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5.18로 인해 무덤이 생긴 ‘섬진강뱃사공’을 찾습니다

벌써 40년이 흘렀다. 내가 그를 만난지. 1980년 10월의 어느날, 섬진강변 나루터에서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곳의 뱃사공이었다. 지금은 정확한 지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스물일곱의 기자초년병이었던 나는 그 때 친구들 서너명과 함께 남도를 여행중이었고 구례 화개장터를 지나 막 그 곳에 도착해 섬진강을 왕복하는 나룻배를 탔던 것이다. 그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고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듯한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젊은 여자들이 우르르 배를 타자 궁금했던지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서울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그는 “좋겠다”고 “부럽다”고 말하며 자기는 “아무데도 못가고 뱃사공 노릇만 해야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건너편 강기슭의 야산 언덕빼기를 가리키며 거기에 자기 무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기 위해 그 지역의 큰 도시인 광주에 나가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5.18이 터졌다고 했다.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잡아간다며 그를 마루밑에 숨겨주었고 두달이 지난 후에 집에 돌아가니 부모님들이 기절할듯이 놀라더라는 것이었다. 광주에 나가있던 아들을 찾아 헤매던 그 부모님은 엉뚱한 시신을 아들로 알고 이미 무덤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돌아오니 뱃사공이었던 그 아버지는 “이제부터 아무데도 가지말고 뱃사공노릇만 하라”고 해서 외아들이던 그는 꼼짝없이 대를 이어 ‘섬진강 뱃사공’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얘기의 전부였다. 나는 그의 얘기의 진위여부는 모른다. 그러나 그의 얘기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그 부모님은 시신의 상태가 어땟길래 아들도 몰라보고 남의 시신을 가져와서 무덤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잘못 뒤바뀐 시신이 또 얼마나 많을까? 최근에도 옛 광주교도소 자리에서 신원미상의 유골 40여구가 발견되면서 또 다시 5.18광주의 진상규명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었다. 5.18 진상규명의 길은 이렇게 멀고도 험한데 전두환씨는 오늘도 사과의 말은 한마디도 없이 법정에서 헛소리만 늘어놓으며 골프에 호화만찬에 세월가는지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러나 40년 전의 젊은 나는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바로 그 5.18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80년에 강제 해직을 당해 직장(합동통신 현 연합뉴스의 전신)에서 쫓겨났다. 80년 5월17일의 계엄확대로 지명수배를 받고 있던 당시 한국기자협회장 고 김태홍 선배를 숨겼다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잡혀들어가 그 유명한 고문기술자 이근안한테 물고문도 당하고 서대문구치소까지 갔다가 기소유예 판결을 받고 한달여 만에 석방돼 나오니 직장에서는 사표도 쓰지 못하고 강제해직당한 후였다.

그 여행은 백수가 된 기념(?)으로 떠난 남도여행이었고 그땐 정말 모두 암울하고 삼엄한 시절을 살았었다. 우리가 여행하던 그 때 감옥에 있던 광주 출신의 김태홍선배는 지난 2011년부터 망월동 민주묘역에 묻혀있다. 나는 해마다 5.18이면 80해직언론인협의회 동료선후배들과 함께 광주에 내려간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그간 연례행사처럼 해왔던 추모행사들이 취소되어 못가게 됐다. 그러자 문득 내가 언제까지 광주를 내려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출처=5·18기념재단 홈페이지

해마다 내려가던 광주를 못내려가게되자 이번에는 새삼스럽게 40년 전에 만났던 그 섬진강 뱃사공이 떠올랐다. 아 그 뱃사공이 있었지! 그는 지난 40년을 어떻게 살았을까? 왜 나는 40년 동안 그를 다시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명색이 기자였으면서 무엇이 나에게 그의 진실을 취재하는 것을 막았을까? 왜 나는 그에 대해 더 이상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의 무덤에 누워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40년은 강산이 네 번 바뀔만한 세월이다. 지금 섬진강의 나룻배는 사라진지 오래일 것이다. 그러나 계속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고 내게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그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다.

나는 40년 전 광주 5.18로 인해서 무덤이 생긴 섬진강 뱃사공을 만나고 싶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60대 초중반일 것이다. 어쩜 50대 후반일 수도 있다. 그가 어떤 모습이든 그가 만약 살아있다면, 그래서 이글을 읽고 있다면, 나는 그와 함께 섬진강변의 허름한 주점에 가서 이름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위로하는 진혼술을 마시고 싶다. 그래서 그와 함께 40년 묵은 눈물을 흘리고 싶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