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큰 사건이 터졌다. 우파에서는 ‘대구 폭동’, 좌파와 그 옹호세력에서는 ‘10월 인민항쟁’ 또는 ‘10월 항쟁’이라고 부르는 대규모 시위와 유혈사태가 바로 그것이었다.

미군정의 콜레라 방치로 대구시민들 분노 폭발

‘10·1 사건’은 대구·경북 지역에 콜레라 환자 2,000여 명이 발생했는데도 미군정이 치료를 위한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전염을 막는다면서 대구를 봉쇄한 데서 비롯되었다. 식량은 물론이고 생활필수품 공급까지 끊어지자 대구 사람들은 생존을 위협받는 지옥 같은 상황에 빠져들었다. 친일파 출신 경찰관들이 농민들의 쌀을 강탈하다시피 ‘공출’해 가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10월 1일 저녁 대구시청 앞에서 1,000여 명의 부녀자와 어린이들이 “쌀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오후 2시 30분께 대구역 앞에서 동맹파업에 들어간 노동자 500여 명이 경찰과 충돌하자 시위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경찰이 총을 쏘아 두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격분한 시위대는 대구경찰서에 들어가서 무기를 탈취한 뒤 시내 대부분의 파출소를 점령했다. 이튿날 그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이 시내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굶주린 시민들과 학생들이 합세했다. 1만여 명의 군중에 포위당한 대구경찰서장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선언하고 유치장 열쇠를 군중 대표에게 주어 정치범들을 석방시켰다.

조선공산당 지도부의 통제를 받던 노동자들은 질서 있게 경찰권을 인수하려 했으나 흥분한 군중이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하자 경찰관들이 총으로 17명을 사살했다. 격분한 군중은 ‘폭도’로 변해서 부잣집이나 친일파의 집을 털어 생필품과 식량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미군정은 10월 2일 대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을 동원해서 시위를 진압했다. 그러나 시위는 대구 인근의 경산·성주·영천군 등지로 확산되더니 1946년 11월 상순까지 전국 90여개 군에서 ‘농민봉기’처럼 계속되었다.

‘10·1 사건’으로 좌파 세력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 구성원들에 대한 대대적 검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지하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공개적 정당활동이 어려워진 좌파 세력은 11월 23일 서울에서 남조선노동당(약칭 남로당)을 결성했다.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이 합당한 새 정당의 위원장은 법조인 허헌이 맡았다. 초기에 합법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남로당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 노선에 반발하면서 테러나 무장투쟁, 게릴라전 등을 주도했다.

조선일보의 첫 보도-‘대구 일대 불상사’

조선일보는 10월 1일 대구에서 시작된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10월 4일자 2면에 처음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그 기사는 기자가 현지에서 직접 취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미군정청의 발표를 그대로 전달한 것이었다.

대구에 일대 불상사 / 1일 계엄령 발표 / 1만여명의 군중 무장경관과 충돌

1일 경북 대구에서 일어난 일대 불상사에 대하여 3일 군정청에서는 경무부장 조병옥 씨로부터 신문기자단과 회견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하였다.
지난 30일 대구의 어떤 학교 학생운동회가 끝나자 일부 학생의 시위 행렬이 있었다고 하며 그 익일(翌日)인 1일 대구시내 40여개 공장에서 파업한 노동자와 중학 전문학교 생도와 선생의 1만여명이 시위행렬을 하는 끝에 대구정거장을 습격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무장경관과 드디어 충돌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충돌이 계속 중 2일 오전 10시 반 노동자들은 대구 경찰청을 포위 습격한 후 일시 차지하였고 다른 일부는 그 근처와 경찰서와 지소를 또한 차    지하고 무기를 강탈하였다.
이 통보를 접한 경북 미군정관은 미국 군대를 파견하고 즉시 대구시내에 계엄령을 내리고 노동자에게 점거된 경찰청을 마찰 없이 탈회(奪回)하고 정상상태로 만들었다. 그러나 2일 오후 11시 반까지는 근방 경찰서와 지소는 탈환치 못하였다는데 이 충돌로 경찰 측에서는 사망자 20명, 중상자 50명, 행방불명 30명의 희생경관을 내었으며 노동자 학생 측의 사상자 수는 방금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충남도 경찰부에서는 응원부대 7백여명을 급파하기로 되어 3일 오전 중에는 도착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군정청 당국에서는 경무부 보안과장 한종근 씨와 미군장교 1명을 현지로 파견하였는데 총사령부를 설치한 다음 당면문제를 수습할 계획이다.

이 기사는 10월 1일 대구에서 왜 대대적 집회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는지, 원인과 동기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9월 30일 ‘대구의 어떤 학교 학생운동회가 끝나자 일부 학생’이 왜 ‘시위 행렬’에 나섰는지, 10월 1일 “대구시내 40여개 공장에서 파업한 노동자와 중학, 전문학교 생도와 선생 1만여 명”이 왜 시위를 하던 끝에 대구정거장을 습격했는지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미군정청의 발표를 그대로 베껴 썼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 측의 사망자가 20명, 중상자가 50명, 행방불명이 50명이라면 시위자들의 피해는 그보다 훨씬 더 컸을 텐데 군정청 ‘보도자료’ 는 “노동자, 학생 측의 사상자 수는 방금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신빙성이 박약한 주장을 하고 있다.

미군정청 발표를 계속 인용 보도

조선일보는 10월 4일자 2면에 ‘대구사건’에 관한 미군정청의 발표를 그대로 옮겼다.

대구시 질서 회복 / 달성서 탈회(奪回) / 검거자 2백명, 속속 피해 판명

공전(空前)의 불상사인 대구사건에 대하여 조병옥 경무부장은 그후 경과를 4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현재까지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경찰 측 피해자는 사망자 53명이 판명되었고 행방불명된 자와 중경상을 당한 경관은 다수로 아직 통계를 알 수 없다. 그리고 대구 일원에는 아직도 계엄령을 해제하지 않고 있으나 대구 달성경찰서는 탈회되었으므로 대구시내의 질서는 복구되었다. 영천·왜관·성주·군위 경찰서는 아직 탈회치 못하였으므로 출동시킨 응원경찰대와 본부에서 파견 설치된 총사령부와 협력하고 있는데 이에 출동된 경찰관은 3388명이고 경북 경까지를 포함하면 약 4천명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경남 통영경찰서는 3일 오후 2시 약 5천여 명이 습격 시위하였으므로 마산에서 군대가 출동하여 진압시키었다. 이로 말미암아 군수·서장은 생명 위독 상태이며 한편 영천군수는 3일 오전 3시 피살당하였다. 또 영천우편국은 그들이 소각하고 말았는데 3일 오전 현재로 보면 그리 불안상태는 아닌지 모르나 사태의 악화도 고려한 바 있어 금일 경기도 경찰관 4백명을 보내기로 되었다. 그리고 대구 일원의 계엄령은 당분간 더 계속될 것이며 이번 사건에 관련하여 검거된 수는 2백명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재조직과 수사진용을 강화하며 또 한 번 많은 경관의 살해와 시설 파괴가 있었으므로 당국으로서는 이들 경관의 생활대책을 강구하기 위하여 금일 ‘모간’ 중위와 인사과장 김동화 양씨가 급파되었다.

미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의 이 발표 역시 경찰관의 피해를 강조하면서 노동자, 농민, 학생을 포함한 시민이 몇 명이나 죽음을 당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검거된 사람의 수가 2백명이라고만 전하고 있다. 그리고 결론 부분에서는 ‘경관의 살해와 시설 파괴’를 막고 경관의 생활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급선무로 보고 있다.

조선일보는 10월 8일자에 「대구사건의 중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실으면서 ‘폭거’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

대구사건은 그 전모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폭거의 대상이 인민의 보호지도를 목적으로 하는 경찰 또는 기타 행정청에 행하였었다는 점으로나 예상되는 전 동원 민중 수로나 또 그 범위가 대구를 중심으로 실로 8개 군에 미쳤으며 행동이 또한 자못 과격하였던 점으로 보아 이것은 건국 도정에 있어서 실로 심상치 않은 일대 불상사요 역사상으로도 민족적인 관심을 갖게 하는 사건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국제간이나 국내 혹은 개인 간에 이르기까지 폭력으로써 하는 자기주장 방법을 굳게 배격하는 바이거니와 그보다도 더욱 배격해야 할 것은 무릇 폭력에까지 이르게 한 그 사회적 또는 정치적 지반이다. 이 사건에 있어서도 폭거 그 자체는 결코 찬양치 못할 바이겠으나 폭동에까지 이르게 된 사회적 혹은 정치적 사정에 대하여는 매우 신중 또 엄격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설령 이 사건이 일부 정치적 책동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다수의 민중이 이와 같이 동(動)하게 되었으며 또 성주 같은 데서는 경관의 소살(燒殺)까지도 계획했던 모양이니 이들에게는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만큼 현 사회적 사정에 대하여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의 무엇이 있지 않았는가 하는 것만은 간과치 못할 일이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이 사건은 다만 발생 이후의 사태는 비록 폭거라 하더라도 사건 발생 이전의 사태가 무엇이었던가를 규명코자 할 때 다만 한 개의 폭거로 만들어버린다든지 또는 폭거이기 때문에 진압하면 그만이라든지 하는 경단(輕斷)을 삼가야 함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사건을 철두철미 규명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의 이 사설은 폭거 그 자체는 결코 찬양할 수 없지만 폭동에까지 이르게 한 사회적·정치적 사정을 신중하고도 엄격하게 생각하자고 주장한다. 조선일보사가 대구에 기자를 보내서 취재를 시켰다면 군중이 경찰에 폭력으로 맞서게 된 원인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월 1일 저녁 대구시청 앞에서 “식량을 달라” “콜레라 대책을 세우라”고 당국에 요구하던 시민들에게 먼저 총을 쏜 쪽은 경찰이었다. 황말용, 김종태 두 노동자가 총탄에 맞아 숨지자 군중은 무력으로 대항하는 수단에 기대게 된 것이었다. 10월 2일 아침,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이 시내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식량 부족 때문에 굶주리던 시민과 학생들도 시위에 합세했다.

미군정청과 우익 언론이 특히 문제 삼은 것은 박헌영이 대표하던 조선공산당이 노동자들의 ‘봉기’를 지도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당시 미군정청이 박헌영, 이강국, 이주하 등 공산당 핵심 인물들에 대한 검거령을 내린 상태라서 그들 가운데 일부는 잠복하고 다른 사람들은 월북했기 때문에 공산당은 전국적으로 대규모 ‘봉기’를 일으킬 능력이 모자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학자 강만길은 1946년 10월 대구 일원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민중항쟁’이라고 표현하면서 참가자는 3백만여명, 사망자는 3백여명, 행방불명자는 3600여명, 부상자는 2만6천여명, 체포된 사람은 1만5천여명이라고 밝혔다(<고쳐 쓴 한국 현대사>, 창비, 2010,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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