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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故 이재학 PD 비극' 뒷짐만 질 건가[칼럼]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ㆍ언론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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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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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차별 방송계뿐만 아니라 노동계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정부 비정규직 정책 한계...차별금지법 제정 서둘러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청주방송에서 14여 년간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재학 PD의 근로자지위 인정 촉구 및 청주방송의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CJB청주방송에서 14년간 일했던 이재학 PD가 지난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방송계 프리랜서와 비정규직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가 언론 전체의 과제로 떠올랐다. 故 이재학 PD는 프리랜서였지만 정규직 PD들과 똑같이 업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그는 처우개선을 요구했다가 해고된 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패소하자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고용노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특별 근로감독과 비정규직 사용실태를 조사해야 하고 청주방송이 재판 과정에서 각종 자료를 은폐한 의혹 등이 해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재학 PD의 문제는 방송계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포괄적 차별금지가 법제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동일 직장,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상식이 외면된 데 따른 비극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노노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차별을 제도화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재학 PD의 비극을 대부분의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지만, 노동계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근원적 해소는 언론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 비정규직 1천 만 명 시대가 되면서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기업은 인건비 부담 가중과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비정규직 차별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책에도 한계가 있다. 노동의 평등화는 여러 각도에서 추진해야 하지만 유럽연합(EU)의 노동법이 참고할 만 하다. 유럽연합이 27개 소속 회원 국가들의 공존공영을 위해 역내 근로자의 합리적 취업을 법제화한 것처럼 정규직과 동일 직장에서 동일한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은 동일한 급여와 근무 시간, 보험 등 제공 등을 의무적으로 이행토록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유럽연합은 소속 국가의 노동자들은 국적, 성, 종교 등의 차이로 차별을 받지 않고 인권을 보장받으면서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는 제도 덕분에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와 경제적 착취 등의 고통에서 해방돼 있다.

EU 회원국들의 기업은 비정규직을 고용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단지 고용기간만 차이가 있지 급여나 휴가, 보험 등 모든 면에서 동등하게 대우한다. 국가별로 경제적 격차가 크지 않아 EU회원국 노동자들은 EU회원국 어디든지 선택해 취업할 수 있다. 하지만 EU노동법에 의해 임금 착취나 부당노동행위 등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프리카나 중동 난민이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것은 바로 EU노동법에 의해 노동자들이 권리를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노동력 유입 급증에 따른 사회 갈등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필요한 이유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통일을 대비해 남북 노동자 차별 요인을 해소할 기반이 될 수도 있다.

경제적 이유만으로 생명과 인권이 경시되는 사회, 기업 이익 보장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는 자살률, 이혼율, 출산율이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는 유럽공동체의 노동권 보장이 한국에서 시급히 실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이 외면당하고 있으니 정치에 대한 염증이나 혐오감도 심해지는 게 아닌가. 4월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정당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인권 후진국을 벗어날 수는 없다.

유엔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및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2017년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아홉 차례 권고했다. 그러나 이 법은 2020년 2월 13일 현재 제정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차별받는 비정규직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정규직에 대해 기간제, 무기계약직, 일용직 등으로 구분해 법제화하면서 차별을 제도화한 것은 차별금지가 인권보장의 핵심과제라는 유엔의 입장에 반하는 것이다. 특정 계급이나 정치 또는 종교 집단 등의 요구에 인권을 짓밟는 제도가 방치되는 사회는 후진사회다.

참여정부가 2007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삼고 법무부가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재계나 일부 종교 세력 등이 반대로 결국 폐기했다. 정부와 국회 등이 차별을 제도화해서 유지하려는 세력에 굴복해 국제사회의 인권존중 요구나 상식에 등을 돌리는 것은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로 명시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도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규범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권과 평등의 시계 바늘이 후진 사회에 머물러 있는 한심한 모습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정상화는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2중 구조를 해소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재학 PD의 비통한 죽음을 애도하면서 언론이 사회 개혁과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적 소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언론이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데 앞장선다면 그 실천의 날이 앞당겨진다. 이와 함께 언론계가 4월 총선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약속한 국민의 머슴이 다수 뽑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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