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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세계화’와 OECD 가입조선일보 대해부 4권 - 4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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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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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의 여진이 아직도 들끓고 있을 때 조선일보는 1994년 1월 1일자 연두사(「과감하게 어떻게 변신할 것인가」)를 통해 국제화·세계화를 외치고 나갔다. 제2 개국의 첫 문턱을 넘는 해를 맞아 제1 개국 때 보였던 선대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 우리는 무엇보다도 변신에 능해야 하고 민감해야 한다. 21세기의 기업은 1년 단위로 새 상품, 신 서비스, 새 디자인을 내놓지 않으면 망하게 돼 있다. 앞으로는 국가 경영이나 도시 행정, 지방 경영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무엇부터 변신시켜야 할 것인가?
첫째는 경쟁 원리의 전면적인 도입이다. 중앙 통제와 명령제의 획일주의 관료주의·규제행정부터 혁파해야 한다. 그러려면 관치에서 민영으로 가야 한다. 심지어는 교육기관들도 이젠 사기업 하듯 각자가 제 취향대로 자기 규칙대로 할 수 있게 풀어주어야 한다. 교육부의 전지전능 같은 것은 폐기해야 마땅하다.
다음으론 국제화의 참뜻이 무엇인가, 국제화의 실천적인 각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깨우쳐야 한다. 국제화에선 우리가 우리만의 특화상품, 특화서비스, 특화프로젝트를 쥐고서 밖을 향해 진출한다는 측면이 더 중요하다. (…)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섞임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 부질없는 쇄국주의, 피해의식, 배외주의, 고립주의를 버리고 앞으로는 당당한 주주의 하나로서 동아시아 공동 프로젝트를 창의적으로 발의하고 추진해야 한다.
(…) 궁극적으로 우리가 시급히 구축해야 할 것은 새로운 미래형 국가 조직이요 새로운 방식의 경영 전략, 그리고 동아시아·세계질서 속에서의 우리의 자리매김이다. (…) 오늘의 지도층이 또다시 정확한 의미의 국제화를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개혁 먼저냐 국제화 먼저냐” “과거 청산 위주냐 미래 지향 위주냐” “보수냐 진보냐” “통일 추구 먼저냐 국가 발전 위주냐” 하는 식의 구시대적 진영정치와 택일 논리, 대치, 당쟁, 개인적 정치생명 극대화에만 빠진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역사의 재앙을 만날 것이 뻔하다.


1994년을 관통한 화두 ‘세계화’

김영삼도 1월 6일 대통령 연두회견에서 조선일보의 주장에 맞장구를 쳤다. “새해 국정 목표를 국가 경쟁력의 강화에 두고 국정 모든 분야에서 능률과 생산성의 혁신이 일어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나가야 한다”면서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착실히 추진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는 교육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인간교육과 함께, 세계화와 개방화에 대처할 수 있는 인재 양성 교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했고, 사회전반의 국제화와 세계화를 위해 대담한 시책을 펴나가겠다면서 “세계화는 중앙과 지방에서 다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조선일보의 연두사를 많이 참고한 모양새였다.

이처럼 ‘세계화’는 1994년도를 관통하는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되었는데, 그 해 11월 17일 김영삼의 ‘시드니 세계화 선언’을 통해 정부의 본격적인 국정운영 지침이 되었다. 조선일보는 11월 18일자 1면 머리기사(「“세계 속에 기회 있다”/ 김 대통령 기자 간담 / 세계화 장기 구상 지시 / 국정 운영 큰 변화 예상 / “국가경쟁·협력 위한 정책 개발 창의 중시 정부 생산성 높여야”」) 기사로 김영삼의 세계화 구상을 보도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7일 “평소 생각해 왔지만 이번에 아태 3국을 순방하고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더욱 새롭게 우리나라의 세계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하고, “세계화를 위한 장기 구상을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곧 구체화 작업에 착수하도록 내각에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 김 대통령은 세계화의 다섯 가지 방향으로 세계 경영의 중심 국가로 발전해야 하고 국가 간의 경쟁과 협력을 조화시킬 정책과 인력을 개발해야 하며 세계화를 겨냥하여 제도와 의식의 개혁을 추진하고 창의를 가진 자가 성공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정부부터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물질적 번영 못지않게 정신과 인성이 중시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김 대통령을 수행 중인 한 고위 관계자는 이날의 발표가 앞으로 국정 운영에 커다란 변화의 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해, 인사와 정책의 쇄신을 예고했다.

조선일보는 1월 19일자 사설(「김 대통령의 세계화 구상」)을 통해 그의 세계화 구상이 “답답하게 교착된 정치적 국면을 뛰어 넘어 무언가 새로운 국정 지표를 제시함으로써 새 바람을 불어넣고 싶었을 것”에서 비롯된 듯하다고 전제하면서도 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 문제는 긴급 지시를 받은 내각이 어떻게 그의 세계화 구상을 구체화할지 궁금하고 어떤 목표와 과정, 정책수단과 역할 분담이 이루어질지도 관심거리다. 세계화가 지금까지의 국제화 전략과 어떻게 다른지, 폐쇄적이고 내포적인 인식과 제도, 관행은 여전히 덜 개혁되어 있는 현실에서 어떤 세계화가 가능할지, 국제화의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내적 부실과 비효율, 저위 기술을 온존한 채 어떻게 세계화와 조화시킬 것인지 등등 어렵고 상충되고 역량에 부치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내각의 구체화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기대해본다.

‘세계화’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긴 했지만 아무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지 않는 한 ‘세계화’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었다. 당연히 김영삼 정권은 1995년 들어 OECD 가입 절차를 가속화했다.

그런 분위기를 조선일보 3월 8일자 ‘기자수첩’(「미묘한 한국」)이 잘 전달하고 있다. 코펜하겐에서 열린 사회개발 정상회의 전체회의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서상목이 각국 대표들에게 우리나라의 사회 개발 경험을 간략하게 소개했는데, 연설이 끝난 직후 한국 대표단이 머무르고 있는 방으로 아프리카의 잠비아 대표가 황급히 찾아와 식량 원조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기자수첩’은 그런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빈곤 퇴치가 주 의제인 이번 회의는 전체적으로 한쪽엔 미국·일본· EU 등 선진국이, 다른 한쪽엔 77그룹 등 개도국과 후진국이 포진하고 있는 양상이기 때문에 선진국 클럽인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할 우리가, 그렇다고 개도국 옷을 완전히 벗어버린 우리 측 입장은 “매우 미묘하다”는 것이 대표단의 설명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이번 사회개발 정상회의 참가국들은 대규모 한국 기자단에 놀라고 있다. 회의 주최국인 덴마크 기자단이 1백35명, 세계 언론시장을 쥐고 있다는 미국 기자단도 40명에 불과한데 우리는 대통령 수행기자까지 포함 1백40여명이 벨라센터 회의장에 출입 신청을 냈다. 주최국보다 많다. 박수길 유엔대사는 ‘이것도 한국이 세계화된 한 단면이 아니겠느냐’고 했다”고 전했다.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 되는 ‘세계화’가 된 것이다.


‘개방파’ 조선일보의 걱정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지나치게 인색한 것도 문제이겠지만 우쭐한 마음에 살림살이 거덜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는 것이 ‘기자수첩’의 솔직한 토로였는데 민주당은 3월 15일 총재단회의에서 정부의 OECD 가입방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학계 일각에서도 ‘시기상조론’이 나왔다.
강력한 ‘개방파’ 조선일보도 걱정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조선일보는 가입신청서 제출이 눈앞에 닥친 3월 27일자 사설(「OECD 가입 부담 줄여야」)에서 “OECD 가입에 따른 부담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OECD에 가입하려면 당장 몇 가지 의무를 이행해야만 한다. 우선 자본시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방해야 하고 서비스 부문을 UR 협상 때보다 훨씬 큰 폭으로 개방해야 한다. 멕시코의 실패에서 보았듯이 자본시장의 조기 개방은 나라경제 전반을 뒤흔들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연일 전문가들을 동원해 “OECD 가입 득이 더 많다”는 캠페인을 벌이면서도 자사 기자를 멕시코에 파견해, OECD 가입 후 급격히 추락한 멕시코 경제 상황을 「“선진국 환상이 나라 망쳤다”」라는 현지 르포기사로 전했다. 이어 기자 윤희영이 4월 6일 멕시코에서 써 보낸 ‘기자수첩’(「전쟁터 멕시코」)은 “멕시코의 전 정권들은 한결같이 ‘높은 경제성장률, 높은 국민생활 수준’ 같은 구호를 외쳐대면서 국민들의 등을 떠밀었는데 특히 90년대를 목전에 두고 취임한 살리나스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국민들을 흥분 속에 몰아넣었는데 어느 날 밤 살리나스만 밤도둑처럼 홀연히 미국 망명으로 사라진 후 멕시코에는 병든 경제와 낡은 구호들만이 어지러이 쓰러져 있었다”고 전했다.

“1주일간의 취재를 끝내고 떠나는 기자의 등 뒤로는 슬로건경제의 종착역에서 허덕이는 멕시코 국민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는 기자의 감회가 어떻든 한국에서는 OECD 가입을 위한 절차가 착착 진행될 판국이었다. 4월 3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서비스업 대폭 개방 / 하반기 OECD 가입 등 관련 구체 실무 작업 착수」라는 제목으로 “정부는 지난해 6월 실시한 외국인 투자 업종 개방 조치에 이어, 올해도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제2차 개방 조치를 단행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구체적인 개방업종 선정작업에 착수키로 했다”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올랐다.

한국은 이듬해인 1996년 10월 11일 OECD 이사회가 가입을 승인하고 10월 25일 외무장관 공노명과 OECD 사무총장이 가입협정문에 서명함으로써 29번째 회원국이 됐다. 한국은 1994년 900억 달러였던 수출이 1995년에는1,250억 달러를 기록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 섰으나, 총 외채는 1994년 520억 달러에서 1996년 1080억 달러로, 늘었다. 경상수지 적자는 1994년 38억 달러에서 1995년 85억 달러, 1996년 230억 달러로, 여행수지 적자는 1994년 5억7천만 달러에서 1995년 11억9천만 달러, 1996년 26억 달러로 급증하고 있었다. OECD 가입 후 1년 만에 한국 경제는 영락없이 멕시코처럼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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