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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타오르는 민주화 운동조선일보 대해부 4권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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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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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전두환 정권은 3S(섹스, 스포츠, 스크린) 등 각종 대중 소비적 정책들을 통해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사회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는 한편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혹독한 탄압을 계속했다. 이른바 ‘녹화사업’과 대학생들에 대한 감시·연행·고문 등이 끊이지 않았고 반공을 정권안보에 이용하기 위해 간첩단 사건들을 조작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광주 항쟁 진압 과정에서 드러난 계엄군의 만행에 대한 저항은 계속됐다. 특히 대학생들의 저항활동은 전두환 독재정권뿐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행해졌다. 광주 유혈 진압과 전두환 독재정권 지원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겠다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의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은 그런 상화에서 발생했다. 조선일보는 3월 19일자 11면 머리에  그 사건에 관한 기사(「불온분자의 방화」)를 올리고 불타는 건물 사진을 함께 실었다.

18일 오후 2시 2분쯤 부산시 중구 대청동 2가 24 미국문화원(원장 체리R. 냉크·47)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나 연건평 6백평의 3층 콘크리트 건물 중 1층 사무실 2백평을 모두 태우고(재산피해 2천만 원·경찰 추산) 1시간 만에 진화됐다. (…) 이 불로 1층 도서관에서 열람 중이던 동아대 상경과 장덕술(23) 군이 불에 타 숨지고 동아대 회화과 4년 김미숙(24) 양 등 3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미군 수사요원들과 합동으로 화인 수사에 나선 부산시 경찰국은 18일 미국문화원에 불이 나기 바로 직전 “미문화원을 폭파시키겠다”는 내용의 불온삐라가 문화원 주변에 뿌려진 사실을 밝혀내고 이번 화재가 좌경분자 또는 반정부 지하단체에 의한 조직적인 방화 색채가 짙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경찰 소식통들은 이 삐라의 내용이 반정부적이고 좌경색이 짙은 것으로 보아 지하에서 암약 중인 반정부 활동분자나 대남간첩들이 한미관계를 이간시키려는 목적에서 계획적으로 주한 미 단체 건물을 골라 방화한 혐의가 짙다고 보고 있다.[연합]

이른바 ‘부미방(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은 3월 18일 발생했지만 그 여파는 1982년 내내 계속됐다. 그만큼 민감한 사건이라 언론은 더욱 과민하게 반응했다. 재판 과정에서 수사당국의 비인간적 고문 사례가 드러나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천주교 신부 최기식이 교회를 찾아온 사건 관련자들을 자수시킨 후 ‘방화범 은닉죄’로 구속되자 실정법과 교회법이 대립하기도 했다.

미국문화원 방화는 앞서 1980년 12월 9일 광주에서 발생했다. 광주 항쟁 과정에서 드러난 계엄군의 만행과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으로 광주의 청년학생들이 결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피해가 크지 않자 전두환 정권이이 사건의 쟁점화를 피하기 위해 보도를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그 실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부미방 사건의 동기도 같은 맥락이었다. 부산 고려신학대학(고신대)에 다니던 문부식은 1981년 광주 항쟁에 관련돼 도피생활을 하던 김현장을 만나 광주 학살의 진상을 제대로 알게 됐고, 고신대 등 부산의 대학생들인 김은숙, 이미옥, 유승열, 김지희, 최인순, 박원식, 최충언 등과 함께 부미방 사건을 일으킨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당시 범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3월 21일자 사설을 통해 범인들이 “한미 간의 이간을 노렸을 것”이라며 이 사건은 ‘민족적 수치’라고 주장했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은 조야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80년 12월에도 광주의 미국문화원이 방화범에 의해 불탄 일이 있으며, 그때의 주범이 이번 부산 사건도 주동했으리라는 혐의를 두고, 경찰이 좇고 있다는 점이다.
(…) 사상자가 날 것을 무릅쓴 방화범들의 테러 목적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한미 간의 이간을 노렸을 것이다. 방화 사건 직전에 부산 시내 요소에서 뿌려진 불온삐라도 이들 일당의 짓일 것으로 수사기관은 보고 있다. 북괴의 상투적인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반정부, 반미적인 불순한 구호로 가득 찬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 만일 방화범들이 광주에 이어 부산의 미국문화원을 그들의 불순한 정치목적의 표적으로 삼았다면, 커다란 판단 착오와 오산을 한 것이 틀림없다. 한미 간의 우호와 유대관계는 다시 굳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을망정,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들의 불온전단 가운데는 한국이 북침 준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미군의 철군을 주장했다. 평화적인 올림픽 개최를 중단하라는 등 한마디로 논리의 모순을 드러내놓고 있다. 이런 반체제분자들의 말이나 글 장난으로 그치지 않고, 세계적 돌림병인 신좌익적 폭력화로 변모하는 새로운 양상에 우리는 엄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극좌파 반미 테러’로 규정한 언론

언론은 대대적 보도를 통해 부미방 사건을 ‘빨갱이 테러리스트’의 반미 테러로 규정했다. 광주 유혈 진압과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해 미문화원에 불을 질렀다는 사건의 동기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경찰의 사건 수사가 윤곽을 잡을 때까지 거의 매일 주요기사로 다루었다. 3월 31일자 1면 머리에는 「부산 방화범 4명 검거」라는 기사, 2면에는 사설, 3면에는 취재기자 방담, 10·11면에는 관련기사들이 실렸다. 조선일보는 그 사건을 친북 좌경 불순분자들의 반미 테러로 보면서, 그들은 파렴치한 이중적 성격자 라고 매도했다.

[부산=김석규 기자]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수사본부는 사건 발생 12일 만인 30일 이 사건의 범인으로 4명을 검거하고 3명을 수배했다고 발표했다. 검거된 범인은 부산 고신대 의예과 2년 이미옥, 최충언, 박원식과 부산대 약대 3년 최인순이며 수배된 자는 주범인 문부식과 김은숙 및 신원이 불확실한 김영현으로 7명 중 4명이 여자이다.
(…) 한기형 수사본부장은 “범인들은 모두 좌경화된 불순분자들로 한미 간의 이간을 책동하고 88년 서울올림픽을 반대하는 등 사회 혼란을 목적으로 범행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수배된 주범 문은 대통령 위해음모 사건의 범인들 중 일당으로 검거된 캐나다 교포 문지식의 사촌동생이며 함께 수배된 김은숙과는 애인 관계임이 확인됐다고 밝히고 이로 미루어 이번 사건이 대통령 위해음모 사건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3월 31일일자 1면 머리기사).

지난 3월 18일 발생한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관련자 중 4명을 사건 발생 12일 만인 30일 검거했으며, 나머지 관련자에 대해서도 신원을 파악,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경찰당국이 발표했다.
(…) 이번 사건의 특징은 관련자 거의가 대학에 재적하고 있는 남녀학생들이라는 점이며, 방화테러 행위가 조직적이고도 계획적으로 감행됐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로는 작년의 일부 학원소요에서 반미적 구호가 산발적으로 등장하기는 했으나, 미국기관을 직접적인 표적들로 규모 큰 테러가 감행됐음은 건국 후 이번 사건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들 수 있겠다.
(…) 어느 모로 보나 학생 신분자들에 의한 이번 방화테러 사건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중대한 과제를 던져주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른바 이념서클을 중심으로 한 극소수이기는 하나, 일부 학생들의 사상적 움직임과 행동 경향은 근래에 오면서 학원 최대의 과제로 등장했으며, 그 흐름이 학원문제의 울타리를 벗어나 때로 사회현장을 지향하는 성향까지를 보여 왔다. 이번 미국문화원 방화테러사건이 이와 같은 새로운 증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사건 자체가 지니는 의미와는 별도로 시대와 사회의 중대하고도 심각한 관심사가 안 될 수 없다.
(…)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상자까지 낸 엄청난 방화테러 행위를 감행하고 나서도 이들 남녀 관련학생들은 태연히 학업 등 일상생활을 지속함으로써 지능적으로 자신들을 은폐했으며, 이들 가족들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중에 각자 집에서 검거됐다. 그 대담성도 대담성이려니와 2중성격(2중생활)에서 우리는 또 하나 오늘의 가정(가족) 관리의 비극적 형태의 일면을 상정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실로 충격적인 경종이 되기도 한다(3월 31일자 2면 사설).

경찰은 4월 1일 부미방 사건의 주동자인 문부식과 김은숙이 자수해 검거했으며 4월 2일에는 배후인물인 김현장과 김영애도 검거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4월 2, 3일자에 관련 뉴스를 1면 머리기사로 전했다. 또 4월 2일자 3면에서는 「지하대학」이라는 제목으로 대학생들의 ‘지하 이념서클의 의식화운동’ 실태에 관한 시리즈를 시작했다. 4월 3일자 사설에서는 부미방 관련자들을 ‘극좌적 광신파’라며 ‘유례없는 저수준’의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고문 선우휘는 4월 4일 3면 칼럼(「물어볼 것이 너무 많다」)에서 이념서클의 대학생들을 ‘지능적으로 미숙한 젊은이들’로 야유하는가 하면 종교의 사회 참여를 강하게 비난했다.

“언젠가 내가 나설 차례가 된다.” 소위 학원 내 지하 이념서클에 가입된 회원들은 이런 ‘각오’를 하고 있다. 그것이 신입회원들의 이념 훈련이든, 데모 주동이든 회원 누구나 언젠가는 앞장서야 할 차례가 오는 것이다.
끊임없는 의식화작업을 통해 지하 이념서클들은 자전체제로 굴러가도록 훈련되고 ‘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당국과 학교가 몇 명의 핵심회원에 대한 조처를 취했다고 해도 독버섯처럼 뿌리가 뽑히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학원 내의 지하 이념서클은 어떻게 훈련되고 있는가. 신입회원 선발부터가 엄격하다. 매년 3월 신학기가 되면 이념서클의 멤버들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신입회원 선발을 위한 포섭작업을 벌인다. 주로 학연과 지연을 이용하지만 아무나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고교 때의 성적, 지능지수, 리더십 등 우수멤버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를 먼저 살피고 가족관계에서 장남이 아닌 자, 지방 출신, 소시민가정 출신인 자를 우선하여 고른다.<고학용 기자>(4월 2일자 3면 <지하대학>➀).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은 ‘사건’으로서는 일단 마무리가 지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사하는 문제성만은 이제부터 다시 냉철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안 된다. (…) 방화·살인에까지 이른 그들의 범죄적 행동 양태로 보나, 지극히 밀교적이고 음험한 조직 내부의 분위기로 보아, 이번의 부산 방화범들은 어딘가 여타 세계의 극좌테러리스트들을 연상시키는 점이 은연중 감지된다.
(…) 거기다, 그들이 비라 가운데 열거했다는 이른바 ‘북침 준비’ 운운한 극렬한 구호들을 상도할 때, 그들은 분명 과거 어떤 반체제세력조차 감히 생각도 안한 극좌적 광신파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점은 이 사건을 단순한 ‘사건’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중대한 ‘문제’ 사항으로서 인식하고 대처할 것을 요구하는 첫 번째 항목이다.
두 번째로 이 사건에서 특징적으로 간파되는 것은, 당사자들이 대부분 과거 어떤 사례에서보다도 유례없이 저수준이고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동안 이것저것 경향성 짙은 책도 더러 읽고 제 나름대로 생각도 더러 했을 것이나, 역시 그들의 적발된 언동에서 가장 물씬 풍기는 것은 무식의 냄새 바로 그것이다(4월 3일자 2면 사설).

부산미문화원 방화 사건을 보고 느끼는 것은 별 수 없이 우리가 뒤떨어진게 틀림없구나 하는 한탄이다. 이념서클을 자처하는 남녀학생들이 혁명의 구호 아래 불을 지른 범행의 시작부터 성당을 찾아가 신부의 권유에 의한  자수 형식의 일단락까지 1백년 전의 러시아를 방불케 한다.
(…) 사람들 가운데는, 그런 엉뚱한 소행을 보고 ‘요즘 젊은이들은 도무지 모르겠다’고 내어 던지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모를 게 하나도 없고, 그 행동 논리는 아주 단순한 것이다. 몸만 어른이 됐는데 지능적으로 미숙한 젊은이들이, 뭔가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놀래주려고 분별없이 행동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 문화원에 방화한 그들에게 익히 가르쳤어야 했던 일은, “불장난을 하면 안 된다”는 불조심에 관한 것이나, 휘발유는 불을 지르는 게 아니라 달리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라든가, 외국인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까이 할 외국인은 미국인이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런 합리적인 상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 이번 사건을 통해 보고 곰곰 생각하게 되고, 깊은 시름에 잠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나라에 있어서 종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점이 다. (…) 이 기회에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이 몇 년 동안의 종교, 특히 신구 기독교의 사회 참여는, 비신자의 국민으로서는, 그것이 온당한 것인지 지나친 것인지 잘 판단이 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더욱 우리의 교회가 책임질 일이 아니며, 극소수에 국한되는 것인지 모르나 그동안 외국인 선교사들의 방약무인한 용훼는, 한국민을 통틀어 야만인으로 다루고, 한국을 미개의 나라로 업신여기는 품이 너무나 역력했다. (…) 그런 선교사 한 사람도 우리교회의 자발적 비판의 대상이 된 적이 없고 오직 사직당국에 의하여 추방됨으로써 국가 간의 알력의 불씨가 되고, 그들이 마치 순교자 같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도 나로서는 몹시 못마땅한 것이다(4월 4일자 3면 선우휘 칼럼).


한국 천주교의 독재에 대한 저항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은 그 자체로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우방으로만 알고 있던 미국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건이 천주교 원주교구의 신부 최기식과 연관되면서 더욱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최기식은 원주교구 교육원으로 피신한 문부식과 김은숙의 자수를 신부 함세웅과 논의했다고 한다. 함세웅은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자수 문제를 협의했는데, 자수할 경우 고문하지 않고 법률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보장을 받았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또 김현장과 김영애의 자수도 이루어졌으나 경찰은 김현장을 문부식의 문화원 방화 교사범으로 조작해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구속하고 최기식은 범인은닉 혐의로 구속했다(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 <암흑속의 횃불>, 증언제5권, 가톨릭출판사, 162~171쪽).

조선일보는 4월 9일자 1면에 최기식과 김현장 등의 구속 사실을 전하면서 “최 신부가 김현장을 22개월간 교육원에 은신시켰고, 지난 3월 19일 김현장으로부터 방화 교사 사실을 고백 받고 도피자금 50만원을 주었으며, 3월 28일부터 4일간 문부식과 김은숙을 숨겨주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2면에는 사설, 3면에는 기자방담, 10면에는 경찰이 발표한 최기식 등에 대한 장문의 혐의 내용을 보도했다. 2면 사설에서는 신부 최기식을 ‘자연인으로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3면 기자방담에서는 원주교구 교육원을 ‘범죄의 온상’이라고 매도했다.

최기식 신부에 대한 구속영장이 집행된 것을 계기로 해서, 이제 우리는 이 악몽 같은 사건에 대해 더 보태지도 않고 더 빼지도 않는 정확한 객관적 평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각자가 다 노력해야 할 때라 여겨진다.
(…) 우선 모든 유관 당사자들은 이번 일이 어디까지나 자연인 최기식 씨 개인의 실정법 저촉 여부에 관한 형사사건이지, 범 천주교회적인 관련사항도, 교회법과 국가법과의 충돌의 문제일 수도 없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겠다. 이 점은 당국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교회 측이나 일반 국민들도 응당 문제를 그렇게 국한해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 두 번째로 모두가 새삼 다짐해야 할 일은, 천주교회 등 기독교회 단체들의 성직정신이나 사회선교 또는 ‘고통의 수렴’이란 정신이, 이번과 같은 극좌·친북괴·폭력투쟁 논자들의 전술적 수단으로 역용될 정도로까지 방치되거나 무한 해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란 점이다(4월 9일자 사설).

-온통 떠들썩했던 큰 사건이었습니다. 문부식이 검거된 후 김현장이 배후 인물로 드러나고 다시 최기식 신부가 관련됐음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성격이 몇 차례의 충격을 주며 부각되었습니다. 반국가적 범죄로 규정된 방화사건 자체도 충격적인 데다 교회와 신부라 하더라도 그들의 ‘성역’에는 한계가 있어야 되지 않느냐는 문제까지 얽힌 복잡한 사건이었죠.(…)
-김현장의 검거를 계기로 취재진이 교육원엘 갔을 때 정부의 농정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피킷들이 숨겨져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지요. 단순히 종교적 교리를 가르치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원주에서는 가는 데마다 김현장과 최 신부의 얘기뿐이었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가톨릭신자들이 많은 곳이긴 하지만, 대부분 평범한 교인으로서 조용하게 지내온 곳이어서 이번 사건으로 원주에 있는 신자 모두가 마치 최 신부와 비슷한 사람들로 오해를 받게 되었다고 푸념들을 하더군요. (…)
-이번 사건 수사가 몇 개의 큰 고비를 넘기면서 국민들의 관심도 수사가 집중되는 방향을 따라 변화를 갖게 됐던 것 같아요. 처음엔 미국문화원에 방화한 반미 사건이란 점에서, 그 다음엔 방화범이 학원 내의 좌경화한 지하서클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배후에는 김현장이란 방화교사범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또 이들을 은닉시켜준 것이 신부였다는 점에서···.(4월 9일자 3면 취재기자 방담).

천주교회는 경찰의 수사 내용과 언론의 왜곡보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심리에서 김현장은 방화 사건과 관련이 없고, 최 신부와 상의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문부식은 방화 동기와 관련, 12·12 사태와 광주 사태, 그리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의 묵인 등을 경고하고 국민의 자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는 물고문 등 갖은 고문과 구타를 통해 영웅심으로 방화하고, 사회주의자이며, 북괴 방송을 들었다는 자백을 강요당했다. 수사관들은 김현장이 배후인물임을 자백하고 최 신부의 여자관계를 대라며 고문했다(<암흑속의 횃불> 증언 제5집, 168쪽).

최기식은 법정진술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 (…) 나의 가슴은 떨림과 울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 어린 학생들과 같이 묶여 이곳저곳, 그리고 이 재판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내 마음은 언제나 이들과 같이 있고 싶었다. (…) 그들은 군사독재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군사정권에 아무런 저항이나 반응 없이 순응한 것은 우리 기성인들이었다. 광주 살육을 자행한 장본인은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하고 그 이전에 하극상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 나는 오직 학생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며, 학생들이 저항할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1982년 12월 13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김현장과 문부식은 사형, 최기식은 징역 3년에 자격정지 2년, 나머지 피고인 13명은 무기징역부터 기소유예까지 선고를 받았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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