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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비정상' 입증한 '침실 대통령' 박근혜〈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 관리자
  • 승인 2018.03.3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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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25일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근혜가 왜 그 직책을 바르게 수행할 수 없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해 동안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진보적 언론과 야당은 5·16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아버지 박정희의 독재를 세습하려고 시도하면서 국정 농단을 일삼는 그의 행태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수구언론과 집권당은 박근혜가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와 ‘고도 경제성장’을 이어받으려 노력한다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밝힌 대통령 파면 사유는 박근혜가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지 말아야 하는 까닭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헌재는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탄핵소추 이유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직책을 수행해야 하는 의무의 경우, 정치적 판단의 대상일 뿐 사법적 판단의 대상은 아니”라고 결정했다. 그래서 박근혜의 측근들이 필사적으로 은폐하려 들었던 세월호 침몰 당일의 ‘7시간 행적’ 밝히기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사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집권당 추천 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한 특조위가 법리와 상식을 어기고 진상 규명을 가로막음으로써 진실은 빛을 볼 수 없었다.

문제의 ‘7시간’을 가리고 있던 두터운 장막은 마침내 지난 28일 벗겨졌다. 검찰이 발표한 ‘세월호 사건 청와대 보고 조작 의혹 수사 결과’로 실상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다.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오전 10시19분부터 오후 5시15분까지 7시간 동안 박근혜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상세히 밝힌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의 조사 결과는 경악과 충격을 넘어 대다수 국민이 분노를 억누를 수 없게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 등이 국회와 언론을 상대로 주장한 박근혜의 ‘7시간 행적’이 완전히 조작되거나 왜곡된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 사진. 사진=세월호침몰사고대책본부

간략히 말하면, 박근혜는 7시간 대부분을 침실에서 보냈다. 세월호 침몰사건 이래 3년이 넘도록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은 당일 오전 10시에 첫 번째 서면보고를 받은 뒤 10시 22분 국가안보실장 김장수에게 전화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고 주장해 왔으나 그것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검찰은 “박근혜 청와대가 탑승객 구조 골든타임의 마지막 시간을 10시17분으로 설정, 그 이전에 대통령 보고와 지시가 있었음을 가장하기 위해 대통령 보고 시간을 조작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 본관에서 박근혜의 집무실까지 세월호 관련 사항에 관한 ‘보고’가 전해진 과정은 우습지도 않은 한 편의 만화를 연상시킨다. 4월16일 오전 10시 조금 지나 세월호 사건 보고를 받은 김장수가 박근혜에게 전화를 걸어 내용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박근혜는 불통이었다. 그러자 김장수는 제2부속비서관 안봉근에게 “대통령에게 세월호 관련 상황보고서 1보가 올라갈 예정이니 전화 해 달라”고 말한 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 신인호에게도 “상황보고서 1보를 관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신인호로부터 보고서를 받은 상황병은 관저로 달려가 내실 근무자 김 아무개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침실 탁자 위에 보고서를 올려놓고 나왔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대통령이 시급히 알아야 할 정보가 탁자 위에 놓인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박근혜는 김장수가 다시 건 전화도 받지 않았다.

10시12분쯤 안봉근이 상황병과 다른 동선으로 관저 침실 앞으로 가서 박근혜를 여러 차례 부르자 그는 밖으로 나와 김장수의 보고 내용을 듣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명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하라. 엔진실, 객실 등을 철저히 수색해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때가 10시22분이었다. 그 뒤 박근혜가 한 일은 10시30분 해양경찰청장 김석균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 지시를 내린 것뿐이었다. 그 시각에 세월호 선체는 천천히 가라앉더니 11시20분에 완전히 침몰해 버렸다. 박근혜가 김석균에게 전화를 한 뒤 텔레비전을 보았다고 검찰이 밝힌 점으로 미루어보면 그는 세월호 침몰 사실을 곧바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침실에서 두문불출이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박근혜 정부와 집권당은 7시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미궁에 가두어 두려고 갖은 술수를 썼다. 특히 최순실이 그날 오후 청와대에 갔으리라는 추측이나 주장을 완전한 모함 또는 날조라고 몰아붙였다. 그런데 정작 최순실은 그날 오후 2시15분께 행정관 이영선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A급 보안손님’으로 관저에 가서 박근혜와 마주앉았다. 두 사람은 ‘문고리 3인방’과 함께 대책회의를 열었다. ‘상왕’이나 다름없는 최순실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제안하고 박근혜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참으로 납득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사건은 바로 그 시각부터 시작되었다. 정호성(제1부속비서관)은 행정관 윤전추에게 “대통령의 화장과 머리를 담당하는 직원 2명을 청와대로 호출하라”고 지시했다. 300명이 넘는 승객이 죽음의 길로 치닫고 있던 순간에 ‘국가원수’라는 인물이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고 머리 손질을 하고 있었다니! 박근혜는 1시간 반 가까이 ‘치장’을 한 뒤 침실을 나섰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안에 있는 중대본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15분이었다. ‘침실 대통령’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박근혜는 게슴츠레한 얼굴로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시쳇말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했다. 세월호 참사로 304명이 수장된 뒤에 박근혜가 어떤 언행을 보였는지는 여기서 상세히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15분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한 박근혜씨. 사진=청와대

박근혜에게는 주권자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 생각과 고정관념은 평소 언행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5년 11월10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던 박근혜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당시 교과서로 공부하던 학생들을 모두 ‘비정상’의 정신질환자로 매도한 것이다. 국가적 대참사가 진행되던 때에 화장과 머리 손질을 한 박근혜야말로 ‘혼이 비정상’이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명명백백히 드러났다.

박근혜는 지금 감옥에서 ‘나는 무죄’라며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명백한 혐의 사실들조차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얄궂게도 그의 전임자 이명박도 서울동부구치소에서 기소와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혼이 비정상’인 박근혜, ‘돈에 대한 편집증’ 때문에 부정한 방법과 수단으로 거액의 축재를 한 이명박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저 두 인물이야 말로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최적의 반면교사’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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