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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의 주인공은 먹물·기레기가 아니다[서평]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 ‘촛불민중혁명사’ 현직기자의 광장기록, 먹물과 기레기 향한 고발
  • 관리자
  • 승인 2018.08.0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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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3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린 것은 촛불의 힘이었다. 그럼 촛불의 시작은 언제였고, 누가 주도한 것인가.

그동안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퇴진행동)과 같은 촛불시위를 주도한 단체 등은 촛불의 시작을 JTBC의 태블릿PC 보도 이후 집회라고 지목했다. 그러나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는 이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희생자가 없는 명예혁명이라는 평가도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진정한 촛불의 시작은 민주주의의 파괴와 이에 따른 백남기, 이남종 등 여럿의 희생을 딛고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원 기자는 지난 17일 출간한 ‘촛불민중혁명사’(도서출판 말)에서 이 같은 관점을 제시했다. 원 기자는 2015년 11월14일 오후 경향신문 노동조합원인 필자는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비를 맞으며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300미터 떨어진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이후 지난해 5월24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 해단식에서 퇴진행동이 2016년 10월29일 집회를 제1차 촛불로 규정했다.

이를 두고 원 기자는 ‘그렇다면 2015년 11월14일부터 여러차례 들었던 촛불은 무엇인가, 한겨울 서울대 병원 앞에서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빈 촛불은 무엇이었느냐’는 의문이 들었다고 썼다. 원 기자는 같은달 중순 진보적 언론인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촛불혁명이 아무런 희생자가 없는 명예혁명이요, 성숙한 시민혁명이라고 하자 자신이 한 반론도 소개했다. 그는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숨지고, 분신한 사람도 여럿이다”면서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숨진 것은 이한열이 최루탄 맞고 숨진 것보다 훨씬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고 썼다. 그는 “먹물 기자들은 노동자·농민 등 못 배운 사람을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그해 9월9일 저녁 광화문 광장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돌마고(돌아라! 마봉춘-MBC, 고봉순-KBS의 준말) 불금 파티 자리에서 “팽목항에서 나를 두 번 죽인 건 여러분들의 사장이 아니고 현장에 있던 바로 여러분들이었다”고 일갈했다. 원 기자는 “많이 배우지 못한 노동자·농민·빈민들에게 큰절까지 했던 그는 왜 고학력 방송사 직원들을 ‘기레기’라고 힐난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 사진=원희복 페이스북

원 기자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선기자로 촛불 현장에 그것도 매우 초기부터 현장에 있던 것은 평생을 통해 가장 운 좋은 기회였다”며 “틈틈이 촛불혁명의 주동자를 만나고 그들의 선언문, 주장과 증언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작업은 ‘기레기’가 되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다”고 고백했다.
원 기자는 “촛불 이후 나온 책과 자료집은 대부분 2016년 10월24일 JTBC의 태블릿PC 보도로 인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촛불의 시작으로 기술하고 있다”며 “심지어 촛불을 주도한 퇴진행동이 만든 백서의 시대 구분조차 그럴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원 기자는 ‘촛불민중혁명사’를 박근혜 정권 시작도 전에 불거진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부터 기술했다. 당시에도 대다수 언론은 국정원 댓글 문제를 ‘억지’라고 평가한 점을 꼬집었다. 진보 언론 내부에서 조차 ‘국정원 댓글 몇 개가 대선결과를 좌우했겠냐’는 청와대 홍보수석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후 진행된 박근혜 정권의 역사왜곡, 민주화운동조직 파괴, 전교조 와해, 노동계 탄압 등이 이어졌다. 원 기자의 책은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이들이 저항하는 과정을 시기별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원 기자는 백남기 농민의 희생 전후를 실질적인 촛불혁명의 발화점으로 해석했다.

원 기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실제적인 요인이 촛불혁명 현장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친일독재미화 역사교과서와 종북몰이를 통한 정당해산과 같은 극도의 민주주의 퇴행이었다. 쉬운해고와 비정규직에 내몰리던 노동자와 신자유주의적 농정에 신음하던 농민, 무분별한 도시개발에 저항한 철거민이 있었다. 자식이 죽은 진실을 알고싶어 했던 세월호 가족의 피끓는 열망이 있었다. 그들의 뜨거운 열망과 집요한 투쟁이 바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주인공”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원 기자는 박근혜정권 초 국정원 대선개입 ‘위기’ 국면에서 등장한 김기춘의 암약에 주목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광범위하게 공포를 전염시켰다. 원 기자는 김기춘의 문제해결방식은 언론과 관제데모를 통해 분위기를 잡고, 제거 대상을 분열시킨다고 분석했다. 김기춘은 이후 내부 문제를 제기해 자체 혐오를 키우는 방식으로 대상을 무력화시킨 다음, 은밀히 근본을 말살한다. 이를 관통하는 도구는 ‘증오의 정치’다, 나치가 사용하던 방식이다. 원 기자는 “공포와 혐오를 유발시키는 유용한 수단은 ‘종북몰이’였다”며 “이 방법은 통합진보당 해산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전교조 와해에도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원 기자는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등 공신은 언론이었다”며 “언론은 비판과 진실을 찾기는커녕 종북몰이 광풍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공중파와 종편 등 방송매체는 종북몰이와 전쟁공포를 자극하는 전위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평가했다.

* 이글은 2018년 08월 04일(토)자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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