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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제11대 대통령 되다조선일보 대해부 4권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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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3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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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에서 탄생한 ‘전두환 대통령’

8월 24일자 조선일보 2면에는 집요하게 군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통단사설이 올랐다. 「길」이라는 제목의 이 사설은 「새로운 길잡이가 나타나는데 붙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대학생 시위와 광주항쟁을 비난하고, 사정에 따라 군의 정치개입이 있을 수 있다며 8월 27일 나타날 지도자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견강부회의 주장을 폈다. 신군부의 군사반란을 합리화하고 전두환의 등장을 상정하는 내용이었다.

(…) 지난해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서거하자, 국민 누구나가 어렴풋이 느낀 것은 이제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온다는 예감이었다. 당시 새로운 시대 전개의 폭은 넓고 선택의 길에는 상당한 여유가 있었다. 그러한 전개와 선택의 전제로서 국민적 합의처럼 이루어진 심정적인 바탕은, 이해와 관용의 정신이었고, 모든 일을 순리에 의하여 처리하리라는 불문율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하여 국민들이 간절히 바란 것은 사회의 질서와 안정이었다.
그러나 성급히 학원을 뛰쳐나와 수도의 도심지까지 혼란의 도가니로 만든 대학생들에 의한 데몬스트레이션과 수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야 끝난 광주 사태는 순리에 의하여 정치발전을 이룩하리라는 국민적인 약속을 무참히 짓밟고 말았으며 그런 과정 속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화해를 거부하는 적대감과 용서 없는 처단을 주장하는 순환이론의 노정이었다.
(…) 여기서 우리는 냉철한 이성으로 조용히 생각해볼 일이 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거기 더하여 군의 정치적 중립을 지나치게 통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정치참여의 원칙을 시민적인 범주 안에서만 생각해온 흠이 없지 않다. (…) 어떠한 국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군인만은 절대적인 중립을 지키고 오로지 군사적인 임무에만 전념하여야 한다고 생각한 데는 분명히 인식의 맹점이 있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단순한 용병집단인 외국의 외인부대가 아닌 것이다.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국보위 상임위원장 전두환은 8월 25일 대통령후보로 등록한 뒤 27일 단일후보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날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7차 회의에서 전국 재적의원 2천5백40명 중 2천5백25명이 참석한 가운데 무기명비밀투표를 실시해 찬성 2천5백24표, 무효 1표로 전두환을 11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조선일보는 8월 28일자 1면 머리에 <전두환 대통령 집무 시작>이라는 기사를 올리고 2, 3, 7면에 사설과 관련기사들을 내보냈다. 사설 제목은 「새 시대의 개막」으로, 전두환 찬양 일색이다.

현행 헌법에 따라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임으로 궐위 중에 있는 대통령에 새로 전두환 장군을 선출했다. (…) 우리는 우선 전두환 대통령의 당선을 온 국민과 더불어 축하하며 그 전도에 영광이 있기를 희원해 마지않는다.
생각하면 작년 ‘10.26 사태’ 이후 국가안보와 사회안전이 적지 않게 우려되었으나, 여러 고비의 난국을 넘기면서 오늘에 이르러 점차 정상을 되찾게 되었다. 이 어려운 과도기에 전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가 현실정치의 배후에서 국방과 사회질서 유지에 관건적 역할을 해온 것은 다 아는 바다.
(…) 이런 과정을 통하여 전 장군은 비단 군부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 새 지도자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전 대통령의 취임으로 바야흐로 새 시대 새 역사는 개막되고 있으며 많은 국민들은 전 대통령 정부에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걸고 나라의 장래와 자신들의 생활을 전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은 개인으로서는 그지없는 인간적 영광인 동시에 국가적 민족적으로는 무겁고도 고달픈 짐을 지는 것이다. (…) 이에 우리는 전 대통령의 탁월한 경륜과 실천력을 거듭 기대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민족적·사회적 자각을 이 기회에 거듭 촉구하는 바이다.

전두환은 9월 1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1979년 말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지 1백60여일 만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걸린 쿠데타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전두환은 9월 29일 제5공화국의 헌법개정안을 공고했다. 선거인단 선거에 의한 대통령 간선제와 대통령의 7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한 전문과 본문 10장 1백31조 및 부칙 10개조로 이루어진 이 개정안은 10월 22일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됐다. 전두환은 10월 27일부터 발효된 개정헌법에 따라 국회를 해산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그 기능을 대신하도록 한 뒤 의원 81명을 모두 자신이 임명했다. 조선일보 사주 방우영과 간부 출신 송지영, 김윤환, 남재희 등이 입법회의 의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일보와 신군부의 관계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신군부는 1980년 5월 광주 항쟁과 관련해 제작을 거부한 언론인들을 구속한데 이어 7월 9백명이 넘는 언론인을 강제 해직시킨 바 있다. 언론을 순치시키고 저항적인 언론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신군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0년 11월 12일 전대미문의 대규모 언론 통폐합에 관한 계획을 발표했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살벌한 계엄 하에서 그날 서울 보안사령부는 서울지역 언론사 대표들을 불러 언론사 포기각서를 받았다. 지방 언론사에 대해서는 보안사 지방부대가 각서를 받았다.

보안사는 모두 45개의 언론사 사주들로부터 각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불과 이틀 후인 11월 14일 신군부는 신문협회와 방송협회에 강요해서 발표시킨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빌미로 언론 통폐합을 강행했다. 그 내용은 신문 및 통신사 통폐합, 방송 공영화, 신문과 방송의 겸영 금지, 중앙지의 지방주재기자 철수, 지방지의 1도 1사제 등이었다.

신문들은 그 소식을 11월 15일자부터 비로소 전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15일자 1, 2, 7면에 언론 통폐합 관련 뉴스를 보도했다. 1면에는 「언론기관 통폐합 개편」이라는 머리기사와 신군부의 강압에 의해 발표된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실었다. 해설과 사설은 신군부의 논리와 조치를 ‘혁명적인 조치’로 기술하며 지지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한국 신문협회와 방송협회의 이번 결정은 한국 언론사상 일대 혁명적인 조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비록 자율적인 개혁의 형태이긴 하지만, 그 대상의 규모가 일천한 우리 언론사에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방대한 것인데다가 내용과 방향 또한 새롭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일제 하에서 민족문화 보존과 독립정신 고취 등 국민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온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온 우리 언론은 사회 각계의 개혁 작업에 발맞추고, 또 80년대를 맞는 현시점을 계기로 불가피하게 이번과 같은 대대적이고도 구조적인 수술을 받게 됐다. 여기에는 언론기관이 국민에게 각종 지식과 고도의 정보를 전달하는 등의 올바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왔으나 이런 과정에서 공익성 우선이라는 세계적인 추세를 뒤따르지 못하고, 지나치게 상업주의적 경향을 띠어왔다는 점이 그동안 크게 논란이 되어왔었다(1면 해설기사).

한국 신문협회와 한국 방송협회는 14일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중대 결의를 하고 이를 국민 앞에 밝혔다. 그 내용은 별도 보도에 소상하거니와, 이는 한국 언론사상 일찍이 없었던 일대 전환을 획하게 되는 결의 표명이다. (…) 언론단체들의 이와 같은 결의는 국민 일반에겐 갑작스러운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사실은 이번 결의 내용과 관련된 부분적 논의는 벌써부터 있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비상한 내외 정세와 관련된 시국 전개와 무관하게 발의된 것이 아니다.
(…) 1년여에 걸친 미증유의 우리의 시련은 각 영역에 걸쳐 마침내 혁명적 자세 전환을 요청하고 있음을 우리는 벌써부터 보고 있다. 산업화에 따른 새로운 매체의 양적 증가 등으로 빚어진 언론 내부와 사회적 기능에, 그럼으로써 그동안 논의는 심각했던 것이며, 새 질서 형성의 선도적 사명 앞에 언론단체들은 급기야 스스로에 대한 개혁에 수술의 단을 내린 것 같다.
하지만 무릇 수술에는 아픔이 따른다. 결의에서 표명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성취함에 있어 그 아픔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관련 당사자는 상호 아량과 이해의 금도로써 대처해 나갈 것을 당부치 않을 수 없으며, 아울러 새로운 언론의 이정 앞에 책임의 막중함을 언론동인의 입장에서 또한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2면 사설).

11월 16일자 조선일보는 강압적인 언론 통폐합을 여전히 ‘혁명적인 것’으로 기술하는가 하면 ‘언론계 개혁’으로 설명하고 있다. 1면 머리기사(「두 민방 TBC DBS, KBS에 흡수」)는 통폐합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또 7면에서는 각계의 반응이라며 공무원·회사원·학생·주부 등의 입을 통해 그 조치를 찬성하는 내용을 실었다.

한국 신문협회와 한국 방송협회의 결의에 따라 통·폐합, 흡수되는 언론기관은 전국의 64개 신문·방송·통신사 중 신문 11개(중앙지 1, 경제지 2, 지방지 8), 방송사 27개(중앙 3, 지방 3, MBC계열 21), 통신사 6개 등 44개 언론매체가 해당되고 있어 그 규모는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혁명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15일 밝혀진 언론계 개혁의 내용은 동양방송(TBC)과 동아방송(DBS)을 한국방송공사(KBS)로 흡수 통합하여 국내방송을 국영 KBS와 민영 문화방송(MBC)으로 크게 2원화하며 신아일보를 경향신문에 흡수시키고, 1개 도(道) 1개 지(紙) 원칙으로 지방지를 줄이는 한편, 6개의 통신사를 1개의 민간 대형통신사로 통합하는 것들을 큰 줄거리로 하고 있다.
관계 소식통들은 “이번 언론계 통·폐합이 민주언론의 창달을 위해 한국 신문협회와 방송협회가 결의한 대로 1)언론기관의 난립 등 전근대적 언론구조의 개선 2)상업방송 체제의 공영방송화 3)개인 및 특정법인의 신문·방송 등의 과점 및 겸영 금지 4)서구식의 단일 대형 민영통신사 신설 5)언론인 자질향상 및 처우개선 등의 기본원칙을 줄거리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통·폐합에 따른 인원문제에 언급, “경영인을 제외한 간부에서 말단직에 이르기까지 통합하는 사에서 전원 흡수한다는 원칙에 따라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하고 “통·폐합 과정에서 야기되는 불가피한 잉여인력에 대해서는 정부가 최대한 행정지원을 하는 등 별도의 구제대책도 마련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11월 16일자 1면 기사).

박민웅(41·공무원) 씨=언론도 ‘새 시대’를 맞으며 자체적으로 모순 제거에 나선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제까지 군소신문과 군소통신들이 존속하면서 더러 해독을 끼쳤다고 들어왔다. 또 민영방송의 경우 상업주의에 치우친 특정기업의 이용물이 되거나. (…)
이재훈(40·회사원)=미국의 경우 전파의 공유개념이 강해 방송이 개인 소유물로 되는 예가 없다. (…)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방송의 사유개념을 규제하고 매스컴의 독과점을 방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이번 조치가 건전언론 육성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기현(24·대학생) 씨=언론이 국가발전과 국민계도에 공헌한 바도 컸지만 난립에서 오는 해독도 없지 않았다. (…) 증면을 계기로 좀 더 다양하게, 특히 과학과 문학부문에 폭넓고 깊이 있는 기사를 발굴해 주었으면 좋겠다. (…)
김소원씨(38·주부)=우리나라에는 외국이나 독자에 비해 신문이 많은 편이고, 신문과 전파매체를 한꺼번에 소유하는 종합매스컴 체제의 폐단이 지적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또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잊은채 특정기업을 비호하는 인상도 있었던 것이어서 이번 조치가 발전적인 결과 나타나기를 기대한다(11월 16일자 7면 기사).

조선일보의 보도에는 전두환 정부의 언론 통폐합조치는 신문사의 난립을 막고, 방송의 공영화를 이루며, 언론인의 자질향상을 위한 ‘혁명적 조치’이고 국민 역시 이를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언론 통폐합이 가져온 폐해와 언론 통폐합에 따른 언론인 강제해직 등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신군부는 강제해직과 언론 통폐합을 통해 언론의 맹종, 나아가 자발적 충성을 유도해냈다.

강준만은 <한국현대사 산책-1980년대편> 1권에서 언론 통폐합이 한국 언론에 미친 영향으로 7가지를 꼽았다. 요점을 소개하면 1)언론사들의 충성대상을 박정희로부터 전두환으로 돌렸다. 전두환에 대한 충성 경쟁만이 유일한 생존책임을 각인시켰다. 2)전두환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강한 조선일보의 고속성장을 낳았다. 조선일보는 5공과 종속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3)언론매체의 독과점을 제도화하는 등 언론의 거대기업화를 심화시켰다. 4)언론인 대량 강제해직을 통해 언론인을 굴종케 하고 순응 언론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기자문화’를 타락시켰다. 5)언론기업과 언론인을 정권안보의 이용물로 삼는 한편 ‘언론의 특권계급화’를 반대급부로 보장했다는 것 등이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연말을 ‘언론악법’인 언론기본법 제정으로 장식했다. 언론 통폐합이라는 폭압적 조치에 이어 이전의 언론 관련법을 통합해서 12월 26일 입법회의를 통과시킴으로써 언론기본법을 확정했던 것이다. 12월31일 발효된 이 법은 전문 57조와 부칙 4조로 구성돼 있으며 정기간행물의 등록의무제(사실상의 허가제)를 실시하고, 문화공보부 장관의 발행정지 명령권 및 등록취소 권한을 두는가 하면 방송위원회·방송심의위원회·언론중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함으로써 언론통제를 강화했다. 조선일보는 이보다 앞서 12월 23일자에 「언론기본법안에의 견해」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언론에 족쇄를 채우는 법안까지 마냥 칭송하기가 무안했던지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 중에는 문화공보부 장관의 등록취소 권한과 관련해서 취소요건이 모호하기 때문에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물타기식 제안이 들어 있다.

(…) 법안 제1조는 “이 법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보호하고, 여론형성에 관한 언론의 공적 기능을 보장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공공복리의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입법목적과 정신을 적극적으로 창달함에, 이견과 혼란을 배제하기 위해서도 의구점은 개진되고 불식되고 넘어가야 하리라고 믿는 것이다.
무엇보다 언론기관의 폐간·폐쇄를 의미하는 등록취소 요건의 조항(24조)에 대해서다.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반복해서 현저하게 위반한 때’에 정부(문공장관)가 등록을 취소할 수 있게 한 규정은 그 저촉 적용범위와 성격이 모호하다는 인식이다.
언론기관의 사활과 존폐를 좌우하는 법절차 규정은 언론기본법 제1조가 밝히고 있듯이 그것의 설립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에서, 기본권으로서의 언론자유를 창달 육성하는 신중성으로 임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전두환의 신년사 ‘국민 총참여로 새 시대 이룩’

조선일보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1980년을 마감하고 맞은 1981년 1월 1일 대통령 전두환의 신년사를 1면 머리에 실었다. 「국민 총 참여로 새 시대 이룩」이라는 제목 아래 신년사의 내용을 소개하고 전두환 일가의 사진을 1면 한복판에 대문짝만하게 내보냈다. 그날 모든 언론이 천편일률적인 편집이어서 더욱 답답함과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조선일보가 전한 신년사의 주요 의제는 ‘제5공화국 창건의 해’다. 1980년 공포정치를 통해 장악한 토대 위에 세운 독재권력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1일 “우리 앞에 밝아온 81년은 우리의 결의와 맹세를 실천에 옮기는 제5공화국 창건의 해”라고 지적하고 “따라서 새해는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3백65일의 단순한 시간적 연속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한 시대를 보내고 새 시대를 여는 제5공화국의 영광스러운 원년으로서 파악되어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은 신유년 새해를 맞아 발표한 신년사에서 이같이 말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제5공화국은 제6, 제7의 공화국이 또다시 탄생되어서는 안 될 영구한 공화국이며, 세계사의 당당한 주체로서 활약할 자주 민족국가여야 하겠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은 “이러한 과제는 몇몇 사람이나 1당1파, 또는 어느 한 계층의 힘만으로 이룩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국가사회의 성원 전체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함께 참여할 때 그 성공적인 결실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1월 1일자 1면에 실은 「연두사」에서 새해 주제를 ‘솔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솔직은 일단 거짓 없고 꾸밈없고 또 부당하게 구애받지 않고, 그리고 진실하고 활달하게 스스로의 언동을 행하는 인간상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해 본다”며 “우리의 새해 주제 선정은 바로 어제까지의 우리의 경험의 소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경험의 바탕을 과외공부와 대학가에서 찾고 있다. 과외공부와 대학가의 흐름이 ‘솔직’이 아닌 ‘이중성의 대표적 표본’이라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지원하려는  엉뚱하고 교묘한 논리를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그 비근한 예로 ‘과외공부’를 들 수 있다. 이 해묵은 숙제를 놓고 그동안 사회는 어떤 대응을 보여 왔던가. 정상교육의 부재를,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허약화를, 가계 압박에 주는 경제적 부담을 그리고 무엇보다 과외층과 비과외층의 국민적 위화감 파생 등등을 걱정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상 명분에 대한 영합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내심으로는 과외의 가열화에 경쟁적으로 박차를 가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결과했던 그와 같은 경사(傾斜)가, 사회를 위험스런 늪으로 끌고 가고 있다 함을 인지하면서도, 그러나 누구도 ‘솔직’하게 차단하려 들지 않았다. 명분과 본색의 구분은 이제 이렇게 해서 대중의 심상으로까지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 이중성의 또 하나의 예증은 대학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최근 그것이 사회적 인식사항으로 되고 있지만, 그 이전에 극소수라 할지라도 사상 경향에 위험스런 경사를 보이는 학생서클이 있다는 사실이 교수사회에서는 공지의 비밀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처방을 위해 그것이 ‘솔직’히 제기된 일이 거의 없었다. 지성사회의 대표그룹에 있어서 이러했다 함은 자못 복잡한 이유에 근인(根因)했어야 한다. 지금 스스럼없이 통용되는 ‘안보 식상’ ‘반공 식상’ 등의 낱말이 지니는 함축에 대해서도 타성적, 고정관념이 배제된, 얼마나 솔직성과 진지함으로 이에 대처하는 움직임이 있는지를 잘 모른다. 단적으로 6·25가 안겨준 모처럼의 일체감에도 균열의 위험이 생기고 있다는 징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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