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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미디어 16] 어산지의 민낯〈이용재 시나리오 작가ㆍ재단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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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08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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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리스크 (Risk, 2016)
[연출ㆍ작가] 로라 포이트라스

위키리크스를 만든 호주 출신 해커, 줄리언 어산지를 6년간 취재한 다큐멘터리다. 앞서 포이트라스 감독은 미국 정부의 광범위한 불법 감청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다룬 <시티즌 포>로 2015년 오스카 다큐멘터리 영화상을 받았다.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리스크>는 2010년부터 2016년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어산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시기를 담았다. 이 작품이 조명한 어산지의 모습은 세 가지다. 미국의 추악한 면모를 폭로한 영웅,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성범죄자, 그리고 트럼프의 당선을 도운 조력자.

2010년 어산지는 미군 아파치 헬기의 민간인 사살 영상,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밀문서 등 수십만 건의 미 국무부 외교 전문 등을 잇달아 폭로하면서 프랑스 일간 <르 몽드>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는 등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말 어산지는 성 추문에 휩싸인다. 스웨덴 여성 둘이 그를 강간 혐의로 고소한 것. 스웨덴 검찰은 그를 소환하지만 어산지는 출두했다간 미국에 넘겨져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여긴다. 두려움에 휩싸인 그는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피신한다. 대사관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는 상황. 당시의 어산지는 그 자발적(?) 연금이 2018년 현재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덩어리는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집중한다. 위키리크스는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골드만삭스로부터 고액 강연료를 받았다는 사실과 함께 선거 캠프의 e메일 수만 통을 공개해 민주당을 곤경에 빠뜨렸다.

결과적으로 클린턴은 침몰했다. 게다가 어산지가 그 자료들을 러시아 정보기관에서 받았다는 의심이 제기되면서 진보진영의 아이콘으로 각광받던 그는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이라는 비아냥을 듣기에 이른다.

“이건 저급하고 급진적인 일부 페미니스트의 정치적 사냥에 불과하다”

성 추문에 휩싸인 어산지는 변호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에서 거침없이 속내를 털어놓는다. 변해가는 어산지의 모습이 혼란스러웠던 감독은 개봉 후 “애초 내가 만들려던 영화는 이게 아니었다”고 변명하지만 평자들의 비난을 피해갈 순 없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영화 담당 기자 캐서린 쇼어드는 “어산지에게 접근하기 위해 공평성을 희생시켰다”고 힐난했다.

에콰도르 대사관에 들어가기 전 변장하는 어산지. 머리를 염색하고 컬러 렌즈를 착용한 뒤 바이크족 복장으로 오토바이를 탄다.


결과적으로 영화적인 면에서 실패한 듯 보이는 이 다큐멘터리의 재미는 의외의 곳에 있다. 그중 하나는 줄리언 어산지의 매우 사적이고 내밀한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감독이 “‘이런 장면까지 찍도록 허락하다니’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고 말했을 정도. 예컨대 미 국무부에 전화를 걸어 “힐러리 클린턴 좀 바꿔주세요” 하는 장면이나, 레이디 가가와 인터뷰하는 대목은 코믹하다 못해 초현실적이다. 또 다른 감상 포인트는 취재원에게 밀착했던 감독이 소위 ‘야마’를 놓치고 고뇌하는 대목들. 결국 감독은 영화 말미에 어산지에게 받은 ‘마지막 문자’를 소개한다.

“인터뷰할 때 우리가 갈라섰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감독의 전작 다큐멘터리 <시티즌 포>의 에드워드 스노든이 그랬듯, 이 작품에서 줄리언 어산지의 어조는 차분하고 담담하다.

“원칙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할 뿐더러 많은 일을 성취하지도 못해요. 그러나 사람이라면 당연히 위험을 감수해야 된다고 봐요. 인생은 길지 않아요. 소중한 걸 위해 싸우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사라지고, 나는 지는 거예요.”

여전히 의미심장하지만, 곤경에 처한 남자의 흔들리는 눈빛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은 착잡하다.

평점 : IMDB(6.3/10), 로튼 토마토(83/100), 왓챠(3.6/5)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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