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에 이어 쥐가 법정에 섰다. 사람 재판하기도 힘든 세상인데 짐승들까지 속을 썩인다. 하기사 미꾸라지인지 법꾸라지인지 하는 수생종까지 재판해야 하는 세상이다.

13~18세기, 유럽인들은 실제 동물들을 재판했다. 범죄동물들을 법정에 세웠다. 동물 범죄자들은 대부분 돼지 소 말 닭 등 가축이었다. 그중에서도 강력범죄자는 주로 돼지였다. 쥐와 해충도 법정에 섰다. 법정에는 판검사, 변호사 등도 등장했다.

동물범죄 사건은 교회와 세속의 법정이 다뤘다. 인간증인이 나서 증언하기도 했다. 유죄판결을 받은 동물은 대개 사형당했다. 귀신 들린 짐승, 수간 짐승, 살인 짐승들은 극형에 처했다. 화형주(火刑柱)에 매달아 산채로 태워죽이는 일이 다반사였고, 교수형도 흔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1266년 프랑스 남서 지역의 한 마을(퐁트네오로즈)에서 벌어졌던 돼지 처형사건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사례를 더 들어보자.

1379년 9월 5일, 프랑스 한 수도원에서 한 남자(Perrinot Muet)가 살해당했다. 범인은 돼지들이었다. 사람들은 “돼지들의 멱따는 소리와 공격적 행동을 보면 살인자가 틀림없다. 고로 살인자들은 정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돼지들에게 사형이 구형되자 수도원장(Friar Humbert de Poutiers)은 돼지가 아까워 대신 죽을 지경이 됐다. 수도원장은 판관인 부르고뉴 공작에게 “돼지들을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다. 공작은 사건을 환송하고 돼지들을 석방했다.

1474년, 스위스 바젤 지역의 어느 마을. 수탉이 계란을 낳았다. 사람들은 “수탉이 알을 낳다니! 사탄이 잉태시킨 계란이여! 부화하면 자라 괴물닭 코카트리스가 될 것이여! 코카트리스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이 글 끝에 붙어있는 부록을 보셔!”라며 바들바들 떨었다. 수탉은 “사악하고 부적절한 계란을 낳는 죄”로 재판에 회부됐다.

감동적인 순간도 있었다. 1750년, 암탕나귀 한 마리가 수간 혐의로 체포됐다. 현장에서 들켰으니 빼박이었다. 수녀원장이 변호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나는 4년이나 그녀를 알고 지낸 사람이다. 잘 안다. 그녀는 항상 유덕하고 행실이 조신했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변론했다. “그녀는 성폭력의 희생자일 뿐이다!” 암탕나귀는 즉석에서 풀려났다. 그녀와 함께 기소된 숫놈인간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가끔은 무죄로 석방되거나 가벼운 벌을 받는 동물도 있었다.

요즘 쥐닭 등 국정농단 사건 관련짐승들이 법정을 드나들고 있다. 검사, 변호사, 판사 등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각자의 자리에서 이 동물범죄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가끔 인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동물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전국민이 다 아는 범죄짐승들을 풀어주는 일도 다반사다. 심지어 면죄부도 준다. 쥐 재판에서는 그런 일 없도록 하라.

(부록)

스위스의 닭괴물

코카트리스. 유럽신화에 등장하는 수탉+(도마)뱀 괴물. 수탉이 낳은 알을 뱀이나 두꺼비 등이 품어 부화. ‘귀씻소’ 23회에 카메오 출연.

바구미를 변론하다

● 1545년, 프랑스 농촌 생줄리앙(St. Julien) 마을. 포도 경작 농부가 바구미의 악행 고발. 판결은 ‘기도문 선포’였다. 희한하게 바구미 사라짐. 하나 30년 후 바구미 귀향. 마을사람들은 놈들을 법정에 모심. 1587년 4월 13일, 세기의 바구미 재판 열림. 바구미측 변호사(Antoine Filliol) 법정에 등장, “바구미는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을 뿐. 그 생계수단이 농작물이란 사실은 불행한 일”이라고 변론. 덧붙여 “마을 사람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해충을 보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바구미는 양심수나 다름없다”고 열변. 듣고보니 그럴 듯. 하여 사람들은 마을 근처에 바구미들에게 주거용 땅 제공키로 결정. 변호사는 “바구미는 양심수이므로 토지제공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 제시. 똑똑한 변호사 때문에 검찰, 검사는 변호사에게 제대로 까임. 재판 시작 8개월 만에 나온 최종판결. “바구미들은 특정날짜, 특정시간까지 마을을 떠나시오.”

● 1394년, 프랑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돼지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죄목은 신에게 봉헌된 웨이퍼(과자의 일종)를 먹었다는 것.

● 16세기 후반, 스위스의 어느 마을. 한 자연주의자가 무스를 기증. 마을사람들은 처음보는 듣보잡 동물이었다. 사람들은 “저 짐승은 위험한 사탄”이라고 믿었다. 어느날 신앙심 깊은 한 노파가 망가진 바늘을 잔뜩 찔러넣은 사과를 무스에게 먹였다.

● 노새가 비역질 혐의로 상대방 남성과 함께 산 채로 불태워졌다. 노새는 걷어차는 버릇이 있어 사형 집행관은 화형 전에 발을 잘랐다.

● 굶주린 돼지들, 아기를 잡아먹었다는 이유로 재판 회부. 돼지가 아기의 귀와 코를 씹어 먹고 죽이기까지 했다.

● 그 돌고래, 1596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공개처형. 범죄 내용 기록 없음.

● 동물 처벌의 역사에 늑대인간도 자주 등장. 늑대인간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재판을 받았는데 특히 16세기 프랑스에서 자주..... Alleged werewolves were put on trial on several occasions, particularly in sixteenth-century France, though the allegation in such cases was always levelled against human defendants.

● According to Johannis Gross in Kurze Basler Chronik(1624), in 1474 a rooster was put on trial in the city of Basel for "the heinous and unnatural crime of laying an egg", which the townspeople were concerned was spawned by Satan and contained a cockatrice.

동물재판에 관한 책

● 에드워드 페이슨 에반스의 <The Criminal Prosecution and Capital Punishment of Animals>(1906). 책 부록에 약 200건의 동물사형 사건 소개. 범죄자들 명단에 돼지 소 말 뱀장어 개 양 등등 오름. 이 사례들은 ‘격동의 유럽 역사’에서 살아남은 빛나는 기록들.

● Sadakat Kadri의 <The Trial : Four Thousand Years of Courtroom Drama>(Random House, 2006)란 책도 있음. 카드리는 “시체와 생명이 없는 사물도 기소했으며 이는 중세시기 광범위한 현상이었다”고 말씀하심. 또 그는 “그러한 의식(rituals)의 반향은 어린이와 정신병자의 처벌에 대한 현대의 태도에서 살아남아 있다”고 주장.

사람 대접

인간에게 적용할 법과 도덕을 동물에게 들이대니, 동물을 인간과 동등하게 예우해준 셈일까. 동물의 권리를 크게 보장해준 셈일까. 물론 현대의 대부분 사법 시스템에서는, 동물은 법적 도덕적 선택능력이 없으므로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고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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