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영화 속 미디어
[영화 속 미디어 18] 대필작가의 일〈이용재 시나리오 작가ㆍ재단 기획편집위원〉
  • 관리자
  • 승인 2018.06.04 14:16
  • 댓글 0
[제목] 유령작가 (The Ghost Writer, 2010)
[연출] 로만 폴란스키
[각본] 로버트 해리스, 로만 폴란스키

명사의 자서전을 써주는 대필 작가를 주인공으로 세운 스릴러 영화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국 BBC 기자 출신인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The Ghost>를 원작자와 함께 각색했다.

극중 대필 작가(이완 맥그리거)는 그동안 마술사 등 연예계 유명 인사의 회고록을 써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으나 ‘정치인의 회고록은 쓰레기’라고 여기는 정치 혐오자. 그에게 재임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지금도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전직 총리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의 회고록을 맡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초고는 대충 나와 있으니 한 달 안에 윤문만 해주면 된다. 작업 장소와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25만 달러를 주겠다.”

전임 대필 작가가 초고를 마무리하던 중 자살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만, 조건이 너무 매력적이다.

차마 2억 6천만 원을 거부할 수 없어 랭이 머물고 있는 미국령 작은 섬으로 향하는 작가. ‘한 달만 고생하자’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하는데, 곧바로 일이 터진다.

영화 속 작가는 원고료 2억6천만 원과 함께 위 사진의 집필실을 제공받는다. 한국에서 정치인 자서전 대필료는 국회의원 급을 기준으로 1천만~2천만 원 정도. 다른 원고료와 마찬가지로 거의 20년째 그 가격이다.

랭 내각의 외교부 장관이었던 리처드 라이카트가 양심선언을 한 것. “아담 랭은 총리 시절, 미국 CIA가 영국 시민을 불법 납치하는 걸 도왔다. 납치된 네 명은 테러 용의자로 몰려 고문을 당했으며, 그 과정에서 몇 명이 숨졌다.”

랭은 이제 미국 땅을 벗어나는 순간 국제 전범 재판소에 끌려갈 운명에 처한다. 영국의 전 총리가 무인도나 다름없는 작은 섬에 유폐된 것이다.

작가 해리스가 원작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2007년, 블레어 총리가 사임한 직후. 그러니까 영화 속 랭 총리는 재임 기간 내내 ‘부시의 푸들’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블레어의 초상이나 다름없다.

이야기는 회고록을 집필하던 전임자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급물살을 탄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대필 작가는 졸지에 미국과 영국, CIA와 민간군사기업이 얽힌 검은 커넥션을 파헤치게 된다. 루카치 식으로 말하자면 작가의 세계관을 압도하는 ‘저널리즘의 승리’라 할 만한 대목이다.

음모는 영화가 거의 끝날 즈음 드러난다. 총리 회고록 출판 기념회가 열리는 날, 전임자가 초고에 암호처럼 남겨두었던 단서들이 꿰어지며 뜻밖의 악인이 드러난다.

촘촘하게 한 장면, 한 장면을 쌓아올리던 폴란스키 감독은 반전과 결말을 이상할 정도로 ‘순식간에’ 처리한다. 영화는 자고로 마지막 장면이 중요한 법인데 공 들인 이야기가 여운을 남기지 못하고 ‘훅’ 끝나버리는 게 아쉬운 작품이다.

그밖에

* 총리가 전범 재판에 넘겨지자 체포를 피하려고 미국에만 머무는 설정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처지와 닮아 있다. 폴란스키는 1977년 배우 잭 니컬슨의 집에서 13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자 재판 직전 파리로 도주했다. 그 후 40년이 넘도록 미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럽을 떠돌던 그는 지난해 미국 법원에 청원을 냈다. ‘과거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도록 사건을 종결 처리해 달라’는 것. 그러나 법원은 “우리가 발부한 명령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면서 우리에게 자신의 요청을 들어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없다”며 기각했다. 이 작품의 촬영도 실제 미국령 섬이 아니라, 독일에서 이뤄졌다.

** 작가 해리스는 기자 시절 토니 블레어를 지지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해리스는 이라크전 이후 자신의 선택이 실수였음을 통감한다. 블레어가 사임한 뒤 기자를 그만둔 해리스는 3개월 만에 소설 <The Ghost>을 완성했다. 극 중 총리가 블레어를 닮은 것은 물론, 총리 부인, 음모의 핵심에 있는 민간군사기업도 실제와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점 : IMDB(7.2/10), 로튼 토마토(83/100), 왓챠(3.1/5)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