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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라운드와 세계화조선일보 대해부 4권 - 4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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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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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열린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일반협정) 각료회담에서 국제교역에서의 시장 개방 확대, GATT 체제 및 규율 강화, 농산물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분야에 대한 국제규범 제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 교역 질서를 창출할 목적으로 다자간 협상이 시작되었다.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이 추진된 배경은 1980년대 들어 세계 경기가 제2차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장기간 침체를 보인 데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등으로 세계경제의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면서 세계 교역질서가 보호주의에 휩싸이게 되어 GATT 체제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특히 GATT에서 벗어난 각종 조치의 남발, 반(反)덤핑·상계관세의 남용 등이 GATT의 위상을 위축시켰고, 경제블럭화가 진전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었다. 또한 경제의 서비스화 진전에 따른 서비스 교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둘러싼 마찰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규제할 새로운 국제규범에 대한 요구가 미국, 유럽공동체(EU) 등을 중심으로 증대되었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은 당초 1990년 12월 말에 종결될 예정이었으나,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EU가 농업보조금 감축안에 대해 의견 대립을 보임으로써 타결에 실패했다. 1991년 4월 다시 협상이 시작되었고 1992년 11월에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의 최대 과제였던 미국과 EU 간의 농업보조금 감축문제가 EU의 양보로 합의되고, 1993년 7월 도쿄 서방선진 7개국(G7) 회담에서 미국·일본·EU·캐나다가 공산품 시장 접근에 합의함으로써 협상 타결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쌀 문제로 집중된 우루과이 라운드

한국의 경우 쌀 수입 개방문제가 협상의 최대 난관이었다. 농협이 1991년 11월 11일부터 12월 23일까지 전개한 ‘쌀 수입 개방 반대 서명운동’에는 1천3백만여 명의 국민이 참여했다. 김영삼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 개방은 결코 않겠다”(1992년 11월 대통령 선거 유세)고 다짐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도 그는 “한국은 농가소득의 30% 이상을 쌀에 의존하고 있다. 절대 개방할 수 없다”(1993년 1월 일본 아사히신문회견)고 말했다.

협상 마감 시한(1993년 12월 15일)이 다가오면서 한국사회의 긴장은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농림수산부장관 허신행은 11월 26일 국회 농수산위에서 “김 대통령의 쌀 개방 불가 의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주무장관인 나도 모르게 쌀 개방 문제를 검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증언했다. 마지막 협상을 위해 12월 2일 출국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쌀의 관세화는 물론 최소시장 접근도 허용할 수 없다. 한국은 분단국인데다 농업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다”면서 “이 점을 미국과 유럽공동체 대표에게 설득하겠다”고 장담했다.

조선일보는 일찌감치 ‘개방 불가피’의 입장을 보였다. 12월 1일자 사설(「한말을 연상시킨다」)을 통해 야당 등 쌀시장 개방 반대 진영을 준엄하게 타이른 것이다.

작은 한말이 되풀이되고 있다. 작금의 우리 정치판의 정쟁이 그렇고, 쌀 개방 압력 앞에서의 지리멸렬이 그러하다. 쌀문제와 UR, 그리고 미국 주도의 APEC 등 일련의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밀어닥친 제2의 개국 요구다. 한말의 개국 압력 때 우리 선대들은 쇄국이다, 개국이다, 수구파다, 개혁파다, 내전이다 하면서 제각기 내부에서 싸우고 분열하다가 결국은 망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그와 비슷한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 세계 시장의 통합화 추세는 시대적인 대세이며, 그것에 끝까지 대항한다는 것은 경제파탄을 자초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남은 문제는 협상에서의 보다 나은 대안과 덜 나쁜 대안을 발굴하기 위해 여야와 각계가 머리를 맞대고 역할 분담과 대비책 강구, 그리고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특화전략을 마련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사리와 형편이 이러한데도 정부·여당은 계속 나중에 수습할 수 없는 말들만 단정적으로 해대니, 도대체 그러다가 어쩌려고 그러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민주당 역시 답답한 소리들만 하고 있다. 개방 절대 불가는 물론 최고최선의 명제다. 그러나 야당이 책임질 자리에 있지 않다 해서 그렇게 대안도 없이 몰아세우며 쌀문제의 권력투쟁 무기화를 하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수권정당으로서 해야 할 일인가. (…) 쌀문제를 무기 삼아 장외에서 재야와 함께 그 해묵은 양극화의 대치선을 다시 편성하려는 의도는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 정부·여당은 야당과 국민에 대해 개방화의 첨단전략과 사후책을 제시해 정직한 설득력으로 호소해야 하고, 반면에 야당은 연계전략이나 대안 없는 절대불가론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하지 말고 국가 경영의 반분의 책임을 지려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제2의 개국 압력은 내분으로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쌀시장 개방은 없다며 제네바로 날아 간 허신행은 12월 4일 “쌀의 관세화 예외 노력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단계이다.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협상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달라”며 꼬리를 내렸다. 부총리이경식도 같은 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의 수용은 불가피하다. 버스는 마지막 한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결과에 따라서는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12월 7일 정부의 쌀 개방 정책에 항의하는 쌀·기초농산물 수입개방저지 범국민대회가 3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됐다. “김영삼은 물러가라”는 플래카드가 처음 등장했다. 결국 정부는 12월 9일 쌀시장 개방을 공식 선언했다. 김영삼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쌀을 지키기 위해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을 탈퇴하고 국제적 고아로 혼자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GATT 체제를 수용하면서 세계화 국제화 미래화의 길로 나갈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뇌했으나, 고립보다는 GATT 체제 속의 경쟁과 협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쌀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김영삼은 “그간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으나,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면서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하면서도 “UR 타결로 분명히 우리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많다”고 강조하고, “지금은 힘을 합해 개방에 대비할 일이지, 네 탓 내 탓을 따지며 편싸움을 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쌀 개방에 따른 국론 분열을 막자고 호소했다.

조선일보는 12월 10일자 사설(「개방 선언과 생존전략」)에서 “대통령의 쌀 개방 선언은 비록 비판될 수는 있을지언정 회피될 수는 없는 것이 냉엄한 우리의 현실”이라고 쌀시장 개방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우리 사회가 쌀 개방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하고 정부가 얼마나 효율성있고 책임 있게 신정책 구상을 실천하느냐에 따라 쌀의 정치경제학은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해낼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 제네바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꽃 튀는 UR 협상의 각축에서 (…) 우리 아닌 그들, 선진공업국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결국 그들에게 유리한 무제한 경쟁과 무차별 거래이고 모든 장벽과 모든 제한이 그들의 공략 목표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지구 규모의 거대한 단일시장화나 획일화로의 지향과 다름 아니다. 동시에 그것은 문명의 다양성과 문화의 특수성을 하나씩 부정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쌀에 그토록 집착하게 만드는 것은 교역 상품으로서의 쌀이 아니라 우리만의 문화이자 문명에 대한 애착심이다. (…) 그러나 우리가 우리만의 것을 고수하기는 너무나 우리의 역량이 모자라는 점도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국제화, 개방화는 우리가 새 질서에서도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단순히 국제화, 개방화만으로 우리의 생존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국제화는 세계 무대에서의 공정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와 경쟁력의 확보에 다름 아니며, 그것은 곧 우리의 사고와 능력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피나는 노력과 각성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 같은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가 지키고 싶은 우리만의 것도 지킬 수 있게 될 것이다.


‘형편없는 한국 외교력’

‘개방’을 기정사실화한 조선일보가 보기에도 한국의 외교 협상 실력은 너무 한심했던 것 같다. 조선일보는 12월 11일자 사설(「너무 빈약한 협상력」)을 통해 “쌀과 우루과이 라운드의 막바지 협상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우리들의 빈약한 외교 교섭 능력을 자탄하게 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설 자체가 협상을 통해 얻어야 할 최고의 목표가 무엇인지 정해 놓지도 않고 협상력 부재를 탓했다는 것이다. 쌀 개방에 분노하는 국민 여론에 슬쩍 비위를 맞추려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12월 16일자로 조선일보 제네바 특파원이 보낸 기사다. 프랑스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얻어낼 건 다 얻어냈다는 것이다. 「“UR서 지킬 것은 다 지켰다”: 불(佛)의 승리 작전 / EC회담 측면 지원 미 무력화/ 언론서도 “시한 쫓긴 국익 양보 안 된다” 응원 / 미테랑·발라뒤르 좌우 동거 체제도 “손발 척척”」이라는 기사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프랑스는 지키겠다고 한 모든 분야를 다 지켰다. 미·EC 간 농산물 예비협정인 블레어 하우스는 프랑스의 요구대로 수정됐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쌀시장을 열고 있을 때, 발라뒤르 총리는 “프랑스의 승리”를 선언하고 있었다.
(…) 프랑스 언론들은 “15일이라는 미국이 정한 시한이 무슨 의미인가” “15일이 지난다 해도 무엇이 달라지나” 등등의 특유의 논법을 전개하면서 마지막까지 EC 협상팀들을 응원했다. 이것은 15일을 넘길 수도 있다는 여유를 갖게 했다. “시한에 쫓겨서 국익을 양보하는 게 협상의 최하수”라는 응원도 있었다. EC 협상팀들이 내놓고 있는 주장들은 대부분 프랑스의 것이었다. 특히 농산물과 오디오·비디오는 미·EC 협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미·불 협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발라뒤르 총리는 농산물 협상 타결 이후에도 정부보조금 수출농산물 삭감을 상쇄할 수 있는 대 농민 보상제도, 휴경지 확대 제한 등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여기에는 프랑스 정부가 최후 순간까지 의회 표결이라는 카드를 적절히 활용한 것이 주효했다. 제네바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그것이 프랑스의 국익에 배치될 때 의회가 이를 뒤집을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프랑스가 협상에서 지킬 것을 다 지킬 수 있도록 한 데는 언론의 역할도 컸다는데, 조선일보는 ‘작은 한말’ ‘쌀문제를 권력투쟁 무기화’ ‘제2의 개국’운운 하면서 개방 반대세력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움으로써 협상팀이 가진 주요 무기를 빼앗는 데 앞장서지는 않았던가.

UR 농업협정은 한국에 대해 쌀의 완전개방(관세화)을 10년간 유예하되  시한이 끝나는 2004년 말까지 관세화 유예 여부에 관한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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