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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기획세미나] 80년 언론인 해직과 이명박근혜 언론인 해직은 닮은꼴, 양극화 낳은 신자유주의에 맞서야 80해직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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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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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다가 강제해직된 언론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80해직언론인협의회와 자유언론실천재단, 5‧18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당 민병두 의원실은 지난 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80 해직을 말한다’는 주제의 기획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선 80해직 언론인 관련 법안을 발의한 설훈,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나와 법안 내용을 설명했다. 설훈 의원은 별도의 특별법 형태로 ‘80년 해직언론인 배상 특별조치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당시 해직된 언론인에게 퇴직금의 60%를 배상하는 내용을 담았다. 민병두 의원은 기존에 제정돼 있는 ‘5‧18보상법’을 개정해 보상 대상에 해직 언론인과 그 유족을 포함시키는 내용이다.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회 시작 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송정민 “80해직 인정해야 광주항쟁 비로소 완성”

이날 세미나에서 사회를 맡은 송정민 전남대 명예교수는 ‘80년 언론인 대학살’을 규명하고 기억해야 하는 네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 광주항쟁을 일부 지역의 난동이라고 폄훼하고 왜곡하는 것을 끝장내기 위해서다. 광주항쟁을 보고 이를 사실대로 국민에게 전하려다 해직된 언론인들의 정당성이 인정될 때 광주항쟁은 비로소 잔인한 폄훼와 왜곡의 틀을 벗어난다.

둘째, 국가발전의 근간인 ‘민주적 자유언론’이란 역사적 소명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셋째, 언론 파괴는 헌법 파괴라는 점을 명백히 해 신군부의 불법을 응징해야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간다. 넷째, 언론 내부의 부역을 청산하기 위해서다. 80년 일부 언론은 회사 운영에 비판적인 ‘껄끄러운 언론인들’을 군부의 해직자 명단에 슬쩍 끼워 넣어 쫓아낸 비윤리적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6일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 사회를 맡은 송정민 전남대 명예교수가 '1980년 언론 투쟁과 한국 민주화 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송정민 교수는 1980년 당시 CBS 기자로 있다가 강제해직 당했다. 사진=이우림 기자

송 교수는 “80년 언론인 대학살을 규명하고 응분의 조치를 취할 때 광주항쟁은 정당성을 완전히 회복한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 역시 CBS 사회부 기자로 80년 강제해직 당했다.


김준범 “80해직은 언론사와 보안사의 합작품”

당시 동양방송(TBC) 기자에서 강제해직된 김준범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광주를 취재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해직돼 7년간 취업에 제한을 받았다. 고향 출신 국회의원실 보좌관으로 4년, 광고회사에 2년을 다니다가 복직해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80년 해직을 추적해갔다”고 증언했다.

복직한 김준범 공동대표는 언론인 해직사태를 추적하다가 당시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놀라운 얘길 들었다. 김준범 대표는 “그 분 말이 ‘80년 신군부가 아무리 강해도 언론사에 들어가 총칼을 들이대고 언론인을 강제해직시킬 순 없었다. 80년 언론인 해직은 언론사와 보안사의 합작품’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80년 해직은 ‘해직’이 아니라 ‘숙청’이라고 단언했다.

당시 언론은 신군부에 저항한 유일한 세력이었다. 80년 당시 동아일보 논설주간에서 강제해직된 박권상 전 KBS 사장은 신군부의 언론통제를 “나치 정권의 괴벨스가 했던 수법과 흡사하다”고도 했다.

지난 6일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 에서 김준범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가 ‘1980년 검열과 제작 거부 투쟁’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80년 3월 계엄사 보도검열단에 보안사 대공처 소속 이상재 준위가 오면서 신군부의 언론 간섭은 노골화했다. 이상재 준위는 8명의 언론대책반을 구성했는데, 여기에 조선일보 기자 출신 허문도씨가 들어와 활약했다. 허문도는 80년 초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김태홍 합동통신 기자를 중심으로 한 기자협회는 난상토론 끝에 5월20일부터 검열 거부를 결의했다. 신군부는 기자협회 간부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경향신문 고영재 기자 등 7명이 1차로 잡혀 남영동 분실로 연행됐다. 김태홍 회장과 노향기(한국일보) 부회장은 몸을 피했지만 8월과 6월 각각 남영동으로 연행됐다.

김준범 대표가 일했던 중앙일보와 TBC에선 신군부 기관원들에 의한 탁경명 중앙일보 기자 폭행사건도 있었다. 탁경명 기자는 사북탄광 6천여 광부들의 생존권 투쟁을 취재하다가 연행돼 폭행과 고문 끝에 전치 4주의 중상을 입었다. 중앙일보는 80년 5월7일 ‘동원탄좌 광부연행 취재하던 기자에 수사요원 뭇매’라는 제목의 3단 기사를 썼지만 검열에서 핵심이 다 빠졌다. 중앙일보는 검열로 삭제된 부분을 백지상태로 발행했다. 자기 신문사 기자가 국가권력에게 얻어맞았는데도 제대로 기사조차 쓸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윤덕한 “신군부, 검열거부 앞장선 경향에 보복”

당시 경향신문 외신부에 있다가 강제해직된 윤덕한 기자는 신군부의 검열로 급조된 백지광고를 넣어 발행된 80년 5월24일자 1면과 6월9일자 경향신문문화방송 기자 6명을 포함한 8명의 언론인 연행기사를 소개했다.

윤덕한 기자는 “80년 6월9일 오전 건장한 사내들이 경향신문 편집국 안으로 들어와 홍수원 박우정 기자를 남영동으로 연행해 갔다”고 했다. 80년 6월9일 (주)문화방송경향신문 기자 8명이 한꺼번에 연행됐다. 서동구 조사국장은 사무실에서, 이경일 외신부장과 표완수 기자는 이날 새벽 집에서 자다가 연행됐다. 편집부 박성득 기자는 이날 아침 편집부로 넘어온 기사 속에 자신의 이름이 연행자 명단에 끼어 있는 것을 보고 급히 피하려다가 신문사 현관에서 붙잡혔다. 같은 회사 소속 문화방송(MBC) 노성대 부국장과 오효진 기자도 연행됐다.

지난 6일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에서 윤덕한 전 경향신문 기자가 ‘치열했던 투쟁과 전두환 군부의 악랄한 보복’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윤덕한 기자는 선배들의 연행 뒤 3번이나 잡혀가 심문을 받으며 선배들이 친북세력이었다고 증언하라고 강요 받았다. 윤덕한 기자는 6월9일 편집국 연행 사건을 “5월27일 광주를 진압한 신군부는 항쟁기간 중 가장 격렬하게 제작거부 운동을 벌였던 경향신문을 찍어 편집국을 물리적으로 짓밟는 시범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윤 기자는 “계엄합동수사본부는 어떻게 제작거부에 앞장선 기자들을 족집게처럼 집어냈을까. 신문사 내부에서 제작거부 주동자를 찍어주고 밀고했다”고 했다. 80년 강제해직의 아픈 뒷얘기다.

기자 연행 직후 신군부는 1980년 6월25일 곡필언론의 대명사인 서울신문 주필이었던 이진희를 문화방송경향신문 사장으로 취임시켰다. 이진희는 전두환과 육사 11기 입학동기였다. 이진희는 3주 뒤 정구호 서울신문 편집부국장을 경향신문 편집국장으로 데려왔다. 이렇게 신군부에 저항하던 경향신문은 어용신문으로 뒤집혔다.


유숙열 “시대에 호응한 대가 혹독했지만 후회없어”

80년 당시 합동통신 3년차였던 유숙열 기자는 신군부가 뒤쫓던 김태홍 기자협회장과 같은 합동통신에 다녔다. 유숙열 기자는 수배된 선배 김태홍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가 드러나 남영동 분실로 연행됐다. 유 기자는 남영동에서 이근안 경감에 물고문을 당해야 했다. 체포돼 한 달을 보낸 뒤 세상에 나온 유 기자는 사표도 쓰지 못한 채 해고됐다.

지난 6일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에서 유숙열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가 ‘민주화 이후 80 해직 기자들의 투쟁’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유 기자는 발표를 하다 울먹이기도 했다. 사진=이우림 기자

유 기자는 준비된 원고를 울먹이며 읽어 내려갔다. 보다 못한 송정민 교수가 맘껏 울어도 좋다며 청중의 격려를 유도했다. 세미나 장을 채운 백발의 언론인들이 박수로 유 기자를 응원했다.

유 기자는 “80년 5월 광주는 나를 해직기자로 만들었지만 나는 그 시절 발견한 페미니즘으로 내 인생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며 사는 것이 기자의 길을 선택한 언론인으로서 우리가 살아야 할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그 길은 고되고 힘들긴 하지만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외롭지 않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끝냈다.


고승우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고승우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원고를 준비할 때 기무사가 2017년 3월 계엄문건을 작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걸 보면서 80년 보안사 때보다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진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고승우 공동대표는 “무더기 해고 뒤 신군부는 해직 기자들이 동질감을 지닌 집단세력으로 성장하는 게 두려워 분열공작을 펴 재취업에도 간여했다”고 했다.

지난 6일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에서 고승우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가 ’80 해직 실태와 명예회복 논의’이라는 주제로 발표 하고있다. 고 공동대표는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MBC 언론인 대량해고 사태는 80년 해직사태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이우림 기자

고승우 대표는 “80년 신군부는 소수의 언론인에게 고통을 강요해 다수의 언론을 겁박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80년 해직사태가 청산되지 않다보니 최근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MBC 언론인 대량해고가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를 다시 확인시켰다.


손석춘 “언론재단, 신입교육에 80검열거부 투쟁 넣어야”

손석춘 건국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언론의 문제점은 ‘정파주의’로 해석한다. 정파주의는 기자 사회 내부에서 극복이 필요하다. 저널리즘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 80년 해직을 다시 짚어봐야 한다. ‘진실과 공정’이란 저널리즘의 가치는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연결점을 밝혀내는 게 진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에 토론자로 참석한 손석춘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언론들이 ‘기레기’로 조롱 받지 않는 길은 반민주적 질서와 정면으로 맞서 언론을 지킨 기자정신을 복원시키는 것"이라 말했다. 사진=이우림 기자

보수‧진보 프레임에 기초한 정파 대결만 강조하면 저널리즘의 기본에 충실한 보도가 무엇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손석춘 교수는 “2010년대부터 한국 언론은 모두 ‘기레기’로 조롱 받는다. 1974년 10‧24선언과 1980년 검열거부 투쟁이 보여준 반민주적 질서와 정면으로 맞서 언론을 지킨 기자정신을 복원시키는 것 만이 기레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반민주적 질서는 무엇일까.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찌, 노동시간 최장, 비정규직 급증,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를 만들어낸 신자유주의가 그것들이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오늘날의 기자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손 교수는 그런 뜻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신입기자 교육에 꼭 10‧24선언과 80년 검열거부 투쟁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글은 2018년 09월 08일(토)자 미디어오늘 이정호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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