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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미디어 12] ‘소설’을 썼던 기자〈이용재 시나리오 작가ㆍ재단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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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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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섀터드 글래스 (Shattered Glass, 2003)
[연출] 빌리 레이
[각본] 버즈 비싱거, 빌리 레이

“소설 쓰지 마라”
사실무근의 주장을 일축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이 영화는 ‘소설’을 ‘기사’로 보도해버린 미국의 잡지 〈더 뉴 리퍼블릭〉의 실제 이야기를 극화했다.

〈더 뉴 리퍼블릭〉은 1914년에 창간한 전통의 정치 교양 잡지. 한때 10만 부를 발간하며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의 유일한 기내 잡지였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문제가 터진 건 1998년,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흥성거리던 닷컴 버블의 초입이었다. 스티븐 글래스(헤이든 크리스텐슨)는 〈더 뉴 리퍼블릭〉의 각광받는 기자였다. 26세, 3년차의 연부역강한 어소시에이트 에디터였던 그는 발제의 달인이었다. 편집회의에서 때론 춤을 추고 때론 고함을 지르며 마치 눈앞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듯 생생하게 기사를 발제하는 그를 잡지사 사람들은 모두 좋아했다. 그가 쓴 기사들 역시 경쾌하고 유머가 가득했다.

“빌 게이츠의 청소년 버전으로 보이는 15살짜리 해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돈이 필요해! 스포츠카도 사야하고, 디즈니랜드에도 가야하고. 〈엑스맨〉 1권도 사야하고, 또... 〈플레이보이〉 평생 구독권도 필요해. 아! 〈펜트하우스〉도. 그러니까 돈을 달라고. 돈을!”

그가 1998년 5월에 쓴 ‘해커 천국’이란 제하의 기사 도입부다. 10대 해커가 주크 마이크로닉스란 회사의 네트워크를 뚫었다가 그 회사의 보안 컨설턴트로 채용됐다는 스토리였다. 그러나 기사는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킹을 당했다는 주크 마이크로닉스란 회사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꼬마 해커도 어마어마한 몸값의 스카우트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뻥이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지만, 사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런 거짓 기사가 편집자, 법무 팀, 팩트 체크 팀으로 이어지는 엄격한 검수 과정을 어떻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 모두가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을 이야기하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던 시절(마치 요즘의 가상화폐처럼), 젊은 기자가 쓴 최신 트렌드의 스토리에 잡지사 전체가 속아 넘어간 셈이다.

유머가 넘쳤던 글래스는 동료(특히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글래스는 타사(포브스)에서 기사의 신뢰성에 의혹을 제기하자 하지도 않은 취재를 수첩에 기록하고, 있지도 않은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자기 친형을 회사 관계자인 것처럼 꾸며 사태를 무마하려고 했다. 들통이 나고도 반성이나 사과는커녕 사내 정치 상황을 이용해 “편집장이 반대파를 찍어내려고 한다. 내가 첫 번째 희생양”이라고 음해하다가 결국 해고됐다.

편집장 찰스 레인(피터 사스가드)는 “우리는 글래스를 동료로서 신뢰했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인 양심조차 갖추지 못한 인간이었다. 사악한 의도를 가진 사기꾼을 선의로 대했던 것이 실수”라고 평가했다.

자체 조사 결과, 글래스가 썼던 기사 41건 중 27건은 지어낸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자는 왜 소설가가 되지 않고 기자가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과연! 그는 해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소설을 써냈다. 2003년 발간한 자전적 소설의 제목은 〈거짓말쟁이 The Fabulist〉.

그밖에

* 해고 후 글래스는 뉴욕과 캘리포니아주에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의 부도덕한 이력을 들어 변호사 등록을 거부했다. 지금은 베버리 힐즈의 한 로펌에서 변호사 보조원으로 일하는 중.
** 〈더 뉴 리퍼블릭〉은 2012년 마크 저커버그의 학창시절 룸메이트이자,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였던 크리스 휴즈에게 인수됐으나, 휴즈의 경영 방침에 반발한 편집진이 대거 이직하는 등 내홍을 겪다가 2016년 출판업자 윈 매코맥에게 인수됐다.
*** 빌리 레이 감독은 본 연재 5회에서 다뤘던 영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2009〉의 각본을 썼다.

평점 : IMDB(7.2/10), 로튼 토마토(91/100), 왓챠(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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