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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의 빈곤, 호칭 속 차별[서촌 칼럼] 박성현 역사학 박사ㆍ재단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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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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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어머니’ ‘아버지’로 규정받는 사회

시장에 가건 휴대폰 매장에 가건 병원에 가건, 당신이 최소 40대(때로는 30대 후반) 이상으로 보이는 여성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어머니’로 불릴 것이다. 예전에 쓰이던 ‘손님’이나 ‘고객님’ 같은 호칭이 언젠가부터 ‘어머니’로 바뀐 것은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되던 ‘아줌마’ 대신 ‘어머니’를 쓰게 된 시기와 비슷할 것이다. 사람들은 ‘어머니’라는 호칭이 ‘친밀감’과 일종의 ‘존중’(‘아줌마’보다는)을 내포하고 있다는 데 암묵적 동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TV 예능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은 이른바 그들이 ‘일반인’이라 지칭하는 비연예인들을 어김없이 ‘어머니’, ‘아버지’라 부른다.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 한 끼 식사를 청하는 TV 프로그램 ‘한끼줍쇼’의 한 진행자는 상대방이 안 보이는데도 무조건 ‘어머니’라고 불러 초인종에 어린 소녀가 대꾸하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집에 들어가서도 자신보다 어린 집주인 부부에게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지만, 막상 자신이 ‘아버지’라 불리면 당황할 것이다(연예인들끼리는 25~30년 이상 차이가 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라 ‘형’ ‘누나’ ‘오빠’ ‘언니’로 불리길 원하고 때로는 ‘선배님’ ‘선생님’으로 불린다). 가끔, 자기보다 나이 든 연예인 진행자가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는 것에 불편함을 표현한 집주인도 있었지만, 진행자는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이 ‘일반인’을 이름(―씨, ―님)으로 부르는 대신 여전히 습관적으로 ‘아버지’ ‘어머니’ 호칭을 반복한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녀를 염두에 두고 ‘○○의 어머니’ ‘△△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불렀겠으나, 자녀의 이름을 모르니 처음 보는 이들도 그냥 ‘어머니’ ‘아버지’이고 자녀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나이 들었으면 ‘당연히’ 결혼해 자녀가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불리는 사람은 저절로 ‘어머니’ ‘아버지’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결혼했어도 자녀를 일부러 갖지 않는 부부도 있고, 갖고 싶어도 자녀가 생기지 않는 부부들에게 이러한 호칭은 적절하지 못하며 때로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많은 중년여성들이 ‘아주머니’보다 ‘어머니’를 친근하게 존중하는 호칭으로 여겨 좋아할 수도 있겠으나, ‘어머니’로 불리느니 차라리 ‘아줌마’가 편하다고 말하는 싱글여성들도 있다. ‘아줌마’ ‘아저씨’의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하고 대체할 호칭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굳이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어도 ‘어르신’도 있고 ‘선생님’도 있다. 식당에서 ‘이모’를 찾지 않고 ‘사장님’을 찾는 젊은 층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제 타인에 대한 혈연관계 호칭이 변할 때도 되었다.

‘선생님’과 ‘아저씨’

한편, 우리사회는 직업별로 뒤에 붙는 호칭이 다르다. 의사는 ‘선생님’이고 소방관은 ‘아저씨’이다. 판사ㆍ검사ㆍ교수는 ‘―님’이고 환경미화원은 ‘―아저씨’이다. ‘선생님’을 학교 교사에만 국한시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사실 이도 ‘선생’이면 족하다), 왜 누구는 ‘선생님’이고 누구는 ‘아저씨’인가.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의사선생님’과 ‘우체부(집배원)아저씨’ ‘청소부(미화원)아저씨’라는 차별적 호칭을 배우고 호칭 속에 내포된 차별의식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도 군대에 복무하면 졸지에 군인‘아저씨’로 불리는 게(20대 젊은이들에게는 억울할 법하다) 우리사회의 호칭문화이니 뭐 그리 따지냐, 할지도 모르겠으나 차별적 호칭 속에 갑질하는 ‘(국회)의원님’과 천대받는 ‘경비원아저씨’가 존재하는 불평등한 현실을 생각한다면, 특정 직업 뒤에만 ‘―님’을 붙이느니 차라리 모든 직업명 뒤에 아무런 호칭을 붙이지 않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굳이 의원ㆍ의사ㆍ판사ㆍ검사ㆍ교수 등이 ‘―님’ ‘선생님’이어야 한다면, 소방관ㆍ경찰관ㆍ집배원ㆍ미화원ㆍ경비원 등도 ‘―님’, ‘선생님’이어야 한다.

학교의 교사들은 ‘선생님’ 호칭이 남발된다고 거부감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최근 몇 년 사이 관공서 공무원들이 민원인들을 ‘아줌마’ ‘아저씨’ 대신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은 국민에 대한 공평한 존중이라는 의미에서 우리사회의 빈곤한 호칭환경 상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물론, TV 드라마 <라이브>에서 나오듯이, 경찰관들이 난동을 피우는 주취자조차도 ‘선생님’으로 불러줘야 하는 기막힌 상황도 있다. 소방관처럼 경찰관도 극한직업인 셈이다(권력을 남용하는 경찰간부들은 물론 예외지만). 또 한 가지, 소방관‘아저씨’, 경찰관‘아저씨’는 ‘―님’이 아닌 ‘―아저씨’가 되다보니 여성소방관, 여성경찰관을 포함시키지 못하고 있다. 현대,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시대에 이런 호칭문제를 재고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한국여성민우회의 2011년 '식당여성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식당에서 쓰이는 호칭의 종류로 ‘이모’, ‘고모’ 심지어 ‘엄마’ 등 가족관계 호칭이 33%에 달했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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