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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세월, 그 ‘한 번의 북질’[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314)] 이승호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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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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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채화

남채화는 단벌 남삼(藍衫)을 걸치고 성내(城內)와 시정(市井)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남삼은 헤지고 너덜너덜하여 거지옷이나 다름없었다. 여름에는 남삼 안에 솜을 넣어 입었으나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겨울에는 홑남삼을 입고 눈 위에서 잠을 자도 몸에서 김이 피어 올랐다. 한쪽발에는 장화를 신었지만, 다른 발은 맨발이었다.

남채화는 음악 애호가였다. 노래 부르기와 박판(拍板) 두드리기를 즐겼다. 그가 박을 두드리고 노래하며 거리를 활보하면 남녀노소가 웃고 떠들며 그 뒤를 따랐다. 누가 장난을 걸어도 내치는 법 없이 함께 장난치곤 했다. 해학과 풍자, 유머와 개그가 뛰어났다. 한마디 말에도 재기와 재치가 넘쳐 흘렀다. 사람들은 그가 입만 열면 포복절도했다.

남채화가 거리에 나타나면 종종 돈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그 돈을 긴 끈에 꿰어 질질 끌고 다녔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알아서 돈을 가져갔다. 혹시 돈이 남으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래도 엽전 한닢 남으면 술 한잔을 사먹었다.

또한 남채화는 동성애에 대해 관대했다. 억압받는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남채화는 피억압자 성소수자 소외자들의 신으로 그들에게 안위를 주는 중요한 신선의 역할을 지니고 있어 명실상부한 ‘천(賤)의 대표 신선’이 된 것이다.”(김도영의 논문, ‘젠더의 혼란을 야기한 남채화의 형상 연구’)

그날, 남채화는 주루에서 술 한잔 걸치고 있었다. 그때 문득 하늘에서 퉁소와 생황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더니 웬 선학(仙鶴) 한 마리가 술집 창문을 통해 날아와 남채화 옆에 앉았다. “왔구나! 왔구나!” 그는 술잔을 내려놓고 박수치며 크게 웃더니 선학 위로 올라탔다. 그를 태운 선학은 길게 한번 울더니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뒤로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노인들은 말하였다. “내가 소싯적에 젊은 남채화를 보았는데, 세월이 흘러 남채화를 또다시 보니 여전히 젊은시절의 남채화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그는 늙지 않았으며 약해진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또한 후세의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는 혹세무민을 경계했다. 눈멀고 귀먹으면 안된다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는 일깨우는 사람이었다.”

(2) 노회찬

노회찬은 단벌 신사였다. 낡은 구두 한 켤레를 애지중지 신고 다녔다. 그런 차림으로 노동자들을 만나고 집회 현장을 누볐다.

노회찬은 음악 애호가였다. 고교 재학 시절 개교기념일에 첼로 독주를 할 정도였다. 이화여고의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할 정도였다. <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의 대화>에서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고 말하고 있다. 고교시절 서정주의 시 ‘소연가’를 가사 삼아 작곡을 한 적도 있다. 평생 세상을 잠에서 깨어나라고 북질도 하였다.

노회찬의 낡은 구두(연합뉴스)와 구멍난 바지(엠비시)

노회찬이 정치를 하자 돈을 준 사람이 있었다. 노회찬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바람에 이후의 사실 관계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노회찬이 그 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적으로는 엽전 한닢 쓰지 않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막걸리 한잔 사먹지 않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합리적 믿음이니 시비걸지 마시라.....

또한 노회찬은 동성애에 대해 관대했다. “정의당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위원장인 노회찬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헌법 전문과 총강, 기본권, 경제 재정, 지방분권, 정당 선거, 사법부 등 5개 분야의 개헌안 내용을 발표했다. 동성애 등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 금지를 명시한 내용은 기본권 분야에 포함돼 있었다.” (펜앤드마이크 2018.01.29.)

노회찬 49재.... (한겨레)


그날, 노회찬은 하늘을 날았다. 하늘로 사라졌다.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땅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의 모습과 흔적을 보곤 했다. 저잣거리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소외받고 억압받는 자들의 공간에서 그는 무시로 나타나 생전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세월이 흘러 노인들은 말할 것이다. “내가 한때 젊은시절의 노회찬을 보았는데, 늘 젊어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그는 늙지 않았으며 노쇠한 적이 없었다. 또한 후세의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그는 혹세무민을 경계했다. 눈멀고 귀먹으면 안된다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는 일깨우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귀를 때리는 북질을 계속하였다.”

(부록)

남채화

藍采和. 중국 도교 팔선중 하나. 당나라 말기의 인간-신선. 중국의 소크라테스라 할만한 신선. 팔선도(八仙圖)에 흔히 긴 박판(拍板)을 손에 들고 있다. 상고시대에 황제(黃帝)의 음률을 담당하는 신하였으나 인간세계로 오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소녀와 닮은 미소년이었다”고 증언.

남채화와 동성애

“元代의 전진교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천시와 차별을 받은 배우 남채화를 神仙의 반열에 올려 숭배했다..... 남채화는 피억압자 성소수자 소외자들의 神으로 그들에게 安慰를 주는 중요한 신선의 역할을 지니고 있어 명실상부한 ‘賤의 대표 신선’이 된 것이다.”  (본문의 인용논문에서 또 부분인용)


이름 유래

‘남채화’는 원래 그가 노래를 부를 때, 후렴으로 사용하던 뜻없는 소리였다. 그 후렴은 ‘답답가 남채화, 踏踏歌 藍采和)였다고 한다. 그의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질

아래, ‘답답가 남채화’의 流年一擲梭(유년일척사, 흐르는 세월은 한 번의 북질)에서 가져옴.

답답가 남채화

世界能幾何(세계능기하) 세계가 그 얼마이던가?
紅顔一春樹(홍안일춘수) 붉은 얼굴 한 그루 봄나무
流年一擲梭(유년일척사) 흐르는 세월은 한 번의 북질
古人混混去不返(고인혼혼거불반) 옛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가고 돌아오지 않는데
今人紛紛來更多(금인분분래갱다) 지금사람들 분분히 오는 이 많더라.
朝騎鸞鳳到碧落(조기난봉도벽락) 아침에 난 새와 봉황을 타고 하늘에 오르고
暮見蒼田生白波(모견창전생백파) 저녁에 바다를 보니 흰 파도가 인다.
長景明暉在空際(장경명휘재공제) 햇볕은 하늘가에 오래도록 밝게 빛나는데
金銀宮闕高嵯峨(금은궁궐고차아) 금은궁궐은 높아 우뚝하구나.

노회찬과 첼로

고인은 평소 “첼로는 인간의 음성에 가장 가까운 소리”라며 첼로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곤 했다. 현악기 중 저음역을 맡고 있는 첼로는 따뜻하고 폭넓은 음색으로 사랑을 받는다. 첼로는 수십 개의 악기가 모여 조화로운 소리를 빚어내는 관현악을 떠받쳐주는 악기다. 진보운동가이면서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와 관용의 태도를 중시해 보수로부터도 사랑을 받았던 고인의 삶은 클래식의 앙상블을 완성시켜주는 첼로를 연상시킨다. ‘빨간색이되 우아한 빨간색이고 싶다’는 고인의 소망(정운영 작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중)도 우아한 모습의 첼로 연주자와 오버랩된다...... 방송 등 많은 곳에서 연주 요청이 있었지만 그의 실제 연주 모습이 방송을 탄 것은 2005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연주한 곡이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다.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를 토대로 한 모음곡 중 하나인 이 음악은 주인공 귄트가 인생 역정의 끝에서 사랑하는 여인 솔베이지의 품에 안겨 조용히 눈을 감는 장면을 그렸다. 고인의 안타까운 마지막 모습이 애수 넘치는 이 곡을 닮았다. (경향신문 김준기 논설위원, ‘첼로를 닮았던 노회찬’ 201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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