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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의 품격[서촌 칼럼] 박성현 역사학 박사ㆍ재단 기획편집위원
  • 관리자
  • 승인 2018.05.0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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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7 이후

역사적인 4·27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이 가져다 준 감동 이래 매일 새로운 소식들이 쏟아지고 있다.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대북ㆍ대남 확성기들이 철거되고 5월 5일부터는 북한의 표준시간이 남한의 시간에 맞춰지며,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와 국제적인 공개ㆍ검증 제안 등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후속조치들은 ‘평화와 번영’의 봄이 한반도에 구현되리라는 기대감으로 우리를 설레게 한다. 이 기대가 ‘근거 있는’ 것은 남북 양측과 미국의 현재 행보 덕분이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의 이행이 중단된 것은 사실 남한과 미국의 정권이 계속 바뀌면서 일관성을 잃은 탓도 크기에, 남북미 간의 속도전이 더욱 고무적이다.

4월 30일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80~90% 가량의 국민들이 4·27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미디어오늘 82.4%, MBC 뉴스데스크 88.7%, KBS 뉴스9 94.1%). 군사분계선에서의 '깜짝 월경', 도보다리 산책과 ‘벤치 대화’로 선언문 발표 이전에 이미 평화메시지를 전한 두 정상의 회담은 우리 국민은 물론이거니와 국제사회의 환영과 지지를 받았다. 꿋꿋이 ‘나 홀로 반대’(현 정부의 정책은 무엇이든 무조건 반대)의 길을 걷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다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북미회담의 성공을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기원하는 중이다.

그런데 2018 남북정상회담 이후 쏟아져 나오는 언론의 보도들은 평화와 통일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 중요한 시기에 국민이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국민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실현하려면 어떤 노력과 방법을 모색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는 자극적이고 지엽적인 뉴스에 골몰한 언론보도들이 종종 눈에 띈다.

MBC 보도 화면 :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천 23명을 대상으로 4월 29~30일 이틀간 유무선 전화면접 방식으로 조사했으며 응답률은 12%,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KBS 보도 화면 : KBS 방송문화연구소에서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77명 대상으로 2018년 4월 30일 KBS 국민패널 인터넷 설문조사(IPS) 방식으로 조사했으며 응답률 7.25%,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9%p

▶ ‘입모양’ 분석 보도

그림 같고 무성영화 같은, 남북 정상의 평화로운 숲속 도보다리 대화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바람과 새소리에 그냥 맡겨두어도 좋았다(게다가 4월 30일에 정부는 이 대화의 내용이 북미회담에 관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한국의 TV방송은 일본의 N(니혼)TV가 두 정상의 입모양을 분석해 추정했다는 대화내용을 받아서 보도하거나(SBS 8시 뉴스 4월 30일), 나아가 구화판독 전문가에게 직접 의뢰했다며 마치 큰 발견인 양 기자가 판독 전문가에게 과장된 손짓과 함께 큰 소리로 묻는 장면까지 담아 내보냈다(KBS 9시 뉴스 4월 30일).

이후, 조선일보도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다. 조선일보는 일본 NTV 보도를 언급하면서 자체적으로 구화법(口話法) 전문가 3명에게 의뢰해 분석했다는 대화내용을 실었다(文 "남북간 좋은 쪽으로 자주 대화 나누자", 金 "北美회담 했을 때 좋게 나와야 할텐데", 조선일보 5월 2일). 이보다 조금 앞서, <시사저널>도 이러한 보도에 동참했다. <시사저널>은 구화법을 수십 년째 사용하고 있는 A씨가 ‘독순술’로 해석한 내용이라고 밝히면서 이를 두 차례에 나누어 더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핵을 이참에 원래…” 도보다리 회담 35분 전말(1보) / 승인 2018.05.01.(화) 06:16:12, ​(2보) “핵폐기 구체화…” ‘도보다리 회담’ 영상 분석 / 승인 2018.05.01.(화) 09:50:09).

자연 속에 묵음 처리된 약 40분간의 대화내용이 누구인들 궁금하지 않으랴마는, 그렇기에 한 걸음 양보해 위의 보도들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시청자와 독자의 호기심을 채우고 관심을 끌려는 노력이 지나치면 기사가 소설이 되고 희곡이 된다. 아니, 시간을 분초로 기록하며 대사를 넣은 <시사저널>의 2보는 방송대본 또는 다큐멘터리의 프리뷰노트를 연상시킨다. 가장 황당한 경우는, ‘입술 분석’에 지나치게 몰두한 종편 TV 채널A가 창의적인 ‘말풍선 놀이’를 연상시키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급기야 뉴스의 수준을 ‘연예가중계’나 가십거리로 전락시킨 점이다("아버지가 결혼하라 해서…" 개인사 밝힌 김정은, 뉴스A 5월 1일).

“한반도 주변 정보당국은 남북 정상 입모양을 통해 구체적 발언을 확인했을 가능성도 높다”(세계가 주목한 `文·金 밀담`…입모양 읽으며 해석 분분, 매일경제 4월 29일)는 우려 때문에 우리도 입모양을 분석하자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또한 "방송 카메라에 문 대통령의 뒷모습과 김 위원장의 얼굴이 장시간 클로즈업돼서 노출된 건 의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어떤 전문가의 의견(앞의 기사)에 혹자는 동의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국민들은 두 정상이 그때 얼마나 진지하게, 상호 신뢰 속에 한반도를 위한 둘만의 대화에 몰두해 있는지를 느끼며 마음으로 그 대화에 동참하고 있지 않았을까.

▶ 오보를 정정ㆍ반성하지 않는 언론

남북회담과 관련해 비본질적인 신변잡기식의 기사도 있고(“김정은 자신감 넘쳤지만… 200여m 걷고는 가쁜 숨 내쉬기도”, 동아일보 4월 28일), 앞서 언급한 채널A의 보도를 그대로 받아 적은 신문 기사도 있지만(“아버지가 저 여자와 결혼하라해서” 문 대통령에 개인사 밝힌 김정은, 중앙일보 5월 2일), 현 상황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와 분석을 제공하는 좋은 기사들도 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제목으로 실린 경향신문 4월 30일~5월 1일자의 연속보도는 전문가들과의 심층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일독을 권하고 싶은 기사들이다.

[진단, 판문점선언](1) “합의서에 담지 못한 숨진 코드, 트럼프 배려해 남겨둔 듯”
(경향신문 4월 30일,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인터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302227005&code=910303

[진단, 판문점선언](2) "김정은, 병진노선 한계 인식..북·미 회담 실패하지 않을 것“
(경향신문 5월 1일, 존 메릴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실장 인터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012213005&code=910303

마지막으로, 전과는 질적으로 달라 보이는 새로운 남북 간 해빙 무드를 맞아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그것은 1986년 ‘김일성 사망’ 오보를 비롯해 지난 수십 년간 북한 관련 보도에서 수많은 오보를 양산해 온 우리 언론의 태도이다. 2013년 8월 29일,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단독] 김정은 옛 애인(보천보 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라는 기사를 실었던 조선일보는, 2018년 1월 21일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평창올림픽 북한예술단 사전점검단을 이끌고 방남했을 때 아무런 해명도 없었다. 오보 정정과 사과는 한 마디도 없이, 현단장의 여우털 목도리, 롱코트와 앵클부츠, 깻잎머리 같은 것만 읊어댔던 조선일보나, 그와 대동소이하게 그녀가 뭘 먹고 뭘 입고 무슨 가방을 들었는지 따위의 삼류 주간지 수준의 기사 아닌 기사들을 양산했던 언론들은 오늘도 반성이 없다.

독자들이 직접 ‘팩트 체크’를 할 정도로 가짜뉴스에 단련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이제는 예전처럼 언론이 소문(!)에 의존하거나, 이른바 ‘대북 소식통’이라는 실체 불분명한 익명성으로 포장된 수구정권의 정보기관(때로는 이에 결탁된 탈북자단체 등)으로부터 왜곡된 정보를 받아 북한에 대한 오보를 의도적으로 양산ㆍ확대재생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오보에 대한 정정과 반성 없이, 상황에 따라 변신을 꾀하는 언론사들과 언론인들이라면 대중의 불신과 외면만 받게 될 것이다. 부디 진정한 기자라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언론본부가 지난 4월 24일 성명서에서 촉구한 것처럼, ‘평화통일과 남북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제작 준칙’을 지켜 앞으로 전개될―우리 민족의 명운이 달린―일련의 과정들을 공정하고 진실하게, 사실에 근거해 책임감 있게 보도해 주시라. 그리하여 기사다운 기사로 보도의 ‘품격’을 보여주시라.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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