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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 ‘창립 45년’…“자유언론 실천은 여전히 절실”이부영 이사장, ‘동아투위 판결’에 ‘朴정권과 거래’ 의혹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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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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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언론인에 “‘자유언론 실천’ 충실해달라” 호소

오정훈 위원장 “동아일보 청산 위해 끝까지 싸울 것”

17일 동아일보사 앞 기자회견 모습. 사진=언론노조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가 현직 언론인들에게 “언론자유라는 막연한 단어에 기대기보다는 ‘자유언론 실천’이라는 적극적 이념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동아투위와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계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7일 동아일보사 사옥 앞에서 동아투위 창립 45주년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언론 실천’은 진정한 언론인의 영원한 사명이자 과제이며 지금도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아투위는 기자회견문에서 “오늘날 언론이 자유와 권리를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나라의 민주화와 겨레의 통일을 위해 진지한 자세로 보도와 논평을 하는 매체가 아주 적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면서 “현직 언론인들에게 ‘자유언론 실천’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동아투위는 1975년 3월 10일 동아일보・신동아・여성동아 등의 기자들과 동아방송 피디・아나운서 등 150여 명이 모여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면서 그 결성이 구체화 됐다. 선언문은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외부 간섭의 배제 ▲기관원의 출입을 거부 ▲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거부하고 불법 연행이 자행될 경우 그가 귀사 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 등을 골자로 했다.

선언이 발표된 후 박정희 정권은 참여자를 차례로 해직 또는 징계하다, 급기야 같은 달 17일 폭력배 200여 명을 동원해 동아일보 사옥 내에서 농성을 벌이던 언론인 150여 명을 폭력으로 사옥 밖으로 몰아내기에 이른다. 내쫓긴 언론인들이 그 길로 지금의 프레스센터에 모여 결성한 것이 동아투위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발언 모습. 사진=언론노조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유언론실천의 정신은 지금도 절실하다”면서 “자유언론 운동을 하는 현역 언론인과 자유언론을 사랑하는 국민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지금껏 걸어온 길을 꿋꿋이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동아투위에 대한 대법원 판결들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동아투위는 과거 자신들의 대량해고에 박정희 정권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금 청구 소송을 2009년에 제기했다. 이에 2014년 대법원 제2부 주심 신영철 대법관은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 판단해 동아투위의 손해배상금 청구권을 인정하면서도,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받지 않고 생활지원금을 수령한 원고들에 대해서는 청구를 각하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발언 모습. 사진=언론노조

이에 대해 이부영 이사장은 “진실・화해위에 대한 진상규명 신청은 단 한 사람의 동아투위 위원이 해도 가능한 일이었는데도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판결을 신영철 대법관이 했다”면서 “손해배상금 청구 소송을 뒤헝클어 놓은 사악한 법관의 표본”이라고 비판했다.  [ 이부영 이사장 발언 내용 전문 보기 ]

동아일보가 진실・화해위의 진상규명 결정에 불복해 2009년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도 대법원 판결은 동아일보의 손을 들어줬다. 2015년 5월 대법원 제2부 민일영 대법관은 “동아일보에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고 정권의 요구해 굴복해 기자들을 해직했다는 인과관계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이에 이 이사장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박정희 정권의 죄악을 세탁하는 것을 조건으로 박근혜 정권과 거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의 설치를 위해 판결로써 박근혜 정권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했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전현직 대법원장, 대법관들이 박근혜 정권과의 거래 속에 박근혜와 동아일보사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는 역할, 즉 사법농단을 저질렀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라고 말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45년 전 선배님들이 자유언론실천 투쟁에 청춘을 바치지 않았다면 우리 언론노조 1만 5천여 조합원이 지금 이 순간 취재와 제작의 현장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아직도 색깔론과 반노동・반민주적 보도를 일삼고 있는 동아일보의 청산을 위해 조합원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 발언 모습. 사진=언론노조

성한표 조선투위 위원장의 연대발언 모습. 사진=언론노조

동아투위 명예위원인 이해동 목사의 연대발언 모습. 사진=언론노조

기자회견문 낭독을 하고 있는 조강래 동아투위 위원(좌)과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모습. 사진=언론노조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동아투위 결성 45주년을 이틀 앞두고 고인이 된 권근술 동아투위 위원(전 한겨레신문 사장)의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기자회견에는 권 위원의 손자인 권민수씨가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자리에 함께했다. 이부영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권 형. 마음 편히 가시게. 부드럽고 강인했던 나의 친구여”라고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기자회견 서두에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고 권근술 동아투위 위원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고 권근술 위원의 손자 모습. 사진=언론노조

* 이글은 2020년 03월 18일(수) 언론노보 임학현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동아투위 45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동아일보를 해고하는 이유'라는 팻말에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기자회견문] 자유언론 실천은 지금도 절실하다

- 동아투위 창립 45주년을 맞이하며

지금부터 45년 반쯤 전인 1974년 10월 24일 오전 10시 반쯤 서울 광화문의 동아일보사 3층 편집국에서 한국 언론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은 유엔 데이(한국은 미 가입국이었지만 공휴일로 정했음)였다. 동아일보, 신동아, 여성동아 등의 기자들, 동아방송 피디와 아나운서 등 150여명이 모인 가운데 한국기자협회 동아일보 분회(대표 장윤환) 주최로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대회가 시작되었다. 편집국 한 복판의 기둥에는 ‘자유언론실천선언/동아일보사 기자 일동’이라고 한자로 쓰인 대형 세로 족자가 걸려 있었다. 참가자들이 잔뜩 긴장한 가운데 분회 보도자유부장 장성원이 ‘개회 선언’을 한 뒤 총무부장 홍종민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고 자유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 기능인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 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 받거나 국민 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선언문에는 3개 요구사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1.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 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1.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1. 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일절 거부한다.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 연행이 자행될 경우 그가 귀사 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의 선언은 당시 철권통치를 일삼던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정면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장면 총리의 민선 정부를 뒤엎고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계엄 같은 극단적 수단을 통해 언론을 억압하고 통제하는가 하면 ‘엿과 당근’을 던져 영향력이 큰 신문과 방송을 ‘어용화’했다. 박정희가 1972년 10월 17일, 봉건시대 일본식 용어인 ‘유신’이라는 구실로 ‘종신집권’ 음모를 구체화하기 시작한 이래 한국사회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독재자를 향해 단 한 마디 비판도 하지 못하는 채 물에 물탄 듯한 기사와 논평만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살벌한 시기에 동아일보사의 젊은 언론인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으니 박정희가 살기(殺氣)를 품지 않을 리 없었을 것이다. 박 정권은 중앙정보부와 보안사(현 기무사의 전신)를 비롯한 ‘기관원’들을 동원해 동아일보, 동아방송, 신동아, 여성동아에 대해 은밀하게 광고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1974년 말부터 동아일보사 매체들의 지면과 전파에서 광고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자 민주화운동 세력, 진보적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이름 없는 ‘민중’이 격려광고라는 이름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계 언론사상 전례가 없는 거대한 반독재 저항 운동이었다.

정권의 존립에 위협을 느꼈음이 분명한 박정희는 동아일보사 사주 김상만(당시 부사장)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회유함으로써 1975년 3월 10일부터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주역들을 차례로 해직하거나 징계하도록 했다. 기자, 피디, 아나운서, 기술인 등이 농성과 단식으로 항거하자 동아일보 사주와 권력은 3월 17일 새벽 흉기를 든 정체불명의 ‘괴한’ 200여명을 농성 현장에 난입시켜 사원들을 폭력으로 몰아냈다. 그렇게 동아일보사에서 밀려난 사원들이 그날 오후 신문회관(현 프레스센터)에서 집회를 갖고 결성한 단체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약칭 동아투위)였다. 갑자기 실업자가 된 150여명으로 출발한 동아투위는 지금까지 45년 동안 동아일보 사주와 집권세력을 향해 복직과 명예회복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그 어떤 정부도 응답을 하지 않았다. 반 세기 가까이 되는 기나긴 세월에 사법부에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지만 “시효가 지났다”, “사법부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라는 등 무책임한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2016년 가을의 촛불혁명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직간접으로 동아투위의 명예회복과 단 하루만의 복직을 위한 방안을 찾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이렇다 할 연락을 받지 못했다.

1975년 3월 출범 당시 130여명이던 동아투위 위원은 그동안 50여명이 작고하거나 ‘은거’하게 되어 현재는 80여명이 명부에 올라 있고, 중요한 행사나 재판이 있을 때는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평균 나이가 80세를 넘나드는 분들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 중에도 최고령(95세)이신 윤활식(동아방송 제작부 차장 출신) 선생은 요즈음도 월례회나 다른 모임에도 빠지지 않으시면서 후배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신다.

동아투위 위원 다수는 오늘날 언론이 자유와 권리를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나라의 민주화와 겨레의 통일을 위해 진지한 자세로 보도와 논평을 하는 매체가 아주 적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자유언론 실천’은 진정한 언론인의 영원한 사명이자 과제이다. 동아투위는 창립 45주년을 맞아 현직 언론인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언론자유라는 막연한 단어에 기대기보다는 ‘자유언론 실천’이라는 적극적 이념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라고.

2020년 3월 17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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