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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사태조선일보 대해부 4권 - 5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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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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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연세대가 있는 서울 신촌은 전쟁터였다. 8월 6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13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초청장을 전달하기 위해 소속 대학생 2명을 북한에 파견했다고 발표했다.

8월 10일 조선일보 1면에는 「“친북 불법 집회 엄단” / 이 총리: 위반자 구속수사 지시 / 재야·대학생 집회 원천봉쇄」라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떴다. 12일 경찰이 통일축전 원천봉쇄에 돌입한 가운데 한총련 대학생 500여 명이 연세대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여 학생과 전경 1백여 명이 부상하고 신촌이 마비됐다. 13일 총리 이수성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에 엄중 대처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3부 장관이 한총련 등의 극렬 행위는 이미 무법 단계에 들어갔다며 “폭력시위의 배후를 추적해 엄단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8월 13일자 사설(「‘신촌 사태’의 본질」)을 통해 “북 노동당의 통일전선 전략에 따라 남·북·해외 주사파 합동조직으로 만들어진 것이 범민련, 그 외곽의 청년조직이 범청학련, 남쪽의 한총련이 그 남측 본부 창구를 맡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살아 있는 마당에 그 조직원들이 공권력과 1 대 1로 당당히 정면 대치를 하고 있으니 “이게 과연 나라다운 나라인가”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미 ‘갈 데까지 간’ 확신범들인 그들이 신촌 일대를 무법천지의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으니 “정부와 공권력은 대한민국에 과연 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즉각 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세대를 둘러 싼 학생들과 경찰의 공방은 13, 14, 15일에도 계속됐다. 조선일보 1면은 학생들이 쳐 놓은 바리케이드의 폐타이어가 불타면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장면이나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경찰과 맞서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커다란 사진이 연일 장식했다. 8월 15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은 「한총련 폭력시위 사흘 째 계속 / 경찰, 한때 연대 진입… 5천명 재집결 / 신촌 일대 한 밤까지 격렬 공방」, 31면(사회면) 머리기사 제목은 「쇠파이프로 무장 극렬 저항 / 진압경찰 철수 후 다시 모여/ 한총련 시위 경찰 해산작전도 “무위” 학생들 ‘행사’ 강행」이었다. 16일자 1면 주요 기사는 「경찰 2차 진입 … ‘축전’ 행사 봉쇄 / 한총련 폭력시위 치열 공방 / 연대서 나흘 째」, 17일자 1면 머리기사는 「한청련 산하 기구 ‘이적’ 규정 / 검찰: 중앙집위 등… 핵심 36명 사전 영장 / “조직·폭력시위 뿌리 뽑겠다”: 당정회의」〈철야 교문 대치 / 경찰 또 진입… 5시간 만에 철수/ 5일 간 천3백 명 연행 23명 구속」이었다. 사회면 머리기사는 「한총련, 연대 과학관 ‘볼모’ 대치 “산소통 터뜨리겠다” 협박 / 옥상·건물 주변에 2천명 층마다 염산 등 위험물질 / 가연성 높아 대규모 인명피해 우려」였다.

8월 17일자 ‘류근일 칼럼’의 제목은 〈이번만은 책임져야〉였다. “도대체 대통령 관저가 있는 수도 한복판에서 주사파가 며칠을 두고 ‘연세대 해방구’를 세우고 폭력투쟁을 벌였으니 정부는 이 막중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작정인가. (···) 선진 강대국이란 나라에서 평화적인 시위대가 다치는 일도 없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전경이 쇠파이프에 얻어터지는 꼴 봤는가. 그랬다가는 온 몸이 벌집처럼 돼도 옆에서 감히 찍소리 한 마디 못 지르는 것이 선진국이다.”

류근일은  한국이 ‘근대국가 이전’ 상태로 돌아갔으니 “온전한 나라라면 책임질 사람들이 그냥은 넘어갈 수 없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전쟁’은 계속됐다. 8월 18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검찰 “한총련 와해” 선언 / 대검 공안부장 회견 핵심 간부 전원 사법처리키로」「2천여명 6일째 폭력시위 / 경찰, 4차 투입…부상 총 6백여명」, 사회면에는 「한총련 시위 정예·조직화 / 학교 밖 지휘본부·군대식 시위 훈련·핸드폰·PC통신·경찰 교신 감청도 / 선봉부대 ‘사수대’ 천여명 육성 / ‘민족해방군’ 조직이 시위 주도〉라는 기사가 실렸다.

조선일보는 8월 18일자 사설(「위선의 논리들」)사설에서 ‘주사파 난동’과 관련해, 막연히 학생들의 ‘통일 열망’의 표출로 지칭하는 모호성의 논리, 경찰이 ‘원천봉쇄’와 ‘진압’을 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자위적 폭력이 촉발되었다는 주장, 안전 귀가를 시키지 않고 경찰이 포위하고 있기 때문에 대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논리 등을 위선의 논리라고 지적하고 “국법을 어기며 북에 들어가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고 공산당과 함께 판문점에 나타나 온갖 반국가적 독설을 뿜어낸 자를, 수도 한복판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또 남의 대학을 점령하고선 집기와 시설물을 파괴하고 대한민국의 법질서와 공권력을 적으로 매도하며 쇠파이프와 화염병 투쟁을 벌인 주사파 집단을 안전 귀가 시키라니 그것은 어느 법에 쓰여 있는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8월 19일자 1면 머리기사는 「“연대 잔류 천여 명 전원 입건” / 검찰 밝혀: 화염병 투척자 등 대다수 구속 방침 / 핵심 30여명 보안법 적용키로 / 지방 내려간 시위학생 검거령」「시위 건물 포위·압박/ 경찰 한때 진입 시도… 한총련 저항 계속」이었고, 사회면(39면)에는 「경찰·학생 “심리전 대치” / 경찰: 음식 반입 등 통제 / 학생: 확성기 구호」「학생 5명 경찰에 투항」이라는 기사가 올랐다. 3면에는 「“고사작전”…“결사항전” 끝이 안 보인다 / 쇠몽둥이 공격·게릴라전술 “새 양상” / 연행·구속 등 건국·동의대 사태 버금 / 경찰 단전·단수까지 검토… 학교 측 반대로 유보」라는 제목의 ‘한총련 사태 7일째 중간 결산을 실었다. “우리의 대학이 언제부터인지 한총련과 같은 친북세력의 온상 역할을 해 왔다”는 「‘친북’의 온상」, “주사파가 폭력시위를 벌이며 북한의 통일노선 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사전 정보를 전혀 확보하지 못했음인지 시종 허둥대거나 뒷북을 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개탄하는 「대공 정보 축적이 없다」라는 두 편의 사설이 모두 한총련 사태를 다루었다.

37면에는 「간첩 ‘깐수’가 본 한총련 사태」라는 흥미로운 기사가 「“친북 세력 점점 고립…비관적이다”」라는 제목을 달고 실렸다. 1984년부터 무하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위장헤 고정간첩으로 암약해 온 정수일이 한총련 사태를 비관적으로 평가했다는 내용이었다.

(…) 수사관이 “친북세력이 저만큼 성장했으니 좋지 않으냐. 혹시 북한 당국이 오판하는 것은 아닌가”고 떠보자, 정은 한동안 헛웃음을 짓다가 “한마디로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다. 나도 전에 학생과 재야운동을 수차례 (북한에) 보고했다. 87년 6월 항쟁 때는 국민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받았기 때문에 정권 유지가 힘들 것으로 보고했다. 이후에는 전대협이나 한총련 핵심이 북측의 대남 적화통일 노선을 따르고 있지만 이를 대다수 국민들이 꿰뚫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과 재야가 점점 고립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투쟁방법에 대해 정은 “국민들이 폭력을 혐오하므로 더욱 행동반경이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정수일은 안기부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된 처지여서 기자가 만나서 취재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순전히 검찰 관계자의 전언만으로 작성된 기사였다. 조선일보에 그 기사를 내 보내기 위해, TV 시청과 신문 구독이 금지된 간첩 신분의 정수일은 8월 16일 수사팀 3명과 함께 검사실에서 저녁식사 도중 뉴스를 함께 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8월 20일 1면 머리기사도 한총련 사태였다. 「“화염병·쇠파이프 폭력시위 필요하면 총기 사용” / 박 경찰청장, 진압경관 권총 휴대 밝혀」란 섬뜩한 제목이었다. 3면에는 이번 시위로 중상을 입은 경찰이 1백72명에 이를 정도로 “시위 아닌 테러”로 변질된 만큼 방치 불가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경찰의 총기 대응 방침을 해설하는 기사가 전면에 실렸다.

8월 20일 새벽 드디어 경찰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경찰 특공대 등 32개 중대 4천여 명이 연세대 종합관에 진입하자 학생들은 화염병과 돌, 의자 등을 던지며 바리케이드에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경찰은 2천1백93명을 연행한 데 이어 과학관에서 빠져나간 대학생 1천43명을 대학 주변에서 검거해 모두 3천2백36명을 연행했다. 검·경은 21일 369명을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로써 한총련 사태로 모두 5,848명이 연행돼 462명이 구속되고 3,341명이 불구속 입건됐으며 373명이 즉심에 회부되고 1,672명이 훈방조치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총련을 진압한 후부터는 대학가를 북한과 연계시키는 작업이 본격화됐다. 전남경찰청이 한총련의 연세대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결과 학생운동권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의 학습 정도를 평가하는 시험문제집이 발견됐다는 기사가 8월 21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주요 기사로 보도됐고 22일자 사회면에는 한총련 대학생들이 저항했던 연세대 종합관에서 운동권 학생들이 주고받은 ‘위문편지’가 발견됐다는 기사가 「“적들의 탄압 뚫고 진군가를 부르자”/  한총련 ‘위문편지’ 종합관서 발견 / 50년대 빨치산 용어 ‘섬뜩’〉라는 제목을 달고 나타났다. 3면에서는 「폭력시위 이대론 안 된다」는 시리즈가 시작됐다. 첫 회의 제목은 「“낡은 ‘이념의 노예’서 깨어나라” 한총련 ‘망령’ / 학생운동 아닌 북 하수인 난동 / 죄의식 하나 없는 난폭에 충격 / 사회적 방치 폐해 교훈 삼아야」였다. 4면 귀퉁이에는 「한총련 조직··구호·전술 북한식 “그대로” / 굶주림 속 사수대엔 한 끼씩… 선무 방법도 비슷」이란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에 대한 분이 덜 풀렸는지, 공권력의 강경 대응에도 성이 안 찼는지 8월 24일자 ‘김대중 칼럼’은 「세금을 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정부가 한총련 사태에 단호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만각이지만 이제사 북한 당국이 왜 남한 당국과 대화조차 하지 않는지 알 것 같다. 원래 깔보는 측과는 대화를 하지 않게 마련이다. 북한은 남한을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한총련의 폭력시위를 통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북한은 오히려 남쪽이 흔들흔들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 신촌이 폐시처럼 된 지 3일만에야 정부는 3부 장관 담화라는 형식으로 정부의 공식 태도를 결정했다. (…) 김영삼 대통령은 (…) 한총련 사태에 대한 단호한 의지가 엿보이지 않았다. (…) 이수성 총리는 (…) 최대한 관대하게 처분할 방침을 밝히고 시위를 중단하고 즉시 해산하면 봐줄 것처럼 시사했다.
(…) 전 안기부 고위 관리는 이렇게 울분을 토로했다. “현재 안기부에는 대공 전문가가 없다. 정권이 바뀌면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대공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 과거에는 안기부가 학생 친공 운동의 뿌리를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이번에도 뿌리는 못 건드리고 겉만 잡아가면 수천 명을 가둬도 아무 소용이 없다. (…) 문민정부의 정치적 흥정으로 없어진 국가보안법 7조(고무 찬양 등)가 회복되지 않는 한 그 뿌리를 제거할 수는 없다.
(…) 우리가 여기서 친북 학생운동의 맥을 끊지 못하고 지나가면 우리는 언제나 체제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안녕질서를 유지하며 체제를 보존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 그 나라의 지도층들이 여기에 영합하고 상황에 따라 생각을 뒤집으며 자기 줏대 없이 양비론에 안주하는 나라에는 그야말로 미래가 없다. 그런 지도층을 보면서 왜 내가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자괴에 빠진다.

수배와 검거, 재판 등을 통해 한총련을 완전히 와해시키려는 정부의 총공세가 계속되고 있던 상황에서 10월 9일 국민회의 소속 의원 추미애가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회 내무위 국감에서 한총련 사태 당시 경찰이 여학생들에게 성추행을 자행했다고 폭로 했다. 조선일보는 그사건에 대해 하루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11일자에 「추 의원 ‘성추행 발언’ 성명전 비화」라는 상자기사를 내보냈다. 신한국당 대변인 김철과 국민회의 대변인의 박선숙의 공방을 똑같은 비중으로 실었는데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언론의 역할은 없었다.

조선일보는 10월 15일자 여론·독자면에서 아예 그 사건을 ‘진실 공방’으로 몰아갔다. 「PC로 본 세상: 여학생 성폭행, 사실인가 아닌가 / 한총련 사태 관련 PC통신 390여 건 게재」라는 제목의 기사는 “PC통신 토론방에는 이미 한 달쯤 전인 9월 10일 ‘한총련 여학우들의 성폭행과 빨래조’라는 주제가 개설되어 의견이 분분하다”며 토론방에 올라 온 의견들을 실었다.

(…) 한총련 간부와 전경을 동시에 친구로 갖고 있다는 한 대학생은 “직접 확인된 사실이 아니니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백주 대낮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본다. 과연 성폭행을 했다면 어디에서 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하며 “그런 증거가 있다면 언론에 공개해 여론의 반향을 들어 보자”고 밝혔다. (…) “도둑이 나 도둑이요 소리쳐 외치지 않는다. 경찰의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전경들은 음담패설과 함께 인권 모독이 깔린 언어구사까지 다 했다.”

10월 29일 서울지법은 한총련 가태 관련자들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51명에게 징역 8월∼3년의 무더기 실형 선고를 내렸고 59명은 집행유예에 처했다. 11월 11일에도 15명에게 2년∼1년6월형을 때렸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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