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6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에는 「이북 괴뢰 불법남침 / 25일 이른 새벽 38 전선(全線)에 걸쳐」라는 제목 아래 국방부 정훈국장인 대령 이선근의 담화문이 보도되었다.

[국방부 정훈국장 담] 25일 이른 새벽 5시부터 8시 사이에 38선 전역에 걸쳐 이북 괴뢰집단은 대거(大擧)하여 불법 남침하고 있다. 즉 옹진 전면(前面)으로부터 개성, 장단, 의정부, 동두천, 춘천 등 각지 전면의 괴뢰집단은 거의 동일한 시각에 행동을 개시하여 남침하여 왔고 동해안에는 괴뢰집단이 선정(船艇)을 이용하여 상륙을 기도하여 왔으므로 전 지역에 걸쳐 우리 국군부대는 이를 격퇴, 목하(目下) 전기(前記) 각 지역의 우리 국군부대는 이를 요격하여 긴급 적절한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중 동두천 방면 전투에서는 적측이 전차까지 출동시켜 내습하였으나 아군 대전차포에 격파당하고 말았다. 금차 이들의 무모한 내습은 제2차 총선거 이래 대내 대외로 가일층 융성 발전되는 우리 대한민국을 침해 파괴함으로써 괴뢰집단 자가(自家)의 퇴세(頹勢)를 만회하려는 의도 아래 소위 ‘조통(祖統)’을 통하여 평화통일이니 남북협상이니를 모략 방송하다가 하등의 반향도 없으므로 초조한 끝에 감행하게 된 공산도배의 상투수단임에 틀림없다. 이제 군으로서는 저들 반역 비도(匪徒)에 대하여 확고한 결의 아래 단호 응징의 태세를 취하여 각지에서 과감한 작전을 전개하고 있으니 전 국민은 우리 국군 장병을 신뢰하며 미동도 하지 말고 각자의 직장에서 만단(萬端)의 태세로 군의 행동과 작전에 적극 협력하기 바라는 바이다. 군에서는 명령이 없이 38선을 넘어 공세작전을 취할 수 없는 고충이 있으나 만전의 방어태세로 저들이 불법 남침할 때 이를 포착 섬멸할 수 있는 준비와 태세가 구비되었으니 전 국민은 이북 모략 방송 및 유언비어 등에 속지 말 것이며 안심하고 국부적 전황에 특히 동요하지 말라. 이러한 시기를 이용하여 추호라도 후방의 치안이나 민심을 교란하는 자가 있다면 이 또한 엄중히 단속할 것이니 각계각층에서 군의 의도에 적극 협력하기를 부탁한다[호외 재록].

이 기사는 6월 25일 새벽에 터진 한국전쟁에 관해 대한민국 정부가 첫 번째로 발표한 공식 견해를 그대로 전한 것이다. 군인인 국방부 정훈국장의 입을 통해서 나온 ‘전황 보고’라서 경직되고 주관적인 표현이 더러 보이지만, 어쨌든 이 발표는 대통령인 이승만이 앞으로 취하게 될 태도를 예고하고 있었다. “만전의 방어태세로 저들이 불법 남침할 때 이를 포착 섬멸할 수 있는 준비와 태세가 구비되어 있으니 전 국민은 이북 모략 방송 및 유언비어 등에 속지 말 것이며 안심하고 국부적 전황에 특히 동요하지 말라”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국방부의 허위 보도자료 베껴 쓴 조선일보

북한이 남한보다 엄청나게 우세한 병력과 무기를 앞세우고 쳐내려왔다면 초기의 전세가 남한에 불리할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고의적으로, 또는 국민의 ‘사기 진작’을 위해 거짓 보도자료를 남발했다. 다른 신문들은 물론이고 조선일보도 6월 27일자 1면 머리에 ‘국방부 보도과’가 26일 오전 10시에 발표한 ‘전황’을 대서특필했다. 제목은 「전과 혁혁·요격 태세 완비 / 국군 일부 해주 돌입 / 적 사살 1580명 / 전차 등 격파 58대」이다. 6월 28일자 조선일보 1면은 더욱 요란했다. ‘아군의 승전보’를 알리는 큼지막한 기사가 4건이나 실린 것이다. 「제공권 완전 장악 / 국군, 의정부를 탈환 / 장(壯)! 전면적으로 일대 공세」, 「적기 2대를 격추 / 27일 김포 공중전에서」, 「적 선박 1척 격파 / 김포 해상에서 소형(蘇型) 2천톤급」, 「적, 김포 상륙을 기도 / 아국군, 5척을 격파」’. 이런 기사들을 사실이라고 믿은 국민들은 ‘국군이 곧 이북 괴뢰집단을 격퇴하고 평양으로 진격’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간추린 조선일보 90년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 전쟁이 터진 25일 조선일보 사원들은 사장실에 모였다. 전방에 나갔다 온 기자들은 “전황이 아주 불리하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보고했다. 국방부 작전과장 예관수도 조선일보에 전화를 걸어 “도저히 희망이 없으니 피란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알려왔다. (…) 군 당국은 26일 국군이 해주로 돌입했다고 발표했고 조선일보는 27일자에 보도했으나 발표와는 달리 26일 오후 8시에는 의정부가 함락됐고 28일 새벽에는 인민군 탱크가 서울에 출현했다. 정부는 27일에 이미 대전으로 옮겨간 뒤였다. 조선일보는 27일 저녁 서울 본사의 신문 제작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신문 제작에 종사하던 조선일보 사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피란길에 나섰다(153~154쪽).

조선일보 사장을 비롯한 사원들이 ‘전황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자기 회사 기자들의 취재로 알고 있었고 국방부 작전과장이 “피란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를 했는데도, 이틀 동안 국방부 보도과의 ‘허위 보도자료’를 다른 신문들과 함께 베껴 쓴 것은 한국언론사에 큰 오점으로 찍힐 것이다. 그런 보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피란할 때와 방법을 놓치고 희생되었을까?

피란길을 막은 이승만의 ‘사기 행각’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인 이승만의 ‘사기 행각’은 나중에 국민들을 분노에 떨게 만들었다. 역사학자 서중석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2013년 8월 14일자에 실린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 한국전쟁, 첫 번째 마당」에서 6·25 직후 이승만의 행태를 아래와 같이 전했다.

(…) 6월 25일 일요일 당일엔 국무회의 같지도 않은 국무회의, ‘간담회’라고도 불리는데 그걸 열었을 뿐이다. 거기서 서로 잡담 비슷한 걸로 돼 있지, 대책다운 대책을 세운 게 없다. 대통령은 6대 독자라 그런지 자기 목숨을 굉장히 중시했던 분 같다. 그날 (6월 25일) 밤이 되니까 불안해졌는지, 피신하겠다고 했다. 존 무초 초대 주한미국대사가 오니까 무초 대사에게 “피신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에 있는지 아느냐, 내가 없으면 이 나라 큰일 난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무초 대사가 오히려 말렸다. “당신이 피신하면 군은 붕괴한다. 모든 방어 능력을 상실한다. 당신이 지켜야 한다. 우리가 당신을 보호해주겠다”고. 그래서 그날은 이 노인네가 안 움직였다. (…) 신성모 국방장관과 채병덕 총참모장은 “우리가 이기고 있다”는 헛소리를 했다. 그러자 6월 26일 밤에 열린 심야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은 수도 사수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같은 시간에 열린 비상국무회의에서는 수원 천도 결정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6월 27일 새벽 2~3시경 서울역에 비상 열차를 세워놓고 거기 타버렸다. 서울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장관들에게도, 군수뇌부한테도, 국회에도 일절 안 하고 혼자 가버렸다. 비밀이 새나갈까 걱정돼서 그랬는진 몰라도, 다른 누구한테도 얘기 안 하고 비서진한테만 얘기해서 그 열차를 끌고 대구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엔 다시 대전으로 올라갔다.
(…) 대전에서 대통령이 방송국 책임자를 불러 자기 말을 전국 방송으로 내보내게 했다. 거기서 녹음한 거다.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 안심하고 있으라는 그 유명한 거짓말 방송을 6월 27일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내보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미아리 근처에서 쿵쾅거리고 있었다. 인민군이 거기까지 내려온 거다. 오죽하면 “이 방송 이대로 안 된다”고 해서 27일 자정쯤 방송국에서 꺼버렸겠나. 전쟁이 나고 나서 처음으로 나간 대통령의 방송이 그랬다. 대통령이 그렇게 무책임할 수가 없었다.
그 직후인 6월 28일 새벽 2시 30분에 한강 다리가 폭파됐다. 윗선에서 지시한 일이었다. 이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피란을 못 갔다. (그런데) 대통령은 대전에 가서 비상국무회의를 주재하다가 7월 1일에 또 피신했다. 대전이 함락되는 건 7월 20일이다. 그러니 적어도 7월 10일 이전에는 그렇게까지 위태롭다고 볼 수가 없었다. 피신할 준비를 하더라도, 7월 초까지는 대통령이 전체 상황을 파악하면서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7월 1일 새벽 3시에 이번엔 대구 쪽으로 가면 게릴라 같은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호남선을 타고 목포로 갔다. 그러고 나서 목포에서 또 배로 부산까지 갔다. 그런 식으로, 대통령은 전쟁 났을 때 피신만 하고 다녔다.

6월 27일 밤 이승만이 대전방송국에 지시해서 서울중앙방송국을 통해 내보내게 한 담화문은 내용 자체가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이자 협잡이었다. 그 뒤 이승만 정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6월 28일 새벽 2시30분쯤 한강다리를 폭파했다.

방응모, ‘내무서원들’에게 납치되다

<간추린 조선일보 90년사>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 사장 방응모가 어떻게 지내다가 인민군 치하의 내무서원들에게 납치되었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저명인사들이 피란길에 올랐는데도 서울 신당동 자택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 방응모는 피란을 권유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문사를 운영해 문화사업을 했고, 어려운 학생들을 학교 보내는 육영사업을 했는데 공산당이라고 나를 어찌 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집을 떠나지 않았다. 방응모는 1950년 7월 6일 신당동 자택에서 세 명의 성동내무서원에게 피랍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손자며느리 박현숙의 목격담에 따르면 이날 갑자기 누군가 신당동 집 대문을 흔들었다. 나가 보니 동네 사람을 앞세워서 사람들이 성큼 들어서며 방응모 사장을 찾았다. 며느리가 머뭇거리는데 누워 있던 방 사장이 벌떡 일어났다. “당신이 조선일보 사장이요?”라고 묻는 말에 “그렇소, 나요”라고 대답했고 그 자리에서 끌려갔다. 방응모는 성동내무서(경찰서)로 연행됐다가 다시 이북으로 끌려간 뒤 영영 소식이 끊어졌다. 연행될 때 흰 양복 차림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고 한다. 연행된 날 손자며느리 박현숙은 시할머니와 함께 쌀에 감자를 넣어 쓴 죽을 가지고 성동내무서로 찾아갔다. 방응모는 내무서 2층의 한 방에 앉아 있었는데 “눈에서 독기 같은 것을 뿜고 계셨다”고 박현숙은 회고했다. 방응모의 부인이 옆에 바싹 다가가서 “그저 잘못했다고 하라”고 속삭이자 내무서원이 “여성동무는 저리 가시오!” 하고 꽥 소리를 질렀다. 방응모는 담배가 없다고 했다. 그 방에는 담배가 쌓여 있었지만 방응모는 그들에게 담배 한 개비도 달라고 하질 않았고, 그들도 권하지 않았다. 그 이튿날, 담배를 구해 가지고 다시 성동내무서로 찾아갔더니 이미 방응모는 그곳에 없었다 (154~155쪽).

<계초 방응모>(이동욱 지음, 방일영 문화재단 발행, 1996)에는 그의 생사에 관한 증언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계초가 납북될 당시 함께 끌려갔던 광업진흥공사의 계광순은 평양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나올 수가 있었다. 그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계초는 평양까지 구사일생으로 오긴 했으나 이미 기진맥진해 기동을 못할 정도여서 생사를 논하기조차 어려웠다고 전한다. 뒷날 유엔군의 북진이 있자 방일영은 조부를 찾아 평양으로 올라가 헤매었지만, 중공군이 개입해 다시 내려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현재까지 계초를 가장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계광순이었고, 그후 누구도 계초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470쪽).

116일 동안 신문 못 낸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한국전쟁이 터진 6월 25일 이후 28일자를 마지막으로 낸 뒤 116일 동안 신문을 발행할 수 없었다. 사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피란을 떠났기 때문이다. 일부 사원들은 7월 3일부터 한 달 가까이 대전과 대구에서 국방부 정훈국의 도움을 받아 국군의 ‘활약상’을 알리는 전시호외(戰時號外)를 찍어냈지만 그것을 정상적 신문이라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단행으로 전세가 결정적으로 역전되고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자 신문인들도 도강증(渡江證)이라는 것을 받아 서울로 돌아와 신문을 속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신속히 속간호를 내지 못했다. 워낙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약탈당했던 조선일보 인쇄시설의 일부는 미아리 고개에서 발견됐다. 인민군들이 인쇄시설을 해체해 옮기다가 너무 무거워 도중에 여기저기 버리고 간 것이다. 사원들은 인쇄시설을 찾아오고 미비한 것을 보충하면서 속간을 시도했지만 뜻밖의 어려움이 또 닥쳤다. 정부가 서울에서 발간되는 일간신문을 4개로 정비하기로 방침을 세우면서 “조선일보는 사장이 북한에 납치돼 행방불명이므로, 신문 발행에 대한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다”며 조선일보의 발행을 불허한다고 통고한 것이다.
존폐의 기로에 처한 조선일보는 10월 2일 긴급 중역회의를 열고 신문을 속간하기 위해 발행인과 편집인을 분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재산권에 속하는 발행인의 명의는 계속 방응모로 하되 편집인의 명의는 당시 상무 최용진으로 바꾸기로 결정, 이 내용을 갖고 정부와 협상해 위기를 넘겼다. 이에 따라 1950년 10월 23일자로 타블로이드판형 2면의 조선일보가 마침내 속간됐다. 이로부터 1·4후퇴로 발행이 다시 중단되기까지 발행한 신문이 ‘제1차 전시판(戰時版)’이다(<간추린 조선일보 90년사>, 156~157쪽).

국군과 유엔군의 ‘평양 수복’에 흥분한 조선일보

1950년 6월 28일자 이래 처음으로 나온 조선일보 10월 23일자 1면 머리 기사 제목은 「풍전등화의 괴뢰 잔명(殘命) / 순천·신포를 탈환 / 평양 방위 패잔병 2만 소탕」이었다.

[대한민국육해공군총사령부 10월 21일 10시 발표]
1) 동해안을 북진 중에 있는 국군부대는 10월 20일 신포를 탈환하였다.
2) 아(我) 제9861부대는 순천에 도달하여 계속 북진 중에 있다.
3)평양시를 방어하려는 괴뢰군 2만여명에 대한 야간 소탕전을 전개하여 단시간 내에 시내 중심지를 소탕 완료한 제6915부대는 다음과 같은 전과를 거두었다. 포로 2백명, 소총 8천 정, 총포탄 4 화차(貨車), 피복 1 화차.

이 기사와 같은 면에 실린 사설(「평양 수복과 자유의 승리」)는 국군과 유엔군이 거둔 ‘대승’을 찬양했다.

우리 국군과 유엔군의 노도와 같은 진격으로 괴뢰집단의 본거지이던 평양은 마침내 19일로써 수복되었으니 이로써 저들의 ‘정권’적 존재가 궤멸을 의미하는 점에서 작전상 의의가 중대할 뿐더러 국토의 통일과 민족의 일체(一體)를 위하여 그 정치적 사회 경제적 의의가 또한 큼은 말할 바 아닌 것이다. 생각건대 평양은 본래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금수강산이었거니와 우리 단군 성조(聖祖) 입도(立都)의 전설을 가진 고도(古都)요 대고구려의 수도였고 (…) 근래에 이르러서는 천연자원의 입지적 조건 하에 우리나라 최대 유일의 공업도시로 발전했던 것이다. 철천지한의 38 철벽으로 인하여 소군 점령 이래 5개년 간 공산당 1당 전제의 암흑 사회를 강제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는 그 동안 막히고 막히었던 이북의 동포와 강산의 정황이 과연 어떠했으랴 하는 것은 괴뢰폭력집단의 남침 3개월 간 학살, 방화, 약탈의 무자비, 무궤도한 행장으로 미루어 보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겸하여 대전쟁을 치르고 나지 않았는가. 아! 모란봉아 잘 있었더냐! 평양 수복의 감격은 우리로 하여금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이 있다.
지금 우리는 서울 이남, 경기, 중앙선을 중심으로 대구까지 성시(城市)와 부락의 초토화를 보고 있다. 주거와 가장(家裝) 의류를 잃고 식량의 곤핍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국군과 유엔군의 만난을 배제한 북진으로 저 괴뢰집단이 패산(敗散)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외쳤던가. 비록 무일체(無 一切)로 초토 위에 섰을지언정 오! 이제는 살았다. 아! 살아 계셨습니까라  눈물겨운 인사를 주고받지 않았던가. 그는 3개월간의 철두철미 보복적이고 또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한 불안 공포 암흑 가운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하한 물질의 희생이라도 오히려 아깝지 않았다는 결의와 희망의 새싹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 할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세계에 향하여 민족과 국가의 광복을 위하여 외쳐온 바 자유가 곧 인간의 생명이요 민족 영생의 길임을 다시금 깊이 깨닫고 최고의 생활신조로 한다는 것을 말함이었다.  (…)
이제 우리는 평양을 위시하여 함흥, 원산 등지의 수복에 이어 북한 전역의 작전이 조속히 진행되고 따라서 모든 민주 건설이 또한 급속히 발전되어야 할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군과 정부 당국의 고심도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나 이는 결코 북한에 한한 문제에 그칠 것이 아니고, 통일된 국토의 전역, 일체가 된 민족의 전 운명을 걸고 모든 각도에서 건설 공작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며, 핵심적 지도정신은 세계 자유국가의 역사적 유산인 국민의 자유 그것의 계발에 있음을 다시금 강조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본보가 속간에 즈음하여 평양 수복의 쾌보도 전하게 됨은 더욱 뜻있다고 할 것이다.

이 사설은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점령한 데 감격한 나머지 곧 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자유민주국가 건설’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두 달 열이틀 만에 중공군의 거센 공세에 밀려 서울을 버리고 후퇴하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웅’으로 평양 찾아간 이승만

10월 28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를 장식한 것은 「태극기 국경에 휘날리다」라는 컷이었다. 「국군 압록강에 도달 / 초산·하갈리 완전 탈환」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대한민국육해공군총사령부 10월 27일 상오 9시 특별발표]
1)10월 1일 동해안으로부터 마(魔)의 38선을 넘은 아 국군 정예부대는 패주하는 괴뢰적군에 대하여 일순의 여유도 주지 않고 맹렬한 섬멸전을 전개하여 도처에서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북진을 계속하던 바 아 제8057부대는 10월 26일 17시50분경 한만국경 평북 초산을 완전 탈환하고 압록강에 도달하였다. 이는 38선을 넘어 진격한 지 26일째이며 괴뢰군이 불법 남침한 이래 126일 만이다.
2) 함흥으로부터 장진으로 진격 중에 있는 아 국군부대는 10월 25일 하갈리를 탈환하였다.

대통령 이승만은 10월 29일 오전 8시35분 미군 특별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날아갔다. 그는 평양시청 앞에 모인 군중 10만여 명의 환영을 받으면서 “민주 쟁취를 맹서하자”라는 요지의 ‘유시(諭示)’를 했다. 조선일보는 10월 31일자 신문에 「이 대통령 평양 방문 / 감개 더욱 무량히 / 39년 동안 그리던 곳에」라는 제목으로 ‘승전의 영웅’이 되어 평양을 찾아간 이승만의 연설을 대서특필했다.

(…) 여러분, 우리는 유엔의 지원을 얻어 다시 통일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나라일지라도 우리를 다시 분단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공산당은 한국 내에서 축출되었으며 앞으로 중공이 소련이 나온다 할지라도 더는 하등 겁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와 정의를 위하여 싸울 뿐이요 우리가 합하면 감히 덤벼들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나와 같이 맹서합시다. 자유와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울 것을! 우리 대한민국은 앞으로 국토를 튼튼히 방위하기 위하여 강력한 군대를 보유할 것이며 유엔은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계는 우리 대한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히 잘 일을 해 나갈 것인가 많은 기대를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 멀지 않아 도지사 선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의식주인데 우리 다 같이 모자라는 것은 나누어 먹고 서로서로 살아나갑시다. 정부는 하루속히 교통이 통하는대로 쌀과 광목을 남에서 가져와 여러분에게 나눌 작정인데 모자랄 경우에는 외국에서 쌀과 광목 같은 것이라도 우선 사다가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정부는 현재 만반 준비를 가지고 여러분과 같이 한 살림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유엔을 비롯한 국제적인 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수도 서울과 시민들을 버리고 재빨리 남쪽으로 피신해서 ‘거짓 방송’을 통해 많은 국민이 피란에 나서지 못하게 하고 한강 다리를 폭파해서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정부의 최고책임자인 이승만은 사라지고 금세라도 남북통일을 이룰 듯이 기세가 등등한 ‘개선장군’으로서의 모습만이 그 기사에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승만은 통일이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면서 도지사 선거를 치르겠다고 평양시민들에게 ‘공약’했다. 이승만이 그렇게 허장성세를 부리기 3주 전인 10월 8일 중국은 참전을 결정하고, 19일 4개 군, 12개 사단의 병력이 압록강을 건너게 했다. 미군과 국군은 10월 25일에 처음으로 중국군을 포로로 잡았다.

‘1·4후퇴’ 앞두고 적을 경시한 조선일보

중국은 11월 4일 ‘각 민족당파’의 모임에서 참전을 공식으로 발표했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한 동안 주춤했던 유엔군은 11월 24일 다시 압록강을 향해 반격을 시작했다. 그러자 11월 25~26일 중국군은 14개 사단이라는 막대한 병력으로 서부전선의 유엔군 방어선을 돌파했다. 유엔군의 반격은 나흘 만에 후퇴로 바뀌었다. 12월 들어 평양이 중국군과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유엔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전선(全線)에서 철수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중국군의 원조에 힘입은 인민군은 12월 26일 38선을 넘어 남으로 치고 내려왔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이승만 정부의 과장되고 거짓된 ‘승전보’ 때문에 피란을 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중국군과 인민군이 서울로 치고 들어올 것이 확실해지자 심리적 공황에 빠졌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서울을 벗어나려는 피란행렬이 장사진을 이루던 1951년 1월 1일자 조선일보는 1면 머리에 「오직 전진이 있을 뿐」이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올렸다.

우리는 1951년의 새해를 맞이하면서 전란은 하루바삐 극복되어야 할 것이고 적은 멀지 않아 격퇴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자 한다. 무력으로 든 평화적 방법으로든 한국 전선은 급속히 해결케 되고 한국으로 하여금 우리 민족의 자유와 통일을 달성케 될 것인즉 연내로 멀지 않은 날에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문제가 극동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과 병행하여 유럽의 전선이 또한 발화 직전의 험악한 공기를 보이고 있다. 이제 다시 전화(戰禍)를 전 지구상에 확대하는 책임을 가질 자 누구냐. 양분된 세계의 갈 길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침략의 무력과 보복폭력의 몰도의(沒道義)가 제아무리 밀교적(密敎的) 독재의 조직을 가졌다 하더라도 앞으로 더 침략행동을 계속 확장시킬 하등의 근거나 용기는 오늘 이 이상 더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자유와 정의는 전 인류적 기표(旗標)이고 국제사회는 우애와 신의로써 협조할 것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침략 확장이 그 속성이 아닐 수 없는 독재와 암흑의 자유 없는 철막(鐵幕)주의와 지배욕이 어찌 용납될 수 있을 것이냐. (…)
(…) 지금 당면한 관심은 오늘의 전국(戰局)의 동향과 그 종결 여하에 있는 것이다. 오늘의 전선을 대전의 규모로 동서에서 더 확대시킬 책임과 능력을 중공이나 국련(國聯)이 감당키는 너무도 큰 것임을 누구보다도 그들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즉 유엔이 한국을 포기치 않을 것이 철칙이요 현재의 방위선 확보가 한국전선뿐 아니라 전 극동전선의 보강에 중대한 의의가 있을 것인 이상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오늘 방위선에서 적의 공격을 유유히 막아내며 결정적 타격을 주는 동안에 적은 자신이 취할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 자신이 가진 군사적 정치적 약점을 폭로할 날이 미구(未久)에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전화(戰禍)에 의한 슬픔은 비록 현재 이상의 더 큰 것이 있고 난(難)사업이 더 많을 것이나 그러나 그런 만큼 금년 새해는 우리에게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역사적 전진 새 출발을 약속하는 그 해가 될 것을 믿고자 하는 바이다.

새해 첫 사설은 독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쪽으로 논조를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중국군과 인민군이 며칠 안에 서울을 점령할 것이 명확해진 시점에 이렇게 한가하게 ‘자유와 정의의 승리’를 노래한 조선일보의 경영진과 사원들은 피란 짐을 싸고 있지 않았다는 말인가?

1월 1일자 조선일보 2면은 일제강점기에 ‘대동아전쟁’을 찬양하던 때를 연상시키는 기사들로 채워져 있다. 「성전(聖戰) 완수의 신춘은 밝았다 / 통일 자유 평화의 신묘(辛卯) / 전진고(前進鼓) 우렁차게 멸공전선에」, 「전(全) 전선(前線) 의연 유지 / 방어선 부근에 적 집결 중」, 「새해의 영광은 자유국가에 빛나리」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바로 그렇다. 1월 2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가소(可笑) 적 공격 개시? 1일 서부전선서」)은 아예 냉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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