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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일만에 내려온 노동자 앞에서 자리 다투던 기자들파인텍 농성장 몰려온 취재진은 자리다툼 고성 “위에 있을 때 관심을 가졌어 봐, 진작에 내려왔지!” 시민들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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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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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을 때 그렇게 관심을 가졌어 봐, 진작에 내려왔지!”

두 파인텍 노동자가 11일 오후 발전소 굴뚝 위에서 426일 만에 내려온 순간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향해 한 시민이 소리쳤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응급침대에 실려 문밖에 나서는 동안 이를 담으려는 기자들이 취재 경쟁으로 마찰을 빚었다. 두 노동자는 침대에 누워 기자들 다툼을 그저 지켜봤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이날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지상에 내려왔다. 파인텍 노사는 이날 오전 20시간에 걸친 6번째 교섭 끝에 합의에 이르렀다. 고공농성했던 홍기탁·박준호씨와 차광호 김옥배 조정기 등 파인텍 노동자 5명은 파인텍 공장에 복귀한다.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이사는 개인 자격으로 자회사 파인텍 대표를 맡는다. 이후 고용 보장은 ‘최소 3년’, 임금은 ‘2019년 최저시급+1000원’이다. 합의는 이들이 단식에 들어간 지 6일 만에 나왔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고공농성하는 동안 몸무게가 50kg 정도로 준 데다 단식까지 해 건강 상태가 심각했다. 근육량이 빠지고 근골격계에 이상이 있어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사다리와 계단을 내려왔다. 두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이들이 내려오는 장면을 올려다보며 ‘홍기탁 힘내라, 박준호 힘내라’며 구호를 외쳤다.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이 11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오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시민들이 11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내려오는 파인텍 노동자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두 노동자가 차례로 땅을 밟을 무렵, 사진기자 20여명이 이들이 나오는 모습을 포착하려고 서울에너지공사 대문에 바짝 붙어섰다. 그 뒤엔 더 많은 기자가 모였다. 사회를 보던 김소연 ‘스타플렉스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 공동대표가 문을 열 수 있도록 비켜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취재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문이 그대로 열렸고 기자 수십 명의 사진찍기 경쟁이 시작됐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이불을 덮고 울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흐르는 눈물을 닦기도 했다. 다른 파인텍 동료 노동자들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곳곳에서 짜증 섞인 고성이 나왔다. 뒤에 서 있던 영상기자들은 앞줄에서 사진을 찍는 기자들을 향해 자세를 낮추라고 소리쳤다. “뒤로 와” “앉으라고” “같이 좀 일합시다” 등 고성을 질렀다. 다툼은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누운 응급침대가 취재진과 시민을 마주한 상태에서 이어졌다.

취재진이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을 둘러싸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11일 오후 5시께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426일 만에 지상에 내려온 두 노동자를 앞에 두고 기자들 사이 다투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응원차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여기저기서 한숨을 쉬었다. 사방에서 “진짜 너무하네”, “이건 아니지” 등 항의가 나왔다. 기자들 고성은 두 노동자가 소감을 밝히는 중간중간에도 이어졌다.

홍기탁 전 지회장이 먼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위에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노동조합 하나 지키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취재진을 포함한 좌중이 조용해졌다. 그는 “긴 역사 속에서 지켜왔던 민주노조인데 이 사회에서 그걸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진짜 더러운 세상”이라며 흐느꼈다. 두세 명의 기자도 눈물을 훔쳤다. 박준호 사무장은 “안 울려고 했는데, 감사 드린다”며 파인텍지회 조합원 5명 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온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전 지회장. 사진=김예리 기자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온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 사진=김예리 기자



차광호 현 파인텍지회장은 흐느끼면서 “저희들은 정말 청춘을 다 바쳤던 공장에서 2번, 3번 밀려나와 지금까지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이 세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쫓겨나도 말 한 마디 못 하고, 탄압 받아도 아프다고 못 한 채 다른 곳에 옮기는 삶이 이어진다”며 “자기 자리에서 바로잡는 날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기자회견에서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번 협상 타결이 회사가 양보한 것 아니냐고 묻는 기자도 있다. 그러나 애초 합의사항을 지키기만 했어도 이 상황이 올 리 없었다”고 말했다. 김호규 위원장은 “두 동지는 살고자,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려 굴뚝에 올라갔다. 더이상 노동자가 단식하고 고공농성하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가 선물한 신발을 받아 갈아신은 뒤 연대 단식 농성자들과 함께 치료와 종합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 합의는 회사가 큰 양보를 해 만들어진 합의가 아니다. 이미 합의했고, 이행해야 했다. 그래서 이를 이행하라고 촉구한 것”이라고 강조한 뒤 힘들게 쟁취한 현실을 지켜내도록 “언론노동자들이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 이글은 2019년 01월 11일(금)자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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