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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침 맞고 싶어?”[광주 통신] 임종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
  • 관리자
  • 승인 2019.12.0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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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침 맞고 싶어?”
5.18구속부상자회장 선거에 조폭 연루설을 맨처음 제기했을 때 내가 들었던 말이다. 그동안 단톡방에서 상대 진영을 비판하는 댓글이 거의 없고 선거에 관해 언급하기를 꺼려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같았다. 법원에서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지명한 변호사가 갑자기 중도사퇴한 이유에 대해서도 소문이 무성했다. 구속부상자회 내분이 극심했던 금년 5월에 5.18기념식장에서 대통령이 입장하기 직전 청와대 경호원들이 대기하던 식장에서 벌어졌던 폭력사태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40년전 전두환 폭력시대가 떠오르지만 내 마음은 의외로 담담하다. 시민을 개돼지처럼 학살했던 야만의 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죽음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같다.

아무런 사회의식도 없이 공부만 했던 대학생이 5.18을 만나 도청앞 집단발포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고 숱한 학살현장과 참혹한 시신들을 보먼서 생과 사의 경계를 초월해버린 것이다.
함께 죽지못하고 살아남은 죄의식 때문에 고민하던 나는 광주학살을 지원한 미국의 범죄를 전세계에 고발하기 위해 광주미국문화원에 방화하던 날 새벽, 곤히 주무시는 어머님께 큰 절을 올리고 집을 나설 때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광주교도소에서 2년6개월 수형생활을 하던 중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단식중 병원으로 실려가 사망하던 날 옥중 동지들이 항의단식에 돌입했다. 그때 나는 유서를 써놓고 굶어죽겠다는 결의로 단식에 동조했다. 박관현의 죽음에 이어 나까지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동료들이 단식을 중단한 후에도 나홀로 20일 이상 단식을 이어갔다. 다급해진 교도소 당국은 다른 감방에 갇혀있던 시인 김남주와 김정길 선배를 내 방에 들여보내 나를 설득케 했다. 많은 동지들이 “살아서 투쟁하자”는 격려전문을 보내왔다. 몇가지 사안을 관철하고 단식을 중단했다.

광주학살 이후 40년이 흘렀다. 이제는 신앙인으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톨릭의 선교과정에서 103인의 순교성인이 있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정약종의 아들이자 정약용의 손자인 정하상 바오로는 정통사대부 집안의 부귀영화를 내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순교의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 어차피 한세상 살다 가는 게 인생이거늘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언들 두렵겠는가.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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