 혼란과 함께 법체계의 미비점이 드러났다<미디어라이솔 2015년 1월 23일>. 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 사건 판결에서 ‘지하혁명조직(RO)’은 실체가 없다고 판단한 반면,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지하혁명조직(RO)’을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적 쟁점을 놓고 두 최고 사법 기관이 다른 판단과 결정을 한 것은 박 정권이 자행한 통진당 해산 등의 결정이 얼마나 문제가 심각한 것인가를 드러낸 수많은 논란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 사법 살인 사건은 민주주의와 헌법이 회복되면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옛 통합진보당 소송과 관련해 일선 법원 재판부에 판결을 바꾸도록 종용하거나 선고를 미뤄 다른 재판부가 맡도록 하는 등 집요하게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한국일보 2018년 10월 31일>.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결정 후 법원행정처는 2016년 1월 김미희·김재연·오병윤·이상규·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에 의견서를 재판부에 전달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국보법 위반 사건이 속출하면서 이른바 진보는 더욱 위축되었다. 특히 박근혜 정권은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사실상 한국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작성된 ‘좌파 척결 블랙리스트’를 통해 좌편향 인사 8 천여 명, 3천여 개 문제 단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이는 박이 취임한 2013년 8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며 ‘좌파 배제’를 지시했고, 비서실장 김기춘은 자신이 주재한 회의 등을 통해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뿌리 깊은 좌파 척결에 불퇴전 각오로 싸워라”고 독려한 것으로 밝혀졌다<한겨레 2017년 1월 31일>.

박근혜 정권의 전방위적인 민주주의와 헌법 파괴, 공안통치성 공작 정치 등에 대한 적폐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물론 국보법이 엄존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서구적 사상 경쟁이나 투쟁을 벌일 수 없다. 국보법 때문이다. 박근혜 파면으로 조기 실시된 19대 대선 유세장에서 국보법은 종복 몰이의 뿌리로 여전히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의 다음과 같은 종북 몰이 발언이 나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오늘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라는 선전 매체에서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도대체 이 나라 대통령선거에서 북한이 선택하는 후보를 우리가 밀어서야 되겠나. 문 후보는 당선되면 김정은한테 제일 먼저 간다고 하고 북한에서는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한다. 이게 한국 대통령선거냐, 북한 대통령선거냐.”<연합뉴스2017년 4월 18일>.

홍 후보가 위와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은 국보법에 세뇌된 한국 사회 유권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 자신에게 유리한 것인가를 계산한 결과라 하겠다. 국보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부당 이익에 눈이 먼 작태다. 북한 핵과 미사일, 사드 등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에게 북한을 연계시킨 종북 몰이 발언을 하는 것은 국보법에 의한 기울어진 선거 운동장이 여전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유권자의 최대의 정치 잔치인 대선 유세 과정에서 매카시즘이 난무하는 현실은 이 사회의 후진성, 야만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드러냈다.

한국 사회에는 상한선 없는 논쟁이 진보, 보수간에 존재하지 않았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국보법이 그것을 막고 있다. 국보법은 북한을 반드시 괴멸시켜야 할 불구대천의 원수로 규정하고 경계하기 때문에 북한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 평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북한이 잘했다거나 긍정적이다 또는 합리적이다’라는 표현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 사항이고 ‘북한은 무조건 잘못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한반도 사태에 대해 언론 보도도 그런 식이다. 즉 남북관련 보도는 한결같이 ‘미국의 대북 조치가 100% 타당하고 한국이 미국을 추종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며 ‘한반도 위기 사태의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기사만을 쏟아낸다. 이런 보도를 일상적으로 보고 들은 남한 주민들은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문제가 생길 경우 ‘다 네 책임이야’라면서 몰아붙이는 배타적, 적대적 태도만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상의 자유는 다양한 정치 집단이 등장할 수 있는 공간의 허용을 의미하기 때문에 유럽 국가에서는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정당이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선거에서 정당 연합이 흔하다. 한국에서는 합당 또는 선거 제휴 형식이 흔할 뿐 정당 연합은 찾아보기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정당도 선거철만 되면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과도 선을 긋는 보수적인 태도를 감추지 않는다.

한국에서 흔히 양당 중심 제를 강조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 보면 사상의 자유가 억제된 현실을 더욱 고착화시킬 그런 독소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국보법은 다양한 정치적 발상이나 그런 정당의 존재를 불허하기 때문에 정치이념이 비슷한 정당만이 살아남게 되고 그 결과는 오늘날 확인되듯 대단히 비생산적이다. 즉 정당들이 정책과 비전 대결을 벌이기보다 혈연, 지연, 학연에 좌우되면서 후진적 정치만이 판을 친다.

유럽 국가들처럼 유권자들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는 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 한국에서 시급히 국보법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서구와 같은 다당제 정치는 자리 잡기 어렵고 민주주의 발전도 지체될 것이다. 오늘날 자꾸 극심해지는 진영논리의 폐해도 국보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부인키 어렵다. 내로남불은 국보법의 기본 취지,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북한을 괴멸시키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고 있는 것과 유사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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