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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와 전두환 구속조선일보 대해부 4권 - 4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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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0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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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9일 그동안 12·12 군사반란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해오던 서울지검이 “12·12 사건은 소장 군부세력의 리더인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이 군권을 탈취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계획 하에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승인없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연행하고, 병력을 불법 동원해 군 지휘체계를 무력화시킨 명백한 군사반란 사건”이라고 결론짓고, “피고소·고발인 38명 전원에 대해 군 형법상 반란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전 대통령인 전두환과 노태우 등 핵심 관련자 34명에 대해서는 14년 간의 통치기간 중 국가 발전에 공헌한 점과 법정에 세워 단죄할 경우 우려되는 국가적 혼란을 고려해 기소유예했다고 밝혔다.

전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등 고소인 22명은 “검찰이 전 씨 등에 대해 군사반란 혐의가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국헌을 문란케 한 중죄인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고 전두환·노태우 측은 “검찰 수사 결과는 정치적으로 짜 맞춘 것”이라며 “특히 정승화 씨에 대해 이미 사법부에서 내란방조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내려진 상황에서의 이 같은 결정은 위헌소지마저 있다”고 주장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10월 30일자 사설(「기소유예의 의미」)에서 검찰의 조치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가를 내렸다.

(검찰의) 이러한 치밀한 사실 규명의 결과로 이제 비로소 그 복잡하고 극적이었던 그날 밤의 사건은 권위 있는 당국자에 의해 일단 정리되었다. (…) 물론 검찰의 판단이 최종적일 수는 없고 어디까지나 위법행위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은 법원에 의해 내려져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법원에 가서 최종적인 심판을 받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제약이 있다는 검찰의 판단 역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이들 12·12의 주역들과 그들이 남긴 유산이 우리의 현대사와 현재의 너무나 큰 부분이 되어 있기 때문에 과연 우리 사회가 그것을 법정에 가지고 갈 수 있을 만한 용량(capacity)을 갖추고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도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하고 싶고 호소하고 싶은 모든 것은 참고 역사의 준엄한 평가에 맡기는 유보의 미덕을 발휘했으면 한다.

검찰의 결정은 군인의 올바른 길을 가지 않을 때는 준엄한 역사의 심판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겸허히 자각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이제 그만 덮고 가자는 투였다.

이듬해인 1995년 7월 18일, 그동안 1년 2개월여 동안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장윤석)는 “피의자들이 정권 창출 과정에서 취한 5·18 진압 등 일련의 조치나 행위는 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전두환과 노태우  등 피고소· 피고발인 58명 전원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정보부장 서리 겸직과 비상계엄 확대, 정치인 체포·연금, 광주 시위 무력 진압, 국보위 설치, 최규하 대통령 하야 등은 새 정권 창출을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며 “이들 정치적 행위는 통치행위로서 내란죄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0월 30일자 3면에 「“고도 정치행위” 법적 심판 회피 / 신군부 세력에 사실상 면죄부 / 최 대통령 강제 하야 여부 못 밝혀 아쉬움 / 불씨 그대로 항고 등 잇따를 듯」이라는 제목으로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5·18 불기소-배경과 파장」이라는 해설기사를 실었다.

같은 날짜 사설(「주남 만행 용서 안돼」)은 5·18 만행 중에서도 11공수특전여단이 저지른 주남마을 및 송암동 양민 학살 사건에 주목했다.

“어찌 이런 범죄를 단지 공소권 없음이란 검찰의 선언 하나 만으로 그냥 덮어둘 수 있단 말인가. (… ) 계엄군이 자신들 총에 부상당한 민간인을 다시 사살·암매장한 행위, 멱 감던 어린이 2명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 등은 검찰이 성의만 있었다면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진상을 파악해 기소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 비록 법적 차원에서는 처벌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정치적·도덕적 차원의 책임은 계속 남게 된다는 사실을 관련 당사자들은 알아야 한다. (···)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신군부의 책임자급과 계엄군 관련자들은 따라서 이런 비극이 저질러진 데 대해 국민에게 사죄해야 마땅하다.

그것으로 미진했던지 조선일보는 그 다음 날짜 사설(「사법부에 맡겨야」)에서 주남마을 등의 양민 학살 사건에 대해 “검찰은 이를 살상행위로 규정하고서도 15년의 공소시효가 넘어 어쩔 도리가 없다는 입장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는 이 부분이야말로 법적은 아니더라도 어떤 단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 사설은 또 “지금 심각한 반응을 불러오고 있는 쿠데타 즉 내란음모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하나는 수많은 시민을 희생시켜가며 정권을 빼앗고도 그것이 성공한 쿠데타라는 이유만으로 단죄는커녕 공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일 때 국민 감정에 미치는 처절한 무력감과 허탈감 (…) 다른 하나는 지나간 역사를 덮지 않고 다시 끌어내 전직 대통령과 그의 동조세력을 단죄하는 일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소모적이냐는 관점”이 맞서는 형국에서 “그것이 정치의 영역이 되건, 역사의 문제로 귀속되건 그 최종적 판단은 정부가 내릴 것이 아니라 사법부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라고 주장했다.

“비록 어렵고 고통스런 절차가 불가피하더라도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국민의 감정에 맞는 것이며 또 5·18을 더 이상 국론 분열의 쟁점이 되지 않도록 명실공히 역사 속에 잠재우는 길”이라는 주장인데 사법부의 판단을 묻는 작업은 조선일보의 당부도, 검찰 등 정부의 의지도 아닌, 전직 대통령 비자금 문제가 터져 나오는 의외의 상황과 연결되면서 폭발적으로 시작된다.


노태우 비자금

8월 1일 김영삼 정부의 핵심 실세 중 한 사람인 총무처장관 서석재가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이 4천억 원의 가·차명계좌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10월 19일에는 민주당 의원 박계동이 국회 본회의에서 비자금의 관리자, 예치 내용, 차명계좌를 위해 빌린 이름, 계좌번호까지 폭로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0월 20일자 1면 전체에 「3백억 차명예금 확인: 신한은 서소문 / 93년 당시 지점장 밝혀 / “실명제 직후도 그대로 남아”」「“노 씨 비자금 4,000억 원 40개 차명계좌 시은 예치” / 박계동 의원 주장: 1백억 통장 번호 제시 / “93년 이원조 씨 백억씩 분산 지시”」「검찰, 곧 수사 착수 / 이 총리 오늘 국회 답변서 밝힐 듯/ 김 대통령에 상황 보고」등의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김 대통령에게 상황 보고’란 제목이 붙은 것은 당시 김영삼이 유엔 특별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캐나다를 국빈 방문 중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삼은 즉시 수사를 지시하자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이미 5·18 문제로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던 김영삼 정권은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됐다.

10월 27일 노태우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사과문이 발표되기 직전 중국을 방문 중이던 김대중이 “지난 92년 대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 원을 받은 바 있다”고 실토했다. 조선일보는 28일자에 두 편의 사설을 내보냈다. 제1사설(「그래도 의혹은 남는다」)은 노태우의 사과, 제2사설(「김대중 총재의 전락」)은 김대중의 20억 수수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노태우의 “사과 자체는 받아들이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사과의 내용은 여전히 미진하고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고 비교적 너그러운 자세를 보인 반면, 김대중에 대해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크게 잘못된 부도덕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 특히 요즘에 소급법을 제정해서라도 처벌하자고 하는 5·18의 바로 그 당사자로부터 20억 원을 선뜻 받았다는 것은 더더구나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펄쩍 뛰었다.

(…) 김 총재는 선명 야당을 자임하면서 개혁과 부패 추방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고창해온 인사로 알아 왔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남 모르게 적대방으로 매도해온 5·18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부터 은밀한 돈을 받아 썼다는 것인지, 불쌍한 것은 결국 아무 것도 모르는 국민뿐이란 개탄만 하게 된다. 정치인이란 과연 이런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분노감과 함께, 정치인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다 같은 통속이구나 하는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김 총재 측에선 “그의 경우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라든가, “모두 정치자금으로 썼지 개인 축재한 것은 아니다”, “김영삼 후보는 수 천 억 원을 받았다”느니 하면서 애써 20억 원 수수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 김대중 총재는 이런 사실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옳지 않은 돈을 받아 옳게 썼다는 말이 도덕적으로 성립할 수 없기에, 김대중 총재는 그것을 잘못한 게 뭐냐는 식으로 변명하지 말고 “국민에게 말할 면목이 없다”며 사과해야 한다. 적어도 그래야만 그는 노 씨보다도 못한 사람이란 평만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국은 김대중 씨의 경우도 마땅히 엄중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야말로 난도질이었다. 김대중은 자신이 먼저 20억 원 받은 것을 실토하지 않고 나중에 밝혀질 경우 이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비판을 받을 것임을 예상하고 먼저 선제 방어를 했을 수도 있다.

11월 16일 노태우가 구속되자  조선일보는 17일자에「노 씨의 구속」이란 사설을 싣고 그날을 ‘국치일’이라고 부르며 개탄했다.

95년 11월 16일은 대한민국에 있어 또 다른 의미의 국치의 날이다. 우리 손으로 뽑아 5년 간 대통령직에 있었던 사람이 다른 죄도 아닌 뇌물죄로 사직당국에 구속된 것은 나라의 수치요 국민의 부끄러움이며 역사의 퇴보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 설마 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전직 대통령인데, 그래도 이 나라 경제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그가 바로 전직 대통령이기에 그의 배신의 죄는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크다. 나라와 국민을 배신한 죄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 다. 우리는 전직 대통령이 수천억 원의 뇌물을 받은 부끄러운 나라이지만 그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전직 대통령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양식과 용기를 입증하고 있다.
(…)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이 시점에서도 정치인들은 정치담당자로서의 총체적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상대방에게 흙탕물 튀기기와 상대방 죽이기에 여념이 없다. 뒤지고 보면 노태우 축소판일 것 같은 사람들이면서 자기들을 마치 엊그제 하늘에서 떨어진 선남선녀인양 기승을 부리는 위선에서 국민들은 한없는 연민을 느낄 뿐이며 저들에게 더 이상 나라의 정치를 맡겨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얻게 될 뿐이다.
노 씨의 구속은 우리에게 아픈 교훈이면서 동시에 중대한 경고다. 한국인으로서 우리 모두가 한 작은 성취에 심취해서 자족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는 다리와 백화점의 붕괴라는 자명종이 울렸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지금 우리는 지도층 사회의 양심이 마비된 데 대한 또 다른 질책에 시달리고 있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5·18 특별법과 전두환 구속

김영삼은 11월 24일 느닷없이 5·17 쿠데타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대선 자금 문제로 옮겨 붙기 시작한 노태우 비자금 사태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그 점을 조선일보 사설(「5·18 승부수」이 정확히 지적했다.

(…) 김영삼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 5·18 특별법 을 수용키로 한 결정에 대해 우리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5·18 자체의 문제다. 우리는 지난 7월 검찰이 5·18에 대한 공소권 없음을 발표했을 때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우리는 7월 20일자 사설에서 5·17을 사실상의 군부쿠데타로 규정하고서도 그것의 법적 처리를 회피한 정부의 처사를 비판하면서 “그것이 정치의 영역이 되건, 역사의 문제로 귀속되건 그 최종적 판단은 정부의 몫이 아니라 사법부에 맡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현 시점에서 소급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중대한 전례를 남기게 된다. 쿠데타 등 탈헌법적 상황에서 활용되어온 소급입법을 문민 정부에서 제정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으며 자칫 이 법에 따른 심판으로 5·18 이후의 모든 정치적 행정적 결정에 법적인 파급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지게 된 것은 그동안 이를 둘러싼 갈등과 마찰에 어떤 형태로든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됐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 김 대통령과 정부가 취해온 반대 또는 소극적 입장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마치 5·18 특별법 문제가 어제 오늘 제기된 것처럼 태도를 바꾸면서 기존의 특별법 요구의 수용이라는 형식을 애써 피하고 자기들의 선수로 이 법을 만드는 것처럼 발표하는 당사자들의 천연덕스러움이다. 이런 관점에서도 우리는 정부·여당이 특별법을 만들기로 한 태도 변화가 결코 5·18문제 자체에 비중을 둔 순수한 결정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김 대통령은 이것을 노태우 비자금 정국을 정면 돌파하려는 승부수로 삼은 것이다. 이것이 특별법 수용의 정치적 해석이다.

(…) 김 대통령은 이제 5·6공 세력과의 전면 단절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 김 대통령은 5·18특별법 제정으로 일생일대의 중대한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그가 단죄하려고 하는 5·17 쿠데타의 주동자의 하나인 노태우, 5·16쿠데타의 주동자의 하나인 김종필 씨 등과 함께 3당 통합을 해서 대통령 자리를 거머쥔 것이 하나의 승부수였다면 5년의 세월이 지난 이제 그 역순으로 5·18을 단죄함으로써 그들과 손을 끊으려는 김 대통령의 오늘의 결정은 그의 변화무쌍한 승부수를 보여주고 있다.

1995년 7월 ‘공소권 없음’이란 결정을 내렸던 검찰은 11월 30일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수사를 재개했다. 특별법 제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검찰의 소환 조사를 거부한 채 고향 합천으로 내려간 전두환은 군형법상 반란 수괴 등의 혐의를 받고 12월 3일 체포 압송되어 전격 구속 수감됐다. 두 전직 대통령이 함께 구속 수감되는 ‘건국 이래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12월 4일자에 「우리의 감회·제안·다짐이라는 통단 사설을 올렸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동시에 구속되는 건국 이래 초유의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감회다. 군인 신분인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가 대통령의 시해 사건을 기회로 정권을 찬탈했을 때 온 나라는 변변한 저항 한 번 못하고 그들에게 이끌려갔다. 그 이후 그들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광주 사태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고 많은 사람을 괴롭혔다.
(…)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권력의 장악과 그 권력의 자의적 행사는 결국은 온전하게 넘어갈 수 없다는 사리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 우리는 전·노 씨의 5·18에 대한 단죄는 한 시대를 마감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시대적 요청이라고 믿고 있다. (…) 늦었어도 정리를 해야 하지만 왜 늦었는지, 왜 그때 말 다르고 지금 말 다른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제안이다. 과거에 대한 심판을 전·노 씨 두 사람으로 제한하는 것을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 과거에 대한 응징은 그것이 정치적 사안일수록 상징적일 수밖에 없다. (…) 5·18의 단죄는 전·노 씨 두 사람의 단죄로 집약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관련자들의 죄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노씨의 죄 많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우리에게는 되도록 빨리 전·노 쇼크랄까 5·18 특별법 정국에서 벗어나 평상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다짐이다. 그것은 이제 앞으로 지도자 특히 대통령을 뽑을 때 신중히 선택을 하자는 것이다. (…) 노 씨는 양김 분열 탓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국민이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다. (…) 우리는 그를 뽑을 때 그가 5·18의 주동자의 한 사람이란 것을 몰랐었는가? 노 씨가 지금 대통령 재직 또는 그 이후의 비리 축재로 소추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가 추가로 5·18로 단죄된다는 것은 87년 국민의 선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은 5·18 주동자의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의 법적·정치적 논의는 별개로 하고라도 일단 우리 국민이 지도자를 잘못 선택했기에 우리는 지금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구속되는 국민적 불행과 대외적 창피를 겪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대통령을 선택할 때 후보자들의 정치적 잘못, 법적 하자, 사회적 흠을 면밀히 검토하고 따지고 가려서 못을 박고 넘어갈 것을 국민적 과제로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차원을 떠나 너무나 편의적이고 너무나 늦었고, 그 후의 역사를 보면 전혀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은, 당시의 정치 상황과 여 론에 아부하는 사설이라고 함직하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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