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골선비의 ‘스마트 컨닝’

고려 때 얘기다. 천자문도 제대로 떼지 못한 한 시골 선비가 알성경과(謁聖慶科)를 보러 집을 나섰다. 산길을 가다보니 어디선가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누구시랴. 얼른 보건소 가서 독감 예방주사 맞으셔야겄슈.”  선비는 문득 낙엽 사이로 나뒹구는 백골을 보았다. 선비는 해골 콧구멍 밖으로 칡넝쿨이 삐져나와 있는 걸 보고 해골이 재채기의 주인공임을 알아챘다.

선비는 “독감 예방주사..... 어쩌구.....” 계속 중얼거리면서 해골과 뼈다귀를 잘 수습하여 잘 묻어줬다. 도시락으로 싸갖고 온 천국김밥까지 꺼내 제사를 지내주었다. 해골은 고마워 땅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날 밤. 시골 선비가 여인숙을 찾아 잠자리에 누웠더니 웬 머리 허연 선비가 나타나 “내 해골과 뼈다귀를 묻어 주시고..... 천국김밥 참으로 고맙다”고 공치사를 하는 것이었다. 시골 선비가 돌아서는 허연 선비한테 볼멘 소리를 했다. “말루만유?” 허연 선비는 당황하여 “그럼 보답으로 시험문제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峯)이 문제로 나올 뀨.” “뭔뜻이유?” “여름 구름엔 기이한 봉우리도 많구나...... 란 뜻이유.” 허연 선비는 “공부도 안하고 시험 보러 가나벼..... 사실 이거 시험문제 사전 유출인디....” 어쩌구 혼잣소리를 하면서 다시 돌아서 가려 했다. “잠깐만유!” 그때 시골 선비가 허연 선비를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불러 세웠다.

“왜유, 또.....” “이왕이문 압운자도 좀 알려주시문 좋겠구먼유.” “압운자(押韻字)는 ‘봉(峯)’이유.” “고마워유!” “이제 가두 되쥬?” 허연 선비는 그깢 김밥 얼마나 한다고 시험문제를 통째로 알려 달라느냐, 내가 봉이냐 어쩌구 궁시렁거리면서 다시 제 갈길 가려 했다.

“잠깐만유!” 그때 시골 선비가 또다시 허연 선비를 불러 세웠다. “왜유, 또.....” “아직도 시험에 붙을 자신이 읎는디, 뭘 좀 더 시원하게 알려 주시문 안되겄슈?” “허참, 내가 읃어 먹은게 캐비어였나벼..... 그류, 내가 지은 자작시 한 편 들려 드릴테니 잘 기억해두슈.” 허연 선비가 자작시를 읊기 시작했다.

“ 白日當天中
  浮雲自作峯
  僧看疑有刹
  鶴見恨無松
  電影樵童斧
  雷聲隱寺鐘
  誰云山不動
  飛去夕陽風”

“뭔 소린지 모르겄네. 한 글자도 모르겄네.” 시골 선비가 비명을 질렀다. 허연 선비는 혀를 차면서 다시 읊었다.

백일당천중 白日當天中 해는 하늘 가운데 떠 있고
부운자작봉 浮雲自作峯 떠도는 구름은 스스로 봉우리를 만드네
승간의유찰 僧看疑有刹 스님은 보면서 절이 있나 의심하고
학견한무송 鶴見恨無松 학은 보면서 소나무 없음을 한스러워하네
전영초동부 電影樵童斧 번개는 초동의 도끼처럼 번쩍이고
뇌성은사종 雷聲隱寺鐘 뇌성은 숨겨진 절 종소리처럼 들리네
수운산부동 誰云山不動 누가 산이 움직이지 않는다 말하는가
비거석양풍 飛去夕陽風 석양 바람에 날려 가네

“이제 가두 되쥬?” 허연 선비는 죽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살다 살다 별 사람 다 본다네 어쩐다네 궁시렁거리면서 다시 제 갈길 가려 했다. “잠깐만유!” 그때 시골 선비가 또다시 허연 선비를 불러 세웠다. “왜유, 또.....” “초동(樵童)이 뭐쥬?” “ 나무하는 아이!” 나무할 초, 아이 동!“ “뇌성(雷聲)은 뭐쥬?” “우렛소리! 우레 뇌, 소리 성!” “흐흐, 고마워유. 안녕히 가세유.” 하연 선비는 그제사야 여인숙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시골 선비는 잊을새라 스마트폰에 ‘하운다기봉’을 잽싸게 저장했다.

마침내 시험날. 문제를 보니 과연 ‘하운다기봉’이었다. 압운자는 과연 ‘봉’이었다. 시골 선비는 일필휘지로 답안지를 채워나갔다. ‘해는 하늘 가운데 떠 있고..... 석양 바람에 날려 가네’ 시골 선비는 부정한 방법으로, 또한 우수한 성적으로 비겁하게 합격했다.

“하늘천 따지냐......” “와, 어떻게 그걸?” “따지냐?” (맨뒤, 詩鬼)

(2) 숙명여고 쌍둥이의 ‘스마트 컨닝’

시골 선비는 죽을 때 후손들에게 “입학시험이든 입사시험이든 기회 닿는대로 부정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합격하라”고 유언했다. 후손들은 그 말씀을 ‘컨닝으로 점수얻어, 부정하게 합격하자’는 가훈으로 정리해 대대손손 써먹었다.

21세기가 되어 시골 선비의 후손 하나가 교육계에 진출하여 숙명여고 교무부장이 됐다. 교무부장의 쌍둥이 딸들이 숙명여고에 입학했다. 교무부장 아빠는 딸들에게 “부정은 우리집안의 숙명이여” 라면서 시험부정을 주도했다. 그 결과 쌍둥이는 1학년 1학기 각각 59등과 121등이었다, 2학기에 상위권으로 급상승했다. 올 1학기에는 마침내 문·이과 1등을 차지했다.

(부록)

‘허연 선비’의 정체
시마(詩魔), 시귀(詩鬼). 대개 선비 행색으로 『시경(詩經)』을 들고 다닌다. 약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고개 숙여 책 읽기를 즐기다 목 디스크 걸렸다.

시마, 시귀
실력은 안되는데 시험에 합격하여 채용비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일부 돌대가리 선비 및 친인척들이 만들어낸 시 귀신.

설화(1)
본문의 시골 선비, 허연 선비 얘기는 임방(任埅, 1640~1724)의 『천예록. 天倪錄』에 나오는 구라.

설화(2)
정지상(鄭知常, ??~1135)이 산에서 과거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달 밝은 밤에 혼자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시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은 보면서 절이 있나 의심하고..... 학은 보면서 소나무 없음을 한스러워 하고..... 어쩌구저쩌구.....” 시간이 흘러 정지상이 시험을 보러 갔는데 시제는 ‘하운다기봉’이었고 압운자는 ‘봉’이었다. 뭐, 당근 합격. 그것도 장원급제.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백운소설, 白雲小說』에 나오는 구라.

설화(3)
상공은 이현욱이란 어린사람이 지은 시를 보고는 크게 감탄. 어느날 이익지가 상공을 뵈러 왔다. 상공은 이현욱의 시를 들려주며 평론을 부탁. 이익지가 품평했다. “步復無徐無忙 東西南北遍春光이라..... 걸음걸이는 느긋하지 않고 바쁘지 않은데, 동서남북 어디나 두루 봄빛이라.... 흐음, 이거 시마가 도와준 것이 틀림없슈.” “의심의 근거는?” “우리네 시인들은 서(徐)나 이(李)같은 글자는 일찍이 사용한 사람이 없쥬.” 과연 얼마 뒤 이현욱은 일자무식이 되었다. 시마가 떠났기 때문. 이현욱(李顯部) 얘기는 허균의 시평서 『학산초담, 鶴山樵談』에 나옴.

이현욱은 누구인가
정보 없음. 개인정보 유출이라며 비공개.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시험부정이 비일비재. 나중엔 응시생끼리 의논해가며 답안을 작성하는 경우도 있었단다. (그림은 특정내용과 관계없음.)

(관련기사)

“숙명여고 쌍둥이 휴대전화에 답안 일부 저장”…혐의 부인

[앵커]
경찰이 쌍둥이 가운데 한 명의 휴대전화에서 시험의 답안 일부가 저장돼 있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경찰은 문제 유출이 의심되는 정황으로 보고 있지만, 피의자들은 혐의를 계속 부인하고 있습니다.
윤봄이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경찰이 단서를 잡은 건 영어시험입니다.
쌍둥이 동생의 휴대전화를 복구해 분석한 결과, 영어시험 문제의 답안 일부가 그대로 저장돼있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괄호 안에 단어를 채워 영어 문장을 완성하는 유형의 문제였는데, 이 단어가 휴대전화에 메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문장 전체가 아니라 답만 따로 저장된 점으로 볼 때, 시험 문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정황 중 하나라고 보고 있습니다.
경찰은 지난 주 아버지인 전 교무부장과 쌍둥이 자녀들에 대한 3차 조사에서 이같은 새로운 정황 증거를 제시하고, 집중 추궁했습니다.
이에 대해 자녀들은 "시험공부를 위해 검색용으로 저장해 둔 것 뿐" 이라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숙명여고 다른 교사들을 소환해 진술의 타당성을 검증했습니다.
경찰은 문제가 된 올 1학기 시험 뿐 아니라, 지난해 시험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두 쌍둥이는 지난 해인 1학년 1학기 각각 59등과 121등 이었다, 2학기에 상위권으로 급상승했고, 올 1학기에는 문·이과 1등을 차지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경찰은 또 최근 치른 2학기 중간고사 성적 내역도 제출받아 내용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를 통해 그 동안의 성적 변화 추이에 의심스러운 점은 없는지 전문가 의견을 들을 예정입니다.
경찰은 수능 전에 수사 결론을 내기 위해 막바지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쌍둥이 아버지인 전 교무부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윤봄이입니다. (2018-10-29)

옛날 중국인의 ‘컨닝 옷’과 현대 중국인의 ‘컨닝 허벅지’(오른쪽)

후손들, 각계각층에서 "열심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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