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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지상’ 전두환 시대의 도래조선일보 대해부 4권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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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2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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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전두환 띄우기

조선일보는 8월 5일 ‘사회악 일소를 위한 특별조치’를 보도하며 그 주체로 국보위 상임위 위원장 전두환을 앞세운 이후 그를 띄우는 기사를 연속해 보도했다. 그 중 하나가 8월 7일자 1면 머리기사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조찬기도회’에 관한 것이다. 이 기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 상임위원장과 한국기독교 교파 지도자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일 오전 서울롯데호텔 에머럴드룸에서 열렸다”로 시작된다. 조선일보는 기도회에서 목사 한경직의 기도가 끝난 뒤 전두환이 한 인사말 내용을 기사의 핵심으로 다룬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전두환의 인사말 자체가 아니라 보통 국가원수와 함께 하는 조찬기도회를 국보위 상임위원장과 가졌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8월 9일자 1면 머리에 “미국이 전두환 장군을 지지할 것”이라는 미국 AP통신의 기사를 올렸다. AP통신은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한 미국 고위 군사관리의 말을 인용해서 “미국은 전두환 한국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최근 주도한 일련의 숙정작업으로 국민의 광범한 지지를 획득하고 있으므로 전두환 장군을 지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8월 10일자 1면에도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의 보도를 인용해 AP통신 보도와 유사한 내용을 다시 주요 기사로 다루었다. 「미국식 민주주의 요구 안 해」라는 제목으로 마치 전두환이 한국의 대통령인 것처럼 쓰고 있다. 조선일보는 거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날짜 2면 사설(「우리의 역사 우리의 현실」)을 통해 ‘한국식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전두환의 집권을 현실화했다.

[워싱턴=안종익 특파원]로스앤젤레스(LA)타임즈지는 8일 서울 발신 기사를 통해 미국이 전두환 장군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지는 이날 주한미군 고위 장성의 말을 인용, 한국의 평화와 안정이 미국에는 중요하며 국가안보와 국내안정이 분명히 정치적 자유화에 우선한다고 보도하면서, 미국과 전 장군을 비롯한 한국 장군들과의 관계는 지난날과 다름없이 훌륭하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또 한국 국민들이 전 장군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도 그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지는 이어 고위 미군장성이 “우리가 이해하는 민주주의 방식을 한국이 취할 것인지, 또는 한국민이 그런 태세가 돼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 보도함으로써 미국식 민주주의가 한국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미국이 한국의 새 정부에 대해 광범한 정치적 기초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하지 않으리라고 미국관리가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고위 장성은 “그가 합법적으로 집권하고, 점차적으로 한국민의 광범위한지지 기반을 증명하며, 안보상황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한국민이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8월 10일자 1면 기사).

(…) 우리 한국인은 역사와 조건이 다른 미국이나 일본에서 겸허하게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만, 부질없는 선망과 동경은 물론, 무작정 모방하거나 흉내낼 필요는 없으며 그들과 비교하여 자모할 것도 없고 그들로부터의 경박하고 무책임한 평가에 신경 쓸 것도 없는 것이다. 더욱 자학할 필요는 없다. 그들과 우리는 다른 것이다.
명백히 다르면서 무리하게 같아지려고 할 때 그렇게 될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꼴이 비슷해질수록 우리는 우리의 본질을 상실한 끝에 우리의 본체마저 상실하고 말게 될 것이 뻔하다.
(…) 지금 우리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해방 후 전례가 드문 격동을 겪고 있는 것이다. 숙정도 그렇고 과외공부 추방도 그렇고 폭력 일소도 그렇다. 앞으로 어떤 단안이 언제 내려질지 모른다. 여기서 30여 년 동안 파란만장한 상황의 연속 속에서 키워준 굳건한 신경과 강한 삶의 의지와 깊은 통찰력으로 가늠할 때 그러한 일련의 개혁은 결코 지엽적이며 현상적인 시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간적이며 본질적인 변혁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기존의 척도와 기준으로는 그것을 재기에 그 질도 양도 속도에 있어서도 크게 어긋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경의를 표하고 그 역사에 이어지는 우리의 현실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며, 현실에 이어질 미래에 대하여 자신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크게 눈을 뜨고 넓게 가슴을 펴고 사소한 일에 구애되지 말고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에 국민적인 출범을 해야 할 것이다 8월 10일자 사설).


최규하의 강요된 하야

8월 11일은 신문이 나오지 않는 날이었다. 조선일보는 8월 12일자 1면 머리에 국보위 상임위원장 전두환 인터뷰 기사를 올렸다. 특히 MBC·경향신문사장 이진희가 전두환과 특별대담을 한 내용이었다. 조선일보는 이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며 전두환을 ‘새 시대를 영도할 지도인물로 국민적 기대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전 위원장’이라고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민주 복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서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상임위원장은 11일 ‘새 시대의 국가지표는 민주복지국가 건설에 둬야 하며, 그 구체적 방향은 민주정치의 토착화, 복지국가의 건설, 정의사회 구현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시대를 영도할 지도인물로 국민적 기대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보위 상임위원장실에서 MBC·경향신문 이진희 사장과 특별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80년대의 국가지표에 언급, 이같이 밝히고 ‘우리는 지금 특수한 안보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고 장래를 기약하기 위해서는 매우 비장한 각오와 국민적 단합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 같은 날짜 2면에 실은 통단사설(「사회악의 구조」)에서 신군부가 강압적으로 벌인 ‘사회정화’ 관제대회에 관해 목불인견의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아부와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 지난 주말 모든 사회악을 스스로 추방한다는 의지 표시인 정화도민대회가 수원에서 있은 것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고 있으며 이·동·통 단위, 그리고 직장직능단위로 정화위원회를 구성, 사회의 저변부터 주민들이 각성해서 자발적으로 사회악을 제거함으로써 새 사회풍토를 형성하려는 기운이 술렁대고 있다. 우리는 이 새 기운이 모든 사회악의 온상이 돼왔던 개인·가족·직장·지역 ‘해체’ 현상을 ‘합체’ 현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해체’라는 사회현상을 학문적으로 제기한 사회학자 뒤르켐이나 머튼은 이 해체가 합체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으로 각 개인의 윤리적 성숙, ‘분(分)’의식에의 성숙, 공공에의 성숙을 들고, 이 성숙에 상호 규제하는 기능이 가해지면 촉매가 된다고 했다.
(…) 정화운동의 범국민화 저변화에 우리가 거는 기대는 바로 됫박에서 흩어져 나간 한낱 한낱의 콩알들이 제각기 다른 콩알과 상대적 관계에 있고, 또 상대적 ‘분’이 정해져 있으며 많은 콩알이 공존해 산다는 공공의식을 촉발시켜주는 그런 접합제로서의 기대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동 단위까지의 정화운동 저변화는 ‘향약(鄕約)’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왕조 중엽부터 우리 전통 사회의 순화와 정화에 이바지 해왔다.

조선일보는 8월 13일자부터 ‘사회정화’ 관제대회를 1면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날 “내 주변의 각종 사회악을 스스로 몰아내 새로운 사회풍토를 만들자는 범국민자율정화운동이 12일에는 서울을 비롯, 충주 성남 목포 진주 등지로 계속 번져갔다. 이날 오전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각 지역 정화위원 3천5백 명을 비롯, 각 기관장, 직능단체, 직장정화위원 등 모두 5천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서울시 지역정화운동추진 결의대회’에서 시민들은 지역정화운동을 범국민정신혁명운동으로 승화·발전시켜 밝고 정의로운 새 사회를 구현하자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이는 문자 그대로 ‘눈감고 아옹’식의 관제대회였다.

1980년 8월 15일은 광복절 35주년이었다. 대통령 최규하는 그날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했다. 그리고 하루만인 16일 대통령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바로 그날 최규하의 사임 결정 성명과 총리서리 박충훈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는 소식을 호외로 발간하고 성명 전문을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8월 17일자 1면 머리의 통단기사에서 “최규하 대통령이 16일 사임했다. 최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특별성명을 발표, ‘나는 오늘 대통령의 직에서 물러나 헌법의 규정에 의거한 대통령 권한대행권자에게 정부를 이양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짜 1면에는 미국의  뉴욕타임스를 인용해서 “전두환 장군이 후임 대통령이 되면 미국정부도 이를 지지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조선일보의 앞선 보도들은 바로 그날을 위해 준비된 것들이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짜 2면에 올린 통단사설(「최 대통령의 하야성명」)에서 앞으로  나타날 전두환의 시대를 ‘새로운 시대’로 그리고 있다.

8월 16일 오전 최규하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통해 하야의 결심을 발표했다. (…) 이로써 이제 최규하 대통령 시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 시작된 것이다. 생각건대 최 대통령이 나라의 최고책임자로서 국정을 담당했던 지난 10개월간의 과도기는 평상시의 10년에 해당하고도 남는 어려운 시기였다.
(…) 최대통령의 하야는 그분 개인과만 관련되는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다난했던 과도기가 바야흐로 종결을 고하고 새로운 질서가 열리고 있는데 대한 신호이기도 하다. (…) 앞으로 곧 헌법의 규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소집되고 여기서 후임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 의해서 결정되면 새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선출되고 ‘10·26’ 이후의 과도기와 과도정부는 그 소임을 다하고 끝나게 되는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칠 때 역사의 한 시기가 새로운 시대로 바뀌어 나가고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새 정부가 시대의 추세에 따르는 역사적 사명을 훌륭히 수행해 나갈 것을 믿으면서 최 대통령이 하야성명에서 밝힌 간곡한 뜻이 슬기롭게 계승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

조선일보는 최규하의 하야성명이 ‘축제성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학수고대하는 보도로 일관했다. 8월 17일자 1면의 <팔면봉>이라는 촌평란에 “정치일정 급속히 앞당겨질 듯. 새로 덮는 지붕 빠를수록 안도감”이라는 반응을 내놓는가 하면 “새 역사의 장, 새 지도자상은 (…) 민주·복지·정의사회 이룩할 사람으로”라며 노골적으로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야말로 전두환에 대한 ‘용비어천가’의 전형이었다.

조선일보는 또 같은 날짜 사회면에서 최규하가 하야하던 날의 기사 제목을 「안정된 새 시대 기대」라고 뽑고 한 시민이 “과도기간을 빨리 끝내고 새 시대를 이끌어나갈 지도체제가 국민 앞에 곧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 말을 인용하며 ‘전두환의 시대’를 예고하기도 했다.

신군부 앞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대통령을 뽑는 내용도 방식도 절차도 일방적 자의에 의해 결정됐다. 조선일보는 8월 21일자 1면 머리기사(「대통령, 선거인단 5791명이 선출」)에서 확정된 헌법개정안의 내용을 보도했다. 대통령선거는 선거인단의 무기명 비밀투표로 선출하며, 임기 7년의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마치고 나면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한 편법이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짜 2면에 ‘전두환의 혁명적 시대’를 학수고대하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다. 심지어 ‘전두환 시대’의 정신이 ‘반민특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망발도 서슴지 않고 있다.

우리(국민) 주변에 꾸준히 변혁이 계속되고 있으며, 명백히 우리는 한 시대의 전환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도적·물리적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데서 변혁과 전환은 분명히 혁명적인 것이 되고 있다. 이 작용이 민중적·사회적 배경과 그것의 호응을 얻고서의 것일 때 혁명적 성격은 더욱 뚜렷해진다.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변혁과 전환의 시점을 통과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혁명’은 광범한 사회적 체제의 개혁을 필요로 하고 수반한다. 우리는 ‘5.17’ 이후 그와 같은 것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다보면 1948년 건국에서부터 시작해서 몇 차례의 국가적 격변을 치렀다. 그러나 격변의 수습 담당 주체와 세대가 그것을 광범하게 혁명적 차원으로 전진·확산시켜 신생국에 새로운 가치의식과 질서가 뿌리박게 하는 시대적·민중적 욕구와 책무는 절실하게 다하지를 못했다. 한마디로 오늘 우리가 새로운 변혁과 전환을 체험하는 인자(因子)가 거기 있으며, 그것은 이를테면 신생 민중의 민족의식 회복과 그 발양의 각성제였어야 할 48년의 ‘반민특위’ 활동의 좌절이라는 사건에서 이미 상징적으로 시발됐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에는 온갖 수단이 동원됐다. ‘전두환 장군 대통령후보 추대’를 위한 각종 강압적 관제대회와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들의 추대 결의대회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또한 수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전두환을 지지하는 광고를 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8월 21일에는 전군지휘관들이 전두환을 국가원수로 추대하자는 결의를 다지는가 하면 전 대통령까지 최규하까지 나서 ‘전두환 지지성명’을 발표하는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졌다. 조선일보는 8월 22일자 1면 머리에 전군지휘관들의 ‘전두환 대통령 추대 결의’에 관한 기사를 올리고, 2면에는 이를 지원하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성명」이라는 사설을, 3면에는 대통령선거제도 등에 관한 정치부기자들의 좌담을 게재했다. 사설과 좌담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21일 시국에 관한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당면한 정치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심정과 견해를 표명했다. 최 전 대통령은 성명에서 우선 우리는 현재 새 시대 새 사회 건설을 위한 구국과업을 지속해야할 상황에 있어 하루라도 지도자의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되고, 대행체제가 길면 길수록 새 시대 건설이 늦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 다만 문제는 어떤 인물이 새 정치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인데, 최 전 대통령은 사심이 없고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특수한 안보상황에서는 국민의 전폭적 지지는 물론 국가보위의 주체인 군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새 지도자가 되어야겠다는 소신을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비단 최 전 대통령 한 분만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생각하고 판단해 왔던 바다. (…) 이 성명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염두에 두고 지지하고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8월 22일자 사설).

-새로운 헌법의 대통령선거 방식은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의 모습을 띠고 있으나 유신 때 같이 특정후보에 대한 찬반투표 형식이 아니라, 각 정당 또는 무소속후보 간의 자유경쟁을 허용한 것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무소속 출마 허용과 선거인단 후보들이 특정 대통령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게 한 것 등은 간선제 형식을 빌려 직선제의 장점을 최대한 도입하려 한 의도로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부분이지요.
-결국 곡절을 거쳐 채택된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 선출 방식은 직선과 간선의 장점을 한 제도 속으로 모아보려는 혼합형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요.
(…) -새 헌법안에 대통령 연임을 명백히 금지했다는 사실에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수립하겠다는 현 정치 주도세력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생소하나마 선거인단 제도를 도입한 것은 그동안 체험해온 직선제의 폐단을 줄이면서, 직선제의 효과를 거두고 또 후보자 자유경선을 보장하자는 데 역점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새 헌법은 소신 있고 안정된 정치의 구현과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양대 목표를 핵심적으로 겨냥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려야겠습니다(8월 22일자 3면 정치부기자 좌담).


‘조선일보 아카이브’에서 사라진 전두환 인터뷰

8월 22일 육군대장 전두환이 전역했다. 조선일보는 8월 23일자 1면 머리에 관련 기사를 올렸다. 조선일보는 「새 역사 창조에 신명 바치겠다」라는 제목으로 전두환의 발언 내용을 1면에 실었고 2면에 전두환의 전역사(轉役辭) 전문과 「3군 지휘관 결의」라는 사설을 함께 게재했다. 사설은 3군 지휘관의 이른바 ‘8·21 군 결의’가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한층 더 공고히 뒷받침했다”고 주장했다.

21일 육·해·공 3군 주요 지휘관들이 국방장관 주영복 주재로 국방부에 모여, “국보위 상임위원장인 전두환 장군을 차기 국가원수로 추대할 것을 전군적 합의”로 결의했다.

(…) ‘8.21 군결의’는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한층 더 공고히 뒷받침하고 보장하는, 일찍이 없었던 국가 간성들의 담보와 표징이다.
건국 이래 모든 군이 한 지도자를 전군적 총의로 일사불란하게 지지하고 추대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그러한 점에서 ‘8.21 군 결의’는 또한 역사적 으로 깊은 함축을 간직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 내부에 그리고 우리 주변에 나라의 새로운 전진을 위한 총의는 급속히 수렴 응집되고 있다. 남은 과제는 그것을 보다 심도 있게 내면화, 내실화함으로써 일체성을 한층 밀도 있는 것으로 다지는 노력들이다(8월 23일자 사설).

8월 23일자 조선일보 보도에서 압권은 3면 전체를 털어 만든 전두환 특집이다. 사진과 약력은 물론 「인간 전두환」이라는 주먹만한 제목 아래 실린부제목들은 이 신문이 어떤 의도로 그런 지면을 제작했는지 금방 알 수 있게 해준다.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 「사(私)에 앞서 공(公)…나보다 국가 앞세워」 「자신에게 엄격하고 책임 회피 안해」 등 온통 찬양 일색이다. 심지어 「이해관계 얽매이지 않고, 남에게 주기 좋아하는 성격」> 등 ‘찬양’ 방법도 가지가지다.

그 내용이야 말할 것도 없이 낯 뜨거울 정도의 아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조선일보가 일반인에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한 <조선일보 아카이브> 자료에서 이 지면을 삭제해버린 사실이다. 부끄럽게도 너무 했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언론이 자신의 자료를 삭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기관은 물론 일반도서관과 언론 관련 단체의 자료실에서도 이 지면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국회도서관에서 겨우 그 지면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을 몽땅 소개하고 싶지만 장문의 기사라 그 일부만을 전달하는 데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

“여보. 나 나갑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 상임위원장 전두환 장군의 한결같은 아침 출근인사다. 그는 여느 남편들처럼 “다녀오겠다.”는 여운이 깃든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군인이란 나라에 바친 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지만 이 짤막한 아침인사에서도 그의 사생관(死生觀)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투철한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를 못하는 불 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은 수도생활보다도 엄격하고 규칙적인 육군사관학교 4년 생활에서 갈고 닦아 더욱 살찌운 것인 듯하다. 그가 육사를 지망한 것은 적의 군화에 짓밟힌 나라를 위하는 길은 내 한 몸 나라에 던져 총칼을 들고 싸우는 길밖에 없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 육사 4년 기간을 거치는 사이 그는 어느 누구보다 국가관이 투철하고 용기와 책임감이 강하며, 자기에게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지휘관으로 성장해 있었고, 몸 바쳐 나라에 충성한다는 것은 그의 신앙이 되어 있었다. (…) 특이한 것은 이처럼 육사에서 형성된 그의 국가관과 생활방식은 그 후의 오랜 군대생활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일관되고 있다는 점이다.
(…) 그에게서 높이 사야할 점은 아무래도 수도승에게서나 엿볼 수 있는 청렴과 극기의 자세일 듯하다. 지난 날 권력 주위에 머물 수 있었던 사람치고 거의 대개가 부패에 물들었지만 그는 항상 예외였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302의 3 그의 자택에선 요즘 흔한 족자 한 폭, 값나가는 골동품을 찾아볼 수 없고, 팔목에 차고 있는 투박한 미국 특수부대용 시계도 월남 연대장 시절부터 애용하고 있는 싸구려다.
(…) 이런 성실한 삶의 자세와 불굴의 투지로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군내부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다만 그의 이름이 국민 사이에 알려진 것은 10·26 사태 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김재규 일당의 범죄사실을 공표하기 위해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였다. 대통령 시해라는 생각지도 못할 끔찍한 국가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싫더라도 이미 국민 앞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가 국가원수 시해 사건에서 보여준 집요하고 철두철미한 사건 규명으로, 그의 당당함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군의 의지를 결집시키는 촉매제가 되었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천성적인 결단은 그를 군의 지도자가 아니라 온 국민의 지도자상으로 클로즈업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오늘은 주어진 자리에서 늘 그가 그래오듯 최선을 다해온 결과일 뿐이다.
(…) 12·12 사건만 해도 그렇다. 정승화 육참총장 쪽에 서면 개인 영달은 물론 위험부담이 전혀 없다는 걸 그도 잘 알았으리라. 이미 고인이 된 대통령의 억울함을 규명한다고 하여 누가 알아줄 리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배우고 익혀온 양식으로선 참모총장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상관일지라도 국가원수의 시해에 직접·간접적인 혐의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철저히 그 혐의가 규명되어야 바른 길이었다. 그렇지 않고선 자식이 아비를, 제자가 스승을, 부하가 상관을 모함하고 교살하는 식의 땅에 떨어진 윤리를 회복할 길이 없다고 확신했고, 이 사건의 철두철미한 규명이 없이는 국가기강은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 <김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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