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사 경영진이 파면된 기자 백기범·신홍범에 대한 복직 약속을 3개월이 지나도 지키지 않자 한국기자협회 조선일보사 분회는 1975년 3월 6일 긴급 임시총회를 열고 편집국장단의 인책 사퇴를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자 사장 방우영은 “제작 거부를 계속하면 전원 파면하고 부·차장들만으로 신문을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신문 제작 거부한 기자 16명 파면

농성 이틀째인 7일 경영진은 기협 분회장 정태기를 비롯한 분회 집행부 5 명 전원을 파면했다. 기자들이 제작 거부에 들어가자 부·차장들은 다른 신문 기사를 베끼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곧 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부하들이 모조리 전사했다고 장군마저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하 없이 장군은 존재할 수 없음이 또한 자명한 사실입니다. 진정 부하를 사랑하고 아꼈던 장군이라면 군복을 벗고 다시 갈아입은 백의의 옷깃을 여미며 그 숱한 부하들의 죽음 앞에 숙연히 머리라도 숙일 법합니다.
부차장 여러분! 여러분의 부하 기자들이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그들의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던 직장을 잃고 속속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조금도 동요 없이 한 팔에 바람이 스쳐간 듯 일을 하고 계십니다.
결국 우리는 여러분의 부하 직원이 아니었군요. 아무런 인간관계도 맺지 않았던 셈입니다. 여러분의 입장을 이해 못할 평기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평기자들의 직업적인 무더기 떼죽음 앞에서도 끄떡도 않는 입장도 또한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부차장 여러분! 우리 한 번 시쳇말로 ‘양심의 선언’을 해보십시다. 언론자유를 부르짖는 것이 잘못입니까? 마음속으로 여러분도 언론자유의 절규는 신문 기자로서는 당연한 부르짖음이라고 공감하시지 않았습니까? 모든 기사를 여타 신문에서 그대로 복사한다면 그 어찌 신문이라고 하겠습니까? 조선일보를 믿고 구독하시는 선량한 독자들을 더 이상 농간하지 맙시다. 저희들이 목 잘려 나가든 말든 여러분은 독자를 농간하는 작업을 계속하려 합니까? 조선일보를 살린다고 하는 부차장들의 기사 복사 작업이 조선일보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을 굴레 씌우고 있는 직위 안보에서 이제 과감히 떨쳐 일어나 잠 못 자 핏발 선 눈초리의 평기자 편으로 달려오지 않겠습니까?
평기자들은 여러분을 둘러싸고 여러분을 헹가래치며 조선일보의 새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해 나가려 합니다(같은 책, 68~69쪽)

조선일보사는 기자들이 농성을 하던 편집국의 전화선을 모두 끊고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쳐서 외부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급히 채용된 새 경비원들이 회사 언저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농성 엿새째인 3월 11일 간부 사원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치부 차장 이종구가 농성에 합류했다. 그는 그때까지 해임된 기자 12명은 복직되어야 하며, 신문 제작에 참여했다고 해서 논공행상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경영진은 그날 오후 1시 이종구를 비롯한 4명의 기자를 다시 파면했다. 그때까지 16 명이 파면, 37명이 무기정직을 당했다.

조선일보사는 인사조치를 발표한 뒤 바로 경비원들을 포함한 외부 사람들을 동원해서 농성하던 기자들을 완력으로 끌어냈다. 기자들은 3월 12일 오전 회사 정문 앞에서 항의를 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그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조선일보사는 3월 11일자 신문 1면에 실은 ‘사고(社告)’를 통해 해직된 기자들이 ‘항명’을 했다고 비난했다. 기자들이 한국기자협회를 배경으로 언론자유 투쟁의 희생자를 자처하면서 사내의 인화 단결과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의 뜬구름 잡는 글 ‘우리의 견해’

3월 11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신문 제작 거부 사태에 관한 / 우리의 견해 / 외부의 개입을 배격하며 자주정론을 다짐한다」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얼마 전 창간 55돌을 보낸 조선일보의 역사는 우여곡절의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갖은 고초를 겪고, 숱한 난관을 뚫는 모진 시련을 경험하는 동안, 조선일보는 생명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한 번도 언론 본연의 사명을 저버린 일이 없음을 자부한다.
사회의 변화에 기동성 있게 대응하면서 항상 염원하여 마지않은 것은 이 겨레의 번영이요, 이 국민의 행복이었으며, 늘 마음을 쓴 것은 언론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거기 이바지하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냐는 모색이요 실천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조선일보가 확립한 원칙의 하나는 어떤 경우에도 치우치지 않고 사상을 냉정히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판단 평가하는 불편부당의 공정한 자세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55년의 과거를 돌아볼 때 그와 같은 조선일보의 자세는 옳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우리가 결단하고, 단정한 역사적인 순간을 찾아보아도, 그와 같은 원칙과 자세가 가장 필요로 할 때, 가장 옳은 말을 하였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
조선일보는 근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마땅히 확립되어야 할 위계질서가 공허한 명분의 미명 아래 들뜬 감정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적지않이 우려하고 있었던 만큼 조선일보 자체의 확고부동한 질서 확립을 위하여는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고 소신을 관철하고야 말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의 원칙과 자세를 고수하고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며 계속 정부권력에 대하여도 의연히 굽히지 않고 국민에 대하여도 떳떳한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조선일보를 농군이 제철에 씨 뿌리고 거두는 마음으로 만들어 겨레와 동포 앞에 내어놓을 것임을 밝힌다.
이와 같은 조선일보의 정연한 이치와 당연한 반응에 대하여, 실로 해괴한 것은 외부 소수로부터의 용훼요 간섭이다.
누구보다도 조선일보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조선일보를 만드는 조선일보의 사원들이다. 조선일보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은 조선일보가 자체로 처리하여야 하는 것이며, 또한 조선일보는 그만한 양식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태를 옳게 파악하지 못한 타인이 성급히 끼어들어 말썽을 일으키는 저의는 어디 있는가?
그래도 우리는 그와 같은 정치사회단체의 용훼와 간섭이, 그 단체 안의 소수의 자의적(恣意的)인 행위로 간주하는 이해와 인내로 정관하려 하였으나, 10일 정당의 공식 성명에 접하고, 우리는 앞으로 그와 같은 도전에 대하여 서슴지 않고 맞서고 나설 것을 결심한다.
그러한 성명 내용에 관하여는 추후 지면에서 면밀히 분석 평가하기로 하지만, 우선 우리는 정당의 그와 같은 태도를 자주언론에 대한 명백한 정치적 압력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정당뿐 아니라 어떠한 단체의 어떠한 용훼와 간섭에 대하여도 우리는 언론의 기능을 최대한도로 활용하여 밝힐 것을 밝히고 주장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그 시비를 전 국민에게 물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일보의 55년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또 하나의 색다른 측면에서의 자주언론에 대한 압력과 도전이 그 실마리를 끊었다고 판단하고 앞으로의 자유언론수호투쟁에 있어서 신념을 가지고 싸워나갈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이 투쟁을 통하여 조선일보의 진가가 새로운 차원에서 보다 더 평가받을 것을 확신하면서 널리 그 결의를 천명한다.
아울러 전 국민의 이성적이며 공정한 판결을 기대한다.
조선일보사

‘조선일보사’의 이름으로 1면에 실린 이 글을 본 독자들은 ‘이것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조선일보가 왜 난데없이 이런 장문의 ‘사고’를 1면에 실었는지에 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 “얼마 전 창간 55돌을 보낸 조선일보의 역사는 우여곡절의 가시밭길”이라는 화두로 시작되는 이 글은 “조선일보는 근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마땅히 확립되어야 할 위계질서가 공허한 명분의 미명 아래 들뜬 감정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적지 않이 우려하고 있던 만큼 조선일보 자체의 확고부동한 질서 확립을 위하여는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고 소신을 관철하고야 말 것”이라고 선언한다. 도대체 ‘조선일보 자체의 확고부동한 질서 확립’은 어떤 사건 때문에 필요한 것인가? 이 글의 제목에 나와 있는 ‘제작 거부 사태’ 때문인가? 그런 일에는 누가 앞장섰으며 조선일보사가 ‘각오’하는 ‘희생’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런 의문은 궁색하게도 이 글이 실린 조선일보 1면 하단에 실린 ‘광고’를 읽어야 풀린다. 「조선일보사 독자 여러분께」라는 ‘5단 통’ 광고는 아래와 같이 시작된다.

본사는 일부 기자들의 신문 제작거부와 편집국 내에서의 농성파업이 5일째로 접어들고 있으며 그동안 조선일보는 부차장을 비롯한 40여 간부기자들에 의해서 정상적인 제작과 발행을 해오고 있습니다. (…)
(…) 퇴사동료의 복직운동에서 비롯된 젊은 기자들의 행동이 기자 본연의 임무인 신문 제작이라는 사명을 포기하고 상궤를 일탈하여 다중에 의한 극한행동으로 진전했고 급기야 외부세력과 결탁하여 해사행위를 감행하기에 이르렀으므로 본사는 사내의 내분을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부끄러이 여기면서 본보를 아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그간의 경위와 전말을 간략히 밝히고자 합니다.

이 광고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열거하고 있다. 1)1974년 12월 16일 ‘편집국의 두 기자’가 편집국장에 대해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위협적인 언동으로써 직무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과격행위”를 하고 이튿날 파면 당한 경위 2)‘편집국 기자 일동’이 12월 18일 두 기자의 즉각 복직을 호소하며 농성데모를 하자 편집국 국장단이 ‘3개월 내 두 기자 복직’을 약속했는데도 일부 기자들이 약속 시한 이전인 3월 5일(창간기념일) 이전에 두 기자를 복직시키라고 산발적으로 요구한 사실 3)기자협회 조선일보 분회가 2월 1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지하신문’인 〈조일분회소식〉을 발간해서 ‘인화단결과 사내질서를 문란’하게 했으므로 기협 분회장을 파면하고 집행부 4명을 견책한 사실 4) ‘전기 5명이 이끄는 기협 조선일보 분회’가 일방적으로 두 기자의 복직 약속을 회사가 어겼다 하여 예고도 없이 신문 제작거부라는 전례 없는 과격행동으로 6일 오후부터 농성에 돌입하는 한편 분회소식 제3호를 다시 발간 배포한 사실 5)파업에 들어간 기자들이 선언문과 결의문을 통해 파면된 기자들의 즉각 복직과 편집국장 및 부국장 3명의 무조건 사퇴를 요구한 사실.

조선일보사는 광고의 끝부분을 이렇게 맺었다. “농성 중인 기자 가운데서도 그들의 주장이 과격하고 비리(非理)함을 깨닫고 있음에도 배신자라는 규탄을 받기 두려워 마지못해 참가하고 있는 기자가 대다수입니다. 파면된 기자 가운데도 있습니다. 회사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이들을 퇴사케 한 것도 진정 옥석을 가리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회사를 이처럼 혼란에 빠뜨린 배후의 불순분자를 색출해 내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가 3월 11일자 1면에 실은 「신문 제작거부 사태에 관한 / 우리의 견해」라는 사고가 온전한 내용과 형식을 갖추려면 같은 날짜 같은 지면 맨 아래 실린 ‘광고’의 내용을 먼저 소개하고 회사의 주장을 펼쳐야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견해」라는 글에는 조선일보가 얼마나 태연하게 자기 신문의 역사를 왜곡하면서 거짓 선전을 일삼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조선일보는 생명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한 번도 언론 본연의 사명을 저버린 일이 없음을 자부한다”는 문장은 후안무치한 역사 왜곡이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파가 창간한 신문으로서 일본제국주의와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갖은 아부를 다한 것은 ‘언론 본연의 사명을 저버린 일’이 아니었던가. 이승만·박정희 정권 아래서 조선일보가 독재와 타협하고 권력의 반민주적 행태를 정당화하거나 옹호한 일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도 「우리의 견해」라는 글은 “이 시점에서 55년의 과거를 돌아볼 때 그와 같은 조선일보의 자세는 옳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우리가 결단하고, 단정한 역사적인 순간을 찾아보아도, 그와 같은 원칙과 자세가 가장 필요로 할 때, 가장 옳은 말을 하였음을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부 함세웅 개인을 공격한 ‘우리의 견해 2’

조선일보는 3월 14일자 1면에 「천주교사제단과 민주회복국민회의 명의의 성명에 대한 / 우리의 견해 2」라는 ‘사고’를 실었다.

우리는 본보 3월 11일 제1면에 일부 기자사원의 신문 제작거부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발표함과 아울러 광고란을 통하여 그동안의 경과를 상세히 밝히고 독자와 국민이 공정한 시비를 가려줄 것을 바란 바 있다.
그리고 11일 이전에 미처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성급히 발표된 몇몇 단체의 성명에 대하여는 논급하기를 삼가면서 그러나 앞으로는 부당한 용훼와 간섭이 있을 때는 서슴지 않고 대응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러한 우리의 신중하고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13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민주회복국민회의 명의의 두 개의 성명서가 나온 데 대하여 우리는 이를 자주언론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단정하고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도 그 두 성명이 두 단체의 전체 의사라고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은 그 두 단체의 명예와 그 두 단체가 내세우는 명분을 아쉽게 생각하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주요 멤버이며 민주회복국민회의의 대변인인 함세웅 신부가 개인적으로 두 단체의 전체 의사를 도용하였거나 그 중 소수가 다수에게 강요함으로써 만들어진 성명서로 보고 주로 함세웅 신부를 향하여 연민의 정을 가지고 말하려 한다.
사제단의 성명은 몇 가지 점에서 어이없고 독단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일련의 사태를 “현 독재권력 당국이 언론을 탄압, 봉쇄하려는 음모와 상호 관련된 것임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고 단정한 점이다.
도대체 인간의 영혼을 다룬다는 신부가 그렇게 ‘쉽게 인지’하는 안이한 태도부터 잘못이다. 어찌 그렇게 가벼울 수가 있을까. 신부가 아니더라도 신중한 사람이면 그렇게 사상(事象)을 안이하게 다루고 참견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리고 자기의 비위에 맞지 않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독재권력’과 결부시키는 단순논리도 사고의 나태를 뜻하는 것이다.
게다가 양사(兩社)에서 파면된 기자만이 “자유언론 실천을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해온 양심적이며 기자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파악부터 감상(感傷)의 흠이 있을 뿐 아니라 잘못 알고 하는 말이다.
지금 일부 사원의 제작거부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의 사시에 의하여 과중업무량을 처리해나 가는 사원들이야말로 이제까지 자유언론 실천을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해왔고, 고초도 겪은 양심적이며 올바른 기자정신을 가진 사람들인 것이다. (…)
우리는 천주교를 아끼는 마음에서, 고통 받는 사람을 편든다는 기치만 휘두르며 무턱대고 좌충우돌하면 양심의 소치요, 정의를 구현한다고 착각하는 사제에게는 침묵을 권고하도록 주교단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다. (…)
끝으로 함 신부 개인에게
당신은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믿고 있는지, 남을 공격만 하면 그것으로 당신의 죄는 면책된다고 믿는지 묻는다. 함 신부는 양심적으로 이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사

‘조선일보사’라는 이름을 걸고 1면에 크게 실은 이 ‘사고’는 궤변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글이 시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3월 13일에 발표한 「기자들의 해임 사태에 관하여」라는 성명서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신부 함세웅이 “단체의 전체 의사를 도용했거나” “소수가 다수에게 강요한 성명서”라고 보고 있다. 사제단에는 수백 명의 신부가 가입해 있고 함세웅은 대변인 자격으로 그 성명서를 발표했을 뿐이다.

조선일보는 함세웅을 ‘단체 명의 도용자’로 몰아붙이면서 “당신에게는 죄가 없는지, 남을 공격만 하면 그것으로 당신의 죄는 면책된다고 믿는지”를 묻고 있다. 명의 도용이 사실이라면 사제단이 그를 문책했을 텐데 당시 그런 일은 없었다.

참고로 조선일보가 시비 대상으로 삼은 사제단의 성명서를 아래에 소개한다.

지난 3월 7일 5명의 조선일보 기자가 부당하게 해임된 동료 기자 2명과 자유언론 실천을 요구했다 하여 파면된 이래 11일까지 16명의 기자가 해임 또는 파면되고 37명의 기자가 무기정직 당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3월 8일 18명의 기자를 경영난이라는 이름으로 해임하였고,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에 대하여 또 다시 2명의 기자를 해임함으로써 그에 답하였다.
이와 같은 처사가 기자협회보의 폐간과 때를 같이하여 나타난 것은 3,4월을 앞두고 현 독재 권력 당국이 언론을 탄압, 봉쇄하려는 음모와 상호 관련된 것임을 우리는 쉽게 인지할 수 있다. 한국의 언론 탄압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과 여론이 집중되고 있는 이때 이와 같이 대량 보복적인 파면조치가 속출하고 있음은 자유언론에 대한 또 하나의 적신호로서 우리는 매우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파면 또는 해임된 기자가 이 나라의 자유언론 실천을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해온 양심적이며 올바른 기자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의 언론의 앞날을 위하여 극히 불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의 권익은 관권이 난무하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자유언론 실천에 있어 전제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기자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언론노조의 결성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에 우리는 앞서 민주와 민생을 위한 복음운동을 선포하면서 언론계에 있어서의 노동조합 결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키로 결의한 바 있다.
기자의 권익이 흔들릴 때 자유언론은 기대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 언론기관이 기자의 파면과 해임을 다반사로 한다면 기자들에 의하여 지켜지고 수행되어야 할 자유언론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겠는가? 각 언론기관이 기자를 임의대로 해임함은 곧 자유언론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조선일보가 자신의 지면을 빌려 기자의 파면을 정당화하고 있음은 곧 스스로 자유언론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언론기관이 계속 기자들에 대하여 무책임 해임을 단행하는 경우, 자유언론에 투신한 기자들의 권익은 각 언론기관에 종사하는 기자들은 물론 온 국민이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과 같은 운동을 성직자의 양심에 따라 전개하고자 한다.
1)조선일보에 대한 불매운동을 이 시간부터 전개한다.
2)광고, 원고, 취재 협조 등 일체에 있어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3)해직된 기자들의 생활을 위하여 범국민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4)전체 언론계의 각성과 성원을 호소하는 바이다.
5)각 언론기관은 노동조합을 조속히 결성, 기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일체의 음모와 행위에 대하여 투쟁할 것을 호소한다.
1975년 3월 13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엮음, 〈암흑 속의 횃불-7,80년대 민주화운동의 증언 제1권〉, 1996, 359~360쪽)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결성

조선일보사는 1975년 3월 11일 밤 7시 30분경 편집국에서 신문 제작을 거부하면서 농성을 하던 기자 40여명을 ‘경비원들’을 동원해서 회사 밖으로 몰아냈다. 쫓겨난 기자들은 3월 12일 두 건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 (10)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끝까지 남아 옥쇄하기로 결의했던 우리 40여 명의 기자들이 11일 밤 7시 30분 편집국 현장에서 회사 측으로부터 강제 축출 당했다.
자유언론수호투쟁에 파면·정직·축출이 따로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 우리들 축출당한 40여 명은 처벌 유무에 관계 없이 부당하게 파면·정직된 53명의 동료와 함께 영광스러운 자유언론 수호 대열에 합류하여 일사불란하게 공동투쟁할 것임을 거듭 천명한다.
언론자유는 진정 우리 모두의 것이요 우리는 그것을 쟁취할 것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하나다.
1975년 3월 12일 조선일보 기자 일동(〈자유언론, 내릴 수 없는 깃발〉, 96쪽)

제5선언문
언론자유를 절규하던 53명 동료들이 부당해고, 정직 등 폭력에 의해 떠나간 이래 마지막으로 남은 최후의 기자들마저 그들이 끝내 수호하려던 조선일보로부터 강제 축출당했다.
이제 조선일보는 민족의 편에 서서 정론을 펴려 했던 양심과 지성이 사라진 채 반언론, 반역사의 사이비 언론인들의 강점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이제 가사(假死) 상태에 들어선 조선일보 원상회복 여부는 바로 한국 언론의 명운과 직결되었음을 선언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조선일보의 최후의 신음이 바로 한국 민주언론의 여명기를 여는 우렁찬 신호탄으로 확신한다.
이제 우리는 55년의 전통을 팔면서 더러운 기생(寄生)을 하는 일부 사이비 언론인들의 소거 작업이 임박했음을 절규한다. 자유언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진정 우리의 조선일보는 이 민족이 이 땅에 살아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행진은 이제 진군 나팔소리가 울린 것이다. 아무리 험난해도 결코 외로울 수 없는 이 자랑스러운 길을 따라 우리는 어깨를 맞대고 전진할 것이다.
정론지 조선일보 만세!

결의문
1)회사 측은 우리들의 주장이 정당함을 인정하고 정론지 지향을 국민 앞에 약속하라.
2)회사 측은 부당파면, 징계된 동료기자 53명을 즉각 제자리에 원상 복귀시켜라. 우리는 이 징계가 무효이며 전체 기자가 일체임을 선언한다.
3)우리는 우리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최후의 1인, 최후의 일각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투쟁할 것을 계속 다짐한다. (같은 책, 96~97쪽)

‘동아 다음으로 2등은 해야지’

조선일보사에서 강제 축출당한 기자들은 “회사 측은 기자들의 순수한 자유언론실천 의지를 상업주의적 목적을 위해 어떻게 이용하고 배신했는가”를 폭로하는 성명서를 3월 12일 발표했다.

회사 측은 71년 5월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수호선언을 한 이래 각사 기자들 사이에 자유언론선언운동이 번질 때마다 조선일보 기자들에게 “적어도 2등은 해야 한다”고 은근히 뒤에서 고무 격려해 왔습니다. 동아일보와 더불어 이른바 전통 있는 민족지를 자부해온 조선일보로서는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를 외칠 때 조선일보 기자들이 침묵할 경우 소위 ‘사꾸라신문’이란 오해를 받을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선언을 하고 난 뒤 조선일보 기자들 사이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 때에는 간부들은 은연중 초조한 기색을 보였고,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조선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선언을 하는 것이 언론인으로서 대의명분에 합당할 뿐 아니라 회사의 이익에 도 합치하는 것으로 판단, 솔직해 말해서 회사의 암묵적 승인 아래 ‘어용행사’ 비슷한 일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
74년 10월 24일 역사적인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직후 회사 측 태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언대회 직후 회사 간부들의 일반적인 태도는 “잘들 했어. 2등은 해야지. 동아일보를 바짝 뒤따라 가야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기자들이 회사 측이 생각하는 어용성의 한계 안에 머물 것을 거부하고 종전과는 달리 자유언론을 성실하고 꾸준한 자세로 실천해 가려 하자, 회사 측은 두 달이 못가서 기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
(…) 기자들의 순수한 정열을 적당히 ‘신문장사’에 이용해오던 회사 측은 작년 12월부터 두 동료기자를 해임한 데 이어 기자들의 자유언론의 구심체인 기자협회 조선일보 분회 활동을 탄압하는 등 급선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기자들에 대한 배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
2등은 해야 된다고 강조해 오던 회사 측은 금년 1월에 들어서는 2등도 못하겠다면서 ‘자주노선’이란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기자들은 이 말에 속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조선일보의 위선을 감추기 위한 술수라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주노선’ 선언 이후 실제로 제작된 신문의 지면이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회사 측이 신문의 생명이라 할 언론자유를 그때그때의 상업적 이익을 위한 방편으로만 이용하는 반언론적 태도를 즉각 청산하고 본연의 양심과 정도를 되찾아 주기를 간절히 요망합니다.

조선일보사의 회유 또는 권력의 압력 때문에 회사로 복귀한 사람들을 빼고 남은 32명(단계적으로 해임 당함)은 3월 21일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를 결성했다. 그날 발표된 「제6선언문」은 아래와 같다.

조선일보는 민족의 정론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진지한 노력이 아직도 미몽(迷夢)에 사로잡힌 일부 간부들에 의해 오판되고 있음을 통분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대화를 위한 노력이 우리의 투쟁의지가 허물어지고 우리의 대의가 퇴색되고 있다고 판단, 역이용의 자료로 삼고 있는가 하면 무문곡필(舞文曲筆)로 응수하는 등 사태 해결의 성실보다는 왜곡에 더 기울어지고 있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회사 측과의 성실한 대화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절감하며 회사 측이 이제 역사의 대세와 민족의 양심 앞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이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발족시킨다(같은 책,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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