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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해제와 12·12 군사반란조선일보 대해부 4권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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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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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 해제

최규하는 대통령 당선 다음 날인 12월 7일 오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유신헌법 반대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긴급조치 9호 해제를 결정했다. 12월 8일 0시를 기해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됨으로써 복역 중이던 68명이 당장 석방됐으며 사면과 복권 및 복교 조치가 이어지게 됐다. 긴급조치 9호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국가폭력이었다.

조선일보는 긴급조치 9호 해제에 관한 사설은 물론 정치부 기자 방담도 내보냈다. 유신독재시대에 악명을 떨쳐온 긴급조치이고 보니 국민들이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신문은 12월 8일자 사설에서 “이제 그런 조치가 뒤늦게나마 해제된 것을 우리는 이 나라의 민주 발전을 위해 크게 환영하며 극히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로 인한 피해자들에 대해 신중함을 요구하고 있다. “이 기회에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피해자들)이 전면 복권과 복교를 기다리면서, 대국적 견지에서 극기하고, 행동을 신중히 하여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한 것이다. 12월 8일자 2면 정치부기자 방담에는 솔직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 -제일 괴로웠던 일의 하나는 학생데모 취재 때였어. 긴급조치는 학생의 데모와 정치 관여 행위를 금지했고, 이를 보도하는 행위도 벌하도록 되어 있어. 그러나 학생들이나 일반사회에서는 긴급조치의 이런 내용을 잘 몰라. 그래서 데모 현장에 취재를 가면 기자들은 온통 구박덩어리야. 학생들로부터 “쓰지도 못하면서 무엇 하러 왔느냐”는 비웃음을 당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
-맞아. 그래서 학생 데모를 표현하는 말도 기형적인 용어가 만들어졌지. ‘학원 사태’라는 막연한 말로 말이야.
-아마 후세 사람들이 긴급조치 아래에서의 신문을 보면 어리둥절 할 거야. 불교의 선문답도 아니고 모호한 말들만 나오니.
-‘개헌’이라는 말도 차압을 당했었지. 엄연한 우리말이고 학생, 종교계에서는 그렇게 많이 쓰는 말을 쓸 수가 없었어. 그래서 ‘개헌’이라고 써야 할 곳엔 ‘헌법 관계’라는 말이 대신되었어. (…)
-해제의 발표를 듣고 보니 북괴의 침략 야욕은 여전한데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생각지 않을 수 없어. 변화가 있다면 10·26 사태뿐이야. 10·26 사태로 긴급조치가 풀릴 수 있다는 것은 상황과의 관계가 아니라 통치권과의 관계라는 결론이 나올 것 같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들의 방담은 당시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보도가 어렵다는 사실과 함께 언론 보도의 내용이 얼마나 왜곡된 형태로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는지를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긴급조치의 해제는 현실적 상황과의 관계보다는 통치권과의 관계라는 점에서 향후 새로운 권력의 등장을 주시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10·26 사건 이후 정국은 유신독재세력과 민주화운동세력의 대 구도로 전개되었지만, 두 세력 안에서도 향후 정국에 대한 대처 방안을 놓고 분화가 진행됐다. 유신독재세을 대표하는 집단은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소장파 신군부였다. 신군부를 이끄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합수부장을 겸하며 10·26 사건 이후 정보를 독점한 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0·26 사건 뒤 공식 지휘 계통을 맡은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등은 온건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 민간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12·12 군사반란과 조선일보의 동조

신군부는 10·26 사건 이후 자신들이 제거될 가능성이 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대립적인 군 장성들이 핵심 보직에 임명된다거나 합수본부장 전두환이 동해경비사령관으로 좌천된다는 설 등으로 위기감을 갖게 됐다. 이에 대비해서, 11월 중순경부터 전두환, 노태우(9사단장), 황영시(1군단장), 유학성(국방부 군수차관보) 등 군내 강경파는 군권 장악을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결국 그들은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그날은 최규하 정부의 새로운 조각 발표가 예정된 바로 전날이었다. 신군부는 군권을 장악하기 위해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에 모여 반란을 지휘했다. 그 과정에서 주동자들은 임의로 부대를 이탈한 뒤 병력을 동원해서 군 지휘계통을 무너뜨렸다(<한국민주화운동사> 3권, 44쪽).

조선일보는 12·12 군사반란에 관한 기사를 13일 하루를 건너 뛰어 14일자 1면 머리에 내보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이라는 제목의 통단기사다. 부제는 「군 수사요원·경비원 총장공관서 충돌」 「국방부서도 초병과 증원군 오인 총격」으로 군 내부 갈등의 심각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사태의 배경을 파악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13일 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군 수사기관에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대장을 연행했으며, 일부 관련 장성도 구속조사 중이라고 밝히고, 정부는 새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중앙정보부장 서리인 이희성 육군중장을 대장으로 승진,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노 국방장관 이름으로 이날 아침 7시 20분에 발표된 특별담화문에 따르면 군 수사기관은 대통령 시해 사건의 주범인 김재규의 범죄사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이 여태까지 숨겨왔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 그 진부를 가리기 위해 12일 저녁 7시쯤 군 수사요원이 육참총장 공관으로 출동했는데, 이 때 공관 경비원과 충돌이 있었으나 정 총장의 신상에는 이상이 없이 연행 조사 중이라고 했다. 또한 13일 새벽 2시 증가된 계엄군이 국방부청사로 이동배치 중 국방부에 있던 초병과의 사이에 오인 충돌이 있었다고 밝히고, 수도권 경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일부 계엄군이 증가 배치된 곳도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군사반란과 관련해서 같은 날짜 신문  1면 하단의 <팔면봉>을 통해 “하룻밤 자고나니…밤사이 안녕하십니까. 새삼 아침인사가 실감난다”고 촌평했다. 오히려 정치가십을 다루는 2면의 <문외문>에서 야당인 신민당의 분위기를 전하는 보도 내용이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신민당사 10·26 사태 직후 비슷」이라는 제목의 글은 “13일의 신민당 마포 중앙당사는 지난 10·26 사태 다음날을 똑같이 연상시킬 만큼 뒤숭숭하면서도 적막한 분위기. 김영삼 총재는 오전 10시쯤 당사에 나왔으나 이날 예정됐던 정례 정무회의를 취소시킨 채 근심스런 모습으로 박권흠·정재원 대변인 등과 사태를 숙의. 당원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12일 밤의 얘기를 주고받는 등 어수선한 모습이었으나 총재실에 나타난 의원들은 대변인 이외에 김동영·류한열 의원 정도일뿐 다른 당직자들은 10·26 직후처럼 모습도 찾아볼 수 없어 당사는 썰렁하기만 했다”라고 되어 있다.

12·12 군사반란은 한국사회에 심각한 위기감을 초래했으나 검열 하의 언론은 신군부가 발표한 내용만 그대로 전할 뿐이었다. 신군부는 반란 직후 육군참모총장과 수도경비사령관 그리고 특전사령관 등 군내 핵심 요직을 모두 장악했다. 조선일보는 12월 16일자 1면 머리기사에 정부 고위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신현확 국무총리가 15일 12·12 사건은 이미 진정 해결돼 다른 어느 분야의 앞날에도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것”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특히 신 국무총리는 “12·12 사건으로 정부의 정치발전 스케줄에 전혀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고 무장군인을 시켜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해 총장을 연행하는 신군부의 군사반란이 일어났는데도, 정치발전 스케줄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발표였다.

조선일보는 이 보도에 이어 12월 19일자 1면에서 신임 계엄사령관 이희성의  첫 담화문을 주요 기사로 다루었다. 핵심 내용은 역시 ‘군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다짐이었다. 그 기사는 계엄사령관의 담화를 인용해 “군의 기본사명은 국토방위에 있으며 정치는 군의 영역 밖의 분야이기 때문에 군이 정치에 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확고한 원칙이며, 정치는 애국심과 양식 있는 정치인에 의해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군의 소망임을 천명한다”고 전했. 신군부의 이런 연막전술은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조선일보는 다시 12월 20일자 사설(「이 계엄사령관의 담화문」)을 통해 “군의 입장이 전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 이 담화문에서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군의 기본사명이 국토방위에 있으며, 정치는 군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군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고한 원칙으로 밝힌 점이다. (…) 군의 이러한 입장과 결의가 새삼 천명되었다는 것은 전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아 마땅하며, 우리는 이것을 군이 국민에 대해 한 중대한 공약으로 간주하면서 환영코자 한다. 앞으로 원대한 정치발전으로 민주제도를 확립해야할 시점에 있는 지금, 누구보다도 군 자신이 그런 원칙을 밝히고 나선 것은 있을 수 있는 세간의 오해와 부질없는 억측을 불식할 것으로 믿어 마지않는다.


신군부와 최규하의 ‘이중 권력구조’

엄청난 사건이 잇달았던 1979년이 가기 전에 유신독재권력의 강경파 신군부는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군권을 장악하면서 정권의 막후 실세로 등장했다. 이미 외신들은 그 이전부터 신군부의 등장을 전했지만 이른바 ‘3김’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은 12·12 군사반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정치권은 그것을 군 내부 강온파 간 충돌로 보고 부정적 판단을 유보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12·12 군사반란 이후의 권력 상황을 최규하를 수반으로 하는 ‘형식적 정부’와 신군부의 ‘실질적 권력’이 작동하는 ‘이중권력구조’라고 표현했다(같은 책, 45쪽).

조선일보 12월 30일자 사설(「격동의 70년대를 보낸다」)은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둔 듯, 마지막 문단은 안보를 앞세우며 군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보이고 있다. 그 의미는 행간에서 더욱 강조된다. 군에 대한 절대적 지지이자 ‘아부’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 79년과 그리고 70년대를 함께 보내면서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고 싶은 심정으로 우리의 이제부터를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이 순간에도 전방의 촉각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신경임을 자의식 한다. 그래서 군에 당부한다. 분단의 비극이 해소되는 날까지 현실적으로 이곳, 이 땅의 궁극적 운명은 군의 어깨에 달려 있다. 어떤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의 오늘의 생존의 조건이고 상황이다. 더 보탤 말이 있겠는가. 제대로 한 가닥 감상도 만만하게 가지지 못한 채 우리는 79년-70년대 마지막 세모를 보낸다.

조선일보의 군에 대한 찬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드러났다. 조선일보는 1979년 말 ‘군부 지지’사설을 실은 데 이어 10여일 후인 1980년 1월 12일자 1면 기사(「군부는 암투 없다」)에 국방부 대변인의 외신기자 회견 내용을 실었다. 국방부 대변인 박진수가 1월 11일 주한 외신기자들과 회견한 내용을 미국 통신사 AP가 보도하자 이를 직접 번역해 전한 것이다. 특히 뒷 부분에 나오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정승화 전 계엄사령관과 일부 군 장성들의 체포까지 몰고 온 12·12 사건은 군부의 강경·온건파 장성들 간의 권력투쟁의 결과가 아니었다. 한국군에는 그러한 강·온파벌이 존재하지 않으며 군부는 모두 한 가족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곧 퇴역할 것이라는 소문은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다. 그는 결코 잘못한 일이 없으며 도리어 박 대통령 시해 사건 진상 조사로 가장 신망 받고 있어 퇴역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1980년을 여는 조선일보의 연두사는 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 신문은 이 해의 주제로 ‘순리’를 택해 특집으로 다루었다. 1월 1일자 1면 머리에 통단으로 나온 연두사의 제목은 「오늘의 한국을 사는 한국인의 상식」이다. 부제로는 「이치에 어긋나지 않고 무리 않고 착하게 사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국민에게 착하게 살 것을 주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순리’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살라는 ‘순응’의 의미로 다가온다. 특히 박정희 식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그 의도를 볼 수 있는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현실은 오욕을 갖춘 사람들이 표현하는 현실이기에 향 냄새보다는 더 비린내를 풍기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왜 현실이 교과서대로 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것도 현실에 대한 인식의 미숙에서 오는 것이다. 지상천국이 란, 영원한 인간의 희구일 뿐이며, 그러기에 인간의 삶을 밝히는 샛별인 것이다. 그와 같은 전제를 놓고 생각할 때 우리가 말하는 순리란, 오늘의 한국을 사는 한국인의 무리 없는 상식의 견지를 뜻한다고 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미국인이 한국에서 사는 신조일 수도 없고, 일본인이 한국에서 사는 미덕일 수도 없다. 거꾸로 그것은 한국인이 미국인처럼 사는 신조도 아니며, 한국인이 일본인처럼 사는 미덕일 수도 없는 것이다. (…) 여기가 한국이라는 인식을 잊은 정치발전만이 정치발전이요, 그렇게 사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욱 더 순리대로 살아가기가 힘들게 될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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