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영화 속 미디어
[영화 속 미디어 14] 죽도록 알리고 싶었다〈이용재 시나리오 작가ㆍ재단 기획편집위원〉
  • 관리자
  • 승인 2018.04.09 15:38
  • 댓글 0
[제목] 조디악 (Zodiac, 2007)
[연출] 데이비드 핀처
[각본] 제임스 벤더빌트, 로버트 그레이스미스


1960년대 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악명을 떨친 연쇄 살인범 ‘조디악’을 20년 넘게 추적한 저널리스트의 실제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이다.

사실 영화에 조연으로 기자를 등장시키는 건 작가나 감독에겐 일종의 커닝 행위다. 기자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는 직업. 적당한 시점에 끼워 넣으면, 복잡한 사건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맥 빠지는 스토리텔링 방식이기도 하다. 만드는 입장에선 편리할지 몰라도 관객에겐 ‘저거 설명충 또 나왔네’가 되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조디악〉의 주인공은 관객을 안내하기 위해 사건의 당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다. 경찰마저 포기한 사건에 자기 인생을 (가족마저 포기해 가면서) 쏟아 부은 실존 인물이다. 그가 ‘볼펜’ 기자가 아니라, 만평을 그리는 만화가란 점도 이색적이다.

영화는 한 통의 편지가 신문사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겉봉에 ‘당장 편집국장에게 전달하시오’라고 적혀 있다. 내용은 ‘동봉한 암호문을 신문 1면에 싣지 않으면, 주말 동안 12명을 살해하겠다’는 것. 일견 황당해 보이지만 이 편지가 장난이 아니란 정황을 확인한 편집국은 발칵 뒤집힌다.


연쇄 살인마를 다룬 영화지만, 살인을 포르노처럼 전시하지 않는다. 2시간 40분이 넘는 영화에 살인 장면은 딱 세 번. 그나마도 극도로 절제된 연출이다. 따라서 관객은 한눈 팔지 않고 사건을 쫓는 사람들에 집중할 수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 사건에 천착했으나 실망만 거듭한 사람들은 하나씩 망가져간다. 볼펜 기자 에이버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회사에서 잘려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범인을 거의 잡을 뻔 했던 형사 토스키(마크 러팔로)는 살인자의 편지를 날조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쓴다.

이제 경찰도 수사를 중단한 상태에서 만화가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만 여전히 조디악 사건에 매달린다. 그가 이혼까지 감수하면서 사건에 집착한 이유는 무얼까? 이 정도면 ‘기자 정신’이란 멋진 단어로 간단하게 눙치기 어렵다. 금쪽같은 삼십대를 다 바치고도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상황, 범인에 대한 복수심, 무능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본전 생각 등 오만가지 유치한 정념이 활화산처럼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영화의 결말은 실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이없게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모든 정황이 범인임을 가리키는 유력한 용의자가 있었다. 틀림없이 범인이다. 그러나 물적 증거가 없었다. 그는 기소되지 않았고, 지병인 심장마비로 죽었다.

국내 개봉 당시 이 영화의 홍보 문구는 ‘미국판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작 〈살인의 추억〉이 다룬 화성 연쇄살인 역시 범인이 잡히지 않은 미제 사건이어서 두 작품의 결말은 닮아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느낌을 비교하자면 〈조디악〉 쪽이 훨씬 차갑고 건조하다. 관객의 감정 이입을 일부러 경계하는 듯한 핀처 감독의 연출은 일부 관객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싱겁게 영화가 툭, 마무리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남는 뒷맛은 훨씬 묵직하지만.

실화의 그레이스미스는 18년간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 단행본 〈조디악〉을 1986년에 냈다. 범인을 법정에 세우지는 못했으나, 사이코 패스 범죄에 대한 경각심, 경찰의 비과학적인 수사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추측컨대 그레이스미스 입장에서 느꼈음직한 소회가 하나 더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유력한 용의자’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레이스미스는 막 출간된 책을 어루만지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네가 저지른 짓이라는 걸 이제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어차피 체포와 단죄는 공권력의 몫. 수사 당국은 임무를 다하지 못했으나, 그레이스미스는 세상의 악의에 대해 저널리스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낸 셈이다.

그밖에

* 그레이스미스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완성됐을 때 “세상에! 왜 아내가 날 떠났는지 이제 알겠군!”이라고 말했다.
** 〈조디악〉이 만들어진 건 2007년. 〈아이언맨〉을 필두로 마블의 이른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시작된 건 2008년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크 버팔로 등 이제는 우주를 접수한 스타들이 저마다 이 작품의 한 귀퉁이를 떠받치고 ‘소소한’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짭짤하다.

평점 : IMDB(7.7/10), 로튼 토마토(90/100), 왓챠(3.5/5)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