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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법과 노동법 날치기 통과조선일보 대해부 4권 - 5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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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0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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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들어 사회 전체가 불온한 분위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권이 추진하는 안기부법과 노동법 개정 움직임 때문이었다. 안기부법 개정안은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고무찬양죄와 불고지죄에 대한 수사권을 다시 안기부에 부여하는 것이었으며, 노동법 개정안은 복수노조 허용,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파업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 동일사업장 내 대체근로, 신규 하도급 허용 등 노동 관련법을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내용이었다. 안기부법은 국민회의가 총력 저지에 나섰고, 노동법에 대해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총파업 등 대대적인 반대 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터였다.

12월 3일 확정된 노동법 개정안은 현행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을 통합한 노사관계법, 근로기준법, 노동위원회법, 노사협의회법 등 4개 법을 전면 손질하는 내용으로 돼 있었는데 대체로 노개위 합의사항과 공익위원안을 반영하고 있었으나, 정부 내 협의 과정에서 경제부처의 요구에 밀려 재계 쪽으로 치우친 조항이 적지 않았다.

노사의 자율교섭 기반 조성을 위한 조항은 복수노조의 단계적 허용과 제3자 개입 금지,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규제 등으로, 이른바 ‘3금’으로 불린 악법 조항들이 모두 고쳐졌다. 그러나 쟁의기간 중 대체근로에서 사용자 쪽의 요구대로 신규 하도급(외주)을 허용하고 유니언숍의 경우 노동위 승인을 거쳐 외부 인력 채용·대체를 허용함으로써 파업을 무력화하고 노·사 및 노·노간 갈등을 부채질할 여지가 커졌다.

또 직권중재 대상인 필수공익사업을 수도·전기·가스·석유정제·석유공급·통신·은행 사업으로 규정해 택시와 방송 등을 뺀 것 말고는 개선 효과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도 중노위 재심 판정 때까지로 축소됐다. 반면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긴급명령제를 도입해 사용자가 중노위의 구제명령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도 법원이 긴급 이행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동장치가 마련됐다. 노동쟁의 조정 절차는 쟁의 발생 신고제를 없애고 반드시 조정 절차를 거치도록 해 노동쟁의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였다.

파업 기간 중 임금 지급을 요구하거나 그것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의 임금 지급 금지조항까지 넣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관철됐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완화를 위한 조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변형근로시간제)와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해고(정리해고제)가 주요 내용이었다. 정리해고 요건은 작업 형태 변경, 업종 전환 등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포괄적으로 인정해 제도 도입 자체에 반대해온 노동계와의 큰 갈등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노동계가 ‘개악’이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개정안이었는도 조선일보는 「명분과 실리의 타협」이라는 사설에서 사용자의 시각에서 “여전히 부족하고 불안하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 3금 해제는 우리의 노동사에서 중요한 전환의 획을 그은 셈이다. 문제는 우리의 성숙되지 않은 노사관계에 비추어 복수노조체제는 법과 제도 그리고 정책의 운영과 집행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하지 않는 한 예상 밖의 산업 혼란과 갈등, 사회적 비용을 물게 할지도 모른다. 이 점 정치활동과 3자 개입 허용도 마찬가지여서, 이들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지도노선이 종전의 이념 편향에서 조속히 탈피, 보다 대국적이고 공익적인 노선으로 정상화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 결국 이번 정부 최종안은 3금의 해제로 노동의 자율화와 선택의 명분을 크게 신장시킨 반면 경제의 탄력과 유연성을 다소간 제고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이라는 절체절명의 국가 과제에 부응하려는 안간힘과 절충의 산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 같은 획기적인 제도 개혁이 단기적인 조직 이해나 현실적 타산 때문에 갈등을 증폭시킨다면 그것은 노사 어느 쪽이든 국민과 사회의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노동법 처리에 안달이 났는지 조선일보는 12월 11일자 사설(「‘노동법’ 합리적 처리를」)에서 연내 처리를 촉구하고 나섰다.

(…) 이번 노동관련법 개정안이 근로자의 생존권과 기업의 사활에 영향을 미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일단 결사 반대할 수밖에 (…) 노든 사든 이제 자기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 정리해고 요건이 지나치게 폭넓게 허용되어 근로자의 생존이 위협받는다면 이를 개정하려는 노력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 또 복수노조 허용으로 두세 개 아니라 서너 개 심지어 10여 개에 가까운 노조가 설립되어 기업의 존폐가 우려된다면 이 조항의 삭제를 요청해서 관철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 특히 이번 회기에 처리하지 못하면 어차피 노동법 개정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여야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년으로 미룰 경우 시기적으로 임금 협상과 맞물리는 데다 대선 정치 일정으로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표를 의식해 자꾸 처리를 미루며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국민경제의 장래를 생각하는 정치권의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신한국당은 12월 14일 당무회의에서 안기부법 개정안도 확정했다. 대변인김철은 “야당이 안기부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지만 이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엄중한 안보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이거나 안보문제를 지나친 정파적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보는 데서 비롯된 소치”라며 “안기부법 개정은 국가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혁입법’ 차원에서 인권 유린과 직권 남용 등 부작용 우려가 있는 찬양·고무와 불고지에 대한 수사권만을 여야 합의로 검찰에 넘겼던 1993년에 비해 안보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근거는 희박했다. 또 안기부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구성·가입, 국가기밀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 등 목적 수행 행위, 자진 지원, 금품 수수, 잠입·탈출, 회합·통신, 편의 제공 등 간첩행위에 좀 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행위들에 대한 수사권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따라서 신한국당의 안기부법 개정 추진은 한총련 사태와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을 거치며 사회 분위기가 보수화한 틈을 타 그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공안세력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는 움직임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개혁 바람 속에서 기득권을 일부 상실했던 안기부가 조직 이기주의에 따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빼앗겼던 힘을 다시 찾으려고 치밀한 작전을 편 끝에 일차 결실을 맺은 것이다.

조선일보는 12월 15일자에 서울교대 교수 안천을 동원해 「‘잠수함’이 남긴 교훈 / 6·25때처럼 안일 / 심각한 안보 불감증/ 안기부법 강화 필요」라는 ‘시론’을 쓰게 하는 등 분위기를 띄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조선일보는 12월 17일자 사설(「안기부법과 대공 수사」)에서 안기부법 개정을 아예 드러내 놓고 촉구했다. 한총련 사태와 간첩 정수일 사건을 계기로 대공 수사체제에 허점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것은 1994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찬양고무죄와 불고지죄에 대한 수사권을 검찰로 넘겼기 때문인데 안기부 고유의 대공 수사권을 되돌려 주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이제껏 답보상태에 놓여 있으니 유감이라는 것이었다.

(…) 이번 정기국회 회기에 이를 처리하지 못할 경우 안기부법 개정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고, 그리 되면 안기부가 대공 수사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불구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야당 측은 정치와 언론·학원·종교계를 모두 안기부의 감시 및 수사 범위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 (…) 시대 상황이 바뀐 지금 단계에서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 안기부가 대공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간첩 색출 등 대공사범 수사에 있어 중대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사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만큼 지난번에도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안기부의 대공 수사권을 원래대로 회복시켜 주는 대신 이의 악용이나 남용의 소지를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아닌가 싶다. (…) 대공 전문기관의 역할을 축소시켜 놓고 대공 문제가 잘 풀리기를 기대한다면 난센스일 뿐이다.

12월 15일 신한국당이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의 연내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 소집에 야권이 응하지 않을 경우 단독으로 처리하겠다며 법사위에 법안을 넘긴 가운데 국민회의는 긴급 간부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어 결사 저지의 결의를 다졌다. 의원 김근태는 “유신 전야와 비슷한 상황”이라 했고 정책위 의장 이해찬은 “안기부 예산을 대선 자금으로 유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총재 김대중은 “고무찬양죄와 불고지죄에 대한 수사권을 안기부에 주려는 목적은 대선에서 이를 악용하겠다는 것이다. 안기부법 개정을 저지하지 못하고 대선을 겪고 난 뒤 후회하면 늦으니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 싸워 달라”며 비상대기령’을 내렸다.

하지만 결국 신한국당은 12월 26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단독 소집해서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신한국당은 본회의에 앞서 야당 측에 의사 일정을 통보하지 않았으며 국회 사무처 역시 그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민회의 등 야당은 그날의 법안 처리는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며 “이번 사태는 김영삼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노동계는 즉각 총파업에 돌입했다.

여권의 움직임을 모를 리 없었던 조선일보는 법안들이 날치기 통과되고 난 뒤에야 뒤늦게 벌컥 화를 냈다. 12월 27일자에 최구식이 쓴 ‘기자수첩’( 「국민도 당했다」)은 국회 부의장 오세응의 말에 따라 여당 의원들이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기립 표결한 그날 날치기 현장을 묘사하고 헌정사에 오른 몇 차례 날치기들을 회고하면서 “몸싸움도 한번 해 보지 못한 야당으로서는 허를 크게 찔린 셈이 됐다. 그러나 진짜 허를 찔린 것은 이른바 ‘문민’이란 수사에 환상을 품어왔던 국민일 것이다”라고 혀를 찼다.

같은 날짜 사설(「‘신 한국’ 형 새벽 기습」)도 한껏 빈정대는 모습을 보였다. 사설은 “절망감을 갖게 된다”느니 “부끄러운 노릇”이라느니 탄식을 늘어 놓더니 “임시국회를 소집한 직후에 정상적인 개회 및 논의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보지도 않고 군사작전을 벌이듯 여당 의원들만 새벽에 모아 단 7분 만에 11개 법안을 기습 통과시킨 것은 우리 헌정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사설은 또 “그런 식으로 다수의 횡포를 부려놓고 무슨 얼굴로 야당 측에 원만한 국정운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지 (…) 어차피 정국을 대결국면으로 끌고 가려는 여권의 전투적 체질에 우리는 경멸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아낌없이 야당 편을 들었다. 그러고선 고작 결론에서는 “과거 어떤 날치기에도 신문기자의 ‘목격’은 있었다. 신문 지면의 기록을 위해서도 그랬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합통신 기자만 있었고 다른 기자는 없었다”며 신한국당이 언론 몰래 날치기를 자행한 것을 나무랐다.

조선일보의 위선은 곧 드러났다. 노동계의 총파업이 예상 외로 강경한 양상으로 진행되자 12월 28일자 사설(「위기의 현실을 직시하자」)은 파업 자제를 당부했다. 날치기 통과된 노동법이 노동계의 불만을 사서 총파업에 이르게 되고 노사와 공익적 기구들이 성숙한 대타협의 그림을 원만히 그려내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의 현재의 처지가 이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절대적 위기 상황에 돌입해 있음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우리는 새로 개정된 노동법 체제가 부분적으로는 노동계의 불만을 살 소지가 없지 않음을 충분히 유의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노동법제의 개편의 당위성에 못지않게 오늘의 치열한 대결상을 심히 걱정한다. (…) 따라서 작금의 노동법 파란과 총파업 투쟁은 우리 경제의 기반을 더 이상 허물지 않는 선에서 조속히 수습되어야 하며 (…) 다수 국민의 건강이나 불편을 담보로 하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은 노동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노동계의 총파업이 공공부문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1월 7일 김영삼이 연두회견을 가졌다. 그는 대통령 직속으로 기업인이 참여하는 금융개혁위를 설치할 것이며 1)경제 체질 개선 2)안보 유지·통일기반 구축 3)부정부패 지속 척결 4)공정한 대선 관리 5)서민 복지·삶의 질 향상 등 5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1월 8일자 통단사설(「웅변이기를 바랐던 회견」)에서 노동법 개정에 대한 반발로 확산 일로에 있는 총파업에 대한 단호한 입장이 없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비난을 퍼부었다.

(…) 연두회견은 불행하게도 국민의 그런 불안을 진정시키고 경제적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데는 미흡한 수준에서 끝나고 말았다. (…) 가장 큰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노동계 파업에 대해 국민들은 정부의 기본 입장과 앞으로의 대응 방향에 대해 무언가 확실하고 책임 있는 천명이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통령의 언급은 노동법 개정의 원칙론적 필요성만 반복했을 뿐 이 방대한 제도 개혁이 갖는 정치경제적 의미와 시대적 불가피성, 그리고 새 제도 아래서 정부가 추구하려는 경제, 노동정책의 운영 기조에 관한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는 미흡했다.
더구나 그에서 비롯된 작금의 파업 사태와 사회적 분열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확실하고 단호한 입장의 표명 없이 모호하게 지나감으로써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정부가 다소간의 변칙적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노동관계법을 통과시켰다면 당연히 정부는 확고부동한 정책 지향과 의지를 당당하게 천명할 수 있어야 하고 (…) 노동관계법을 둘러 싼 논란과 찬반 또한 법이 허용하는 한 허용돼야 하지만 불법 파업 등 적법한 절차나 규정을 밟지 않은 행위는 당연히 실정법에 따라 공정하고 엄정하게 처리돼야 함은 법 이전의 상식이다. (…) 김 대통령은 (…) 당면한 파업 사태에 대한 단호한 정부 의지와 입장을 충분히 피력하지도 않았다. (…) 불법과 탈법이 예사로 반복되어도 법이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것은 이미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
(…)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작금의 경제난이 보다 정기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라는 점, 그리고 총파업에 몰두하고 있을 시간 여유가 없다는 점을 노동자와 국민들에게 절절하게 호소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다고 본다.

요컨대 조선일보는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조건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하며, 양보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의 저항을 불법으로 몰아 공권력을 동원해 엄정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그것을 김영삼이 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한 것이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가 말하는 ‘국민’은 기업가들만을 일컫는 것으로 여겨진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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