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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가 겪은 사법농단 40여년〈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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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0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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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특조단)이 발표한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농단 실상은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에 버금갈 만큼 충격적이었다. 2011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6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다가 지난해 9월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퇴임했다. 그는 재임 기간에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제 사용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한사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9월 하순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구성된 특조단이 오래 동안 조사해서 발표한 내용 때문에 사법농단 게이트의 ‘주범’이라는 의혹을 벗어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특조단 조사 결과의 핵심은 양승태 체제의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사실이었다. 특조단이 찾아낸 문서에는 “사법부가 VIP(박근혜 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로 대법원의 판결 목록이 나열되어 있었다. 전교조의 이명박 정부 규탄 시국선언(교사 유죄 확정), 과거사정리위원회 사건(소멸시효 3년 제한), KTX 여승무원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여승무원 승소 원심 판결 파기환송), 긴급조치 9호 국가배상(국가배상 필요 없음) 등이다. 이 사건들은 근래 여러 해 동안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위헌 또는 위법이라는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 사례였다.

민변과 사법농단 피해자단체 관계자들이 5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협상 카드 사용과 관련해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는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의 대표로서 우리 단체가 양승태 체제의 대법원한테 당한 사법농단을 구체적으로 밝히려고 한다. 위의 보기들 가운데 과거사정리위원회 사건과 긴급조치 9호 국가배상이 바로 그것이다.

동아투위는 1975년 3월 10일 동아일보사 경영진이 박정희 정권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권력과 야합해,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앞장선 동아일보 기자, 동아방송 피디와 아나운서 등 113명을 강제하기 시작한 데 맞서 그달 17일에 결성된 조직이다. 동아투위 구성원들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는 물론이고 김영삼·김대중 정권 시기에도 행정부나 사법부로부터 해직의 부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6년 4월, 정부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강제해직의 진실을 규명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과거사위는 2008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언론인들이 대량 해임된 것이 사실이라며 국가와 동아일보사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라고 ‘권고’했다. 해직된 지 33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 공식기구의 ‘결정’을 통보받은 동아투위 위원 103명(고인의 유족 포함)은 2009년 12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1월, 서울중앙지법은 “국가의 불법행위가 있었지만 손해배상 청구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지 반 년 뒤인 2012년 3월, 서울고등법원은 1심과 같은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2014년 12월 24일, 양승태 체제의 대법원 제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동아투위 손배소에 대해 사법농단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 ‘야릇한’ 판결을 했다. “고법의 판결은 위법이고,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 남용”이라면서도 원고 103명 가운데 14명에게만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받은 원고들은 민법상 화해를 한 것으로 소송 자격이 없다”고 보는 한편, “진실화해위에 진상조사를 신청한 50명과 그렇게 하지 않은 53명 가운데 생활지원금을 받지 않은 14명에 대해서만 원심을 파기한다”는 것이었다. 법적으로나 상식으로나 진실화해위에 대한 진상규명 신청은 동아투위 위원들 가운데 단 한 명만 해도 가능한 일이었는데 대법원은 그런 판결을 내렸다. 결국 14명은 2015년 말 파기환송심에서 승소하고, 이듬해 4월 말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아 근소한 액수의 배상을 받게 되었다. 그 배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러 언론매체는 ‘동아투위, 40년 만에 역사적 승소’라는 투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동아투위 위원들이 양승태 체제에서 당한 또 하나의 사법농단은 긴급조치 9호 관련 사건 때문이었다.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지난 3월19일 오후 6시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열린 동아투위 결성 43주년 기자회견 모습. 사진=언론노조

동아투위는 ‘자유언론실천선언’ 4주년 기념일인 1978년 10월 24일 저녁, 서울 명동의 한 대형 식당에서 재야 민주화운동가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민주·인권일지’가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당시 ‘제도언론’이 지난 한 해 동안 긴급조치 9호에 재갈이 물려 전혀 보도하지 못한 주요 사건 125건이었다. 경찰은 그것이 ‘긴급조치 9호 위반’이라는 이유로 동아투위 홍종민 총무를 시작으로 안종필 위원장 등 7명을 종로경찰서로 연행했다. 그들은 여러 날 동안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되어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듬해 1월 초에는 윤활식 위원장대리 등 3명이 같은 혐의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동아투위 피고인 10명은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음을 당한 1979년 10월 26일을 전후해 형집행정지 또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3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이 선포한 긴급조치 1·2·9호는 선포 절차와 내용 면에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영장주의 등 현행 헌법의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동아투위 위원 10명(고인 3명의 유족 포함)은 헌재의 결정을 근거로 같은 해 8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듬해 3월 전원 패소 판결을 내렸다. “긴급조치 9호에 의해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해 기소한 수사기관이나 유죄를 선고한 법관의 직무행위는 공무원의 고의·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당시 유신헌법은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했고,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임이 (당시에) 선언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런 주장도 했다. “긴급조치가 당시 실정법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그것을 집행한 것 자체는 불법행위로 볼 수 없고, 다만 고문 등 가혹행위 사실이 인정돼야 국가에 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판단이다.” 2010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긴급조치 1호는 위헌”이라고 판결하자 대법원은 기존의 ‘유죄 판례들’을 모조리 폐기한 바 있는데 양승태 체제는 오히려 정반대 길로 나간 것이다.

동아투위는 결성 이래 40년이 넘도록 부당해직 취소와 명예회복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사법부에 끈질기게 제기했지만 번번이 패소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해직 직후인 1975년 6월 21일 동아일보사 김상만 대표이사를 상대로 서울민사지법에 낸 ‘해임 및 무기정직 처분 무효 확인 청구소송’이었다. 잇달아 지루하게 열린 1심과 2심 공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소송을 낸 지 3년 반이 지난 1979년 1월 9일에 열린 대법원 상고심 공판에서 주심은 단 한 마디로 전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단 한 마디였다. “이유 없다.”

대한민국은 오는 8월 15일 정부 수립 70주년을 맞이한다. 그 기간에 특히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은 ‘사법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승만 정권의 ‘조봉암 사형’, 박정희 정권의 ‘인혁당 사건 기결수 8명 돌발 사형’은 ‘사법 살인’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두 사건 모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명백한 증거이다.

대법원 특조단은 지난달 25일 조사보고서를 공개하면서 410건 가운데 ‘국제인권법 연구의 대응방안’, ‘전교조 법원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현안 말씀자료’의 내용만 밝혔다. 174건은 일부 내용만 발췌해서 인용했는데, 공개하지 않은 나머지 문건들 중에는 ‘BH 민주적 정당성 부여 방안’,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 ‘세월호 사건 관련 적정 관할법원 및 재판부 배당 방안’ 등의 제목이 들어 있다. 양승태 체제가 박근혜 정권의 비위를 맞추려고 어떤 짓을 했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양승태 사법농단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버금가는 중대 범죄이므로 특검을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의 각급 법관회의가 대책회의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법원행정체제에 대한 근원적 개혁을 약속한 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장본인인 양 전 원장은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기 집 인근의 공원에서 가지회견을 갖고 “재임 시 부적절한 일이 있었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막지 못해 송구하다”며 “대법원장 재임 시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적이 결단코 없으며 재판을 놓고 흥정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특조단 조사보고서에 담긴 사법농단 의혹 410건은 법원행정처가 주도했거나 일선 법관들이 주체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말인가? 국회가 청문회를 열고, 특검이 신속하게 엄정한 수사를 해서 유력한 혐의자들을 가려내는 작업이 그래서 필요하다.

* 덧붙이는 말 : 특조단의 조사보고서 내용 410건이 모두 공개된다면 양승태 체제가 동아투위 관련 사건들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밝혀지리라고 믿는다. 그렇게 된다면 동아투위 위원 113명(29명은 작고)이 지난 43년 동안 숙원으로 품어온 역사 바로 잡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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