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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청문회와 중간평가조선일보 대해부 4권 - 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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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2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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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 총선으로 조성된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청문회 등을 신설한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국민적 요구에 따라 전두환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초창기 국회에서 청문회를 통해 다루어진 의제는 광주 학살과 신군부의 책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전 대통령 전두환 친인척의 비리, 정경유착, 1980년 언론통폐합 및 기자 강제해직의 진상 규명 등이었다.

전두환은 5공특위의 활동으로 비리가 점점 밝혀지면서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한참 청문회가 열리고 있던 11월 23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란 사과성명을 내고 백담사로 향했다. 전두환의 백담사행을 전후로 11월 21일과 22일, 12월 12일과 13일, 31일에 언론청문회가 열렸다.
조선일보는 11월 22일자 1면에서 「“권정달 씨가 200명 명단 줬다” / 기자해직 청문회: 이광표 씨, 2개사엔 직접 전달 / 보안사서 언론사 자체 정화 통고 / 언론대책반에서 명단 취합 / 국보위와 통폐합 논의했다」라는  제목으로 전날 청문회를 크게 다루었다. 의원 이철이 “80년 해직기자가 7백5명”이라는 문서를 공개했다는 기사도 3단으로 뽑았다.

정치부 기자 임동명은 「언론의 자괴」라는 ‘기자수첩’을 썼다. 언론청문회 첫 날을 지켜보는 기자의 심경이 착잡했다면서 “언론에 대탄압이 가해지던 80년 여름 우리는 과연 5·17세력에 맞서 얼마나 싸웠던가”라고 자문했다. ‘기자수첩’은 청문회가 벌어지는 국회 안팎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권력은 언제라도 가능하면 ‘언론의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는 징표를 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언론청문회의 하이라이트는 12월 13, 31일에 열린 4개 언론사 사주들을 상대로 한 청문회였다. 조선일보는 12월 14일자 3면에 1차 신문사 사주 청문회의 이모저모를 전하는 기사(「“특정 증인에 집중 공세” 비난 전화 빗발」)를 내보냈다. 일부 의원이 거의 고의적으로 보일 정도의 편파적 신문으로 일관하는 문제점을 노정했다는 것이다.

(…) 이날 평민당의 박석무 의원은 다른 의원들이 네 증인에게 신문을 고루 배분하는 것과는 달리 증인 공동의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유독 한 증인에게만 질문을 집중하는 비청문회적 ‘횡포’를 자행함으로써 주변에선 “청문을 하는 건지 청부를 맡은 건지”하는 지적을 받기도.
(…) 평민당의 박석무 의원은 거의 모든 시간을 조선일보 방우영 사장에게 집중, ‘악의적’인 질문으로 시종. (…) 박 의원은 “유학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80년 10월 신문발행인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방 사장이 언론을 정비해야 한다는 말을 했느냐”고 신문.
(…) 박 의원은 방 사장에 대한 일방적 질문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번에는 (…) 유독 조선일보의 기사를 복사한 자료만을 갖고 나와 당시 계엄 하에서 ‘타율적’으로 제작된 상황은 무시한 채 “삼청교육을 미화했다” “광주 의거를 난동으로 모는 데 앞장섰다”고 일방적으로 매도.
박 의원은 또 월간조선 85년 6월호의 광주민주화운동 기사를 지적하며 “당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을 분노케 해서 불매운동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기도.
(…) 이 같은 박 의원의 신문이 계속되자 조선일보 편집국에는 독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80년 당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신문들이 조선일보보다 미온적인 보도가 더 심했는데 유독 70년 전통을 갖고 있는 조선일보만 비난하고 있는 저 사람은 “과연 누구냐”라거나 “정치인이 저렇게 지역감정을 부추길 수 있느냐”고 분노를 표시. 한편 일부 시민들은 박 의원의 말을 믿고 “조선일보가 그런 줄 몰랐다”며 불만을 표하기도.

5공 청문회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고 수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5공 비리를 속속들이 밝혀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막강한 신문사 사주들을 상대로 한 언론청문회가 그러했다. 12월 31일 사주들을 상대로 한 청문회가 다시 열렸지만 다음 날짜 신문에서는 그 소식을 단 한 줄도 찾아 볼 수 없다. 희망찬 새해에 관한 기사들뿐이었지 이미 지난해에 벌어졌던 사건을 친절하게 소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12월 31일에 청문회를 하자고 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중간평가

노태우가 1987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는 데는 ‘양김 분열’ 덕이 절대적이었지만 ‘중간평가’ 약속도 큰 몫을 했다. 물론 언제 중간평가를 치루겠다는 것인지, 그 결과를 신임 문제와 연계하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했지만 1988년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그 문제가 슬슬 표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중간평가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여당과 야 3당 간은 물론 심지어 대통령과 여당 간, 야 3당 간 입장도 제 각각이었다. 조선일보 1989년 1월 1일 자 신년호 4면에 실린 「89정치…4대 이슈 / 중간평가」〉편이 그 사정을 잘 전해주고 있다. 작성자는 정치부 기자 이영덕이다.

88년의 정치는 5공 청산을 그 축으로 해 운행돼 왔다. 89년의 그것은 무엇이 될까. (…) 분명한 것은 여권이 88년 식의 수세적 정국 운영에서 벗어나려 할 것. (…) 여권의 한 인사는 최근 “중간평가 공약이야말로 오히려 선견지명”이라고 말하기도. (…) 5공의 멍에로부터의 탈출과 함께, 어쩌면 여소야대의 곤경에서도 구원받는 중요한 승부수로써의 가능성에 여권은 집착하고 있다는 증표가 선견지명이라는 표현에 함축. (…) 그 활용 여하와 결과에 따라 노 대통령의 중간평가는 여권으로서 최대의 호재일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최대의 악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우선 중간평가를 ‘헌법 규정에도 없는 신임투표로 할 것인가 여부가 결정지어야 한다. (…) 그것은 초헌법적인 일이며, 자연히 노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 다음으로, 그 방법을 국민투표로 할 것인지, 아니면 국회 표결, 또는 지난 1년간 국정 수행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방식 등 갖가지 얘기가 지금 여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어떤 ’주제‘를 중간평가에 거느냐는 게 구체적으로 결정돼야 함은 물론이다.
(…) 노 대통령의 결단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 중간평가가 노 대통령과 국민 간의 단순한 양자게임이 아니라, 3야와 나아가서 강경 재야세력의 개입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3차, 4차 방정식이라는 점에 있다고 해야겠다. (…) 방해냐, 수수방관이냐, 아니면 적당히 도와주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3야 등 야권 또한 처해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야권의 속셈을 한 마디로 규정한다는 건 쉽지 않다.
(…) 공화당 김종필 총재는 한 마디로 ‘신임투표’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태도인 것이다. 반면에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는 “중간평가는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니 지켜져야 한다”는 기조 아래 신임투표로의 연계에 대해서는 계속 함구하고 있다.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는 이보다 더 좌우 편차가 커 보이는 태도라 할 수 있다.
(…) (야당의 3김 총재는) 노 대통령의 ‘중간 승리’는 당연히 달갑지 않다. 반면에 ‘노의 패퇴’까지 몰고 갈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노 대통령의 도중하차라는 사태가 생길 경우 당장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보장도 없다는 계산 등에 분주하다는 관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도중 사퇴는 여·야 4당의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정치적 혼란만 야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해야겠다.
(…) 그러나 여권 내에는 정면돌파론이 더욱 강력하다고 해야겠다. “이제와서 무슨 소리냐. 차라리 진퇴를 걸고, 국민들에게 힘을 보태 달라고 승부수를 던지는 것만이 5공 정국 청산도 쉽게 할 수 있는 길”이라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도 해야겠다. ‘노 대통령에게 힘을 주는’ ‘감명적인(?) 중간평가의 효과’라는 여권의 기대를, 야당으로서는 반드시 무산시키려는 시도를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노의 패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별 것 아닌 중간평가’ ‘또는 ’본전치기 중간평가‘로의 격하 시도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 노태우는 1월 17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중간평가는 야권의 의견을 참작해서 결정하겠다”고 했으며, 24일 열린 야 3당 총재 회의에서는 “신임 묻는 중간평가가 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조선일보는 2월 5일자  사설(「중간평가로 신임 물어야」)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중간평가는 신임 여부와 직결되는 것이어야 하고,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으로서의 임무 수행이 5공 청산 문제로 난관에 봉착했으니 여기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는 여기서 양단 간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본다. 국민적 요구라면 5공의 비리를 끝까지 단죄하고, 그것을 못 하겠으면 새 팀이 들어서든가, 아니면 이 선에서 다음의 정치적 과제로 이행하든가 해야 한다. (…) 5공 비리와 관련해서 더 이상 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국민과 야당의 눈치나 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나라나 국민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빨리 해답을 구하는 것이 옳다.
(…) 그러나 우리는 중간평가를 신임과 연결시키면서 국회의 해산까지 걸고 넘어지려는 일부의 기도는 대단히 불건전한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 그것이 중가평가의 과정에서 국민을 상대로 한 홍보책의 일환일 수는 있어도 야당에 대한 평가까지 연계시키는 것은 만부당한 일이다. 결과에 따른 민정당 의원들의 총사퇴는 어디까지나 집권당이 결정할 문제이며, 그것과 국회 해산을 연계시키는 발상은 더더욱 세인의 웃음을 살 뿐이다.

1월 10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노 대통령 중간평가 해야”가 59.9%, 진퇴 묻는 투표 땐 63.3%가 “신임하겠다”로 나왔다. 4당에 대한 지지도는 민주당이 26.6%, 평민당이 22.4%, 민정당이 17.2%, 공화당이 11.8%였다.

이후 중간평가는 실시하는 쪽으로 흐름을 탔다. 조선일보는 2월 25일자 2면 사설(「중간평가 한다면 / 나라가 벌컥 뒤집어 지는 방식 말고」)에서 중간평가 실시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무엇보다 시종 평화롭고 질서 있게 투표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평민당이 조기 실시를 반대하고 민주당은 불신임투쟁에 나설 것을 공언하면서 중간평가 정국은 다시 미궁에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야당 총재들은 3월 4일 회담을 갖고 “중간평가는 신임국민투표 형식으로 치러져야 한다. 그러나 그 시기는 5공 청산 및 민주화 실천 등 국민이 평가할만한 실적을 올린 후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중간평가는 5공 청산과 민주화 실천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며 국민에 대한 도전으로 용납될 수 없다. 중간평가를 통한 퇴진을 위해 적극 투쟁할 것이다”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자 정부와 민정당은 야 3당이 강경자세를 견지한 것으로 해석하고 신임을 건 국민투표 실시 방침을 굳힌 뒤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비로소 조선일보는 노태우 지지 입장을 분명히 하게 됐다. 3월 5일자 조선일보 사설( 「야는 중간평가서 싸워라」) 요지는 다음과 같다.

(…) 거듭 말하지만 중간평가는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와 방법은 결국 중간평가를 약속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상식이다. 대통령이 자기에게 유리한 시기를 택하는 것도 정치적 행위이고, 또 그 시기를 야당에 유리한 시기로 미루려고 하는 것도 야당의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면 일단 시기의 선택은 ‘주최 측’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도 정치적 상식인 것이다.
(…) 야당의 주장대로라면 야당이 바라는 5공 청산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중간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어진다. (…) 만일 여야의 타협과 협상은 이제 더 이상의 여지가 없고 오직 충돌과 대결의 양상으로 치닫는 국면이 기약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여기서 더 이상 정치적 밀고 당김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당당히 선의의 대결로 나가라. (…) 우리는 언제 어떻게 중간평가를 할 것이냐는 문제로 표류하는 정국에 이제 피곤해질 대로 피곤해졌다.

그러나 대통령 노태우는 3월 7일 김종필, 10일 김대중을 잇따라 만나 밀고 당김을 계속했다. 다시 중간평가가 무산되는 분위기에서 조선일보는 3월 12일자 사설(「기교의 정치는 말자 / 중간평가 둘러 싼 ‘말’의 기복들」)을 통해 자기에게 유리하면 한다고 했다가 불리하면 하지 말자고 하는 여야 지도자들의 말 바꾸기에 국민은 이제 식상할 대로 식상했다면서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집권전략 위주로 모든 정치적 사항들을 다루려는 소승적 자세에서 탈피해 역사적 안목에서 오늘의 정국을 풀어 나갈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3월 14일자 ‘기자수첩’(「김대중의 ‘염려’」-정치부 차장 김철)은 “김 총재가 신임과 연계한 중간평가가 정국을 대결 국면으로 몰고 가서 극우나 극좌에게 기회를 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개연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분열의 요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여권이 신임을 연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혼자 신임 불연계를 확인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4일 야 3당 총재 회담에서 “중간평가는 노 대통령이 약속한대로 신임국민투표의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 합의사항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 따라서 김 총재는 중간평가가 나라를 위해 이로울 것이 없다고 진실로 판단하면 정치력을 발휘, 그 자체를 없던 일로 돌려 버리든가 아니면 질서정연한 중간평가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여곡절 끝에 중간평가는 3월 21일 취소됐다. 그 날짜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는 「“중간평가 지금 않겠다” / 노 대통령 특별담화: 실시 시기·방법 신중 재검토 / 국가 위기 초래해선 안 돼 / 5공 청산·광주문제 전진적 해결 천명」, 주요 기사는 「여권, 대야 협상 본격  준비 / 5공 청산·광주문제·지자제 실시 등/ 영수회담도 추진 방침」이었다. 조선일보는 통단사설(「노 대통령의 도박」)을 통해 극도의 불만을 표시했다.

(…) 중간평가 불실시는 하나의 결과로서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치 않은 것이다. (…) 국민의 입장에서는 우롱당한 기분이 아닐 수 없다. (…) 불행히도 노 대통령이 (중평 불실시의 이유로) 제시한 ‘정국의 격돌’ ‘좌익폭력 세력의 파괴행동’ ‘과열 혼란상’ ‘국력의 소모와 국민의 분열’ 등의 이유는 우리를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 또 그런 불안정한 요인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중간평가라는 자극과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논리도 가능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간평가가 없게 됐다고 해서 파괴적 집단행동이나 폭력 사태, 정치적 격돌이 사그라지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노 대통령의 결정으로 인한 정국의 앞날이다. (…) 중간평가 불실시로 새로이 형성될 것으로 보는 정국 구도는 ‘제도권 대 재야’라는 2원적 양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여와 야는 서로 논리의 아전인수는 있을망정 중간평가를 실시하지 않을 것에 합의한 것이며, 노 정권의 퇴진을 중간평가와 연계한 재야의 입장은 그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는 양상이다. (…) 제도권 대 재야의 2원 구도에서는 완충 없는 대결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 만일 노 정부가 야당들과 연대해서 제도권 외적 요소와 싸울 수 있는 정치적 구상이 없이 중간평가 불실시를 결정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노 정권의 후퇴요, 자신감의 상실이며, 야당의 득세를 의미할 뿐이다.
(…) 노 정권은 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대로 수용하고, 야당은 그것을 5공 청산으로 인정해 주는 것을 시발로 의회세력의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신임과 연계한 중간평가를 지지해 왔던 우리는 기꺼이 그 주장을 철회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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