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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ㆍ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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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2.2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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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닌 드보르작. 사진=위키백과

교향곡 작곡가 드보르작이 이뤄낸 꾸준한 성장은 마지막 교향곡인 9번 〈신세계에서〉를 통해 드높은 정점에 도달한다. 이 작품은 산뜻한 멜로디와 경쾌한 리듬으로 ‘교향곡은 심각하고 재미없는 음악’이란 편견을 단숨에 무너뜨렸고(최은규 〈교향곡〉, 마티, p.400), 서양음악 어법에 미국 원주민과 흑인들의 선율과 장단을 얹어서 빛나는 보편성을 획득했다. 그의 교향곡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경쾌한 선율과 마음을 적시는 보헤미아 정서로 전 유럽을 사로잡았다.

9곡의 드보르작 교향곡은 꾸준한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1881년 프라하에서 초연된 교향곡 6번 D장조는 이듬해 런던에서 아우구스트 만스와 한스 리히터 지휘로 연이어 공연되어 큰 갈채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런던 필하모닉 협회는 드보르작을 초청하기로 결정한다. 교향곡 작곡가로 인정받게 된 드보르작은 1884년부터 1891년까지 아홉 차례 영국을 방문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다. 첫 방문 때인 1884년에는 교향곡 6번 뿐 아니라 장대한 〈슬픔의 성모〉를 12,000명의 청중 앞에서 직접 지휘, 대성공을 거두었다. 런던 시민들은 하이든이나 멘델스존이 방문했을 때보다 더 열광적인 환호를 드보르작에게 보냈다.

1885년 4월, 세 번째 영국 방문 때 성 제임스 궁에서 드보르작 자신의 지휘로 초연된 교향곡 7번 D단조도 큰 호평을 받았다. 6번이 따뜻한 감정과 짙은 민족 정서를 강조했다면, 7번은 어두운 정열과 낭만적인 느낌을 잘 조화시켜서 보편적인 호소력을 획득한 작품이었다. 빈에서 브람스 교향곡 3번 F장조를 듣고 난 뒤 좀 더 확고한 교향곡의 이념을 추구한 결과일 것이다. 영국의 음악학자 도널드 토베이는 1935년 드보르작의 교향곡 7번에 대해 ‘19세기의 최고 걸작’으로, “슈베르트의 대교향곡 C장조나 브람스의 교향곡 4번과 어깨를 견줄 만 하며, 베토벤 이후 가장 위대하고 순수한 예술 형식을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드보르작은 1888년 친구가 된 러시아의 대작곡가 차이코프스키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

드보르작 교향곡 7번 D단조 중 3악장 스케르초
정명훈 지휘 드레스덴슈타츠카펠레
유투브 검색어 Dvorak Symphony 7 3rd Chung

런던 필하모닉 협회의 요청으로 작곡한 교향곡 8번 G장조는 한층 더 무르익은 드보르작의 음악 세계를 들려준다. 이 곡은 보헤미아 색채를 다시 강력하게 표현했고, 개성 있는 각 악장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자유로운 구성을 취했다. 가령, 첫 악장은 G장조의 주요 부분으로 가기 전에 제시된 G단조의 모티브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발전한다. 3악장은 스케르초가 아니라 슬라브 무곡과 같은 ‘알레그레토 그라지오소’의 우아한 춤곡이다. 4악장은 서주가 있는 변주곡이지만, 전체적으로 소나타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이 독특한 교향곡은 런던 초연부터 인기가 있었고, 드보르작 교향곡의 정점을 이룬 것으로 평가됐다.


드보르작 교향곡 8번 G장조 중 3악장 스케르초
주빈 메타 지휘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유투브 검색어 Dvorak Symphony 8 3rd Mehta

영국에서 거둔 커다란 성공은 미국에까지 알려졌다. 1892년 자네트 서버Jeanette Thurber 여사가 그를 뉴욕 국립음악원의 원장으로 초빙한 것은 그를 세계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드보르작이 미국 땅을 밟은 1892년 9월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밟은 지 만 400년으로, 그의 환영 행사는 ‘두 개의 신세계 - 콜럼버스의 신세계가 음악의 신세계를 만나다’란 제목으로 성대하게 열렸다.

미국에는 아직 ‘미국 음악’이라 할 만한 전통이 없었다. 조지 거슈인이나 아론 코플랜드 같은 미국 작곡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드보르작을 뉴욕 국립음악원의 학장으로 초빙한 것은 미국 클래식 음악의 시조가 되어 달라는 요구와 마찬가지였다. 자네트 여사가 제시한 연봉은 15,000달러였는데, 이 금액은 당시 환율로 치면 드보르작이 프라하 음악원에서 받는 연봉의 25배였다고 한다. 자네트 여사는 음악원에 흑인 학생도 받아들인 진취적인 인물로, 드보르작이 미국 음악을 폭넓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드보르작에게 미국 시인 롱펠로우의 서사시 〈하이어워사의 노래〉를 오페라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버팔로 빌’ 같은 인디언 공연을 보여주는 등, 드보르작에게 미국 문화를 알리려고 노력했다.

드보르작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새벽 6시부터 작곡을 했고, 독실한 카톨릭 신자답게 아침 미사도 거르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물론, 미국 원주민과 흑인 영가의 음계와 리듬을 열심히 연구하여 자기 음악을 풍요롭게 했다. 드보르작은 “흑인 영가야말로 미국 음악의 중추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며 “흑인들의 노래는 부드럽고 열정적이며, 우수에 차 있으면서도 대담하고 유쾌하다”고 예찬했다.

드보르작이 2년 반 동안 미국에 머물며 작곡한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현악사중주곡 F장조 〈아메리카〉, 첼로협주곡 B단조 등은 미국 원주민의 음악과 흑인 영가를 받아들여 자기 음악으로 승화시킨 걸작들이다. 교향곡 〈신세계에서〉는 1893년 12월 15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계 초연된 이래 100여년 지난 지금까지 가장 널리 사랑받는 교향곡 중 하나다. 신대륙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4악장의 주제는 스포츠 응원가로 사용될 정도로 인기가 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2악장의 주제는 합창으로 편곡될 정도로 유명하다.

드보르작 교향곡 9번 E단조 〈신세계에서〉
브루노 발터 지휘 콜럼비아 교향악단
유투브 검색어 Dvorak 9 Walter

1악장은 '라르고‘의 서주로 시작한다. 호른의 시그널과 장엄한 투티는 낯선 땅에 도착한 불안한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알레그로 몰토(아주 빠르게)에서 등장하는 호른의 첫 주제(1:45)는 2, 3, 4악장에서 계속 변형되면서 등장, 곡 전체의 유전자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주제(2:53)는 흑인 영가풍의 애수어린 선율이며, 플루트가 나지막히 연주하는 G장조의 모티브(4:00)는 〈스윙 로, 스위트 채리어트〉라는 흑인 영가를 닮았다. 드보르작은 “나는 흑인과 인디언 음악의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을 뿐, 그들의 선율을 따른 게 결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2악장 ‘라르고’(9:35)는 장중한 서주로 시작한다. 이 서주도 다양하게 변형되며 곳곳에 다시 등장, 이 교향곡이 얼마나 치밀한 구성을 갖추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이어서 잉글리시 호른이 유명한 〈꿈속에 그리는 내 고향〉 주제를 연주한다(10:10). 1893년 뉴욕 초연 때 이 잉글리시 호른 선율이 너무 아름답고 애절해서 손수건으로 눈물로 닦는 부인들이 많았다고 한다(최은규, 같은 책, p.411). 윌리엄 암스 피셔는 이 주제에 가사를 붙여서 〈고잉 홈〉이란 노래를 유행시켰다. 플루트가 C#단조의 애절한 선율을 노래하고(14:25), 클라리넷의 애틋한 선율이 그리움을 고조시키고, 현악 파트가 이를 받아 조용히 상념에 젖어들게 할 무렵, 갑자기 오보에를 위시한 목관군이 신선한 ‘새소리’를 쏟아낸다(17:47). 드보르작이 미국에서 숲속을 산책할 때 들은 새소리를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3악장 ‘스케르초’(21:38)는 인디언 부락에서 한 바탕 벌어지는 흐드러진 춤판을 떠올리게 한다. 흥겨운 리듬이 난무하고, 이어서 우리 민요 〈몽금포타령〉 비슷한 선율이 등장,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23:15). 중간 부분에서는 1악장 첫 주제가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나 향수를 자극한다(24:32). 통렬한 스케르초의 끝 부분, 추상화처럼 일그러진 1악장 주제를 호른이 다시 연주한다(29:05).

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콘 푸오코’(빠르고 격정적으로, 29:52), 현악의 강력한 서주에 이어 〈신세계에서〉 중 가장 귀에 익은 주제를 호른과 트럼펫이 힘차게 연주한다. 스포츠 응원가로 널리 불리고, 신입생 환영회 같은 회식 자리에서 “노래야 나오너라 빰바라빰빰,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빰바라빰빰~~” 하던 바로 그 선율이다. 클라리넷과 첼로가 주고받는 서정적인 주제(31:58)가 나타나고, 오케스트라가 모든 열정을 다해 질주한 뒤(32:57), 1, 2, 3, 4악장의 주요 모티브들이 등장하여 함께 어우러지며 감동의 대단원을 이룬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에서〉는 미국 클래식 음악의 탄생에 큰 자극을 주었다. 언론인 헨리 크레빌은 이렇게 썼다. “드보르작이 미국 음악계에 있었던 1892년~1895년의 기간은 우리 미국인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천사와 함께 기거한 세월이었다.” 자네트 여사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일 중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일은 드보르작 박사를 미국으로 모셔온 것이다.” 드보르작은 뉴욕에서 첫 해 15,000달러의 엄청난 보수를 받았지만, 증권시장이 붕괴하고 자네트 여사가 파산하면서 수입이 5,000달러로 줄었다. 이미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드보르작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기 어려웠던 그는 1895년 프라하로 돌아왔고, 오페라 〈루살카〉 등 최후의 걸작을 쓴 뒤 1904년 5월 1일 체코인들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났다.

교향곡 〈신세계에서〉는 미국의 음악팬들을 열광시켰다. 초연 직후 뉴욕 타임스는 “이 새로운 교향곡은 미국에도 예술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크게 반겼다. 그러나 이 떠들썩한 반응에 드보르작은 담담히 대답했다. “이것은 체코 음악이고,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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