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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 사태와 김현철조선일보 대해부 4권 - 5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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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1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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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들 김현철의 권력 농단에 대한 우려는 1994년부터 심심치 않게 나왔지만, 정권이 레임덕 상황으로 빠져 들어가고 한보 사태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1997년 초에는 더 이상 언론의 입을 틀어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의 재계 서열 14위이던 한보그룹이 부도를 내면서 이와 관련된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 대출 비리가 드러났으며 동시에 김현철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한보그룹의 부실대출 규모는 5조7천억여 원에 달하는, 당시까지로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였다.

국민회의 총재 김대중은 1월 25일 한보에 대한 대규모 대출 의혹과 관련해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와 양해 또는 긍정적 의사 표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김 대통령도 필요하면 조사를 받아서 진상을 밝혀내도록 강력히 밀고 나가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조선일보는 1월 25일자 4면에 「“규모 워낙 커 권력 핵심 개입 없인 불가” / 야권, 젊은 부통령설·청와대 인사 거론 / ‘한보 특혜’ 배후설 난무」라는 기사를 싣고 김현철의 연루를 암시했다.

(…) 한보의 뒤를 봐준 실세가 누구냐는 의문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면서 (…) 시간이 흐를수록 널리 번지고 있는 것은 ‘권력 핵심 인사’설이다. 한보의 한 전직 간부는 25일 “이 핵심 인사가 정보근 회장과 술도 자주 마시며, 친하게 지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자민련 안택수 대변인은 24일 “시중에는 배후에 민주계의 젊은 부통령이 개입돼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김영삼 대통령은 젊은 부통령의 개입 여부를 개혁 차원에서 즉시 수사에 착수하라”고 말했다. 국민회의 설훈 부대변인도 “한보에 대한 사상 유례 없는 수조 원의 특혜금융은 권력 핵심부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현철은 자신에게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는 것에 대해 “왜 한보철강과 관련된 소문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고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며 “야당이 그런 식으로 의혹을 제기한다면 법적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2월 11일 김영삼을 20년 동안 ‘모셔 온’ 신한국당 의원 홍인길이 한보그룹 총회장 정태수로부터 1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지만 검찰은 여전히 김현철에 대한 수사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전 내무부장관 김우석과 신한국당 의원 황병태, 국민회의 의원 권노갑  등 거물들을 잇달아 구속 수감했다.

사태를 주도하지 못하고 지켜만 보던 조선일보가 2월 13일자에서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김 대통령의 위기」라는 사설을 통해 “정권의 출범에서부터 도덕성을 전면에 내세워 공직자의 재산 등록, 실명제 실시, 정치자금법을 비롯해 선거관계법의 개정, 두 전직 대통령의 소추와 대기업 비자금의 척결작업 등을 추진해온 이 정부는 그 측근들의 비리로 이제 그들 세력의 위선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이제는 ‘경제 위기’와 ‘체제 위기’를 내세우는 것이 ‘한보 감추기’를 위한 호도책이라고 믿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알”고 “더 늦기 전에 스스로 결단을 내려 (… )‘한보’를 제대로 밝혀”내라는 것이었다.

이어 2월 15일자 사설(김현철 씨 조사받아야」)은 “하나는 비록 설이긴 하나 한보 사태의 배후 핵심 인물로 처음부터 지목돼 왔기 때문에 김 씨는 그의 관련 여부를 명확히 가리지 않고는 이 사건을 마무리할 수 없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김 씨가 결백하다면 ‘배후설’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라며 처음으로 김현철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그런 점에서 김 대통령의 지시로 김 씨가 조사를 받게 되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종전의 사설에서 밝혔이듯, 김영삼의 결단에 뒤늦게 박수친 꼴이지 언론의 사명이나 조선일보의 용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아무튼 한번 터부가 사라지자 조선일보는 거침없이 김현철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2월 16일자 사설(「‘김현철 책’ 왜 ‘한보’에?」)은 한보그룹 서류보관 창고에서 김현철의 저서 1만여 권이 발견됐다는 보도를 두고 “김 씨의 저서가 왜 대량으로 한보 창고에 쌓여 있었는지 그 경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나섰다.

검찰이 그동안 “시중에 떠도는 설만 갖고는 수사할 수 없다.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수사하게 될 것”이란 입장을 보여 온 만큼 김현철의 책을 구입하고도 임직원에게 나눠주지 않고 창고에 쌓아 둔 점 등이 증거가 되지 않겠느냐는 제언인 셈이다. 검찰이 여론에 밀려 김현철 조사에 나서기로 하면서 ‘고소인 자격’ 운운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런 일련의 파행적이고 비상식적인 과정을 보면서 도대체 대통령의 아들이 뭐 길래, 김 씨가 누구이길래,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왕조 시대도 아닌데 왜 이렇게 구차하고 치사한 편법들이 나오는지 개탄스럽다”고 했다. 불과 3~4일 전의 조선일보가 그랬는데도 말이다.

같은 날짜 ‘류근일 칼럼’(「집권층 정신 덜 차려」)도 작정을 하고 나섰다. “김현철 씨의 ‘고소인 자격’ 출두라는 방식을 보니 사태가 극한점에 달했는데도 집권층은 아직도 정신을 덜 차린 것 같다”는 것이었다.

(…) 사태의 핵심은 자명하다. 정부·여당이 민심의 가장 중심적인 과녁을 비켜가고 있는 데서 모든 사단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시중에서는 사석에서 모이기만 하면 대통령 아들인 김현철 씨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 이야기로 끝난다. 김현철 씨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많은 국민들이 김현철 씨를 이 정부의 사실상의 막후 실력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의 정치적 현실성이다. 국민의 이런 시선을 정부·여당은 그저 ‘유언비어’라며 스쳐가려고만 한다. (…) 그런 식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김현철 씨는 김 대통령에 대해 더욱 누를 끼치고 해를 입히는 아들로 되어갈 것이다.
(…) 김 대통령은 곧 대국민 담화 발표와 대대적인 당·정 개편을 통해 시국을 수습할 계획이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그런 ‘핵심 중의 핵심’ 사항을 건드리지 않은 채 또 다시 얼굴마담들의 재배치를 통한 ‘김심 체제’의 지속적인 강화에만 초점을 둔 것이라면 수습의 효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 지금까지의 틀이 총체적인 아노미에 빠졌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남은 임기 동안 ‘빈 마음’으로 국가를 다음 세대에게 안전하게 물려줄 때까지 최선의 관리자 역만을 하겠다는 겸손과 비장함이 체감돼야 하는 것이다.

아직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도 김현철의 혐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김영삼이 뒷방에 물러나 앉아 있어야 문제가 풀린다는 무시무시한 권고인 것이다.

이후 2월 25일 김영삼의 대국민 사과, 4월 7일~5월 1일 한보 청문회, 5월 17일 김현철 구속에 이르기까지 정국은 온통 ‘한보 파동’으로 요동쳤다. 조선일보 역시 다른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김현철 이야기로 날을 지새우며 김영삼 정권을 몰아부쳤다. 뒤늦게나마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멋쩍었던 지 3월 22일자 ‘김대중 칼럼’(「김현철’안 썼나 못 썼나」)은 언론의 속사정을 토로했다.

〈보고-보도 금기로〉
김현철 씨의 ‘대통령 행세’가 불거지면서 언론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있음을 느낀다. 본격적인 힐난은 아니지만 “그동안 기자들은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냐” “요즘 언론이 큰 충격을 받은 듯이 김현철 사건을 보도하는 것을 보면 역겨움을 느낀다”는 내용의 지적이 여기저기서 들려고 있다.
필자의 처지에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몰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젊은이가 그러저러한 행동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는 권력 주변 그리고 권력 주변을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그것을 보도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어느 조직이건 관례적으로 용인되는 것이 있듯이 언론계에도 터부랄까 관례적으로 쓰지 않는, 또는 못하는 무엇들이 있어왔다. 대통령의 가족과 사생활이 그 중의 하나다. 프랑스의 언론이 정치인의 여자 얘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 일본의 언론이 은행에 대한 비판기사를 취급하지 않는 것, 이탈리아가 마피아를 건드리지 않는 것 등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한국의 언론은 너나 할 것 없이 현직 대통령의 가족에 관련된 어떤 비리나 비상식적인 사건을 보도한 적이 별로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족들의 언동에 각별히 엄격했기 때문에 재임 중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그의 형제와 부인 쪽의 문제가 많이 회자됐었다. 그러나 그의 재임 중에 그것을 파헤치는 본격적인 추적기사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태우 대통령의 경우도 그의 일가친척의 ‘행세’는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당시 그것을 문제 삼은 기사는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김현철 씨에 대한 어제까지의 ‘침묵’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그때의 언론이나 지금의 필자나 할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스스로 설정해 놓은 내 자신의 벽인가, 아니면 권력의 압력이 두려워서였을까? 두 가지의 합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론도 방조자〉
필자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기 4일 전인 93년 2월 21일자 조선일보 초판신문에 「대통령의 아들」이란 제목으로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부나방의 세계에 대통령의 가장 큰 신뢰를 지닌 대통령의 아들을 방치한다는 것은 자칫 대통령 주변의 기강과 질서를 깨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대통령은 5년 후의 아들을 생각해야 한다. 자신은 성공한 퇴임 대통령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아들은 5년 후 무엇이 될는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썼다. 이 기사는 김 대통령의 강력한 ‘반발’로 앞에 쓴 대목이 모두 빠지고 제목도 ‘대통령의 친인척’으로 바뀐 채 다음날 아침 배달됐다. 그 이후 김 대통령은 아들에 대한 주변의 언급을 아주 싫어했고 그때부터 ‘김현철’은 권력 주변에서 확고한 금기가 돼버렸다.
그 이후 필자는 ‘김현철’의 무소불위적인 행각과 간섭을 여러 차례 들었으나 더 이상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거나 글로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쓰려고 했더라도 증거가 손에 잡힌 것은 없었다. 지난 4년간 어쩌다가 김 씨의 ‘지나친 행동’을 내비치거나 그것에 대한 언급이 지면에 조금 얼굴을 내밀라치면 청와대와 그의 보호세력들로부터 들려오는 요란한 반격과 모함이 기자를 괴롭혔다. 남달리 부정이 강한 대통령이 특별히 사랑했고, 참모진이 그 대통령에게 아들의 처신에 관한 진언을 외면한 데다 언론이 그 보도를 금기시한 상황에서 가뜩이나 자기현시욕이 강한 30대 중반의 ‘대통령 아들’은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의 ‘김현철 사건’이 귀결되는 데는 언론도 결과적인 방조자의 혐의가 있다. 만일 우리가 권력의 압력이나 대통령의 ‘심기’에 구애하지 않고 또 언론계의 이심전심적 분위기에 안주하지 않고 그의 행적과 간섭에 대해 심도 있게 문제 제기를 했더라면 어쩌면 오늘의 ‘김현철’은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김 대통령 왜 그랬나〉
잘못된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자신 대통령의 아들이 대통령에게 사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한 정치적 견해나 특정 인사에 대한 참고적 발언을 하는 것을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을 ‘싸전집 자식이 남보다 쌀 한 톨이라도 더 먹게 되는’ 것과 같은 것쯤으로 알았던 우리의 잠재의식에 문제가 있다. ‘권력과의 불편한 관계’를 꺼리는 언론계의 풍토도 한몫했다. 솔직히 ‘김현철’에 관한 보도가 일반화되기 전 언론에는 그의 이름을 누가 먼저 지면에 올리느냐를 살피는, 좋게 보면 조심스러움, 나쁘게 보면 나약함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자신이 아들에 대한 보고나 보도를 금기시했던 김 대통령도 반성할 일이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역정을 내면서도 그런대로 버텨왔던 그가 어째서 아들 문제에만은 그처럼 맹목적이었는지 그것은 오로지 김 대통령만이 답할 수 있는 문제다.

이 글은 간의 자기 자랑이 섞여 있음에도  한 편의 훌륭한 ‘언론 자아 비평문’으로 손색이 없다. 다만 너무 뒤늦은 자각이며 반성이다. 더구나 그 후 조선일보의 행태를 보면 진심으로 반성한 것도 아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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